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유령 (9)

시간공작소2003.09.04
조회434

9.

"주인님 일어나세요...
주인님 일어나세요....
지금 더 자면 지각인데..."

자명종 소리....-_-;;;

고수는 머리가 깨지는듯 아파왔다.
더듬더듬 머리맡을 헤매다가 자명종을 껐다.
어젯밤 자신이 어떻게 집으로 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동네 어귀 포장마차에서 혼자서 소주3병까지 마신것까지 기억하는데..
그 다음부터 필름이 끊어진것 같다.
아침햇살의 눈부심에 이불을 뒤집어 쓰고 웅크리고 한참 있다가
갑자기 이불을 확 제끼고
시계를 보더니

"헉..늦었다..이런...이런..."

고수는 펄쩍 뛸듯 일어나서 화장실로 가서 고양이세수를 하고 양치질하고
양복을 입고 나가려다가 가방을 안갖고 와서
다시 방으로 뛰어가서 서류가방을 들고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전철역으로 뛰었다.

한 10분쯤 전력질주로 뛰다가 숨이 차서 멈추고 숨을 고르면서
고수는 생각했다.

"아참..나 짤렸지...허허..."

그냥 어이가 없는듯 헛웃음이 나왔다.
3년이라는 시간이 파블로의 개실험처럼 그렇게 길들었나 보다..
시간이 되면 회사로 뛰고 회사에서 일하고 밥먹고 퇴근하고
자다가 다시 시간이 되면 회사로...

고수 옆을 종종걸음으로 스쳐가는 직장인들을 보면서
그냥 착찹해지는것은 왜 일까?

다들 목적지를 향해 가는데....
나는 어디로 가야하나?

갑자기 자신 혼자만이 텅빈 도시에 남겨진듯한 기분이 들었다...
가야할곳이 없다는 이렇게 사람을 당황하게 할줄은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하루만 푹 쉬어봤으면 원이 없겠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는데...
막상 시간이 주어지자 혼란스러워졌다.

얼룩말은 사자의 공격을 받으면 무리가 머리를 중심쪽으로 해서 동심원을 만들고
뒷다리로 방어한다고 한다.
고수는 마치 그 무리에서 홀로 동떨어졌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냐?
겨우 하루도 안지났는데...벌써 나약한 생각을 하냐?

그나저나 뭘할까?
집으로 돌아가기는 싫었다.
아참 사직서도 안썼는데..
회사로 가야 하나? 아니야 그것은 우편으로 발송해야지..
지금가면 다들 많이 어색할거야..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배에서 쪼르륵 소리가 났다.

배가 고픈건지 쓰린건이 잘몰라도 일단은 먹는게 남는것이라는
평소 생활철학아래에 일단 빵집에 가서 빵이랑 우유를 사서
공원에 갔다.

벤치에 앉아서 빵을 한입 베어물었는데 마치 모래를 씹는듯 소태처럼 쓰다.
그래서 우유한모금을 먹었는데 도리어 오바이트가 쏠릴것 같다.
먹는걸 포기하고 멍하니 앞만 보고 있는데...
아까부터 지저분한 개한마리가 고수 앞을 알짱거린다.

고수는 빵을 짤라서

"요요..쫑쫑~ 먹어" 하고 다가가자 도리어 도망을 간다.

고수는 한손에 빵을 들고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너도 사람들한데 많이 데였구나."

고수는 바닥에 빵을 두고 우유도 먹기 좋게 해놓고 그곳을 떠났다.


"역시 조조라서 그런가? 휑하구나..그래도 이시간에도 사람이 있네"
극장안은 기계충에 걸린 자국처럼 듬성듬성 사람이 있었다.
조명이 꺼지고 영화는 시작되었다.
멜로 영화인데 대충 줄거리가 열렬히 사랑했던 남녀가 있었는데
여자가 백혈병에 걸려서 죽는날까지 함께 시간을 보내다가
여자가 죽는날 남자도 자살한다는 내용이였다.

고수는 그냥 무덤덤 멀뚱멀뚱 보고 있는데..
건너편 여자는 뭐가 그리 서러운지 펑펑운다..
자기 애기라서 가슴에 와 닿아서 우나?
아니면 평소에 쌓인게 많아서?
아무튼 영화보다는 그 여자를 보고 있는게 더 재미있었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서는데
핸드폰으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고수씨?"

"네-에 안녕하세요. 과장님"

"안녕이고 뭐고 간에...뭐냐? 왜 핸드폰은 꺼놓았냐?"

"극장안이라서요"

"이시간에? 팔자 좋구나"

"팔자보다는 개인적으로 칠자를 좋아하죠..럭키쎄븐..."

"핸드폰에서 냉기가 나온다...썰렁해"

".........."

"그래 다행이다..의기소침해서 집구석에 쳐박혀 있을줄 알았는데..
돌아다니는구나..그래 내가 너 휴가로 잡아놓았으니 며칠 푹 쉬고
다시 와라."

"아닙니다. 그만두겠습니다."

"앞으로 박이사와 최부장이 어떻게 나올지 모르지만
완전히 끝난게 아니라서 다시 일할수 있을거야"

"말씀은 고맙지만요..그만두겠습니다"

"그만둔다 그만둔다 그소리만 하지말고
며칠시간이 있으니깐 잘 생각해봐.
성급하게 결론내리지 말고...알았지?"

"네에"

"그러면 다음에 통화하지.."

"들어가세요.그럼.."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가까운 식당으로 들어갔는데
인근 사무실에 직장인들로 가득차 있었다.
양복상의을 벗고 흰 와이셔츠로 차림으로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고
뭐가 좋은지 낄낄대면서 웃는사람도 있고
흐르는 땀을 연신 닦으면서 음식을 먹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혼자서 덩그라니 앉아서 먹을 용기가 없어서
다음에 올께요라고 말하고 나오고 말았다

하긴 우리나라에서 혼자서 점심시간에 먹을만한 곳은 한정되어있다.
햄버거집 아니면 자장면집..
햄버거라....윽....
자장면집에 가서 속풀이로 짬뽕이나 먹어야겠다..

점심을 먹고 고수는 교보문고로 갔다.
가는 내내 영업부 동료들의 전화가 이어졌다.
그중에서 힘녀 윤보라...

"여보세요"

"여보세요.나야 보라"

"어..보라구나."

"그래 잘 지내냐?"

"뭐 내가 며칠을 지났다고...겨우 하루인데..잘 지내지"

"지금 뭐하냐?"

"서점가는 길이야..교보문고"

"책사러?"

"그럼 서점에 책사러 가지..생선 사러 가겠습니까?"

"글치..우리 영업부 사람들 걱정 많이 한다."

"난 괜찮아..걱정말라고 해"

"하긴 너는 영업부를 못떠나 왠줄 알어?"

"왜?"

"뇌쇄적이고 섹시하고 절세미녀 윤보라님이 계시니깐..."

"지금 거신 전화는 잘못된 전화이오니 다시 확인하고 걸어주시길 바랍니다.뚜뚜뚜~"

"고수 너 죽어"

둘은 하하하 웃었다.

"고수야~ 지금 부른다. 다음에 다시 통화하자"

"그래 열심히 일해라.그럼"

다들 고마운 사람들이다.
고수는 뭔가 아쉬운듯 휴대폰 폴더를 열었다 닫았다 했다.
기다리는 전화가 있는듯...

'우리 은진씨가 많이 바쁜가봐'

서점에서 책을 몇권사고 저녁쯤에 집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