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 그리고 역사속에서 사라져 버린 그 영웅에 대해 좀더 알아 줬으면 하고 써보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장을 달군 붉은 악마의 응원속 중심에는 붉고 웅장하며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한 도깨비 문양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잘 알려지고 워낙 관심이 많아 지다 보니 그 문양이 누구인지는 거의 다 알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역사속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배달'의 14대 천왕(환웅) 자오지천황-치우천황입니다. 우리 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삼성조 시대의 (환국 - 배달국 - 고조선) 배달국의 피를 이어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입니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fdh8kmNQd3A9VneK86RhzSt3jthC6NDf&qb=yK+xuQ) 자세한 삼성조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시면 위 자료를 통해 보시면 될것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서 왜 치우천황이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왜 저뿐 만 아닌 많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왕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지금 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글이 다소 지겨워 지고 길어 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의 자부심을 느끼면 끝 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단군 신화라면 전 국민이 아는 고조선 건국 이야기 일것입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태백산 (백두산)에 내려가 넓리 인간을 인간을 이롭게하라는 그렇게 해서 단군이 태어나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세우는 신화이지요. 하지만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 아닙니다.(반박을 하시려면 끝까지 읽고 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환국이라고 하는 국가이며 그곳의 통치자를 환인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환국의 위치는 약간 위쪽이였고 그 환국의 마지막 통치자로 전해지는 지위리 단인의 자손인 거발한 환웅이 3천여명의 동방문명개척단과함께 태백산 신시에 내려와 웅족과 호족을 통합하여 배달국을 건'국'합니다. 배달국은 18분은 환웅이 1500년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중 가장 번성했던 때는 14대 환웅인 자오지천황 때입니다. 중국 제후국의 염제 신농의 후예 유망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켜 배달국에 정면으로 도전해 오니 환웅께서는 형제중 81명을 모아 군부대의 수장이 되게 하여 병력을 갈로산으로 모읍니다. 갈로산에서 나는 철로 무장을 하고 철두건을 머리에 두르니 동두 철액(銅頭鐵額)이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최초의 철제 무기의 등장입니다. 무장을 한뒤 진군을 해 탁록을 함락 시키고 1년 만에 아홉제후를 복속 시킵니다. 치우천황의 계속된 공격에 유망은 소호를 시켜 항전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치우 천황은 특유의 창과 극을 휘두르며 안개를 일으켜 혼란 스럽게 만듭니다. 이때 그들을 대패 시키고 도망친 유망을 정벌하니 중화족 12 제후가 항복해 옵니다. 그러나 반란의 끝은 그것이 아니고 유망의 신하 였던 헌원이 동이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화족의 새로운 천자가 되려 하여 화족과 하족을 모아 탁록에 도읍하여 크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유망과의 전쟁에서 항복한 소호가 직접 청해 처음 전투에 직접 출두 합니다. 이를 보면 치우천황의 인품을 알수가 있는데 항복을 해오는 무리에겐 자비를 베풀고 대우를 해주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묘한인품을 지닌 군자라고 할수있었습니다. 소호가 탁록으로 처들어가 이들을 전멸시키나 헌원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무려 73번으 대 전투를 치룹니다. 그러나 73번의 전쟁 모두 치우천황의 승리로 돌아가고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치우천황은 직접 출격해 81명의 수장과 함께 싸웁니다. 그러던중 81명중 한명인 치우비라는 자가 공에 눈이 멀어 적진으로 뛰어 들었다 죽고 맙니다. 후에 중국의 한 고서에 보면 '드디어 치우를 죽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고 많은 중국 학자들은 치우천황이 패하였다고 억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치우비가 죽은 것이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패배를 위로하려 글울 그렇게 쓰며 자신들을 위로 하였던 것입니다. 치우비의 사망으로 치우천황의 분노는 치솟고 군사를 4부대로 나누어 진격 하니 헌구(헌원을 낮추어 부르는 말)의 부대가 괴멸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때 헌원이 끝까지 괴멸 되지 않자 치우 천황은 비석박격기를 만들어 돌을 날렸습니다. 이에 헌원 세력이 겁을 먹어 모두 신하가 되기를 바라니 치우천황께서는 이를 받아드려 헌원에게 정식으로 황제라는 직책을 내리고 제후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을 토대로 쓴글입니다. 