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같은 이십 초반에 청상과부로 한평생을 보내다 가신 우리 고모는 늘그막에 손주들을 데리고 친정인 우리 집으로 놀러 다니시는 게 생전의 낙이었다. 친정으로 찾아드는 그 뿌듯함이야 난들 여자 몸이 아니라 알 턱은 없지만 당시로서는 귀한 텔레비전 하나만 하더라도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대신하고 남았을 터인데, 딱히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겠으나 우리 고모는 한번 들렸다 하면 한 달도 머물고 달포도 머물곤 했었다.
전화 거는 방식도 모르던 우리 고모는 행여 어디선가 전화라도 걸려오면 수화기를 잡고는 예의 경상도 억양에 서울 말투가 반의반쯤 박힌, 매일 듣던 우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도 모를 정도의 악센트로 '여보세요' 대신 '여보오쎄요? 누굿쎄요? 누굿쎄요?'를 몇 번 혼잣말처럼 뇌이다간 이내 우리에게 수화기를 건네곤 했었으니, 1970년 즈음의 우리 '서울 뺀질이'들의 눈에 보였던 고모는 한낱 '촌무지랭이' 아줌마로만 보일 뿐이었다.
고모는 바보 같은 '영구'를 보면서는 호탕하게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고 불쌍한 처지의 '영구마누라'를 볼라치면 한쪽으론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던지 훌쩍이기도 했었다. '까막눈' 우리 고모는 '영구'가 말하는걸 보고 가끔씩 맞장구를 치셨다. '저거 바보 아이가' 이러시는 고모는 마치 주인공인 영구'가 실제로도 바보인 양 취급을 했기에, 웃다가, 혀도 끌끌 차곤 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우리 '서울뺀질이' 조카들은 바보영구보다도 고모를 보고 오히려 더 웃곤 했었다. 고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했었다.
어느날 고모는 또 한편의 드라마에 깊숙이 빠지셨다. 지금으로서는 제목도, 나오는 사람도 모를 정도로 기억은 깜깜하지만 고모는 어느 장면에 들어서서는 드라마의 내용을 잘 이해를 못하셨는지 고개를 우리한테 휙 돌리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저거 돈 달락꼬 저카는기제?" 전혀 방향이 다른, 느닷없고도 얼토당토않은 고모의 폭탄 같은 질문에 우리로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어서 잠시 멍하니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고모' 라는 생각에 그만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방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웃던 우리를 보고 마치 대포같은 쪼크를 한방 근사하게 쏘았다고 생각했던지 고모도 덩달아 마구 웃기 시작했다. 아! 아! 고모..썰렁한 아이스 고모.....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내 놓으시고 그만 아이큐를 드러내고야 마신 사랑하는 우리 고모.....
그날 이후로 우리 '서울 뺀질이' 조카들은 고모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틈만 나면 은근하게 '저거 돈달락꼬 저카는기제?' 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도 '저거 돈달락꼬 저카는기제?' 했고, 뉴스를 보면서도 '저거 돈 달락꼬 저카는기제?' 하며 촐랑대며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30년도 더 훌쩍 지나갔다. 텔레비전도 바뀌고, 드라마도, 뉴스거리도 다 바뀌었다. 자고나면 세상이 달라진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건강보험이 옳으니 그르니 해가고, 연금이 바닥이니 뭐니 해가며, 임금을 안 올려주면 거리로 나서고,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아파트에서 떨어지며, 자동차로 거리를 막고....
사랑하는 우리고모는 늘그막에 치매로 수년간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부음을 듣고 달려갔을 때 이미 우리 막내고모는 안방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누워 계셨다. 고모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자랐던 우리 '서울 뺀질이'조카...
고모, 쌩둥맞던 고모 말씀이 맞아요. 세상은 다 돈 달라고 저러는 거 맞네요..다 돈 달라고 저러는 거 맞아요...
까막눈 우리 고모
꽃 같은 이십 초반에 청상과부로 한평생을 보내다 가신 우리 고모는 늘그막에 손주들을 데리고 친정인 우리 집으로 놀러 다니시는 게 생전의 낙이었다.
