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 1989년 5월 21일 인천 서구 석남동 모 병원 자시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몸이 무지 허약해서 매우 걱정을 많이하셨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3살?이라든가? 그 때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시장을 . 다니시던 중. 느낌이 이상해서 '병준아?' 해봤더니 눈이 뒤집힌 체로 정신을 잃어. 축 처져 있었다고 한다. 죽을 뻔한 위기지만 간신히 넘어갔다. 난 . 지금 난. 감히. 그 때 죽었으면 어땟을 까 하는 생각도 한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할머니께 말도 안되는 욕을 퍼부었으며 정말 택도 없는 거짓말로 스스로의 신용을 깍아내렸다. 차라리 그 때 내가 죽었다면 나로 인해 아픔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도 됫을 텐데 .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얘가 나의 부모님 자식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얘는 나랑 다르게 착하고 아주 공부 잘하는 그런 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쓸 때 자랑스럽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의없게도.. 정말 송구하게도. 나란 놈이 태어나버렸다. 어렸을 때. 정말 천방지축이였다고 한다. 유치원 때는 여자얘들한테 맞고 울고 와서 엄마랑 아버지가 나한테 막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 기억은.. 난 나지 않는 다. 그리고. 크고 작은 수술들을 했다. 기억나는 건. 입술 밑에 부분이 뚤려서 . 의사 선생님이 그 안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그 반대쪽으로 손가락이 나왔다고 한다. 그 수술도 있었고. 그리고 가장 기억 중.. 어찌 보면 가장 . 커다란 수술? 일 지도 모를. 왼쪽 무릎에 24바늘을 꾸매는 수술이였다. 동네 친구와 꼬마들과 놀던 중. 무슨 쇠로 된게 잘 구부러지길래. 우린 그걸 구부리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한 얘 차례가 됫는 데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엿다. 그래서 내가 발로 내려쳐서 그걸 구부려 트렸다. 근데. 근데.. 주위에 있는 녀석의 눈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녀석이 왜 그러는 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일이 9살 짜리 꼬마한테 일어났다는 것도 난 믿지 못했다. . 그녀석의 눈을 따라 난 내 다리를 보았다. 피가 나고 있엇다. 예전부터 넘어져서 무릎 까지는 일이 다반사였던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지를 위로 올렸다.. 그런데.. 그런데 였다 내 무릎 .. 근처에 찢어진 살 사이로.. 내 뼈가 보였다 난 정신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울면서 얘들을 쫓아갔는 데. 얘들도 겁을 집어먹어. 자기네들 집으로 도망가버렸고. .. 엄마한테 . 연락이 되엇고. 나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야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충격적인 말을 또 들어야했다 '12시간 전에 물을 마셨으므로 마취를 할 수 없습니다.' 날벼락이였다. 맨 정신으로 다리수술을 받아야했다. 애써 기억이 안 난다고 부정 하지만.. 난 그 때의 아픔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실이 왔다갔다 거리던 것도. 정말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댓고. 그러다가 난 결국 제 풀에 지쳐 기절했다. 깨어보니 병실이였다. 엄마도.. 아버지도 . 눈에 눈물이 고여계셨다. .. 정말.. 그 이후.. 난 한 달 정도를 병원 신세를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수술한 이 후로 괜찮아지지도 못한 체 나는 퇴원을 해서 전학을 가야했다. 왜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지금도 왜 그렇게 급히 이사를 가야했는 지 모르겠다. 다만. 그 때 부터 우리집안 사정이 매우 급속히 안 좋아지고 있었을거라 지금에서야 짐작을 해본다.. 이사 간 곳은 신동아 아파트. 이 곳에서 난 많은 추억을 남기고. 또 많은 기억을 가졌다. 정말 다신 기억하기 싫은 시절도 그 신동아 아파트 . 앞에 있는 .. 무슨 초등학교였지.. 아. 그래 인주초등학교. 5 ~ 6 학년 시절. 그 티비에만 나오던 '왕따' 라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하였다 이유는 .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수업 시간 도중에 '똥'을 쌋다는 거. 그 거 하나 뿐이였다. 그 것으로 인해서 나는 마치. 절대 닿아서는 안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 누구도 나와 접촉을 해서는 안되고 . 나와 말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그 얘 역시도 안 좋은 애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난 그 힘든 시기에.. 진짜 고마운 친구 들이 있어서 간신히 버텼다. 강재원 , 이정우 , 손창민 , 심효섭.. 이런 얘들이 있어서 나는 하루 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갔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어린 나이로 견디기에 진짜. 학교에서 그런 일을 당해도 나는 집에 와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했다. 혹시... 부모님이 아실까봐. 알고 얼마나 화내실까. 그런 두려움? 