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진지 2년이 다 되어가는 남자친구가..전화를 해서 우는 건..

쉘위댄스2003.09.04
조회1,739

전 23살의 여대생입니다.

대학 2학년 때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나게 된 친구가 한명 있었어요.

성격도 좋고, 처음 일하는 제가 당황할 때마다 이것저것 잘 챙겨줘서 괜찮은 사람이구나..라는 막연한 생각만 가지고 있었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르바이트 생들끼리 간단히 맥주 한 잔을 할 기회가 생겼어요.

그 때, 심각하게 제게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실제 나이가 제가 알고있는 것보다 어리다고..

전 그 친구를 81년 생으로 알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83년 생이라고 그러더라구요.

빠른 83이라 이제 갓 스물이라고.. 전 솔직히 대학와서 친구간에 나이가 무슨 상관인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기 때문에 웃으며 상관없다고, 계속 친구로 잘 지내자고 말했죠.

그렇게 해서 그 친구와는 더 허물없이 지내는 사이가 되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두 달 쯤 뒤였던가..

제게는 저를 참 많이 힘들게 하던 1년 쯤 사귀던 남자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하루는 술이 잔뜩 취해서는 제가 일하는 가게로 찾아와서 행패를 부리더라구요.

솔직히 아무 상관도 없는 사이인데, 자기 일처럼 나서서 그 남자애 끌어내고(그 와중에 술취한 그 애한테 맞기도 했거든요..), 놀라서 우는 저한테 약 사다주고.. 따뜻한 커피 끓여주고.. 집에 데려다 주고..

 

너무 고마워서 제가 며칠 후에 밥을 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정말 많은 얘기를 들었어요..

고등학교 때 패싸움으로 소년원 간 일이 있고, 그 것 때문에 지금도 보호감찰 받고 있다고..

그 때 일로 학교도 간신히 졸업했고, 집에서도 내 놓은 자식 취급한다고..

그렇게 때문에 더 열심히, 착하게 살려고 해도 취직할 곳이 없다고.. 그래서 이렇게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거라고..

솔직히 상상도 못했던 얘기였기 때문에 당황한 게 사실이었습니다.

대학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없었는데.. 저를 보면 대학가고 싶어진다고..

저한테 어울리는 사람이 되어서 나타나면 받아줄 수 있냐고..

 

동정이었을까요.. 아니면 호감 때문이었을까요..

왠지 전 그 애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대학 가는 거 도와주겠다고, 우리 지금부터 좋은 사이로 만나자고.. 그렇게 말했죠.

그 때 이후로 둘 다 정말 공부 열심히 했습니다.

전 사범대 생이라 나름대로 그 친구 과외도 해주고, 모자란 부분은 다른 과 친구들에게 부탁도 하면서 약 6개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물론 힘든 일도 있었습니다.

특히 그 친구가 술을 자주 마시는 편이라 그 것 때문에 싸우기도 했지요.

그래도 열심히 했다는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에 항상 얼굴은 밝았습니다.

 

수능이 끝나고..

그 친구가 오고 싶어했던 저희 학교 사범대를 지원하기에는 훨씬 못 미치는 성적이 나왔습니다.

그 날 이후로 또 술.. 술이더군요.

방황하고, 힘들어하고, 한 동안 너무 안쓰러워서 해달라는 대로 다 해줬습니다.

술 마시고 싶다면 술 사주고, 여행다녀오고 싶다 그러면 다만 몇 만원이라도 쥐어서 보내주고, 다른 여자들이랑 어울려서 나이트가는 걸 알면서도 아무말 하지 않았습니다.

그 친구가 얼마나 힘든 지 알고 있었으니까요.. 시간이 약이다 싶었지요.

함께 할 수 없다면 다만 내버려 두는 게 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원서를 사서 접수하고.. 어떤 곳이 더 낫겠냐고 물어봐도 거들떠도 안보더군요.

저와 함께 하고 싶어서 시작했던 공부이니만큼, 그 심정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도대체 그 친구에게 저는 어떤 존재일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모든 걸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으로만 생각하는 걸까.. 나도 인간이고, 힘들어 할 줄 아는데..

그래서 힘들다고 딱 한번 얘기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제 반지를 돌려주네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 친구에게 저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는 걸 알고 자신감이 없어지더군요.

처음의 저를 지켜주던 그 모습은 어디로 가고.. 저에게 기대려고만 하는 그의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혼자 펑펑 울었는데.. 알 수 없는 감정이 드는 건.. 왜일까요..

야속하다거나 가슴이 찢어지게 아픈게 아니라, 그냥 마냥 슬프더라구요.. 정말 아무 생각없이 울었습니다.

 

몇 개월이 흐르고..

원서를 냈던 대학 중 한 군데에 입학을 했다는 소식을 얼핏 듣게 되었습니다.

이상하리만치 잊고 지내고 있었어요. 그 전의 남자친구와 헤어졌을 때는 그러지 않았는데..

그 친구와 함께 했던 시간이 아예 없었던 것 같은 느낌.. 주변의 제 친구들도 그런 말을 하더라구요.

 

며칠 전..

아무 생각없이 예전에 아르바이트 했던 가게 앞을 지나는데, 그 친구가 가게 앞 벤치에 앉아있더라구요.

영화에서 보면, 그런 거 있죠. 주인공 둘은 정지해 있고.. 주변인물들은 주인공와 상관없이 휙휙 지나가는.. 그런 비슷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전 아무말 없이 몇 분 정도 그 친구를 응시하고 있다가 그냥 돌아섰습니다.

별로 하고 싶은 말도.. 해야 할 말도 없었기 때문이죠.

어설픈 안부인사보다는.. 그 편이 훨씬 나을 것 같았습니다.

집으로 돌아와서는 또 이상하리만큼 금방 그 일을 잊어버리곤 일상에 빠져들었죠.

 

몇 시간 전..

그 친구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존대말을 쓰네요..

'잘 지내셨어요.. 몸은 어때요.. 더 마른 것 같던데.. 이젠 그 사람이 안 괴롭히죠..'

아주 담담했습니다.

'응..난 잘 지내. 너도 잘 지내지. 학교 생활은 어때. 친구는 많이 사귀었어.'

그저그런 일상적인 대화가 오가는 도중.. 말이 뚝 끊기더니 울음 소리가 들립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간혹 들리는 말은 이 뿐.. 전 담담하게

'울지마. 왜 울어. 몸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이 말만했습니다.

뚝 끊어지는 전화..

 

마음이 아프지도.. 신경이 쓰이지도 않는 것은 제가 냉정하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그 친구가 제게 남자친구의 의미가 아닌 채로 옆에 있었기 때문일까요..

그 친구가 제게 어떤 의미였는지.. 지금도 그 건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정말 잘 지냈으면..

다시는 쓸데없는 자격지심으로 다른 여자 마음 아프게 하지 말기를.. 바랄뿐입니다.

 

...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건강하게 잘 지내야 해..

언젠가 또 만날 날이 있겠지..

행복해야되..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