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스켈리

전망2003.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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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 켈리(1929~1982)

 

스크린에 비춰졌던 가장 아름답고 근접하기 어려운 배우. 그레이스 켈리. 배우에서 진정한 왕비가 된 신화속의 여인. 그레이스 켈리는 1929년 11월 12일, 필라델피아에서 잡지모델이었던 어머니와 실업가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그레이스파트리시아 켈리이다. 그녀의 아버지는 펜실바니아에서 꽤 큰 사업을 하고 있었기에 그녀는 부유한 어린시절을 보냈다.

 

열살 무렵 그녀는 필라델피아의 작은 연극에 출연하고 그것을 계기로 부모님의 반대를 무릅쓰고 십대에 뉴욕으로 거처를 옮기게 된다. American Academic of Dramatic Art에서 연기를 배우던 그녀는 TV프로에 출연하고 브로드웨이에 캐스팅 되는 기회를 거쳐 마침내 헐리우드에 입성한다.

 

마침내 그녀는 1991년 <Fourteen Hours>에서 작은 배역을 얻게 된다. 그녀의 두번쨰 작품은 1952년 게리쿠퍼와 공연한 <하이 눈 High Noon>으로 비록 조연이었지만 한 소녀가 게리쿠퍼의 매력을 덮어 버렸다는 호평을 받으며 이름을 날리게 된다.

 

그러나 조연으로서 그녀의 위치는 변하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존 포드는 그녀를 기용해 새로운 영화를 만들게 된다. 그것이 바로 1953년 제작된 <Mogambo>. 이 작품으로 그녀는 오스카 여우 주연상에 노미네이트 된다.

 

그간의 그녀의 이미지가 차갑고 청순한 매력이었다면 알프레도 히치콕의 명작, <다이얼 M을 돌려라 Dial M for Murder>에서는 차갑지만 섹슈얼한 이미지를 연기해 연기의 폭을 넓히는 결과를 낳았다. 이제 그녀는 명실상부한 최고의 스타였고 그녀가 만들어낸 금발의 청순하지만 요염한 이미지는 많은 여성들의 선망이 되었다

 

MGM사의 간판 스타인 그녀를 파라마운트사는 <The Coutry Girl>이란 작품으로 데리고왔다. 비록 영화는 금전적으로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지만 그녀는 그 역으로 성공가도를 달리게 된다. 또한 그녀는 마침내 오스카 여우주연상을 거머쥐게 된다.

 

그리고 드디어 1955년 히치콕 감독과의 세 번쨰 작품인 <To Catch a Thief>를 찍으며 그녀는 모나코 왕국의 레이니어 공과 만나게 된다.  불과 두 번의 만남 만에 레이니어 공은 그녀에게 반하게되고 대륙을 건넌 긴 연서를 써서 보내기에 이른다.

 

1956년 <필라델피아 스토리>, <상류사회>를 찍으면서도 그녀와 레이니어공은 서로 연락을 주고 받았으며 <백조>를 마지막으로 그녀는 모나코 왕국의 왕비가 된다.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켈리

 

갠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사진.찡그리고 웃는게 넘 이뻐서..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켈리

 

레이니에 공과의 결혼식 장면.

 

[1982 년]

그레이스 켈리 사망


그레이스켈리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

 

미국 영화배우 출신의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가 전날 막내 스테파니 공주와 함께 타고 가던 승용차가 산길에서 전복되는 바람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던 중 1982년 9월 14일 뇌출혈로 사망했다. 53세였다.
1928년 11월 12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난 그레이스 켈리는 18세 때 배우가 되기 위해 뉴욕의 아메리카 연극아카데미에서 연기수업을 마쳤다.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에서 단역으로 출연 중 영화기획자의 눈에 들어 1951년 영화 '14시간'으로 은막에 데뷔했다. 그가 주목받는 여배우가 된 것은 '하이눈'에서 게리 쿠퍼 상대역인 약혼녀 '아미'역을 맡은 후부터였다. 이후 '다이얼 M을 돌려다' '상류사회' 등에 출연했고 1954년 '갈채'로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1956년 4월 모나코왕 레이니에왕과의 결혼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면서 왕비로 변신했다. 생전에 3명의 자녀 캐롤란인 공주, 알버트 왕자, 스테파니 공주를 두었다.

 

 

위와 아래의 기사에 약간의 차이가 있네요. 출생년과 사망일에서...

 

그녀의 연기생활은 끝났다. 그녀는 한 왕국의 어머니, 한 남자의 아내, 세 아이의 엄마로써의 삶을 선택했으며 그녀로 인해 모나코 왕국의 관광수입이 더 높아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진정으로 그녀가 행복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끊임 없는 불화설, 세 아이들의 평탄치 않은 성장과 염문들, 돌아가기에는 너무 늦어 버린 할리우드...

 

26세의 나이에 정상에서 그 자리를 박차고 나왔던 용감한 여인..그 여인이 날개를 잃은채 시름시름 앓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1982년 9월 13일 의문의 교통사고로 사망하기까지 그녀는 56년의 삶을 살았다. 수많은 자선사업과 문화사업, 외모만큼이나 마음도 아름다웠던 여인.

 

그녀의 아름다움은 유럽과 미국을 연결하는 하나의 다리였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