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현재 19살 남성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전에도 또한 앞으로도 만나보지 못할 여자를 만나서 사랑했었습니다.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기에 몇년이 지나 그녀와의 추억을 잊을까봐 이렇게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이글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우리의 사랑 이야기이며 그녀가 저에게 써주었던 글입니다. Our story 2007년 1월9일 저는 운좋게도 첫 아르바이트 자리를 집 앞에 자리한 PC방에 구하게 됩니다. 당시 남자친구의 친구가 일하고 있던 곳을 인수인계 받은거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꼭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에 남자친구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취직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대학생인 저에게 첫 사회생활이자 첫 일자리인 아르바이트는 너무 설레기만 했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해내고 싶었던 착실한 아르바이트생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 운명의 남자인 김중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여서 좋았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가능하면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른아이들에 비해 카리스마를 지닌 그에게는 접근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3시부터 10시까지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우리도 점점 친해질수 있 었죠. 카운터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새벽이면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하다가 야참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의심을 한 몸에 살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던 날, 저를 많이 도와주었던 아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됩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제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많이 애써주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근처 술집 에서 술을 마시며 무슨 애기가 오고 갔는지도 모른 채, 의자 뒤로 둘 러져 있던 그의 팔에 의지한 채로 시간은 흘러갔죠. 귀찮다던 그에게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써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마주 잡았던 손의 따듯함까지를 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외면한 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손을 잡고 집 앞까지 걸어온 날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많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숨겨온 서로의 마 음을 인정하게 된거죠. 그때부터 우리는 그랬씁니다. 굳이 말로 하 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어떤 것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함께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는 순간조차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오락실은 그저 시간 떄우기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엇는데 그 와 함께라면 모든것이 좋앗씁니다. 멋들어지게 총을 잡아쥐고 꽤나 좋은 실력을 자랑하는 그를 보면서 가슴까지 두근거릴 정도였으니 말이죠. 몰래 사진으로까지 담아두었던 걸 보면 제 마음이 어땠는지 잘 알수 있겠죠. 사진으로는 담을수 없지만 우리는 노곡중학교 운동 장에서 불꽃놀이도 함께 했습니다. 몇년만에 불꽃놀이를 해보는 저 를 기쁙 해주기 위한 작은 배려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예쁘게 타들 어가는 불꽃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열심히 소원을 빌었죠. 언제까지고 이사람과 함께이면 좋겠는데, 이 사람도 날 좋아하게 해달라고-속으로 기도했었습니다. 아마 그때 빈 소원이 이루어져 지금 이렇게 함께 있을수 있는거겠죠. 함께 미 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기도 하고, 같은 색으로 염색을 하기도 하 고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도 타보고 DVD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도 했죠. 살면서 해보고 싶었떤 것, 그와 함께라 면 뭐든 가능했씁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급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 습니다. 서로 숨겨두었던 속이야기를 털어놓던 밤, 서로 알지 못했 던 과거를 듣던 날, 그 날이야말로 우리가 일체화될 수 있는 계기였 습니다. 겉보기엔 너무나 밝고 바른 그가 저를 믿고. 그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준 순간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그의 맘에 쏙 드는 위로를 해 줄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남자, 정말로 내가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의 저는, 남자는 그저 나의 얼광을 받아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 다.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고, 옆에 있어주고 싶고, 힘이 되어주고싶 고. 안아주고 싶고. 그가 바라는 모든것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남자가 그렇게 해주기만을 바라고 또 그걸 원했지만, 아마 그것이 저의 큰 잘못이었겠죠. 