우리엄마...마지막.. 편하게 가시길 바라는게 제 욕심인가요..?

최은국2008.02.09
조회452

우연찮게 어떤 톡을 보고 저도 글을 써볼까합니다..

 

저는 올해로 20살이 되는 수험생입니다.

 

어머니.. 저희 엄마 올해로 45세 이십니다..

 

막상  제 감정을 글로 쓰려니 눈물이 맺힙니다..

 

저는 2005년 9월 3일을 못잊습니다. 학교가 끝나고 아빠에게 전화를 받았는데

 

엄마께서 산부인과에 입원하셨다고 했습니다. 하혈을 하셔서 입원하셨는데

 

병원에서는 결국 큰 병원가보는게 나을거라고 .. 그래서 저희 가족은

 

저와 엄마와 아빠는 엠블런스를 타고 분당 차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동안 별 생각도 없었고 거의 다 도착할 때쯤에는 엄마 컨디션이 좋아지셔서

 

괜히 여기까지 온거아니냐고 서로 웃으면서 얘기도 나눴습니다.

 

여러 검사를 받고 나서 자궁경부암 2기말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처음엔 제가 무슨 드라마 속에 나오는 얘기의 주인공처럼 너무 어이가 없었고

 

병실에서 엄마와 저는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암을 축소시키기 위해서 항암치료를 여러차례하고


대수술을 하고 나서


항암치료와 함께 방사선치료를 수없이 받게 되었고


결국... 어머니는 결국 암보다 무서운


후유증에 시달렸습니다.. 장이 협착되어서 음시을 먹으면 배가 팽창하고 다시 토로 개어내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였습니다.


항암을 하면 몸이 약하셔서 몇날을 굶고 배변보기도 힘들고


33kg까지 엄마는 살이 빠졌습니다. 결국 아빠와 저는 항암도 문제지만 이러다간 치료도 못하는 상황이 될까봐


항암을 어쩔수없이 중단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집에서 생활을 하면서


정말 괴롭게 하루하루를 보냈습니다. 못먹고 ... 토하고 ...설사하고 ..수없이 반복되는 이러한 생활


물도 제대로 못마시는 ...


저는 고2때 자퇴를 했고 엄마가 항암치료를 하러가면 제가 매번 따라가서 간호를 했기에 시간이 지나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지만, 또 한번 크나큰 고통이 제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2007년 4월 폐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자궁경부암에서 폐료 전이가 되었습니다.


그 때부터 저의 하나님에 대한 믿음은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4월 23일 폐수술을 받는 날, 엄마가 수술실 들어가기 위해 침대에 누워서 대기를 하고 있는데


울지 않으려 했지만 흐르는 눈물 , 너무 보여주기 싫었습니다 다행히도 엄마는 눈이 안좋아서


저의 우는 모습은 못 보셨을 겁니다 하지만 다 아셨겠지요 잡고 있는 손으로 다 아셨겠지요.


미안하답니다 자기는 나쁜엄마랍니다 아파서..


수술시간이 수술하는 사람들 중에 제일 길었습니다..속은 계속 타들어가고.. 온갖 생각과 감정이 교차하고


다행히 수술은 끝났습니다 하지만 수술이 끝나고도 바로 못나오시고 중환자실로 가셔서 2~3일을


보내고 일반병실로 올라오셨습니다.


보름을 병원서 보내고 다시 또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역시 엄마는 못 버티시고 병원을 나오게 되었습니다. 재활치료하는데 3개월정도가 걸리고


장후유증은 여전하구요. 전 어이가 없었어요 의학이 이렇게 발달한 시대에


장후유증 하나 고칠 방도가 없다는 것에대해 ...


엄마는 집에서 매일 토하고 설사하고 모든음식은 씹고 뱉어서 맛만 보는... 물한컵도 맘대로


못마시는 그런 정말 불쌍한 생활을 하시면서 살았습니다.


절 키우기위해서 혼자 일만 했던 지난 10년의 세월


미용일도 하고 백화점에서도 일하고 식당에서도 일하고 김밥집에서도 일하시고


매일을 일만 하시면서 가끔 마시는 맥주에 스트레스를 풀면서 기쁨을 느끼는..너무 힘들게 살았던 엄마에게


이런 고통을 준 신...너무 원망스러웠고 결국 신은 없었구나 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신발은 만원짜리 시장에서 산 구두를 신고 10년이란 세월을 이렇게 힘들게 보냈는데


그에 대한 보답은 결국 이거였습니다.


