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측의 무성의한 홍보로, 언제 방영하는지 알기 어려웠던, 어제 대구에서 열린 북한응원단과의 합동공연 방영시간을 인터넷에서 간신히 찾아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로 알려줬다. 나에게서 오래간 만에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황당해했지만, 재밌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마지막에는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나갔다. 원래는 '열린 음악회'가 하는 시간이었나 본데, 아무튼 오후 5시 반부터 KBS-1TV에서 시작했다. 한국 측의 공연을 먼저 했는데, 그 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 프로를 보라고 권했던 것이 스스로 민망스러워졌었다. 기획력과 섭외의 부족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재미없게 구성했지?' 무의미한 노래와 율동이 너무 많았다. 특히 김수철이 미스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응원단에서는 거부감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도무지 그들이 남한까지 와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노래를 김수철이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년층이 많은 듯했던 5만명이라는 대구시민들의 객석 역시 재미없어 하는 게 느껴졌다. 그 지역이 대구라는 것과 북한 응원단이 공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족적이고 지방적인 색채가 있으면서도 신명나는 노래인 '쾌지나칭칭'이나 '밀양 아리랑' 같은 곡도 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Show는 일단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보는 사람들이 감정이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측의 공연기획자는 차라리 중학생이 맡았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노래들을 그 따위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짧은 연극도 사이에 포함되도록 하고, 춤이나 꽁트도 사이에 있게 하고, Slide를 통한 짧은 다큐멘터리도 있게 하는 것이 낫다. Show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의미는 그런 바탕에서 부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특별히 재미있을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 진행하는 자 자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그러하다. 북한 측의 공연은 남한 측의 공연보다는 나았다. 북한 측 진행자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3학년이라는 홍현아였는데, 그 신파극적인 어조는 남한 사람들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한다. 한결같은 북한사람들의 공적인 멘트의 어조도. 그것이 어느 정도 고운 목소리이고 선동적인 목소리의 발성법이라는 점은 인정하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 측의 사람들이 방송에 비칠 때, 우리는 흔히 그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남한사람들과 다른 순수성과 순결한 정서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거기에는 과장과 왜곡과 가식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남한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 순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녀 응원단... 대형 Show에서 탁월한 선택이다. 북으로 간 엄숙한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나올 발상은 아닐 것 같으니까, 그것은, 아무래도 영화광이라는 김정일의 발상일 것 같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점차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고, 그 중요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성욕(性慾)이며,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강하게 추구되게 된다. 'Beauty pays,'... 더 나아가 아름다움은 진실이며 진리인 것처럼 되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탁월한 마케팅전술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매스게임과 집단체조가 고도로 발달된 전체주의 사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런 곳은 맞지 않는다. 북한 응원단이 급조된 것이라고 북측에서는 설명하지만, 그야말로 '딱딱' 맞는 그들의 몸짓과 구호와 노래는 나에게 무척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체육시간에 그렇게 남들과 딱딱 맞추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총검술도 혼자서 하면 잘했지만, 남들과 맞춰서 해야 하면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심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잠시 왔다 가는 것이다... 내가 남한이 아닌 북한에 태어났다면, 또는 갑작스럽게 제도공산권이 세계적으로 붕괴되는 일이 없어서 남한도 공산화되었다면, 내가 살게 되었을 삶의 방향은 짐작이 간다. 그 삶과 이 삶 중 무엇이 더 불행할까? 무엇이 더 나은 것이었을까?
북한 응원단을 보면서 느낀 것...
KBS 측의 무성의한 홍보로, 언제 방영하는지 알기 어려웠던, 어제 대구에서 열린 북한응원단과의 합동공연 방영시간을 인터넷에서 간신히 찾아냈다.
그래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로 알려줬다.
나에게서 오래간 만에 전화를 받은 사람들은, 황당해했지만, 재밌었을 것이다.
그렇게 하다, 마지막에는 핸드폰의 배터리가 다 나갔다.
원래는 '열린 음악회'가 하는 시간이었나 본데, 아무튼 오후 5시 반부터 KBS-1TV에서 시작했다.
