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려니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고려의 옛궁을 수리하려 하니 고려의 옛궁은 몹시 낡고, 성곽이 완천치 못해 궁궐로 쓰기 적당치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조정 대신들도 모두 개성에 터를 잡고 살았기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신하들 사이에서 새 도읍지로 계룡산이 좋다는 주장이 나와, 태조 이성계는 무학 대사와 함께 계룡산을 찾았다. 자세히 둘러보니 천하 제일의 명당 자리였다.
계룡산에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라 명령을 내렸지만 얼마 못가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풍수지리를 잘아는 신하들이 계룡산은 흉한 땅이라 얼마 못가 나라가 망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성계의 꿈에 흰 옷을 입은 신선이 나타나 "계룡산은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도읍지로 쓸땅이니 그곳에서 물러나도록 하여랴" 이 꿈에서 깨어난 이성계는 계룡산에 진행중이던 도성과 궁궐 공사를 중지 시키고, 천문등을 맡아 보던 관아인 서운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고 하여 다시찾은 곳이 모악이었다. 모악은 지금의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을 말한다. 지금의 연희동과 신촌동 일대가 도읍지로 추천되었지만, 너무 좁아 도읍으로 쓰기에 적당치 않았다. 이 무렵 한양땅이 다시 새 도읍지로 떠올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한양의 땅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다. 무학대사는 한양 근처인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러 한양의 땅 모양을 살펴보았고, 그때 찾은 명당자리가 지금의 경복궁 자리이다.
한양천도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태조3년 1394년 11월 29일)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궁궐주위에 도성을 쌓는 자리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느날 아침 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성터 모양으로 빙 둘러 쌓여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내려준 성터라 생각한 태조 이성계는 기뻐하며 눈이 쌓인 모양대로 성을 쌓으라 명령하였다. 훗날 눈이 쌓여 울타리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눈설자를 써서 '설울'이라 하였고, 그것이 변하여 지금의 서울이 되었다.
서울이란 지명의 유래
조선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는 도읍을 한양으로 옮기려니 조정 대신들의 반대에 부딪쳤다. 고려의 옛궁을 수리하려 하니 고려의 옛궁은 몹시 낡고, 성곽이 완천치 못해 궁궐로 쓰기 적당치 않다는 이유에서 였다. 조정 대신들도 모두 개성에 터를 잡고 살았기에, 반대하는 것이었다.
그 이듬해 신하들 사이에서 새 도읍지로 계룡산이 좋다는 주장이 나와, 태조 이성계는 무학 대사와 함께 계룡산을 찾았다. 자세히 둘러보니 천하 제일의 명당 자리였다.
계룡산에 궁궐을 짓고 도성을 쌓으라 명령을 내렸지만 얼마 못가 벽에 부딪치고 말았다.
풍수지리를 잘아는 신하들이 계룡산은 흉한 땅이라 얼마 못가 나라가 망한다며 반대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성계의 꿈에 흰 옷을 입은 신선이 나타나 "계룡산은 정씨 성을 가진 이가 도읍지로 쓸땅이니 그곳에서 물러나도록 하여랴" 이 꿈에서 깨어난 이성계는 계룡산에 진행중이던 도성과 궁궐 공사를 중지 시키고, 천문등을 맡아 보던 관아인 서운관에 소장되어 있는 기록들을 살펴보고 하여 다시찾은 곳이 모악이었다. 모악은 지금의 서대문구에 있는 안산을 말한다. 지금의 연희동과 신촌동 일대가 도읍지로 추천되었지만, 너무 좁아 도읍으로 쓰기에 적당치 않았다. 이 무렵 한양땅이 다시 새 도읍지로 떠올라서 태조 이성계는 무학대사에게 한양의 땅 모양을 자세히 살펴보게 하였다. 무학대사는 한양 근처인 지금의 왕십리에 이르러 한양의 땅 모양을 살펴보았고, 그때 찾은 명당자리가 지금의 경복궁 자리이다.
한양천도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태조3년 1394년 11월 29일) 그러나 더 큰 문제가 있었다. 궁궐주위에 도성을 쌓는 자리를 정하는 것이 어려웠다. 어느날 아침 밖을 보니 밤새 내린 눈이 성터 모양으로 빙 둘러 쌓여 있었다. 이것이야 말로 하늘이 내려준 성터라 생각한 태조 이성계는 기뻐하며 눈이 쌓인 모양대로 성을 쌓으라 명령하였다. 훗날 눈이 쌓여 울타리를 이루었다는 뜻으로 눈설자를 써서 '설울'이라 하였고, 그것이 변하여 지금의 서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