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피는 아빠

..2008.02.24
조회921

24살 대학생이예요

그냥 넋두리 한번 해보려고 써봐요

글이 엄처어어어엉 길으니 안 읽으셔도 상관 없어요.. ㅋ

 

아마 아빠가 바람을 피는 것을 제일 일찍 눈치챈건 저 일거예요

고등학교를 타지에서 다녔기에 그 이전에 상황이 어땠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학교를 졸업하고 집에 와서 쉬고 있을때였죠.

외할아버지 생신이라  다같이 외가에 들렀다가 엄마는 더 머물고 온다 하시고

저와 아빠 단둘이 집으로 돌아온 날 밤..

제방에서 컴퓨터를 하다가 지겨워져서 티비나 봐야겠다 싶어 큰방문을 열고 들어갈라는 차

아버지가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목소리 톤부터 대화내용이 딱 바람이더라구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일단 확신이 서지 않았기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했는데

통화를 끝내고 잠시 밖에 다녀온다고 하시던 아빠..

그렇게 아빠가 황급히 외출을 하고 그때부터 아빠에 대한 저의 감정은 불안정한 상태가 되버렸죠

항상 오빠와 저한테 다정다감 하시고 모자란 것 없이 챙겨주셔서 감사하고 죄송하던 아빠가

도시에서 시골 골짜기로 시집와 20년이 넘도록 사과밭 농사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가 되버린

엄마를 등지고 바람을 피고 있다니  ..  충격이 큰 만큼 눈물도 흐르지 않았어요.

지금도 아빠가 외출하고 돌아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있는 저에게 머쓱한 웃음을 지으며

무슨일이라도 났냐고 묻던 것이 생각나네요 . 도둑놈이 제 발 저리다고.

그 뒤에도 엄마가 안계실때 큰방에서 열심히 문자를 쓰고 있다가 제가 들어가면 어찌나

황급하게 핸드폰을 감추시던지; 차라리 그냥 담담하게 있으면 모른척이라도 수월하지.

그때만해도 엄마는 아빠가 바람을 피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셨을 거예요

차 한켠에 누군가에게 선물받은 듯한 방향제를 보았을때도, 아빠가 발렌타인데이날 받아온

초콜렛을 보고도 그냥 그러려니 하셨고 제가 "아빠 바람피는 거 아니야~?" 하고 떠보는 말을

할때도 웃기는 소리 하지 말라며 저를 다그치셨으니까요.

아빠를 굳건히 믿고 있는 엄마에게 아빠가  바람피고 있다고 차마 말할 수 없었고 그럴만한

용기도 없었기에 저는 그저 아빠의 불륜을 방관하면서 속만 태울수밖에 없었어요.

그렇게 어정쩡한 상태로 시간이 흐르고 저는 또다시 대학생활을 위해서 서울로 올라와서

있었기때문에 아빠가 바람을 피고 있을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물증이 없었기에 그냥

이대로 아빠가 그 역겨운 관계를 청산하고 엄마와 잘 지내셨으면 하고 바랄 뿐이였어요.

하지만 역시 늦바람이 무서운 거라고.. 작년이였죠. 어처구니 없이 진실이 폭로되버린 것은.

엄마와 오빠가 인천에 있는 외갓집에 온다고 하기에 저도 오랫만에 엄마 얼굴도 좀 볼겸

외갓집으로 찾아 갔더니 엄마는 나가셨고 오빠와 사촌언니들이 고기를 꿔먹고 있었어요

그래서 다같이 둘러앉아 고기를 꿔먹고 있는데 사촌 언니들이이 나이가 좀 있으셔서 그런지

남편에 외도에 대한 심각성을 외면하시는 듯? 개념없이 저희 아빠 바람 이야기를 저와 오빠

앞에서 서스럼없이 하하호호 웃으면서 말하는 거예요. 참 그것도 사촌언니들이라고.

그때 .. 표정관리 안되던 오빠의 모습과 고개를 들 수 없던 저의 모습이 참..비참했습니다..

아무튼 엄마는 언제인지는 몰라도 아빠의 외도 사실을 눈치채셨고.. 그날 오빠도 알아버린 거죠.

그렇게 아빠와 할머니만 빼고 우리 가족 모든 구성원이 그 더러운 관계를 알아버렸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한심한건지 무심한건지, 그 뒤로도 모두가 쉬쉬하느라 바빴던 것 같아요

오빠와 저는 서로 아무런 말이 없었고 엄마 앞에서도 모르는 척 똑같았어요

모두가 아빠한테 받은 배신감이 너무 커서 이도저도 못하고 방향을 잡지 못했던 것 같아요

정말 멍청하죠 등신같죠. 누구하나 4년이 넘어가도록 말이 없었어요 ..각자 속만 앓았겠죠

그런 이야기를 한다는 자체가 자존심 강한 엄마, 오빠, 저에게 상처였을테니까요 .

그뒤로두 쭉 오빠와 제가 꿀먹은 벙어리처럼 지내는 동안 엄마와 아빠는 자주 싸웠어요.

어느날은 친구집에서 자고 아침일찍 집에 들어오다가 엄마와 아빠가 싸우는 걸 들었는데

'어쩌구 저쩌구 하니까 이번 한번만 용서해줘'라고 말하면서도 전혀 용서를 바라는 말투가 아닌,

오히려 입 다물고 가만히 있으라는 듯한 아빠의 말투를 듣고 정말 오만정이 다 떨어지더라구요.

하.. 그런 뻔뻔한 행동을 하고서도 엄마한테 이런저런 일을 시키고 우리들 앞에서 체면 세우고.