이 떄는 암이 낫게도 바라지 않고 잘 먹고 잘 소화만 되도록 ..이렇게 빌었습니다


엄마께서 혼자 겪으시면서 음식은 씹고 뱉고 과일같은 즙을 마시고 배가 팽창하면


손가락을 집어 넣어 구토하고 이렇게 터득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 엄마가 힘든건 알았지만,


나중에서야 엄마의 달력을 보고 절실히 느끼고 또 눈물을 쏟았습니다.


엄마의 달력엔 하루하루가 설사..새벽구토..


배가팽창..고통..이런 단어들로 채워저있었습니다..


그래도 엄마는 이렇게 집에서 제가 먹을 밥차려주는 지금 생활로도 ..이렇게라도 살면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안믿으시던 엄마가 이제는 하나님께 맡길테니..라면서


애원하는 글도 달력에서 보았습니다. '행복한 시간들... 불안하다 ...평범한 생활이 깨질까봐


하지못할까봐....서둘러진다..' '주님!! 크리스마스랑 년말을 집에서 보낼 수 있게기도합니다..


이상태로만 생활하게 허락해주세요 지금 이순간 이대로 살아있음이 행복합니다. 모든 일어나는 일들을


순리대로 따르렵니다. 즐거운맘으로요...' ' 하루하루 새날이 밝아옴이 두렵구나 변해가는 건강이


염려된다. 주님께 모든걸 맡긴다고하면서...'


2007년 8월부터 12월까지 고통과 설사 구토는 계속 되었지만 엄마는 겉으론 몸무게가 46kg까지 찌고 혈색도 좋고 제가 빌려다주는 만화책과 소설을


읽으시면서 재밌어하시고 노래감상도 하시고 그랬는데.. 여전히 새벽에 토하고 설사하시긴 하셨지만


그래도 좀 나아졌다 싶었는데 12월 어느 날 부터 목에 뭐가 응어리가 잡힌다고 하셨습니다.


병원에 가보자니깐 병원은 그래도 싫다고 .. 최대한 버틴데까지 버티신다고 하셨습니다..

 

1주일쯤 더 지나자, 목소리가 쉬는 듯하게 나오셨습니다.


결국 동네에 있는 이비인후과에 가서 진단을 받고 큰 병원가시라는 말을 또 듣게 되었습니다..


성대마비라고 원인은 모르니깐 가보라고..


다른 원인이겠지... 설마... 하면서 엄마는 또 고집을 부리셨습니다..


그러다가 몇일후 물 한 모금도 못 삼킬 지경이 되서야 병원에 갔습니다.


2008년 1월 2일 , 병원에 가서 6인실에 입원을 했습니다. 그러나 새벽에 부인암집중치료실로


옮겨졌고 상태는 급격히 안좋아지셨습니다. 페트 씨티 엠알아이 등등 여러 검사를 하고


심장이 문제가 있는 걸 발견했습니다. 심장에 암떄문에 물이차서 위험하니깐 빨리 물을 뺴는 시술을


해야한다고 .. 시술을 하고 나서 엄마는 20여일 가량을 병원침대에서만 오로지 침대위에서만


생활을 하셨씁니다. 여전히 음식은 못드시고 물이나 우유를 스푼으로 떠먹는 정도지


나머진 링거를 꽂아 영양제로 대신하였습니다. 심장문제가 일단락 해결되었고


이젠 원래의 문제인 암입니다.. 의사선생님께서 항암치료를 하자고


하지만 이번 항암치료는 치료가 목적이 아닌 생명연장의 목적이고 효과가 있을지 없을지도


모른다고.. 17일 엄마를 설득하러 집에 내려갔다가 다시 병원으로 올라왔습니다.


엄마에게 제가 말하길.. '항암치료하자 엄마' 이 두마디만 하고 저는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한마디만 더 내뱉으면 또 엄마앞에서 눈물이 흐를 겁니다. 그래서 전 화장실로 가서


또 울었습니다. 병원화장실 계단은 제가 눈물을 흘리면서 혼자 아파했던 장소였습니다.


다시 병실로 가서 '엄마 그래도 항암해야지...' 엄마는 너무 병원이 싫다고


항암해야되는건 알지만 미안하다면서 못한다고 하셨습니다..


엄마와 눈이 마주치자 다리를 꼬집으면서 참던 눈물이 뚝뚝뚝 병원바닥으로 떨어집니다.


엄마는 울기 싫다고 하십니다. 울게 되면 기도에 삽입한 관떄문에 너무 아프다고..


필사적으로 눈물을 참으십니다. 결국 퇴원해서 1주일정도 후에 컨디션회복해서


항암하자고 약속을 했습니다. 퇴원도 일주일 후에 몸상태가 조금나아지고 가능했습니다.


