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얀 물결 넘실거리는 은빛바다, 강원도 봉평

^_^2003.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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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 같이 애잔하고 나귀의 걸음도 시원하다.”   

가산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 9월 초 이곳에 가면 그의 소설대로 이곳저곳에 메밀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메밀꽃뿐인가? 지금도 봉평에서 장평으로 가는 길에는 허생원이 헐떡거리며 넘던 노루목이 남아 있고, 동이의 등에 업혀 건너던 장평냇물이 흐르고 있다.

또 실존 인물이라고도 하는 허생원이 살았던 집과 봉평장터의 주막 충주집,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하룻밤 짧은 사랑을 나눈 물레방앗간, 당나귀를 가둔 외양간 등이 복원돼 있다.

봉평 읍내에 들어서면 소설 속의 주막집 충주집터를 알리는 비석을 만날 수 있다. 지금도 장이 열리는 곳으로 허생원의 낯모르는 아들 동이가 대낮부터 술먹고 계집과 농탕을 벌이다 허생원에게 따귀를 얻어 맞던 곳이다.

하얀 물결 넘실거리는 은빛바다, 강원도 봉평

흥정천에 섶다리를 놓아 예스런 분위기를 살렸다.

흥정천 건너 7만여 평 ‘메밀꽃 바다’

봉평중학교 앞 이효석의 호를 딴 가산공원에는 이효석의 흉상과 문학비가 있고 충주집도 복원되어 있다. 문학비에는 ‘효석의 인생은 짧았지만 그 짧은 인생 속에 남긴 문학은 조선의 언어예술이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봉우리’라고 쓰여 있다.

가산공원을 조금 지나면 이효석이 어릴 때 물장구치며 놀았을 법한 흥정천이 나온다. 흥정천을 가로지르는 남안교 옆에는 통나무로 뼈대를 세운 후 솔가지를 엮은 상판에 흙을 덮은 섶다리를 만들어 놓아 옛 정취를 살렸다. 효석문화제 기간 동안 남안교 옆에는 옛 봉평장을 추억하기라도 하듯 전통장이 열린다. 특히 메밀전병 부치는 구수한 냄새가 여행객들의 시장기를 자극한다.

흐드러진 메밀꽃밭은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시작이다. 물레방앗간과 이효석 생가 주변에 7만여 평에 달하는 메밀꽃밭이 그야말로 ‘소금을 뿌린 듯’ 하다.

관광객들의 시선을 끄는 것은 물레방앗간. 얽둑빼기 장돌뱅이 허생원이 봉평 장날 여름밤, 메밀꽃 흐드러진 개울가로 목욕하러 나왔다가 봉평 일색인 성서방네 처녀를 만나 예기치 못했던 정분을 나누던 그 방앗간이다.

“목욕하러 나갔지. 개울가가 어디 없이 하얀 꽃이야. 달이 너무 밝아 옷 벗으러 물방앗간에 들어갔지 않았나. 이상한 일도 많지. 팔자에 있었나 부지.”

첫날밤이 마지막 밤이 되었지만 평생을 잊지 못하고 가슴에 묻어 둔 그리운 여인. 이후 소설의 말미에서는 둘 사이에서 태어난 ‘동이’가 물에 빠진 허생원을 업고 개울을 건너는 장면에서 절정을 맞는다. 등에 업혀 동이가 자신과 같은 왼손잡이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허생원의 떨림이 느껴지는 듯하다.

하얀 물결 넘실거리는 은빛바다, 강원도 봉평

소설 속에서 허생원이 성서방네 처녀와 정분을 나누던 물레방앗간

생가 터 등 이효석 자취 곳곳에 되살려

이곳에서 승용차로 10분 거리에 있는 무이예술관 주변에도 메밀꽃 천지다. 2001년 다섯 명의 화가들이 폐교가 된 무이초등학교를 활용해 문화공간을 만들었다. 도자기, 서예, 조각, 서양화가 등의 작업실을 볼 수 있으며 운동장은 조각공원으로 꾸몄다.

물레방앗간에서 1.5㎞쯤 올라가면 이효석의 생가 터가 있다. 생가 터로 가는 길목 야산에는 이효석 선생의 유물을 전시하는 효석문학관이 있다. 이효석의 대표작 연보와 육필원고, 생전에 사용했던 안경, 잉크병, 책상 등이 전시돼 있다.

이효석 생가 터에 집이 한 채 남아 있다. 이 집에는 홍종률 씨가 살고 있는데 오래 전 홍 씨의 증조부가 이효석의 부친으로부터 집을 사들였다고 한다. 초가지붕을 양철지붕으로 바꾸고 생가 곁에는 황토집을 짓고 메밀음식과 전통차를 판다.

눈처럼 하얗게 들판을 덮은 메밀꽃 사이를 선선한 가을 바람을 맞으며 걷는 정취, 어느새 가을이 성큼 우리 곁에 다가왔다.

 

하얀 물결 넘실거리는 은빛바다, 강원도 봉평■ 여행정보

14일까지 효석문화제 열려

9월 5일부터 14일까지 평창군 봉평면의 장터와 물레방아 주변 7만여 평의 메밀밭, 가산공원 일대에서 제3회 효석문화제가 열린다. 이효석을 기념하는 이 문화제 기간에는 효석백일장, 문학심포지엄, 효석문학상 시상식, 가장행렬 등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작품 배경지 답사와 봉평장터 재현. 주최측인 효석문화제위원회는 여울목, 노루목고개, 문학비, 충주집, 가산공원, 물레방아, 생가 등을 돌아봄으로써 관광객들에게 메밀밭에 얽힌 이효석의 문학적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봉평장터 재현은 ‘메밀꽃 필 무렵’을 저술한 1930년대 봉평장터를 재구성한 것으로 40여 개 상점에서 메밀국수, 부침 등 즉석요리를 선보인다.

봉평면 홈페이지 www.bongpyong.co.kr

효석문화제위원회(033-335-2323)

영동고속도로 장평나들목에서 빠져 나와 우회전, 6번 국도를 타고 6㎞쯤 달리면 메밀밭이 펼쳐진 가산공원이 나온다. 길이 막히면 둔내나들목으로 나와 6번 국도를 타도 좋다. 버스로는 동서울터미널이나 상봉터미널에서 강릉행 버스를 타고 장평에서 내린 후 봉평행 시내버스를 탄다.

봉평면 면온리에 휘닉스파크 콘도미니엄(033-333-6000)이 있다. 흥정천 메밀밭 가운데 있는 콘도식 민박인 가람황토민박(017-374-0517), 생가터 가는 길의 하얀천국(336-0605)도 시설이 괜찮다. 팔석정 앞에는 펜션인 달빛사냥(335-6770)이 있다. 봉평은 메밀꽃의 고장인 만큼 메밀막국수, 메밀칼국수, 메밀전, 옥수수를 갈아 만든 ‘강냉이국수’가 인기다.

글·사진=임인학(여행작가 ihlim@hanmail.net)

 

자료 출처 : 포스코 신문  http://weekly.posc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