그런 것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참는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 그렇게 암흑 같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인하부중.. 앞에 나왔던 . 친구들 . 재원이 , 정우 , 창민이랑 다 같은 학교가 되었다. 비록.. 다 같이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이 기억.. 중학교를 다녔던 기억도 나는 지워버리고 싶다. 어의 없이도. 나는 나의 거짓말로 인해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내 시험 점수가 0점이 되는 것을 경험했고,.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전학을 가는 것을 . 한 참후에야 알아야했고. 재원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2주나 지나서야 알게되었고. . 그래도... 그 때 재원이는 그랬다 ' 너도 알았으면 그 때 와서 밥이나 먹고 가는 건데. '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 데. 충격이 매우 컸을 텐데. 그 얘는 그랬다. 정말.. 소중한 친구이다. 나한테.. 그러나 지금 연락은 안된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그리고. 그나마 즐거웠던 추억 하나. 중학교에서 나는 . 춤을 췃었고. 그거에 의한 반응이 좋았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다시는 춤을 추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춤이라는 게. 싫어서. 그냥 그래져서.. 그리고. 중3 막바지에 . 나는 힙합을 접하게 되었다 MC Sniper - Gloomy Sunday 를 듣고 나는 힙합에 빠졋다. MC Sniper의 음악을 접하고. 그에 팬카페에 가입을 하고. 힙플을 알게 되고. 가리온을 알게되고 각나그네를 알게되고.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것이 날 배신해도 날 배신하지 않을 무엇인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신송고등학교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 1학년 때는 . . 시험 점수에 대한 거짓말을 또 해버려서. 반 얘들하고 사이가 서먹하게 되버렸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였다. 나는 .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SH와 사귀게 되었고. 그 얘와의 . 음.. 그런 . 좀 그런 거.를 하게 되었고 그 것이 얘들하게 들통나. 얘들이 . 나를 완전히 멀리하게 되어 나는 다른 반 얘들하고 밥을 먹고 친하게 지내고 그랬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다. 별 탈 없이 지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1학기 까지는 별 탈 없이. 2학기 때 개학 후 며칠 뒤 나는. 오른쪽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겪고. 학교에 3달 정도 결석을 하게 되었다. 중간고사도 당연히 못 봤으며 . 기말고사의 성적 80%가 중간고사 성적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 십자인대가 다친 이 후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2학년 2학기 내신은 완전 엉망이 되었고 이 것은 내가 대학 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그리고 고 3. 나는. 고3 이 되어서 공부를 안 했다. 고 1 , 고 2 때는 공부를 했어도 고 3 때는 진짜 공부를 아예 안했다. 모를 믿고? 연세대. ? 그 평생음악교육원 힙합과를 가겠다고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엄마의 마음에 또 못을 박아버렸다. 하지만.. 고3 . 1학기 말. 쯤 되서 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고 달라지기 위해서 약간. 학교에서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관점에서 이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조금은 날 믿어주셨다. 그리고 이윽고 수능은 다가왔다. 난 수능을 전혀 긴장 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고 나왔다. 답도 절대 체점하지 않았으며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진짜 집에서 완전 컴터 게임 FM에만 빠져 지냈다. 그리고 수능 성적이 나왔다. 간신히 경기권을 갈 수 있는 그런 성적? 아니. 내신이 좋았다면 충분히 서울권을 갈 수도 있었으나 2학년 2학기 . 그 내신에 의하여 내 내신은 완전 깍여있었고 나는.. 정시에 쓴 대학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사실을 숨겼고. 그 것은 내 인생에 또 하나의 큰 오점이 되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거에 분노하셔서. 그랬다. 이 것이 내 인생이야기다. 지금 나는 . 다행이도 어느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어떤 이야기가 더 쓰여질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아닌 밝은 이야기 되기를.. 난 진심으로 바란다. 2008년. 3월 . 20일 고병준
Story of my life
1989년 5월 21일 인천 서구 석남동 모 병원
자시에 태어났다
어렸을 때는 몸이 무지 허약해서 매우 걱정을 많이하셨다고 한다
대표적인 사건으로는 3살?이라든가?
그 때 어머니께서 나를 업고 시장을 . 다니시던 중.
느낌이 이상해서 '병준아?' 해봤더니
눈이 뒤집힌 체로 정신을 잃어. 축 처져 있었다고 한다.
죽을 뻔한 위기지만 간신히 넘어갔다. 난 .
지금 난. 감히. 그 때 죽었으면 어땟을 까 하는 생각도 한다.
부모에게 불효하고 할머니께 말도 안되는 욕을 퍼부었으며
정말 택도 없는 거짓말로 스스로의 신용을 깍아내렸다.
