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날도 이젠 안녕인가 보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가을의 출발을 알리는 아기의 웃음소리처럼 귓전에서 맴돈다. 푸르른 하늘이 유난히도 짙게 드리워진 오늘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신 그 분을 잠시 떠올려 본다. 그 분은 때로는 자상하면서도 엄하게 나를 키우셨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난 당당히 그 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나의 아버지......
세상은 공평한 것 같으면서 불공평한 것 같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 그 중 제일 애착이 가는 사람은 바로 장애인이다.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직 우리 사회는 이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외출을 하면 사람들은 무슨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이 바라만 본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가기 일쑤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질병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도 분명 정상인 못지 않게 능력도 있고,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들을 외면하기 이전에 그들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봐 준다면 그들도 아마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정상인도 아닌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많은 것이 힘들기만 하다. 언제쯤 장애인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나는 '장애인의 날'이라는 특집 방송을 보며 혼자 눈물을 삼키곤 한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가 아픔을 호소할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이슬이 맺히곤 한다. '정상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왜 저런 장애를 안고 태어났을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아마 이렇게 태어난 것도 감사하며 살자'라고 다짐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장애인이다.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온 것이 벌써 22년째가 된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 계셨기에 마냥 개구쟁이로만 자랐다. 하지만 성장해 오면서 나의 몸이 친구들의 몸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똑바로 걷고, 모든 것이 정상인데 비해 난 다리도 절고 팔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때 나는 '내가 장애인이구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3살 무렵, 아장아장 걸음마 하며 재롱부릴 나이에 이미 장애인의 삶을 시작했다. 어린 나를 살려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을 부모님, 아마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3살 무렵 뇌막염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말씀을 가끔씩 하신다. '조금이라도 일찍 병명을 알았다면 정상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날이면 난 왠지 슬픔에 잠긴 얼굴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파아란 하늘엔 국기가 휘날리고 친구들 모두가 기쁜 얼굴인데 난 그늘 아래 앉아 실컷 울어버린다. 이렇게 태어난 나 자신이 너무나 밉고 싫었다. 친구들이 제일 부러울 때는 달리기를 할 때이다. 마음껏 운동장을 돌면서 힘차게 달리는 친구들 모습 하나 하나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달리고 싶은데, 달린다면 친구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데'하면서 속으로 삭히곤 했다.
이렇게 울고 있는 나의 곁에는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아버지가 계셨다. 어깨를 어루만져 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던 아버지였다. 나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일들을 당신 손으로 하곤 하셨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정말 아름다운 여행 같다.
어린 시절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아무 말 없이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에게 항상 좋은 말씀으로 사랑을 채워주셨고, 나의 빈자리엔 항상 아버지가 계셨다. 나를 바라보실 때 항상 미안한 눈빛을 보내시며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하셨다. 그때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았을 텐데, 왜 난 장애인이 되어서 나의 고통은 부모님께도 안겨 드리는가?' 이런 생각들이 모두 부질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죄의식에 사무치곤 한다. 아버지께서는
'수민아 네가 지금은 장애인이지만, 넌 결코 장애인이 아니란다.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단다. 수민아, 아빠는 네가 떳떳하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비록 장애의 몸은 가졌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단다.'
아버지의 이 말씀에 또 한번 아버지 앞에서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선 어린 철부지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25년이란 인생을 살았지만 항상 부모님께 받기만 했을 뿐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지 부모님은 항상 나를 걱정하신다. 아버지께 짐만 안겨드린 철없는 딸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맏딸로 태어났지만 항상 죄송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어느덧 가을로 접어든 지금, 머지 않아 길가엔 코스모스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이름 모를 풀잎처럼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내가 방송고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3년,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방송고의 문을 두드리며 시작할 때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기들이 첫 걸음을 배우듯이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는 늦었지만 그 만큼의 즐거움과 보람도 있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일찍 잠에서 깨어나 가방을 챙기고,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학교에 가면 왠지 즐겁고 기분이 좋아진다. 꿈과 희망을 안고 들어온 이상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학교생활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처음 설레임을 안고 시작한 학교 생활이 몇 개월 있지 않으면 정든 학우들과도 작별이다. 3년간 즐거웠던 일과 나름대로 슬펐던 일들은 아련히 추억이 되어 기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울 때나, 추운 겨울에도 우리들을 위해 수고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우린 헛되이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3년 동안 같이 공부하며 웃으며 함께 해온 방송고 학우들은 나의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3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동행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 모두 잠든 시간에 일어나셔서 나에게 웃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해 주셨고, 학교 행사나 소풍 때에도 나와 함께 해주셨다. 만약 내가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다면 난 어떤 모습일까 하고 가끔씩 머릿속에 스케치해 본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식들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 주는 그런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아버지! 당신의 두 어깨를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이 걸어오신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버지! 우리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당신을 우리들은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ºº 아버지...