그 모든 걸 제가 수동적으로 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남으로서 저는 그토록 바라던 운명을 만나게 되었으 니까요. 그리고 "사귀자"는 그의 한마디 말에 저는 이미 헤어나올 수 없을만큼 그에게 빠져버렸습니다. 엄마이자, 아빠이자, 형제이 자,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빈자리를 모두 저로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가 옆에 없는 시간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뿐, 존재가치가 없었습 니다. 꽤 어울리는 스타일로 옷을 차려입고 학교에 함께 등교하고. 이미 그것은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있었습니다. 그가 없는 목요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죠. 기나긴 공강시간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공강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였 죠. 딱히 하는 일이 없어도 서로가 옆에 있다는것. 그것 하나만으로 세상에 모든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연인들은, 학교가 다르거나 하면 거의 90%가 헤어진다고 하던데, 그런 이야기는 저희 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내 유명커플이 될정도로, 이미 저희 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교수 님조차 그를 알고 있으니 말 다했습니다. 24시간 중 12시간을 넘게 붙어 있어도 그 흔한 싸움한번 하지 않은채로 그렇게 우리는 행복했 습니다. 처음으로 그와 하나가 되던 그 날의 기분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제 가 상처 받을 것 같다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꽉 쥔 손을 풀지 않았 던, 손에 멍이 들어가면서도 절대로 저를 지켜주려 했던 그였습니 다. 그모습이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다른 남자들과는 정 말 다른,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모습에 몰래 몇 번 눈 물을 흘린적도 있습니다. 이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이사람이 라면 나에게 상처주지 않을 것 같다고 둘이 함께 술을 마시며 속이 야기를 털어놓던 날, 저의 이런 마음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좁은 공 간에서 서로를 꼭 안은채로 조용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그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몸속의 체온까지도 나누고 싶었던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럼으로써 확실히 서로에 게 더 가 까워진, 아니 마음까지 거의 하나가 된 우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식당에 취직을 하게 되고 아마 우리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까다롭 고 성격이 그닥 좋지않은 사장님 밑에서 치솟는 울분을 참아내며 일 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학 교가 끝나면 언제나 식당에 찾아가 일을 도와주고는 했죠. 자존심이 강한 제 성격상 남을 위해서자리를 치우고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월급을 손에 쥐던 날, 그의 정착생활이 시 작됩니다. 역 근처의 고시원을 잡아 짐을 옮기고 나자 안도의 한숨 이 났습니다. 매번 찜질방이나 PC방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가 편 하게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걱정을 한시름 덜 어놓은 것이죠. 받은 월급으로 그가 그렇게도 바라던 옷 쇼핑도 하 러 갔었죠. 저와 같은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웃던 너무나도 귀여운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 저 와 아주 비슷한 차림을 하게 된 그는,(그때문에 저희 엄마한테 들켜 버리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비슷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걸어다니면,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느껴졌죠. 같은 색의 머 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같은 모양의 귀걸이가 햇빛에 빛나고, 같은 모양의 벨트가 반짝일 때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가 제법 잘 어울린다고 말할 때마다 뿌듯한 마음도 감출수 없었죠. 거울, 세제, 옷걸이 등 방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하나 둘 장만하기 시 작하면서 우리는 연인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됩니다. 마치 "부부" 같은 모습이었죠. 이게 더 싸고, 이게 더 양이 많고, 이게 더 실용적 이고.. 팔짱을 끼고 마트를 돌며 이것저것 물건을 쇼핑하는 모습이 마치 신혼부부의 모습같았습니다. 그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부터 우린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겟죠. 정착을 했으니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그는,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한 주유 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느 고된 일을 시작하게 된거죠. 어엿하게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책임감을 덧입은 양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안하무인격의 손님들 때 문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안쓰러웠지만, 일 끝나기 를 기다리던 저를 발견하면 얼굴에 미소를 활짝 머금은 채로 달려오 는 그의 모습에, 생각보다 일이 힘들지 않다는 그의 말에 바보같이 그런 걱정을 잊어버리고 만 저였습니다. 일하는 곳에 여자아이들이 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꼴사납게 질투나 하고 말이죠. 언제나 그 가 말하듯이 전 아직도"애기"인가 봅니다. 