차라리 그 때 내가 죽었다면 나로 인해 아픔 받았던 모든 사람들은
그러지 않아도 됫을 텐데 . 그리고 내가 아니라 다른 얘가
나의 부모님 자식이 되었다면. 그리고 그 얘는 나랑 다르게
착하고 아주 공부 잘하는 그런 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 까?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쓸 때 자랑스럽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어의없게도.. 정말 송구하게도. 나란 놈이 태어나버렸다.
어렸을 때. 정말 천방지축이였다고 한다.
유치원 때는 여자얘들한테 맞고 울고 와서 엄마랑 아버지가 나한테
막 화를 내셨다고 한다. 그 기억은.. 난 나지 않는 다.
그리고. 크고 작은 수술들을 했다.
기억나는 건. 입술 밑에 부분이 뚤려서 . 의사 선생님이 그 안에
손가락을 넣었을 때 그 반대쪽으로 손가락이 나왔다고 한다.
그 수술도 있었고.
그리고 가장 기억 중.. 어찌 보면 가장 . 커다란 수술? 일 지도 모를.
왼쪽 무릎에 24바늘을 꾸매는 수술이였다.
동네 친구와 꼬마들과 놀던 중. 무슨 쇠로 된게 잘 구부러지길래.
우린 그걸 구부리면서 놀았다.
그러다가 한 얘 차례가 됫는 데 구부러지지 않는 것이엿다.
그래서 내가 발로 내려쳐서 그걸 구부려 트렸다.
근데.
근데..
주위에 있는 녀석의 눈이 깜짝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녀석이 왜 그러는 지. 전혀 몰랐다.
그리고 그런 끔찍한 일이 9살 짜리 꼬마한테 일어났다는 것도
난 믿지 못했다.
. 그녀석의 눈을 따라 난 내 다리를 보았다. 피가 나고 있엇다.
예전부터 넘어져서 무릎 까지는 일이 다반사였던 나는 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바지를 위로 올렸다..
그런데.. 그런데 였다
내 무릎 .. 근처에 찢어진 살 사이로.. 내 뼈가 보였다
난 정신을 잃어버리는 줄 알았다.
울면서 얘들을 쫓아갔는 데. 얘들도 겁을 집어먹어.
자기네들 집으로 도망가버렸고.
..
엄마한테 . 연락이 되엇고. 나는 급히 병원으로 옮겨져야했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충격적인 말을 또 들어야했다
'12시간 전에 물을 마셨으므로 마취를 할 수 없습니다.'
날벼락이였다. 맨 정신으로 다리수술을 받아야했다.
애써 기억이 안 난다고 부정 하지만..
난 그 때의 아픔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내 눈 앞에서. 실이 왔다갔다 거리던 것도.
정말 미친듯이 비명을 질러댓고.
그러다가 난 결국 제 풀에 지쳐 기절했다.
깨어보니 병실이였다.
엄마도.. 아버지도 . 눈에 눈물이 고여계셨다.
..
정말.. 그 이후.. 난 한 달 정도를 병원 신세를 지내야만 했다..
그러나.. 수술한 이 후로 괜찮아지지도 못한 체 나는 퇴원을 해서
전학을 가야했다.
왜인지는 기억이 안난다.
지금도 왜 그렇게 급히 이사를 가야했는 지 모르겠다.
다만. 그 때 부터 우리집안 사정이 매우 급속히 안 좋아지고 있었을거라 지금에서야 짐작을 해본다..
이사 간 곳은 신동아 아파트.
이 곳에서 난 많은 추억을 남기고. 또 많은 기억을 가졌다.
정말 다신 기억하기 싫은 시절도 그 신동아 아파트 .
앞에 있는 .. 무슨 초등학교였지..
아. 그래 인주초등학교. 5 ~ 6 학년 시절.
그 티비에만 나오던 '왕따' 라는 것을 내가 직접 경험하였다
이유는 . 초등학교 3학년 때. 학교에서 수업 시간 도중에 '똥'을 쌋다는 거.
그 거 하나 뿐이였다.
그 것으로 인해서 나는 마치. 절대 닿아서는 안되는 사람 취급을 받았다.
그 누구도 나와 접촉을 해서는 안되고 . 나와 말을 나누는 것 만으로도 그 얘 역시도 안 좋은 애 취급을 받았다.
그러나. 난 그 힘든 시기에.. 진짜 고마운 친구 들이 있어서 간신히 버텼다.
강재원 , 이정우 , 손창민 , 심효섭.. 이런 얘들이 있어서 나는
하루 하루를 간신히 버텨나갔다.
정말 힘든 시기였다. 어린 나이로 견디기에 진짜.
학교에서 그런 일을 당해도 나는 집에 와서 아무런 내색도 하지 못했다.
혹시... 부모님이 아실까봐. 알고 얼마나 화내실까. 그런 두려움?
그런 것에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참는 수 밖에는 없었다. 나는. ..