그렇게 무더웠던 여름날도 이젠 안녕인가 보다. 밤이 되면 어김없이 들려오는 이름 모를 벌레들의 울음소리가 정겹게 들려온다. 가을의 출발을 알리는 아기의 웃음소리처럼 귓전에서 맴돈다. 푸르른 하늘이 유난히도 짙게 드리워진 오늘날 나를 이 세상에 있게 해 주신 그 분을 잠시 떠올려 본다. 그 분은 때로는 자상하면서도 엄하게 나를 키우셨다.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물으면 난 당당히 그 분이라고 말할 것이다. 바로 나의 아버지......
세상은 공평한 것 같으면서 불공평한 것 같다. 사회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이 아직 많이 있다. 그 중 제일 애착이 가는 사람은 바로 장애인이다. 걷지 못하고, 보지 못한다고 해서 아직 우리 사회는 이들을 외면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한 사람으로 태어나 대우도 받지 못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는 것 밖에는 되지 않는다. 장애인들이 힘든 몸을 이끌고 외출을 하면 사람들은 무슨 동물원 원숭이 구경하듯이 바라만 본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지나가기 일쑤이다.
아마도 처음부터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부분 질병과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도 분명 정상인 못지 않게 능력도 있고, 재주를 가진 사람들도 있다. 장애인들을 외면하기 이전에 그들을 사랑의 눈빛으로 바라봐 준다면 그들도 아마 사랑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갈 것이다. 정상인도 아닌 장애인으로 살아가기에 우리 사회는 아직 많은 것이 힘들기만 하다. 언제쯤 장애인도 떳떳하게 살 수 있는 날이 올지 궁금하다.
장애인의 날이 되면 나는 '장애인의 날'이라는 특집 방송을 보며 혼자 눈물을 삼키곤 한다. 걸음마도 떼지 못한 아기가 아픔을 호소할 때 나도 모르게 두 눈에서 이슬이 맺히곤 한다. '정상인으로 태어나지 못하고 왜 저런 장애를 안고 태어났을까? 혼자 이런 생각을 하며, 아마 이렇게 태어난 것도 감사하며 살자'라고 다짐하곤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장애인이다. 내가 장애인으로 살아온 것이 벌써 22년째가 된다. 철모르던 어린 시절엔 부모님이 계셨기에 마냥 개구쟁이로만 자랐다. 하지만 성장해 오면서 나의 몸이 친구들의 몸과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친구는 똑바로 걷고, 모든 것이 정상인데 비해 난 다리도 절고 팔도 부자연스러웠다. 그때 나는 '내가 장애인이구나'하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3살 무렵, 아장아장 걸음마 하며 재롱부릴 나이에 이미 장애인의 삶을 시작했다. 어린 나를 살려보려고 이리저리 뛰어다니셨을 부모님, 아마 두 분이 계시지 않았다면 난 이 세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살아가면서 순간 순간 감사하며 살아가고 있다. 3살 무렵 뇌막염이라는 병을 앓고 있었다. 부모님은 이런 말씀을 가끔씩 하신다. '조금이라도 일찍 병명을 알았다면 정상인이 될 수도 있었는데...'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다.
초등학교 시절 가을 운동회 날이면 난 왠지 슬픔에 잠긴 얼굴로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파아란 하늘엔 국기가 휘날리고 친구들 모두가 기쁜 얼굴인데 난 그늘 아래 앉아 실컷 울어버린다. 이렇게 태어난 나 자신이 너무나 밉고 싫었다. 친구들이 제일 부러울 때는 달리기를 할 때이다. 마음껏 운동장을 돌면서 힘차게 달리는 친구들 모습 하나 하나가 그렇게 부러울 수 없었다. 그리고 '나도 달리고 싶은데, 달린다면 친구들보다 더 잘 할 수 있는데'하면서 속으로 삭히곤 했다.