그가 일을 하기 시작한 뒤로 목요일의 학교 데이트는 못하게 되었고, 보고싶어도 볼 수없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5시에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버 티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는 난로에 다리를 부딫쳐 화 상을 입게 됩니다. 화끈거리는 다리의 아픔에, 그리고 놀랜 마음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있던 제게, 옆에 그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지금 옆에 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급한대로 지하철역의 화장실에서 다리 에 물을 끼얹고 있을 무렵 기적적으로 그의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뻣었는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안심이 되던 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전화겠지만 저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았다고 할까요. 괜찮냐며 연신 물어오는 그에게, 하지만 아직 일 하고 있는 그이기에 괜찮다며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보고싶다 고 당장 와 달라고 말하며 울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럴떄만큼은 어른스럽게 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인가요. 제가 봐도 징그럽기만한 상처에 입을 맞추고야 마는 그를 보면서 정 말이지 고마웠습니다. 저의 그 어떤 면까지도 모두 감싸안고 사랑해 주는 그에게 몇백번이고 몇만번이고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할 정도 로 말이죠. 저의 이런 고마운 마음도 모른채, 그는 훗날 미안하다고 울기까지 했씁니다. 그저 돈 때문에 말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돈이 부족해 저에게 잘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 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제 마음도 모른 채,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그, 그를 품에 안고 저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제가 얼마나 행복한 지도 모르는 그는, 어쩌면 저보더 더 "애기"가 아닐까요. 우리에게 사실 돈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물론 있 을때보다는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그가 일을 나가지 않게 되자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저는 더 좋았씁 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동물원에 놀러가서 어린아이들처럼 신나게 놀았씁니다. 저를 위해 호랑이를 찾아준다며, 땀을 흘려가며 그 넓 은 대공원 한바퀴를 다 돌아주는 그는, 저와 밤을 보내기 위해 친구 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돈을 빌려오던 그는, 넘어져서 다친 저를 보 며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해주는 그는 이미 제겐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25일, 주유소에서의 마지막 월급을 받은 그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신이 나 좋아했습니다. 저에게 밥을 사주면서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시 간가는줄 몰랐던 우리, 그리고 28일인 오늘이. 우리의 100일 입니 다. 100일 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 화 되어버렸습니다. 서로의 말투를 닮아가고 행동을 닮아가고 생각 을 닮아가면서 점점 더 꼭 맞는 퍼즐 조각이 된 것이죠. 뗄레야 뗄 수없는 우리의 이야기. 수많았던 웃음과 눈물은 모두 추억이라는 제목을 지닌 한편의 수필로, 끝을 맺지 못한채 계속 쓰여지는 그런 글이 되길 바랍니다.
내 얘기 한번 들어볼래?
저는 현재 19살 남성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전에도 또한 앞으로도 만나보지 못할 여자를 만나서 사랑했었습니다.
인간이란 망각의 동물이기에 몇년이 지나 그녀와의 추억을 잊을까봐 이렇게 글을 남기려고 합니다.
이글은 너무나도 행복했던 우리의 사랑 이야기이며
그녀가 저에게 써주었던 글입니다.
Our story
2007년 1월9일 저는 운좋게도 첫 아르바이트 자리를 집 앞에
자리한 PC방에 구하게 됩니다. 당시 남자친구의 친구가 일하고
있던 곳을 인수인계 받은거지요. 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곳에서 꼭
일을 하고싶다는 생각에 남자친구의 거센 반대에도 불구하고 취직
하게 됩니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새내기 대학생인 저에게 첫
사회생활이자 첫 일자리인 아르바이트는 너무 설레기만 했습니다.
뭐든지 열심히 해내고 싶었던 착실한 아르바이트생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제 운명의 남자인 김중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 이야기는 이렇게 시작됩니다.
아르바이트는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고, 언제나 사람들이 북적여서
좋았습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인지라 가능하면 모두에게
친절하게 대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다른아이들에 비해
카리스마를 지닌 그에게는 접근이 힘들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3시부터 10시까지 얼굴을 마주하다 보니 우리도 점점 친해질수 있
었죠. 카운터에 앉아서 게임을 하고, 새벽이면 함께 영화를 보고,
게임을하다가 야참을 먹으러 가기도 하고, 다른 아이들의 의심을
한 몸에 살정도로 그렇게 우리는 가까워졌습니다. 그리고 제가
아르바이트를 그만 두던 날, 저를 많이 도와주었던 아이들과 함께
술을 마시게 됩니다. 많지 않은 월급이었지만 제가 편안하게
일할 수 있도록 많이 애써주었으니 당연하다고 생각했죠. 근처 술집
에서 술을 마시며 무슨 애기가 오고 갔는지도 모른 채, 의자 뒤로 둘
러져 있던 그의 팔에 의지한 채로 시간은 흘러갔죠. 귀찮다던
그에게 데려다 달라고 생떼를 써서 함께 집으로 돌아오던 길 마주
잡았던 손의 따듯함까지를 전 아직까지도 기억합니다.