아빠의 가식적인 모습에 한번 상처받고 불쌍한 엄마 때문에 두번 비참해지고 모든걸 알면서도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내 자신에게 세번 좌절하고.. 그런 날들만 이어져 갔습니다.

모두가 모르는 척 쉬쉬 넘긴다고 한들 그 경멸스러운 관계가 언제까지 수면 밖으로 떠오르지

않겠습니까. 갈수록 상황은 악화되고 이제 여기가 한계인가 싶습니다.

몇일전에 아침에 일어났더니 엄마가 보이지 않았어요 하루종일 전화도 안 받으시고..

분명 또 그런 일로 아버지랑 싸우셨을게 뻔한데 전화기 전원도 꺼버리시고 종적을 감추신 걸

보니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싶었어요..

오후 6시가 다되가는 시간에 엄마가 들어오셨는데 슬리퍼며 양말이며 흙이 덕지덕지..

7시간동안 무작정 산길을 걸었다고 하셨어요 아빠와 싸우고 나서 너무 답답해서.

오빠와 저를 부르시더니 어두운 표정으로 중요하게 할말이 있다고 그러시다가

아. 아니라고 오빠  휴가 끝나고 군대 들어갈때 기분좋게 가야하지 않겠냐고 됐다고 그러시데요

나는 정말 끝까지 와버렸구나 싶어서 눈물이 날 것 같아 죽겠는데 오빠는 무덤덤 한 것 같아서

오빠라는 거는 도대체 뭐하는 사람인가 싶었어요. 남자들은 다 저렇게 무심한건가 싶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구요.. 그날밤 오빠가 오랫만에 휴가나와서 횟집에 외식하러 가게 됐거든요

그 자리에서 오빠와 아빠가 술을 마시는데 엄마한테 좀 잘해드리라고, 아까 일부로 자리 피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지금까지 많이 참았다고 오빠 내 여자친구네 집 부모님 사이가 안좋은 이유로 반대하시면서 아빠가 이러시면 말이 안되는 거라고 그동안 가슴속에 묻어뒀던 말들을 꺼냈어요.

아빠는 오빠의 '바람피지 말고 엄마한테 잘해 드려요' 의 완곡한 표현들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그만하라고 안그러면 화낼거라고 하면서 승질을 부렸습니다..자존심은 쎄서 그런 소리 듣기는

 싫었겠죠. 자지가 저지른 흉학한 짓은 생각도 안하고 '내가 할말이 있는데 참는다' 라는 둥

'별로 싸운것도 없는데 , 니가 그렇게 참견할 일이 아니다' 라는 둥.. 정말 꼴불견 이였습니다.

오빠도 많이 참하고서 말한건데 자기 체면만 챙기는 아빠가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그날뒤로.. 오빠는 군대에 들어가고 저희집엔 긴 정적이 흘러가고 있습니다..

아빠가 조금은 엄마 눈치를 보는 듯 조심조심 행동하기에 이제 좋아지려나? 이런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지금막 큰방에 갔더니 또 엄마가 없는 사이에 누군가에게서 온 문자를 감추는 아빠..

요즘에 엄마는 마지막 기회마저 져버린 아빠에 대한 배신감에 잘 주무시도 못하는데..

이제 정말 위선적이고 가증스러운 아빠의 행동에 진저리가 나서 못 참겠어요

지지리도 못난 아빠한테 얽매여서 살아오던 엄마는 이제는 자기의 삶을 되찾고 싶으시데요

그래요. 저도 이제 아빠에게 믿음도 사라지고 배신감만 가득찬 엄마를 보면서 고통스워하고

싶지 않아요. 이런 악상황만 연속될거라면 차라리 엄마를 놓아 드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엄마가 행복해지기 위해선 아빠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새롭게 시작하는게 좋을지도 몰라요

그러면 저도 차라리 마음이 가벼워질지도 모르죠. 어설프게 아빠를 생각하는 것보다 처절하게

미워하고 원망하는게 나을지도 모르죠. 그런데 이런 와중에도 엄마는 저만은 아빠를 미워하지

말라고 하시네요. 엄마한테는 못해도 너희한테는 지극정성인 아빠라면서..

아무리 엄마가 아빠 미워하지 말라고 말하셔도 사람이 가슴이 한개지 두개인가요

나한테 아무리 천번백번 잘해주면 뭐하나요 내가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고 아끼는 엄마한테

그렇게 못하면 내 가슴이 찢어지고 천불이나서 죽을것 같은데.

저희 엄마 외할아버지한테 유산으로 받은 1억 사과농사 때문에 진 빚 갚는데 모조리 쓰이고

아빠한테 용돈 받을때마다 좋은소리도 못 들으면서 살았어요. 

사과밭일 하시느라 어깨쪽이 안좋아지셔서 수술까지 받으셔서 무리하면 안되는 되도

여전히 사계절 내내 사과밭일 때문에 고생하시고 살았어요.

저희엄마도 자존심 강하고 남들 앞에서 당당한 사람이고 누구보다 훌룡한 엄마이자 아내인데

바람피는 건 둘째치고 엄마를 찬밥신세 하는 아빠 볼때마다 증오심으로 가득해집니다.

예전엔 엄마와 아빠가 이혼한다는 건 하늘이 두쪽나도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였겠지만

지금은 살아가도 보면 이런날도 있을 수 있다는 걸, 나에게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을

남들만 받는 종류의 상처라고 생각했던 것이 큰 오산이였다는 걸 깨닫습니다.

이제는 어떻게든 제발 엄마가 행복해지길 바랄 뿐....인데.. 아직 아무런 도움도 줄 수 없는

내 자신마져 미워지고 초라해 집니다... 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