중국에서의 기록은 아까 말 했듯이 치우천황이 헌원의 지남차에 패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모순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중국의 역사의 투신은 관운장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관운장을 모시기 전에는 모두가 치우천황을 투신으로 모셨고 이또한 기록이 있습니다. 탁록에서 황제가 승릭하였다면 황제를 투신으로 모셔야 하는데 왜 치우천황을 투신으로 모셨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근거는 '6개의 팔과 4개의 눈, 소의 뿔과 발굽,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것은 치우천황을 표현한 역사 문헌의 문장 이고 이것은 중화족에게는 치우천황이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역병이 돌거나 잡귀가 떠 돌떈 빨간색 도깨비 그림 (치우천황 그림)을 대문밖에 걸어 두면 역병이든 잡귀든 모두 물러 갓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훗날 강태공은 제나라에 봉후를 받아 팔신(八神)께 제사를 올리면서 치우천황을 병주(兵主)로 모셨으며, 후대에 이르러 치우천황은 무신(武神)의 시조로서 추앙을 받았습니다. 이토록 보면 치우천황의 정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원대하고 중화민족의 역사에서도 투신으로 모셔질 정도의 강력했던 제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하고 대단했던 치우천황이 왜 유명하지 않냐고요? 예...그렇습니다. 치우천황을 한번식은 다 들어 보셨어도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들에 비해선 많이 생소 하실것입니다. 먼저 치우천황의 기록이 되어 있는 고서로서는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지금 위서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정식 학계에서 조차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계연수 님께서 편집을 하신 것이지 원본은 발견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본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거나 그전의 수많은 역사 고서들이 지금 사라진 이유는 바로 일제의 잔재입니다.문화 말살 정책이라고 하여 수많은 우리 고서들이 불길 속에 내던져 졌고 우리의 선조들은 5명의 매국노의 손에 의해 다시는 고개를 들수 없는 한줄기의 삼류 소설 치급을 받고 계십니다. 지금은 2002 월드컵과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으나 좀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역사 학계의 권위자라는 무리들은 당시 공부할적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렇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왜곡된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믿으며 자신의 논문이며 지위를 확보해온 사람들 입니다.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조선상고사 등의 고서들이 위서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는 다면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예상하고 이미 논란은 일단락 된 상태 입니다. 여러분 2002월드컵과 같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일어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지금 까지 별것도 아닌 놈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 셨다면 규원사화. 환단고기. 조선 상고사 등의 책과 이현세 작가님의 천국의신화도 흥미를 얻는 것엔 도움이 될것입니다. 사실 저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라 자세히 알진 못하는 글이 엿습니다. 많은 역사를 알고 계신 분들의 비판과 반박 또는 수정을 듣게 습니다. 그러나 제발 이런 우리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글에 악플을 다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역사속에서 사라져가는 치우천황!
이글의 내용은 제목 그대로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강력했던 왕
그리고 역사속에서 사라져 버린 그 영웅에 대해 좀더 알아 줬으면 하고
써보는 이야기입니다.
여러분..! 2002년 한일 월드컵 경기장을 달군 붉은 악마의 응원속 중심에는
붉고 웅장하며 압도적인 강함을 가진 한 도깨비 문양의 얼굴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잘 알려지고 워낙 관심이 많아 지다 보니 그 문양이 누구인지는
거의 다 알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분은 대한민국의 역사속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는
'배달'의 14대 천왕(환웅) 자오지천황-치우천황입니다.
우리 민족을 배달의 민족이라고 하는 것은 바로 삼성조 시대의
(환국 - 배달국 - 고조선) 배달국의 피를 이어 받은 민족이라는 의미입니다.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1&eid=fdh8kmNQd3A9VneK86RhzSt3jthC6NDf&qb=yK+xuQ)
자세한 삼성조 시대에 관한 이야기를 알고 싶으시면 위 자료를 통해 보시면 될것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와서 왜 치우천황이 붉은악마의 상징으로 자리잡았으며
왜 저뿐 만 아닌 많은 역사를 공부하는 사람에게 가장 강력한 왕으로 자리를 잡았는지
지금 부터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글이 다소 지겨워 지고 길어 질수 있습니다. 하지만 대한민국 역사의 자부심을
느끼면 끝 까지 읽어 주시길 바랍니다.