쿵쾅대는 가슴을 외면한 채 아무렇지 않은 듯 그렇게 손을 잡고
집 앞까지 걸어온 날부터, 우리는 급속도로 많은 만남을 가지기
시작했습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그동안 숨겨온 서로의 마
음을 인정하게 된거죠. 그때부터 우리는 그랬씁니다. 굳이 말로 하
지 않아도 알아챌 수 있는 어떤 것이 우리에겐 있습니다.
함께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하는 순간조차도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오락실은 그저 시간 떄우기의 쓸데없는 짓이라고 생각했엇는데 그
와 함께라면 모든것이 좋앗씁니다. 멋들어지게 총을 잡아쥐고 꽤나
좋은 실력을 자랑하는 그를 보면서 가슴까지 두근거릴 정도였으니
말이죠. 몰래 사진으로까지 담아두었던 걸 보면 제 마음이 어땠는지
잘 알수 있겠죠. 사진으로는 담을수 없지만 우리는 노곡중학교 운동
장에서 불꽃놀이도 함께 했습니다. 몇년만에 불꽃놀이를 해보는 저
를 기쁙 해주기 위한 작은 배려였을지 모르지만, 그는 예쁘게 타들
어가는 불꽃을 보며 소원을 빌면 이루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
열심히 소원을 빌었죠. 언제까지고 이사람과 함께이면 좋겠는데, 이
사람도 날 좋아하게 해달라고-속으로 기도했었습니다. 아마 그때
빈 소원이 이루어져 지금 이렇게 함께 있을수 있는거겠죠. 함께 미
용실에 가서 머리를 다듬기도 하고, 같은 색으로 염색을 하기도 하
고 처음으로 놀이공원에 가서 바이킹도 타보고 DVD방에서 맥주를
마시며 영화를 보기도 했죠. 살면서 해보고 싶었떤 것, 그와 함께라
면 뭐든 가능했씁니다. 우리는 너무나도 일치하는 부분이 많았기에
마치 오래전부터 그랬던 것처럼 급속도로 서로에게 빠져들고 있었
습니다. 서로 숨겨두었던 속이야기를 털어놓던 밤, 서로 알지 못했
던 과거를 듣던 날, 그 날이야말로 우리가 일체화될 수 있는 계기였
습니다. 겉보기엔 너무나 밝고 바른 그가 저를 믿고. 그의 이야기를
털어놓아준 순간에 저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습니다. 그의
맘에 쏙 드는 위로를 해 줄수 있었던 건 아니지만, 그래도 최선을 다
해 그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습니다. 이 남자, 정말로 내가 지켜줘야
겠다는 생각,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그전까지의 저는,
남자는 그저 나의 얼광을 받아주는 존재라고만 생각하고 있었습니
다. 다정하게 대해주고 싶고, 옆에 있어주고 싶고, 힘이 되어주고싶
고. 안아주고 싶고. 그가 바라는 모든것을 들어주고 싶었습니다. 그
때까지는 남자가 그렇게 해주기만을 바라고 또 그걸 원했지만, 아마
그것이 저의 큰 잘못이었겠죠. 그 모든 걸 제가 수동적으로 해주고
싶은 사람을 만남으로서 저는 그토록 바라던 운명을 만나게 되었으
니까요. 그리고 "사귀자"는 그의 한마디 말에 저는 이미 헤어나올
수 없을만큼 그에게 빠져버렸습니다. 엄마이자, 아빠이자, 형제이
자, 친구이자, 연인이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가능하다면 그가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빈자리를 모두 저로 채워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우리는 한시도 떨어져 있을 수 없었습니다. 서로가
옆에 없는 시간은 그저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뿐, 존재가치가 없었습
니다. 꽤 어울리는 스타일로 옷을 차려입고 학교에 함께 등교하고.
이미 그것은 우리에게 일상이 되어있었습니다. 그가 없는 목요일은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였죠. 기나긴 공강시간도 그와 함께라면
행복했습니다. 오히려 공강이 조금 더 길었으면 하고 생각할 정도였
죠. 딱히 하는 일이 없어도 서로가 옆에 있다는것. 그것 하나만으로
세상에 모든것을 다 가진 기분이었습니다. 다른 연인들은, 학교가
다르거나 하면 거의 90%가 헤어진다고 하던데, 그런 이야기는 저희
에겐 통하지 않았습니다. 학교 내 유명커플이 될정도로, 이미 저희
를 모르는 사람은 없었으니까요. 아이들 뿐만 아니라 하다못해 교수
님조차 그를 알고 있으니 말 다했습니다. 24시간 중 12시간을 넘게
붙어 있어도 그 흔한 싸움한번 하지 않은채로 그렇게 우리는 행복했
습니다.