친정으로 찾아드는 그 뿌듯함이야 난들 여자 몸이 아니라 알 턱은 없지만 당시로서는 귀한 텔레비전 하나만 하더라도 세상의 즐거움을 모두 대신하고 남았을 터인데, 딱히 이유가 그것만은 아니었겠으나 우리 고모는 한번 들렸다 하면 한 달도 머물고 달포도 머물곤 했었다.
전화 거는 방식도 모르던 우리 고모는 행여 어디선가 전화라도 걸려오면 수화기를 잡고는 예의 경상도 억양에 서울 말투가 반의반쯤 박힌, 매일 듣던 우리가 아니라면 도대체 어느 지방 사투리인지도 모를 정도의 악센트로 '여보세요' 대신 '여보오쎄요? 누굿쎄요? 누굿쎄요?'를 몇 번 혼잣말처럼 뇌이다간 이내 우리에게 수화기를 건네곤 했었으니, 1970년 즈음의 우리 '서울 뺀질이'들의 눈에 보였던 고모는 한낱 '촌무지랭이' 아줌마로만 보일 뿐이었다.
고모는 바보 같은 '영구'를 보면서는 호탕하게 깔깔거리며 웃기도 했고 불쌍한 처지의 '영구마누라'를 볼라치면 한쪽으론 동병상련의 정을 느꼈던지 훌쩍이기도 했었다.
'까막눈' 우리 고모는 '영구'가 말하는걸 보고 가끔씩 맞장구를 치셨다.
'저거 바보 아이가' 이러시는 고모는 마치 주인공인 영구'가 실제로도 바보인 양 취급을 했기에, 웃다가, 혀도 끌끌 차곤 했었다. 버르장머리 없는 우리 '서울뺀질이' 조카들은 바보영구보다도 고모를 보고 오히려 더 웃곤 했었다. 고모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시는구나 ....했었다.
어느날 고모는 또 한편의 드라마에 깊숙이 빠지셨다. 지금으로서는 제목도, 나오는 사람도 모를 정도로 기억은 깜깜하지만 고모는 어느 장면에 들어서서는 드라마의 내용을 잘 이해를 못하셨는지 고개를 우리한테 휙 돌리시더니 한 말씀하셨다.
"저거 돈 달락꼬 저카는기제?"
전혀 방향이 다른, 느닷없고도 얼토당토않은 고모의 폭탄 같은 질문에 우리로서는 아연할 수밖에 없어서 잠시 멍하니 눈을 마주치고 있다가 '아무 것도 모르는 우리고모' 라는 생각에 그만 깔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방바닥에 데굴데굴 구르며 웃던 우리를 보고 마치 대포같은 쪼크를 한방 근사하게 쏘았다고 생각했던지 고모도 덩달아 마구 웃기 시작했다. 아! 아! 고모..썰렁한 아이스 고모.....
얼토당토않은 질문을 내 놓으시고 그만 아이큐를 드러내고야 마신 사랑하는 우리 고모.....
그날 이후로 우리 '서울 뺀질이' 조카들은 고모와 같이 텔레비전을 보는 틈만 나면 은근하게 '저거 돈달락꼬 저카는기제?' 하며 깔깔거리곤 했다.
가수가 나와서 노래를 불러도 '저거 돈달락꼬 저카는기제?' 했고, 뉴스를 보면서도 '저거 돈 달락꼬 저카는기제?' 하며 촐랑대며 방바닥을 굴러다녔다.
30년도 더 훌쩍 지나갔다.
텔레비전도 바뀌고, 드라마도, 뉴스거리도 다 바뀌었다.
자고나면 세상이 달라진다.
대통령이 되겠다고, 국회의원이 되겠다고, 건강보험이 옳으니 그르니 해가고, 연금이 바닥이니 뭐니 해가며, 임금을 안 올려주면 거리로 나서고, 지하철에 몸을 던지고, 아파트에서 떨어지며, 자동차로 거리를 막고....
사랑하는 우리고모는 늘그막에 치매로 수년간 고생하시다가 세상을 뜨셨다. 부음을 듣고 달려갔을 때 이미 우리 막내고모는 안방에서 차디찬 시신으로 누워 계셨다.
고모가 차려준 밥을 먹고 자랐던 우리 '서울 뺀질이'조카...
고모, 쌩둥맞던 고모 말씀이 맞아요. 세상은 다 돈 달라고 저러는 거 맞네요..다 돈 달라고 저러는 거 맞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