이렇게 울고 있는 나의 곁에는 따뜻하게 감싸주시는 아버지가 계셨다. 어깨를 어루만져 주시며 힘과 용기를 주시던 아버지였다. 나의 손과 발이 되어 모든 일들을 당신 손으로 하곤 하셨다. 아버지와의 추억은 정말 아름다운 여행 같다.
어린 시절 나를 자전거에 태우고 동네 한바퀴를 돌면서 아무 말 없이 웃으시던 모습이 아직 생생히 기억에 남아 있다. 나에게 항상 좋은 말씀으로 사랑을 채워주셨고, 나의 빈자리엔 항상 아버지가 계셨다. 나를 바라보실 때 항상 미안한 눈빛을 보내시며 이내 눈시울이 붉어지곤 하셨다. 그때마다 나도 나름대로 생각을 정리하곤 했다. '내가 만약 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부모님이 걱정하시지 않았을 텐데, 왜 난 장애인이 되어서 나의 고통은 부모님께도 안겨 드리는가?' 이런 생각들이 모두 부질없는 생각임을 알면서도 자꾸만 죄의식에 사무치곤 한다. 아버지께서는
'수민아 네가 지금은 장애인이지만, 넌 결코 장애인이 아니란다. 신체의 장애보다 마음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변에는 많이 있단다. 수민아, 아빠는 네가 떳떳하게 세상 사람들과 어울리며 살고, 비록 장애의 몸은 가졌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열심히 살아준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단다.'
아버지의 이 말씀에 또 한번 아버지 앞에서 흘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아버지 앞에선 어린 철부지로 나약해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부모님과 25년이란 인생을 살았지만 항상 부모님께 받기만 했을 뿐 해드린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금도 어디를 가든지 부모님은 항상 나를 걱정하신다. 아버지께 짐만 안겨드린 철없는 딸을 용서해 달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맏딸로 태어났지만 항상 죄송했다고, 그리고 사랑한다는 말도 함께 전하고 싶다.
어느덧 가을로 접어든 지금, 머지 않아 길가엔 코스모스가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이슬을 머금고 피어난 이름 모를 풀잎처럼 나는 오늘도 하루를 시작하려 한다. 내가 방송고와 인연을 맺은 지 어느덧 3년, 그 시간 동안 나는 성숙한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 방송고의 문을 두드리며 시작할 때 '과연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아기들이 첫 걸음을 배우듯이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었다.
다른 친구들보다는 늦었지만 그 만큼의 즐거움과 보람도 있었다. 학교에 가는 날이면 일찍 잠에서 깨어나 가방을 챙기고,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학교에 가면 왠지 즐겁고 기분이 좋아진다. 꿈과 희망을 안고 들어온 이상 졸업할 때까지 열심히 학교생활에 충실히 임할 것이다.
처음 설레임을 안고 시작한 학교 생활이 몇 개월 있지 않으면 정든 학우들과도 작별이다. 3년간 즐거웠던 일과 나름대로 슬펐던 일들은 아련히 추억이 되어 기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더울 때나, 추운 겨울에도 우리들을 위해 수고해 주신 선생님들께 감사드린다. 선생님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3년이라는 긴 시간을 우린 헛되이 보내고 있었을 것이다. 3년 동안 같이 공부하며 웃으며 함께 해온 방송고 학우들은 나의 머릿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묵묵히 3년이라는 시간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동행해 주신 아버지께 감사 드린다. 아버지는 일요일 아침, 모두 잠든 시간에 일어나셔서 나에게 웃음으로 모든 것을 대신해 주셨고, 학교 행사나 소풍 때에도 나와 함께 해주셨다. 만약 내가 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된다면 난 어떤 모습일까 하고 가끔씩 머릿속에 스케치해 본다.
나는 이 세상 누구보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존경한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을 사랑하듯이, 자식들도 부모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사랑이 넘치는 그런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편견을 버리고 장애인도 동등한 인격체로 대해 주는 그런 우리 사회가 되길 바란다.
'아버지! 당신의 두 어깨를 바라보고 있으면 당신이 걸어오신 세월의 무게가 느껴집니다. 아버지! 우리들을 위해 아낌없이 바친 당신을 우리들은 영원히 사랑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출처:아부지닷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