처음으로 그와 하나가 되던 그 날의 기분도 선명히 기억합니다. 제
가 상처 받을 것 같다며 자신을 다스리기 위해 꽉 쥔 손을 풀지 않았
던, 손에 멍이 들어가면서도 절대로 저를 지켜주려 했던 그였습니
다. 그모습이 너무도 고맙고 사랑스러웠습니다. 다른 남자들과는 정
말 다른, 진심으로 나를 아껴주고 사랑해주는 모습에 몰래 몇 번 눈
물을 흘린적도 있습니다. 이사람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고. 이사람이
라면 나에게 상처주지 않을 것 같다고 둘이 함께 술을 마시며 속이
야기를 털어놓던 날, 저의 이런 마음을 그에게 말했습니다. 좁은 공
간에서 서로를 꼭 안은채로 조용하게 보낼 수 밖에 없었지만 저는
그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몸속의 체온까지도 나누고
싶었던 마음으로 이어져 있었으니까요. 그럼으로써 확실히 서로에
게 더 가 까워진, 아니 마음까지 거의 하나가 된 우리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돈을 벌기 위해 식당에 취직을 하게 되고 아마
우리에겐 그때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가 아닐까 생각됩니다. 까다롭
고 성격이 그닥 좋지않은 사장님 밑에서 치솟는 울분을 참아내며 일
을 하는 그의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 그를 위해 학
교가 끝나면 언제나 식당에 찾아가 일을 도와주고는 했죠. 자존심이
강한 제 성격상 남을 위해서자리를 치우고 한다는 것이 영 마음에
맞지는 않았지만 그를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일을 하고 우여곡절 끝에 월급을 손에 쥐던 날, 그의 정착생활이 시
작됩니다. 역 근처의 고시원을 잡아 짐을 옮기고 나자 안도의 한숨
이 났습니다. 매번 찜질방이나 PC방을 전전하며 생활하던 그가 편
하게 방에서 잠을 잘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는 걱정을 한시름 덜
어놓은 것이죠. 받은 월급으로 그가 그렇게도 바라던 옷 쇼핑도 하
러 갔었죠. 저와 같은 모양의 귀걸이를 하고 웃던 너무나도 귀여운
그의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선명합니다. 옷 입는 스타일을 바꿔 저
와 아주 비슷한 차림을 하게 된 그는,(그때문에 저희 엄마한테 들켜
버리기도 했지만) 너무나도 멋졌습니다. 비슷한 옷차림으로 거리를
걸어다니면, 사람들의 부러움 섞인 시선이 느껴졌죠. 같은 색의 머
리가 바람에 흩날리고, 같은 모양의 귀걸이가 햇빛에 빛나고, 같은
모양의 벨트가 반짝일 때마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가 제법 잘 어울린다고 말할 때마다 뿌듯한 마음도 감출수 없었죠.