한국 측의 공연을 먼저 했는데, 그 때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한테 이 프로를 보라고 권했던 것이 스스로 민망스러워졌었다.
기획력과 섭외의 부족이 여실히 느껴지고 있었다.
'왜 이렇게 재미없게 구성했지?'
무의미한 노래와 율동이 너무 많았다.
특히 김수철이 미스 캐스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북한 응원단에서는 거부감마저 느끼는 것 같았다.
도무지 그들이 남한까지 와서 들어야 할 이유가 없는 노래를 김수철이 부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장년층이 많은 듯했던 5만명이라는 대구시민들의 객석 역시 재미없어 하는 게 느껴졌다.
그 지역이 대구라는 것과 북한 응원단이 공연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민족적이고 지방적인 색채가 있으면서도 신명나는 노래인 '쾌지나칭칭'이나 '밀양 아리랑' 같은 곡도 부르는 것이 나았을 것이다.
Show는 일단 흥미를 유발할 수 있어야 한다.
보는 사람들이 감정이입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한국 측의 공연기획자는 차라리 중학생이 맡았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했다.
노래들을 그 따위로 배치할 수밖에 없었다면, 최소한 짧은 연극도 사이에 포함되도록 하고, 춤이나 꽁트도 사이에 있게 하고, Slide를 통한 짧은 다큐멘터리도 있게 하는 것이 낫다.
Show는 무엇보다 재미있어야 하는 것이다.
의미는 그런 바탕에서 부여되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특별히 재미있을 것이 없어 보이는데도, 흥미를 일으키는 것이 있을 수 있다.
그것은 그 진행하는 자 자체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거나, 받아들이는 사람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을 때 그러하다.
북한 측의 공연은 남한 측의 공연보다는 나았다.
북한 측 진행자는 김일성종합대학 문학대학 3학년이라는 홍현아였는데, 그 신파극적인 어조는 남한 사람들에게 어색함을 느끼게 한다.
한결같은 북한사람들의 공적인 멘트의 어조도.
그것이 어느 정도 고운 목소리이고 선동적인 목소리의 발성법이라는 점은 인정하겠지만,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라고 말하고 싶다.
북한 측의 사람들이 방송에 비칠 때, 우리는 흔히 그들에게서 일반적으로 남한사람들과 다른 순수성과 순결한 정서 같은 것을 느끼게 되는 것 같다.
거기에는 과장과 왜곡과 가식도 많이 있겠지만, 그래도 일반적으로는 남한 사람들보다 그들이 더 순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미녀 응원단... 대형 Show에서 탁월한 선택이다.
북으로 간 엄숙한 공산주의자들에게서 나올 발상은 아닐 것 같으니까, 그것은, 아무래도 영화광이라는 김정일의 발상일 것 같다.
자본주의는 인간의 본성을 점차 적나라하게 드러내게 되고, 그 중요한 인간의 본성 중 하나가 성욕(性慾)이며, '아름다움'은 여러 가지 이유에서 강하게 추구되게 된다.
'Beauty pays,'... 더 나아가 아름다움은 진실이며 진리인 것처럼 되어 간다.
그런 의미에서 탁월한 마케팅전술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아무튼 나는 매스게임과 집단체조가 고도로 발달된 전체주의 사회는 좋아하지 않는다.
나에게 그런 곳은 맞지 않는다.
북한 응원단이 급조된 것이라고 북측에서는 설명하지만, 그야말로 '딱딱' 맞는 그들의 몸짓과 구호와 노래는 나에게 무척 싫은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체육시간에 그렇게 남들과 딱딱 맞추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총검술도 혼자서 하면 잘했지만, 남들과 맞춰서 해야 하면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여러 면에서 나와 비슷한 심성을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잠시 왔다 가는 것이다...
내가 남한이 아닌 북한에 태어났다면, 또는 갑작스럽게 제도공산권이 세계적으로 붕괴되는 일이 없어서 남한도 공산화되었다면, 내가 살게 되었을 삶의 방향은 짐작이 간다.
그 삶과 이 삶 중 무엇이 더 불행할까?
무엇이 더 나은 것이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