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시 원동의 지명 유래

hanolduol2006.11.10
조회68

원동(院洞)은 고려시대의 국립여관에 해당하는 원(院)이 있었던 곳으로 이에 원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지금의 큰터[大基]에 죽현원(竹峴院)이라고 하는 원이 있었는데 정선지방으로 통하는 교통의 요로에 위치하여 지방으로 출장 나온 관리가 지나가다 숙박하고 가는 곳이다. 월둔골[月屯谷] 큰터[大基村] 연작골[燕雀洞] 등 3개의 자연촌락으로 이루어진 마을이다.

동국여지승람》의 삼척도호부 역원(驛院)조에 보면 "죽현원은 삼척부에서 서쪽으로 80리에 있다"라고 한 것이 바로 원동에 있던 죽현원을 이르는 것이다.

ㆍ조개바우 ― 대덕산 꼭대기에 있는 바위이다. 바위에 조개 화석이 붙어 있어서 조개바우라고 한다. 전하는 이야기 로 옛날 조수가 올라와서 바닷물이 조개바우 앞까지 올라왔는데 그곳에 조개장이 섰다고 한다. 그 일대 펀펀한 산 등을 조개등이라고 부른다.

ㆍ임금정(林檎亭) ― 연작골 안쪽에 있는데 지금으로부터 250여년전 이진영(李震英)이라는 사람이 능금나무를 심고 그곳에 살았기에 그 곳을 능금나무께라 하고 한자로 임금정이라 하였다. 50여년 전만해도 200여년 묵은 능금나무 고목이 있었으나 지금은 고사하여 버렸다. 임금정 곧 능금나무께는 원동의 이씨들 배판터이다.

ㆍ연작골[燕雀谷 또는 連作谷] ― 임금정이 있는 골짜기를 연작골이라 한다. 옛날 화전이 성할 때 이곳 땅의 토질이 좋아서 매년 연작(連作)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었기에 연작골이라 한다. 또다른 이야기로 연작골 안쪽에 연소형(燕 巢形)의 명당이 있어서 연작골이라 고도 한다.

ㆍ고무덕 ― 한작골 안쪽 갈번지 아랫쪽에 펀펀한 산중턱을 이르는 말이다. 고무덕은 고무다락처럼 덩그렇게 높은 곳 에 형성된 덕시라서 고무덕이라 한다. 고무는 집을 지을 때 천장에 나무를 깔고 그 위에 흙을 덮어 놓은 것인데 추 운 강원도 지방의 독특한 집구조이다. 덕은 고원 평탄한 땅을 이르는 이 지방 방언으로 지금 고무덕엔 고랭지 채소 재배지가 있다.

ㆍ큰터 ― 죽현원이 있던 곳으로 상당히 넓은 밭이 형성되어 있다. 원동골에서 제법 큰 땅이라고 큰터라 한다.

ㆍ청애등 ― 면산 남쪽 산등으로 펀펀하게 생겼다. 산등에 바위가 있고 물고기 화석이 가끔 발견되는데 청어의 화석 이라 한다. 전하는 이야기로 옛날 조수(潮水)가 청애등까지 올라 왔었다고 하며 그 산등에 청어장이 섰다고 해서 청어등이라 한다는 것이다. 청어등이라는 말이 변해 청애등이 되었다고 한다. 원동 사람들이 말하길 대덕산 꼭대기 조개바우 부근에는 조개장이 섰고 청애등 꼭대기에선 청어장이 섰다고 한다. 청애등에서는 동해바다가 보인다.

ㆍ한작골 ― 평지에서 남쪽으로 있는 골짜기이다. 골짜기 어귀에서 예전에 전부리를 해서 부르게 된 이름이다. 전부 리는 쇳돌을 케다가 녹여 쇠를 얻어내는 일로써 한점 또는 환정이라 하는데 한점골 또는 환정골이 변해 한작골이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한작골 어귀에는 쇠를 녹였던 터가 있고 부근에 쇳똥이 발견된다.

ㆍ월둔골[月屯谷] ― 옛날 산전(山田)을 많이 하던 곳으로 산전을 달밭이라 하는데 그 달밭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월 둔(月屯)이라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원동 본 마을에서 멀리 있다고 멀둔이라 하다가 월둔이 되었다고도 한다. 석회암 지대로 월둔동굴이 유명하다.

ㆍ맹골 ― 평지골에서 오른쪽으로 갈라진 골짜기로 골짜기 안쪽이 바위로 꽉 막혀 있는 것처럼 생겨 맹골이라 부른 다. 맹골 안쪽에는 태백산으로 망제를 올리는 산제단 터가 있다.

ㆍ막조밭골 ― 큰터에서 울둔으로 가다가 왼쪽에 있는 골짜기 이다. 이곳에 권막조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후손이 없이 죽으며 자기의 밭을 동네에 내놓고 제사를 지내달라 하였다. 지금도 원동에서는 매년 음력 9월 9일 무후제(無后祭) 를 올리는데 권막조의 제사를 지낸다. 권막조의 밭이 있는 골짜기라서 막조밭골이라 하는데 그 말이 변해 말성기밭골 이라 부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