먼저 단군 신화라면 전 국민이 아는 고조선 건국 이야기 일것입니다.
하늘을 다스리는 환인이 아들 환웅에게 태백산 (백두산)에 내려가 넓리 인간을 인간을
이롭게하라는 그렇게 해서 단군이 태어나 우리 민족 최초의 국가 고조선을 세우는 신화이지요.
하지만 우리민족 최초의 국가는 고조선이 아닙니다.(반박을 하시려면 끝까지 읽고 해주십시오)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는 환국이라고 하는 국가이며 그곳의 통치자를 환인이라 불렀습니다.
하지만 환국의 위치는 약간 위쪽이였고 그 환국의 마지막 통치자로 전해지는 지위리 단인의
자손인 거발한 환웅이 3천여명의 동방문명개척단과함께 태백산 신시에 내려와
웅족과 호족을 통합하여 배달국을 건'국'합니다.
배달국은 18분은 환웅이 1500년간 다스렸다고 합니다.
이중 가장 번성했던 때는 14대 환웅인 자오지천황 때입니다.
중국 제후국의 염제 신농의 후예 유망이라는 자가 반란을 일으켜 배달국에 정면으로
도전해 오니 환웅께서는 형제중 81명을 모아 군부대의 수장이 되게 하여 병력을
갈로산으로 모읍니다. 갈로산에서 나는 철로 무장을 하고 철두건을 머리에 두르니
동두 철액(銅頭鐵額)이라는 별명이 붙습니다. 최초의 철제 무기의 등장입니다.
무장을 한뒤 진군을 해 탁록을 함락 시키고 1년 만에 아홉제후를 복속 시킵니다.
치우천황의 계속된 공격에 유망은 소호를 시켜 항전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치우 천황은 특유의 창과 극을 휘두르며 안개를 일으켜 혼란 스럽게 만듭니다.
이때 그들을 대패 시키고 도망친 유망을 정벌하니 중화족 12 제후가 항복해 옵니다.
그러나 반란의 끝은 그것이 아니고 유망의 신하 였던 헌원이 동이족의 지배에서
벗어나 중화족의 새로운 천자가 되려 하여 화족과 하족을 모아 탁록에 도읍하여
크게 반란을 일으킵니다.
유망과의 전쟁에서 항복한 소호가 직접 청해 처음 전투에 직접 출두 합니다.
이를 보면 치우천황의 인품을 알수가 있는데 항복을 해오는 무리에겐 자비를
베풀고 대우를 해주어 자신의 사람으로 만드는 묘한인품을 지닌 군자라고 할수있었습니다.
소호가 탁록으로 처들어가 이들을 전멸시키나 헌원은 포기하지 않고 스스로를 황제라 칭하고
무려 73번으 대 전투를 치룹니다. 그러나 73번의 전쟁 모두 치우천황의 승리로 돌아가고
탁록의 유웅이라는 벌판에서 치우천황은 직접 출격해 81명의 수장과 함께 싸웁니다.
그러던중 81명중 한명인 치우비라는 자가 공에 눈이 멀어 적진으로 뛰어 들었다 죽고 맙니다.
후에 중국의 한 고서에 보면 '드디어 치우를 죽였다' 라고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고
많은 중국 학자들은 치우천황이 패하였다고 억측하였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치우비가 죽은 것이고 자신들의 부끄러운 패배를 위로하려 글울 그렇게 쓰며
자신들을 위로 하였던 것입니다.
치우비의 사망으로 치우천황의 분노는 치솟고 군사를 4부대로 나누어 진격 하니
헌구(헌원을 낮추어 부르는 말)의 부대가 괴멸을 면치 못했습니다.
이때 헌원이 끝까지 괴멸 되지 않자 치우 천황은 비석박격기를 만들어 돌을 날렸습니다.