거울, 세제, 옷걸이 등 방에 필요한 생필품들을 하나 둘 장만하기 시
작하면서 우리는 연인보다 더 깊은 관계가 됩니다. 마치 "부부"
같은 모습이었죠. 이게 더 싸고, 이게 더 양이 많고, 이게 더 실용적
이고.. 팔짱을 끼고 마트를 돌며 이것저것 물건을 쇼핑하는 모습이
마치 신혼부부의 모습같았습니다. 그가 정착생활을 시작하고 나서
부터 우린 더 각별한 사이가 되었다고 할 수 있겟죠. 정착을 했으니
또 다른 일자리를 구해야 했던 그는, 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한 주유
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아침 8시에 시작해서 5시에 끝나느 고된
일을 시작하게 된거죠. 어엿하게 유니폼을 입은 그의 모습은 마치
책임감을 덧입은 양 믿음직스러웠습니다. 안하무인격의 손님들 때
문에 너무 많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아 안쓰러웠지만, 일 끝나기
를 기다리던 저를 발견하면 얼굴에 미소를 활짝 머금은 채로 달려오
는 그의 모습에, 생각보다 일이 힘들지 않다는 그의 말에 바보같이
그런 걱정을 잊어버리고 만 저였습니다. 일하는 곳에 여자아이들이
새로 들어왔다는 이야기에 꼴사납게 질투나 하고 말이죠. 언제나 그
가 말하듯이 전 아직도"애기"인가 봅니다. 그가 일을 하기 시작한
뒤로 목요일의 학교 데이트는 못하게 되었고, 보고싶어도 볼 수없게
되긴 했지만, 그래도 매일 5시에 그를 볼 수 있다는 생각이 저를 버
티게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언젠가, 저는 난로에 다리를 부딫쳐 화
상을 입게 됩니다. 화끈거리는 다리의 아픔에, 그리고 놀랜 마음에
어찌해야할 바를 모르고있던 제게, 옆에 그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슬펐는지 모릅니다. 지금 옆에 그가 있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자꾸
새어나오려는 울음을 참으며 급한대로 지하철역의 화장실에서 다리
에 물을 끼얹고 있을 무렵 기적적으로 그의 전화가 울렸습니다. 그
때 얼마나 기뻣었는지, 그의 목소리를 들으니 어찌나 안심이 되던
지.. 그는 아무것도 모르고 한 전화겠지만 저의 텔레파시가 통한 것
같았다고 할까요. 괜찮냐며 연신 물어오는 그에게, 하지만 아직 일
하고 있는 그이기에 괜찮다며 침착하게 대답했지만 사실 보고싶다
고 당장 와 달라고 말하며 울고 싶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럴떄만큼은
어른스럽게 굴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그리고 일주일쯤 뒤인가요.
제가 봐도 징그럽기만한 상처에 입을 맞추고야 마는 그를 보면서 정
말이지 고마웠습니다. 저의 그 어떤 면까지도 모두 감싸안고 사랑해
주는 그에게 몇백번이고 몇만번이고 고맙다고 말해도 부족할 정도
로 말이죠. 저의 이런 고마운 마음도 모른채, 그는 훗날 미안하다고
울기까지 했씁니다. 그저 돈 때문에 말입니다. 어떤 사정으로 인해
일을 그만두게 된 그는 돈이 부족해 저에게 잘 해줄 수 없다는 사실
때문에 많이 힘들어했습니다.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들었던 시
기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그를 위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제 마음도 모른 채,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는 그, 그를 품에 안고
저도 참 많이 울었습니다. 옆에 있는 것만으로 제가 얼마나 행복한
지도 모르는 그는, 어쩌면 저보더 더 "애기"가 아닐까요.
우리에게 사실 돈은 아무런 제약이 되지 못했는데 말이죠. 물론 있
을때보다는 불편한 점도 없지 않아 있었겠지만. 그가 일을 나가지
않게 되자 오히려 함께 있을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 저는 더 좋았씁
니다. 날씨가 좋은 날은 동물원에 놀러가서 어린아이들처럼 신나게
놀았씁니다. 저를 위해 호랑이를 찾아준다며, 땀을 흘려가며 그 넓
은 대공원 한바퀴를 다 돌아주는 그는, 저와 밤을 보내기 위해 친구
들 사이를 뛰어다니며 돈을 빌려오던 그는, 넘어져서 다친 저를 보
며 안절부절 못하며 걱정해주는 그는 이미 제겐 영웅이었습니다.
그리고 25일, 주유소에서의 마지막 월급을 받은 그는 마치 어린아이
처럼 신이 나 좋아했습니다. 저에게 밥을 사주면서 행복해하는 그의
모습이 어찌나 사랑스럽던지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있었기에 시
간가는줄 몰랐던 우리, 그리고 28일인 오늘이. 우리의 100일 입니
다. 100일 이라는 길지도, 짧지도 않은 시간 동안 우리는 이미 서로
화 되어버렸습니다. 서로의 말투를 닮아가고 행동을 닮아가고 생각
을 닮아가면서 점점 더 꼭 맞는 퍼즐 조각이 된 것이죠. 뗄레야 뗄
수없는 우리의 이야기. 수많았던 웃음과 눈물은 모두 추억이라는
제목을 지닌 한편의 수필로, 끝을 맺지 못한채 계속 쓰여지는
그런 글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