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동생을 구해주십시오

누나2008.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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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제 동생은 안동의 모실업고의 축산교사였습니다. 2007년 4월 9일 까지요. 그런데 2007년 4월 10일 특가법 뇌물수수로 안동교도소에 수감되었습니다. 꼭 다물었던 입 때문에 안동지검의 담당검사님께서도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동생과 연루되었던 조금 더 높으신 분들께서는 편안하게들 주무셨을 겁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요.

 참, 2007년 4월 10일 mbc 저녁 뉴스에도 나왔습니다. 실습생들 죽어라 일만 시키고, 그 담당교사는 그 실습생들이 일을 해 키운 닭알 팔아서 호의호식한 세상에서 가장 파렴치한 교사로 전락되면서, 아주 사람 병신 만들어 보도를 하더라구요?

2. 제 동생은 특가 뇌물법이 적용되어 1심에서 3년 6월에 추징금 6400만원, 항소심 때는 그 어떤 유혹도 물리치고 동생이 입을 열었지요.

 " 일반교사 신분으로 3년 동안 2004년 3월부터 5, 6년도까지 매월 200~300만원씩 계란 판매업자에게 계란 값을 낮추어 계산하는 방법으로, 계란값 일부는 학교로 들어가고, 또 일부는 제 동생이 챙기고, 그 챙긴 6400여 만원 중 4750여 만원은 상납이 맞는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모시던 교장선생께 갖다 드리고요. 나머니 1650만원은 그 윗분들 출장 나오시면 술 사줘야하고, 밥 사줘야하고... 왜나하면, 이유가 있었지요.

 2004년 12월에 2005~6년도 계란 판매권 입찰이 있었는데 평균 개당 +6원이었던 것을 +4원으로 2년 동안의 계란 값을 낮춰 계약을 했답니다. 그것도 2004년도에 새로 부임한 그 교장선생님께서요. 그리고 그 교장선생님과 그 계란업자는 사제지간이구요.

(2007년 11월 22일 안동 mbc 뉴스데스크)

3. 일이 이렇게 되자, 항소 2심 판사님께서는 계란업자와 그 교장선생님을 증인으로 채택하시고 증언을 했는데, 그 교장은 역시 "모른다" "기억이 없다" 라고 일관했고, 참, 그 교장선생님께서는 동생의 변호사 비용도 2000만원이나 내놓으셨지요. 계란업자는 사실대로 얘기했었습니다. 제 동생은 거의 심부름만 한 것으로 알고 있다 라고요? 어차피 학교로 들어가야 할 돈이니 별다른 생각 없이 결재를 했었다고요.

4. 2심 재판 과정 중 판사님께서는 공소장 변경을 두 번이나 말씀하셨고, 공소장은 예비적으로 변경이 되었지요. 학교로 입금되어야 돈이 제 동생한테 들어왔으니 횡령으로요. 그런데 2심 선고 결과, 뇌물수수가 그대로 적용되어 2년 6월에 추징금 6400만원이 떨어졌습니다. 2008년 1월 24일 대구 고등법원에서요.

 그리고 그 증인들이 했던 증언 내용은 어느 곳에도 적용되지 않았고, 상사의 지시로 어쩔 수 없이 돈을 찾아다 관리하고, 필요할 때마다 갖다 주었던 사실도, 그 교장과 업자와의 대화내용, 낙찰비리, 즉, "말하지 말라" "돈이 얼마나 필요하냐" 등 녹취록도, CD도 제출하였음에도 그 판사님께서는 어느것 하나 인정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5. 지난 08년 1월 30일 그 교장은 결국 구속이 되었습니다.

(안동 대구 mbc, KBS 뉴스 2008년 1월 30일). 뇌물수수 등으로요. 제 동생이 그 교장에게 건넨 돈은 6400만원 중 4750만원. 그리고 6400만원 중 4750만원을 제외한 나머지 돈 1650만원은 그 교장선생님 역시 그 돈을 그 윗선에 상납을 했고, 그 나머지 돈은 그 윗분들께서 출장 나오시면, 밥 사줘야지, 술도 드셔야겠지요?

6. 제 동생은 대법원에 상고 중에 있습니다. 제 동생이 과감하게 처음부터 안된다고 확실하게 거부를 했어야 맞을 일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직권을 이용해 자신의 부하 직원에게 빠져나갈 수 없게끔 덫을 놓아 결국 자신까지 철창신세가 되어버린 퇴직을 얼마 남기지 않은 그 교장선생님.

 이제는 사실대로 입을 열으셔야 됩니다. 잘못된 관행이 되풀이 되어서도 안되고, 제 동생 같은 사람을 만들어서도 안됩니다. 제 동생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교장선생님께 건넨 오천여 만원의 현금 사용처를요.

7. 마흔 두 살의 중년 교사가 있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 초임지는 경북의 어느 산골 중학교, 지금의 누나는 김치를 몇 번 담궈다 준 적이 있었습니다. 반 아이들의 절반이 도시락을 챙겨오지 못하자, 선생님과 아이들은 라면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그 아름다운 청년교사는 구속되기 전까지도 자신의 제자들을 돌보았습니다. 부모가 없는 아이에게는 면허증도 따주고, 취업문제도 해결하고, 등록금이 없던 녀석에겐 등록금까지 내주고.

 그 중년교사는 절대 해서는 안되는 일을 해버려 자신이 쌓아온 모든 것을 수포로 돌아가게 했습니다. 이제야 그 교사는 자신이 진정 잘못 되었음을 알고 울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에게도, 아이들에게도, 그리고 팔순의 노모에게도, 형제들에게도 지독하게 미안해하는 동생을 오늘도 누나는 안동교도소에 면회를 다녀오면서 가슴이 아파 눈물만 흘리고 있습니다. 제 동생은 자신의 잘못을 철저하게 반성하고 있습니다.

 제 동생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십시오.

 오늘도 제 동생은 꺼지지 않은 하얀 백열등 아래서 처참하기만한 자신을 질책하고 있을 것입니다. 10여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하면서 그의 얼굴에는 수심과 기미로 가득합니다.

 제 동생을 구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