의사선생님께 엄마 항암못하겠다고 전하러 가는 발걸음이


너무 무겁습니다. 의사선생님께 말하면서 페트촬영결과도 들으면서 ...빨리 상담실을 빠저나와


문을 닫자마자 쏟아지는 눈물떄문에 전 또 화장실로 갔습니다.


엄마는 병원근처에 있는 할머니댁으로 가고 저는 집으로 아빠와 내려왔습니다.


주말에 올라가서 엄마보고.... 그렇게 지내다가 .. 엄마가 너무 집에 가고 싶어하셔서 2월 2일


정확히 한달만에 집에 돌아오셨습니다. 제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은 이유는


지금까지 일들 때문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일들 떄문이라면 마음이 아파 쓰라리고 아려서


괴롭고 힘들지만 괜찮습니다.. 요 며칠 사이.. 집에 오셔서 엄마의 생활이 무척 힘듭니다..


저는 의대에 가려고 재수하는 수험생 입니다. 1년전까지만 해도 엄마 ..


우리엄마 나 결혼하는 것만 보게 해달라고 ... 그리고 얼마전까지에는


 엄마 상태가 어떤지를 알기에


전 없다고 믿는 신한테라도 .. 대학갈때까지만 엄마 살아계시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요 며칠을 엄마는 하루종일 침대에 있거나 거동도 힘드시고 .. 목소리도 거의 안나옵니다.


엄마를 볼때면 저는 오래 못봅니다. 또 엄마를 볼떄면 다른 한편으론 즐거운 생각을 해야됩니다.


안그러면 또 눈물이 흐릅니다. 엄마 앞에선 우는 모습 보이기 싫습니다.


전 아빠앞에서도 눈물보이기 싫어서 밤에 가끔 혼자 울고 맙니다.


인간이 정말로...절망에 빠지면 그 위로는 친구도. 부모도 아닌 자기 스스로만이 할 수 있는 것


같다라는 걸 느꼈습니다.


엄마가 드실 미음과 죽 같은걸로 식사를 차리고 포도와 딸기를 갈아서 주스 만들어주고 ...


이렇게 힘든 엄마에게 제가 정작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래도 저렇게라도 엄마랑 같은 집에 있으니 전 괜찮다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잘 표현을 안하셔서 전 엄마가 얼마나 힘든지 제대로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오늘, 아빠에게서 너무 절망적인 말을 들었습니다.


너도 이제 성인이고 알아야 할 것 같다고..


새벽에 엄마가 부엌에서 목숨을 끊으시려고 ... 줄까지 준비해서 그런 찰나에


아빠가 잠결에 깨셔서 극적으로 막았다고......


아...... 미치는지 알았습니다.. 정말 말로 표현을 못하겠지만


너무 가슴이 아프고 눈물은 흐르고 머리는 멍하고........가슴은 슬픈데 머리는 슬픈걸 넘어서


어떻게 받아들이고 감당하고 그래야 할지 몰라서 멍해지고..


너무 큰 충격이였습니다....


내가 왜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너무 큰 고통들이 왜 내게 닥치는지 ,,,


..............담배를 피면서 그나마 맘을 진정시키고..


엄마의 포도주스를 다시정성껏 만듭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엄마가 마실 포도주스 만드는 정도니깐요...


정말......정말로 신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신이 있어서 ......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우리엄마 편하게 해주지...


사실은 우리엄마 싹 낳아서 나 의대가는 것도 보시고  결혼하고 손주도 보고 오래오래


다른 평범한 가족들처럼 사셨으면  ..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겪어보지 않는 한 너무나 다릅니다...


그래서 ... 이제는 많은 것 안바래요..


제가 감당을 하든 못하든간에


 우리엄마... 마지막 갈때 가시더라도 편하게 가시게끔 .......


바라는게 제 욕심인가요...?

 


단 하루라도 고통없이 먹고 싶은 것 맘껏먹고...


하고싶은 말 다하시고 그렇게 해 주 실 수 는 없는건가요 하나님.....

 

지금에서야 봤지만 ..


아들아... 너무 사랑해


당신 ... 사랑해


엄마.. 죄송해요

형제, 식구들 사랑해요


         2008. 2. 4  1시20분


*실패해도 살리지마요 제발
마지막 부탁이에요..

 

 

라는 유언... 엄마는 전부터 세상과의 이별을 생각하셨을 정도로 고통스러웠는데


나는 뭘했으며......아니 무얼 할 수 있는지...


아니 어떻해야 하는지....... 전 이 새벽이 너무 괴롭습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나보다 더 힘든 사람 많다 생각해왔지만


지금은 정말 너무 괴롭네요....


여러분께 하고 싶은 말 ... 솔직히 제가 여러분께 드릴 말 없습니다..


단지, 부모님께 효도하세요 정말.... 이 말뿐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