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선군 북면의 지명 유래

hanolduol2006.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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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면은 구한국 시대에 북면과 여량면이었던 것을, 여량면을 북면에 통합하고 (강희4년)면사무소를 북평에 두었다. 그후 1915년 4월에 리·동을 통합하여 9개리로 확정하고 면사무소를 남평리로 이전하였다가, 1932년에 현 면사무소를 여량리로 이전하였다.

 

ㆍ 여량리 (餘糧里)

본 리는 현재 면소재지로 예로부터 토질이 비옥하여 농작물이 풍작을 이루어 식량이 남아 돌아간다 하여 여량리로 불리게 되었다.

구한말 시대에는 역마을로 선정되어 역사를 두었었는데 그 역사의 자리가 현재 면사무소 앞 중학교 사택의 터라 한다.

 

ㆍ 마산재 (여량3리)

조선 선조때 대군이 주둔하여 마산 재에서 말의 먹이를 먹였고 또한 여량역의 파발마를 먹여 기르던 초지가 많아 마산재라 불리었다.

 

ㆍ 다랫벌 (여량4리)

옛날 이곳은 지금처럼 넓은 농경지가 아니고 돌과 소나무가 많은 야산으로 다람쥐 떼가 무수히 살았다고 하여 '다랫벌'이라 불리었다고 전해 내려온다. 지금은 많은 농경지와 또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모두 이곳에 있다.

 

ㆍ 송천 (유천1리)

개척 당시 주변에 소나무가 많았으며 마을 중심부에 강이 흐른다 하여 송천(松川)이라 하였는데, 강변에 버드나무가 무성하여 나중에 유천(柳川)이라 부르고 있다.

 

싸리골 (유천1리)

동학란 때에 난을 진압하려던 관군이 주둔했으며 이들에게 공급할 군량미를 저장하였다 하여 '쌀골'이라 불리었는데, 지금은 싸리골이라 부르고 있다.

 

ㆍ 가물재와 갓거리 (유천3리)

옛날 고을 원님이 궁대(宮垈)에서 궁술시합을 마치고 구절리로 가는 도중 송천부락에서 가물재를 향해 바라보니 어찌나 높은지 아지랑이 낀 산마루가 가물거린다 하여 지금까지 '가물재'라 불리어 온다. 그리고 가물재를 넘어 약간 평탄한 곳인 관괘동(冠掛洞)에 도착하여 땀을 닦고 강물에 세수하려고 갓을 벗어 걸어 놓았다 하여 동명은 갓거리(冠掛洞)이라 불리어 온다.

 

ㆍ 자개 (自開 - 구절1리)

정확한 유래는 알 수 없으나 이 지역 산중턱에 있는 둘문이 저절로 열린다고 하여 이름 지었다 한다. 언젠가 천재지변으로 그 바위는 파괴되어 없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오고 있다.

 

ㆍ 하구절 (下九切 - 구절1리)

구절이라는 명칭은 이곳의 하천이 유천리의 강과 어우러져 '九折羊腸 '의 형태로 흐른다는 뜻에서 변천하여 구절(九切)로 불리어 졌다고 한다. 과거 구절리는 1개리로 편성되어 있었는데, 지하자원이 개발되면서부터 현재의 3개리에 상동, 중동이 있었고, 현재의 구절1리가 하동으로 불리어 짐으로서 '하구절'(下九切)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