이에 헌원 세력이 겁을 먹어 모두 신하가 되기를 바라니 치우천황께서는 이를 받아드려
헌원에게 정식으로 황제라는 직책을 내리고 제후로 삼았다고 합니다.
이것은 한국에서 전해져 내려오는 기록을 토대로 쓴글입니다.
중국에서의 기록은 아까 말 했듯이 치우천황이 헌원의 지남차에 패했다고
하는데 이 말은 모순이 너무 많습니다. 먼저 중국의 역사의 투신은 관운장으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관운장을 모시기 전에는 모두가 치우천황을 투신으로 모셨고
이또한 기록이 있습니다. 탁록에서 황제가 승릭하였다면 황제를 투신으로 모셔야 하는데
왜 치우천황을 투신으로 모셨겠습니까?
그리고 또 하나의 근거는 '6개의 팔과 4개의 눈, 소의 뿔과 발굽, 구리로 된 머리와 쇠로 된 이마를 하고, 큰 안개를 일으킬 수 있었다.' 이것은 치우천황을 표현한 역사 문헌의 문장 이고
이것은 중화족에게는 치우천황이 엄청난 공포의 대상이 었다는 것을 증명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역병이 돌거나 잡귀가 떠 돌떈 빨간색 도깨비 그림 (치우천황 그림)을 대문밖에
걸어 두면 역병이든 잡귀든 모두 물러 갓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훗날 강태공은 제나라에 봉후를 받아 팔신(八神)께 제사를 올리면서 치우천황을 병주(兵主)로 모셨으며, 후대에 이르러 치우천황은 무신(武神)의 시조로서 추앙을 받았습니다.
이토록 보면 치우천황의 정말 대한민국 역사상 가장 원대하고 중화민족의 역사에서도
투신으로 모셔질 정도의 강력했던 제왕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강력하고 대단했던 치우천황이 왜 유명하지 않냐고요?
예...그렇습니다. 치우천황을 한번식은 다 들어 보셨어도 광개토대왕이나 세종대왕 같은
분들에 비해선 많이 생소 하실것입니다.
먼저 치우천황의 기록이 되어 있는 고서로서는 규원사화와 환단고기라는 책이 있습니다.
하지만 환단고기는 지금 위서라 불려지고 있습니다. 정식 학계에서 조차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환단고기는 계연수 님께서 편집을 하신 것이지 원본은 발견 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원본이 발견되지 못하고 있거나 그전의 수많은 역사 고서들이 지금
사라진 이유는 바로 일제의 잔재입니다.문화 말살 정책이라고 하여 수많은 우리 고서들이
불길 속에 내던져 졌고 우리의 선조들은 5명의 매국노의 손에 의해 다시는 고개를 들수 없는
한줄기의 삼류 소설 치급을 받고 계십니다. 지금은 2002 월드컵과 많은 매체를 통해 알려지고
있으나 좀더 많은 관심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역사 학계의 권위자라는 무리들은
당시 공부할적 일본에서 교육을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모두가 그렇다는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왜곡된 역사를 알게 되었고 그것을 믿으며 자신의 논문이며 지위를 확보해온
사람들 입니다. 환단고기나 규원사화, 조선상고사 등의 고서들이 위서가 아니라는
판정을 받는 다면 자신들의 지위가 흔들릴 것을 예상하고 이미 논란은 일단락 된 상태 입니다.
여러분 2002월드컵과 같은 정신으로 다시 한번 일어나 우리나라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져 주십시오.
지금 까지 별것도 아닌 놈이 떠드는 소리를 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혹시 이글을 읽고 조금이라도 흥미가 생기 셨다면
규원사화. 환단고기. 조선 상고사 등의 책과
이현세 작가님의 천국의신화도 흥미를 얻는 것엔 도움이 될것입니다.
사실 저도 전문적으로 공부한 사람은 아니라 자세히 알진 못하는 글이 엿습니다.
많은 역사를 알고 계신 분들의 비판과 반박 또는 수정을 듣게 습니다.
그러나 제발 이런 우리 역사와 민족의 자존심을 지키는 글에 악플을 다는 행위는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