그렇게 암흑 같았던 시절이 지나고.
나는 중학생이 되었다.
인하부중..
앞에 나왔던 . 친구들 . 재원이 , 정우 , 창민이랑 다 같은 학교가 되었다. 비록.. 다 같이 같은 반이 된 적은 없지만.
이 기억.. 중학교를 다녔던 기억도 나는 지워버리고 싶다.
어의 없이도. 나는 나의 거짓말로 인해서. 부정행위를 한 것으로
오해를 받아 내 시험 점수가 0점이 되는 것을 경험했고,.
정말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갑자기 전학을 가는 것을 . 한 참후에야 알아야했고.
재원이네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걸. 2주나 지나서야 알게되었고.
. 그래도... 그 때 재원이는 그랬다
' 너도 알았으면 그 때 와서 밥이나 먹고 가는 건데. '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자기 아버지가 돌아가셨는 데.
충격이 매우 컸을 텐데. 그 얘는 그랬다. 정말..
소중한 친구이다. 나한테.. 그러나 지금 연락은 안된다.
안타깝게도 그렇다..
그리고.
그나마 즐거웠던 추억 하나.
중학교에서 나는 . 춤을 췃었고. 그거에 의한 반응이 좋았었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하고 나서 나는 다시는 춤을 추지 않았다.
여태까지도. 춤이라는 게. 싫어서. 그냥 그래져서..
그리고. 중3 막바지에 . 나는 힙합을 접하게 되었다
MC Sniper - Gloomy Sunday 를 듣고 나는 힙합에 빠졋다.
MC Sniper의 음악을 접하고. 그에 팬카페에 가입을 하고.
힙플을 알게 되고. 가리온을 알게되고 각나그네를 알게되고.
그렇게 해서. 나는 모든 것이 날 배신해도 날 배신하지 않을
무엇인가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고등학교.. 신송고등학교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 1학년 때는 . .
시험 점수에 대한 거짓말을 또 해버려서. 반 얘들하고 사이가
서먹하게 되버렸다.
그리고 그 뿐만 아니였다. 나는 . 이런 말.. 할 처지는 아니지만.
SH와 사귀게 되었고. 그 얘와의 . 음.. 그런 . 좀 그런 거.를 하게 되었고 그 것이 얘들하게 들통나. 얘들이 . 나를 완전히 멀리하게 되어
나는 다른 반 얘들하고 밥을 먹고 친하게 지내고 그랬다.
그리고 2학년이 되었다. 별 탈 없이 지냈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니.. 1학기 까지는 별 탈 없이.
2학기 때 개학 후 며칠 뒤 나는.
오른쪽 십자인대가 끊어지는 사고를 겪고.
학교에 3달 정도 결석을 하게 되었다.
중간고사도 당연히 못 봤으며 . 기말고사의 성적 80%가 중간고사
성적으로 대체되었다.
그러나 . 십자인대가 다친 이 후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2학년 2학기 내신은 완전 엉망이 되었고
이 것은 내가 대학 가는 데 큰 장애물이 되었다
그리고 고 3.
나는. 고3 이 되어서 공부를 안 했다.
고 1 , 고 2 때는 공부를 했어도 고 3 때는 진짜 공부를 아예 안했다.
모를 믿고? 연세대. ? 그 평생음악교육원 힙합과를 가겠다고
나는 공부를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엄마의 마음에 또 못을 박아버렸다.
하지만.. 고3 . 1학기 말. 쯤 되서 난 이러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고 달라지기 위해서 약간. 학교에서 만큼은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를 하였다. 물론. 어디까지나 내 관점에서 이였다.
그러자. 선생님이 조금은 날 믿어주셨다.
그리고 이윽고 수능은 다가왔다.
난 수능을 전혀 긴장 하지 않고 재미있게 풀고 나왔다.
답도 절대 체점하지 않았으며 결과가 나올 때 까지
진짜 집에서 완전 컴터 게임 FM에만 빠져 지냈다.
그리고 수능 성적이 나왔다.
간신히 경기권을 갈 수 있는 그런 성적?
아니.
내신이 좋았다면 충분히 서울권을 갈 수도 있었으나
2학년 2학기 . 그 내신에 의하여 내 내신은 완전 깍여있었고
나는.. 정시에 쓴 대학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그 사실을 숨겼고.
그 것은 내 인생에 또 하나의 큰 오점이 되었다.
엄마가 내 앞에서 죽으려고 하셨다.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거에
분노하셔서.
그랬다.
이 것이 내 인생이야기다.
지금 나는 . 다행이도 어느 한 대학에 다니고 있다.
정말 다행이다.
이제.. 어떤 이야기가 더 쓰여질 지 모른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가 아닌 밝은 이야기 되기를.. 난 진심으로
바란다.
2008년. 3월 . 20일
고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