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2008년 2월 10일 자정 무렵. 무심결에 리모컨을 돌리다가 너무 당황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숭례문, 아니 우리에겐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했던 국보 1호 문화재로 누군가가 불장난을 하고 만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이 장면을 공중파 방송 삼사와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는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남대문에 온 국민은 오열하고 분노했다 시장이 사과하고 문화재청장이 사직을 했다는 보도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장의 사직에는 우선 만족할만한 행동처사는 아니라고 본다. 일이 저지르고 나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수습하고 좀 더 노력해 복원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조사와 책임에 따른 충분한 직책의 의무가 따른다 생각한다. 내가 잘못했으니 손을 때고 일어나겠다는 행위만큰 무책임한 처사가 또 어디에 있나. 때려 치려거든 니 할 일은 다 끝내고 가라 이 말이다.
이 당선자의 처사도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잘못해서 태워 먹었길래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 넘기나. 떠 넘겼다는 어감이 얼추 안 맞을 수도 있가만, 어차피 좀 있는사람 돈 조금씩 품빠이해서 도로 다시 만들어 놓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자신이 공은 다 세운 것처럼 그 위에서 떵떵히 지켜만 보면 그만인 것이다.
태안사태 때도 사고 친 삼성이 아니라 수 많은 나라의 자원봉사자와 국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수습할때도 정안 언잖기 그지 없었다. 그런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태안은 아직도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있지 않았겠는가. 정부가 한 게 뭔가. 삼성이 한 게 뭔가. 그 추운 겨울 날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한다고 밥이라도, 차비라도 챙겨준 적이 있었던가. 불쌍한 어민들에게 위로의 손이라도 잡아준 적 있었던가.
어제는 또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남대문을 국보 1호의 위상에서 그대로 지켜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만든다고 해 봐야 원본과는 다른 21세기의 건축물이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었다. 자 우선 내가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대문을 거대한 미술품으로 보고 해석해 보겠다. 본디 실존하는 남대문은 지금 불에 타서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 다시 21세기의 뛰어난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본디의 설계도를 가지고 다시 가공해서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이전의 숭례문보다 덜 견고한 건축물이 나올것인가? 어차피 타기 전의 숭례문 또한 보수공사가 이루어져 본디 원작과는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또 화려한 조명으로 조선의 그 것과는 완전히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 조금 철학적인 이야를 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다시 지금부터 지을 이 숭례문은 시뮬라크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더 단단하고 견고한 21세기판의 신 유적을 만들어 내어 간다는 것이다. 옛 조상의 혼을 들먹이면서 누가 만들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마라. 어차피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행위는 순간적이고 지속될 수 없으며 목조건물이라는 건 확실히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더 그러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말하는 국보1호의 자리에 현대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훨씬 더 견고하게, 더 안전하게 더 타지않게 말이다. 이게 당신이 딛고 부비는 포스트 모던한 사회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우린 선조의 솜씨를 논하는 해묵은 원본과 복제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좀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대적 비극을 딛고 지금부터라도 남은 문화재에 더 필요한 보안을 같추고 유지에 정부는 한 층 힘써달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는 바이다.
●숭례문에 재건축에 대해 몰랐던 사실●
그러니까 2008년 2월 10일 자정 무렵. 무심결에 리모컨을 돌리다가 너무 당황스러운 장면을 목격하게 되었다. 숭례문, 아니 우리에겐 남대문이라는 이름으로 익숙했던 국보 1호 문화재로 누군가가 불장난을 하고 만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이 장면을 공중파 방송 삼사와 케이블 뉴스 채널에서는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뼈대만 앙상하게 남은 잿더미로 변해버린 남대문에 온 국민은 오열하고 분노했다 시장이 사과하고 문화재청장이 사직을 했다는 보도를 들을 수 있었다. 문화재청장의 사직에는 우선 만족할만한 행동처사는 아니라고 본다. 일이 저지르고 나면 거기에 대한 책임을 가지고 수습하고 좀 더 노력해 복원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조사와 책임에 따른 충분한 직책의 의무가 따른다 생각한다. 내가 잘못했으니 손을 때고 일어나겠다는 행위만큰 무책임한 처사가 또 어디에 있나. 때려 치려거든 니 할 일은 다 끝내고 가라 이 말이다.
이 당선자의 처사도 여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누가 잘못해서 태워 먹었길래 그 책임을 국민들에게 떠 넘기나. 떠 넘겼다는 어감이 얼추 안 맞을 수도 있가만, 어차피 좀 있는사람 돈 조금씩 품빠이해서 도로 다시 만들어 놓겠다는 말이 아닌가. 그러고 자신이 공은 다 세운 것처럼 그 위에서 떵떵히 지켜만 보면 그만인 것이다.
태안사태 때도 사고 친 삼성이 아니라 수 많은 나라의 자원봉사자와 국민들의 성금으로 다시 수습할때도 정안 언잖기 그지 없었다. 그런 국민들의 따뜻한 마음이 없었다면 아마 태안은 아직도 기름이 둥둥 떠다니는 죽음의 바다가 되어있지 않았겠는가. 정부가 한 게 뭔가. 삼성이 한 게 뭔가. 그 추운 겨울 날 자원봉사자들에게 수고한다고 밥이라도, 차비라도 챙겨준 적이 있었던가. 불쌍한 어민들에게 위로의 손이라도 잡아준 적 있었던가.
어제는 또 재미있는 기사가 올라왔다. 남대문을 국보 1호의 위상에서 그대로 지켜주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자 사람들은 다시 만든다고 해 봐야 원본과는 다른 21세기의 건축물이 아니냐며 반발하고 있었다. 자 우선 내가 미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남대문을 거대한 미술품으로 보고 해석해 보겠다. 본디 실존하는 남대문은 지금 불에 타서 없어졌다. 그래서 지금 다시 21세기의 뛰어난 기술력과 자금력으로 본디의 설계도를 가지고 다시 가공해서 만든다는 것이다. 과연 이전의 숭례문보다 덜 견고한 건축물이 나올것인가? 어차피 타기 전의 숭례문 또한 보수공사가 이루어져 본디 원작과는 차이를 가지고 있지 않았던가. 또 화려한 조명으로 조선의 그 것과는 완전히 사뭇 다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았던가.
자, 조금 철학적인 이야를 해보도록 하자. 우리가 다시 지금부터 지을 이 숭례문은 시뮬라크르가 된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더 단단하고 견고한 21세기판의 신 유적을 만들어 내어 간다는 것이다. 옛 조상의 혼을 들먹이면서 누가 만들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지마라. 어차피 우주에서 일어나는 어떤 행위는 순간적이고 지속될 수 없으며 목조건물이라는 건 확실히 다른 것들에 비해 훨씬 더 그러한 것이다. 이제 우리가 말하는 국보1호의 자리에 현대 기술력으로 만들어진 시뮬라크르가 그 자리를 차지한다는 것이다. 훨씬 더 견고하게, 더 안전하게 더 타지않게 말이다. 이게 당신이 딛고 부비는 포스트 모던한 사회의 사고방식인 것이다.
우린 선조의 솜씨를 논하는 해묵은 원본과 복제의 이분법적 사고에서 좀 더 유연해 질 필요가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시대적 비극을 딛고 지금부터라도 남은 문화재에 더 필요한 보안을 같추고 유지에 정부는 한 층 힘써달라는 당부를 마지막으로 이 글을 마치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