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길을 나서며

은하철도200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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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단에 바치는 제물을 준비한 아침,

눈을 뜨면 배고픔을 탓하지 않고 먼저 하늘을 바라보아야 한다.   신이 내련 준 조그만 잠자리에서 일어나 세상이라는 신전을 거닐 준비를 한다.  창 밖을 보니 건너편 집의 배랸다에는 주부가 화분을 손질하며 물을 주고 있다.  신전의 꽃에 생명을 내리는 모습이다. 

 

베토벤교향곡 6 번.

컴퓨터에서 그 곡을 찾아 볼륨을 높인다.  베토벤의 생애 중에서 가장 불운한 시기에 작곡했다는 곡이다.  드라마처럼 살다간 그의 일생은 격렬한 그의 교향곡처럼 평탄하지 않았다.  천한 신분의 악사는 뒷문으로 출입해야 한다는 관습에 도전하여 귀족들이 드나드는 정문을 당당하게 걸어 들어갔고,  답답한 왕권정치를 두 쪽 내면서 공화정치의 깃발을 올린 나폴레옹에 환호하여,  에로이카라는 교향곡 3번을 작곡했던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정치의식의 소유자였다.

 

영웅시대의 불운한 음악가.

사실인지는 모르지만 채권자가 문을 두드리는 공포의 소리에서 불멸의 음을 찾아내어 "교향곡 5번 운명" 을 작곡했다는 일화가 생각난다.  어렸을 적에 술주정뱅이인 아버지에게 자주 얻어 맞던 뺨따귀 때문에 커서 귀머거리가 되었다.  자신이 만든 음악을 전혀 듣지 못하는 음악가.

 

교향곡 6 번은 귀가 먹기 시작하면서 작곡한 것이다.  멀리서 가물가물하게 들리기만 하는 피아노 음을 잡으려 긴 대롱을 피아노 속에 집어 넣었다.  전달되는 진동을 이빨에 문 대롱으로 감지하며 작곡했다.  풍상에 이그러진 베토벤의 초상을 보면 입에 물린 대롱까지 연상된다. 

 

시대를 구원할 영웅을 기다리는 에로이카에서...... 무너진 이상을 끌어올리는 운명을 거쳐서...... 멀어져 가는 음의 세계를 긴 대롱으로 찾는 전원......  그 기나긴 여정을 거쳐서 마지막으로 교향곡 9 번이 탄생되었다.

 

베토벤은 고통스럽고 잡다한 세상을 모두 모아서 하나의 상아탑을 이루었다. 관세음보살의 귀에 들리는 중생의 모든 신음소리를 모아서 다듬고 배열하여 세상이라는 신전에 올려 놓았다.  신을 찬양하는 인간의 소리중에서 그가 작곡한 교향곡을 능가하는 소리는 아직까지 나오지 못했다.  그만큼 그의 소리는 높고 위대한 것이다.

 

나는 세상이라는 신전에 무엇을 제물로 바칠 것인가?

 

조그만 잠자리와 내 공간,  변화하는 사계절의 아름다움과 화창한 가을날의 아침, 그리고 길거리에 넘치는 수많은 성자들..... 그 모든 것을 마련하여 준 신에게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마야인들은 피라밋 돌계단 위에서 가장 순결한 어린아이의 심장을 꺼내어 하늘에 바쳤으며, 모세의 후손은 양을 잡아 제단위에 올려 놓았다.  철학자는 진리를, 과학자는 물리적법칙을, 또한 존재조차 잊혀진 옛날의 어느 여인은 뒷마당에 있는 장독대 위에 정한수 떠서 올려 놓지 않았는가,

지금 건너편 베란단에서 화초에 물을 뿌리는 이름모를 주부도 화사한 가을의 꽃을 하늘아래 바치지 않는가,

 

교향곡은 클라이막스를 향하여 치닫는다.

무대 위를 신이 내려와 음과 음사이를 거닐며 파란의 삶을 승화시킨 귀머거리 작곡가의 제물을 즐긴다.  무대 구석에는 자신의 곡을 전혀 듣지 못하는 베토벤이 지휘자의 지휘봉을 쳐다보며 손 끝을 까닥이고 있다.  바이올린 주자의 손이 일제히 오르며 고결한 음을 토하고, 무대 앞에 서 있던 성악가들의 목소리가 일제히 합쳐졌다 흩어지며, 실내에는 꽃...... 꽃잎이 화려하게 떨어져 내린다.

 

저자의 거리.....

나는 수염을 깍고 세수한다.  오늘도 저자의 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떠들고, 한푼의 금전에 계산기를 두드린다.  자기만의 생각에 몰두하는 사람에게 내 생각을 섞어야 한다.  진저리나는 그 거리에서 제단에 바칠 제물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

 

아니다.

그 곳은 제물을 마련하는 장소가 아니다.  저자의 거리가 바로 제단이다.  그 곳이 신전 높이 자리한 제단이며 베토벤의 교향곡이 퍼지는 무대인 것이다.

길거리에서 쉰 목소리로 사람을 부르는 노점상이 바로 제단이고 성자들이다.  사무실에서 전화통에 매달리는 주름잡힌 군상들이 바로 제단이며 성자인 것이다.

 

나는 신이 마련해 준 집이라는 공간에서 제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신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이다.

비록 볼 품 없는 마음이라는 제물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