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추석... 잊지 못할거 같습니다.

얼둥아기2003.09.15
조회1,955

어제밤...

신랑은 인라인을 탄다고 나갔습니다...

많이 힘들겁니다... 그래서 뭔가 돌파구가 필요하겠죠...

그래서 운전 조심하란 말만 하고

내보냈습니다

 

신랑은

돌아와서도 한참동안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 1시가 넘어도

텔레비를 보고, 컴퓨터 오락을 하고...

 

평소같으면

일찍자라고 잔소리를 했겠지만...

역시 그대로 지켜만 봤습니다.

 

잠이 오지 않는것도

그래서 뭔가 다른걸 찾는것도

모두 이해할 수 있으니까요

 

추석연휴 전날...

일찍 퇴근을 했습니다.

미리 마늘까고, 파썰고 준비하려고요

올 추석은 울집(신혼집)에서 하기로 했거든요.

 

집에 도착해서 씻으려고 하는데

시동생 전화가 왔습니다.

아버님이 쓰러지셨답니다...

 

뇌출혈...

바로 입원하셨고

시어머니, 신랑, 나, 시동생...

겨우 2시간 잤습니다.

연휴가 시작되는 10일에 간단한 수술을 했습니다.

 

금방 깨어나셨고

발음은 제대로 못하셔도

괜찮아 보였습니다... 모두 안심했고...

금방 중환자실을 벗어날 수 있을거 같았습니다.

 

근데...

다음날 다시 재출혈이 일어났고

이번엔 바로 큰수술을 했습니다.

 

그날 밤...

아버님은 중환자실로 들어가셨고

우린 대기실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울아버님

아직 중환자실에 계십니다.

얼굴이 퉁퉁 붓고

우~ 어~ 하는 신음소리만 내십니다.

왼쪽이 마비상태고...

 

연휴내내

새벽에 병원으로 출근하고

밤늦게 퇴근하길 반복했습니다.

 

편찮으신 아버님도 걱정이지만

옆에서 지켜보며

제대로 주무시지도 드시지도 못하는

어머님이 더 걱정입니다.

 

자꾸 입맛없다는 어머님...

며느리 눈치봐서라도 식사하시라고

밥이며 국이며 싸가서 펼쳐놓고

입맛없기는 나도 마찬가지지만

열심히 같이 먹었습니다.

 

혹시 어머님도 잘못되실까봐

죽자고 따라 다녔더니

주위에서 "딸이예요?" 하네요

직계로 3남매가 따라 다니는줄 알았답니다.

울신랑을 오빠로 본걸까요

저를 누나로 본걸까요?

 

병원 계속 지키고 있는거...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모두들 수고한다고 말해줍니다...

대기실의 어머님 또래의 다른 보호자들도

요즘 저런 며느리가 어딨냐고

며느리 잘 얻었다고 어머님께 한마디씩 하시고...

 

이제 겨우 결혼 10개월...

나쁜 시어머니 같으면

며느리 잘못들어와 우환생긴다 할텐데

(요즘세상에 이런 소리 들을까봐 걱정한 제 자신도 조금은 한심합니다.)

결혼한지 얼마 안돼 이런일 겪어 어쩌냐고

걱정해주시는 어머님 보면서

말한마디 천냥빚 갚는다는 속담

실감했습니다...

수고한다 애쓴다 한마디씩 해주시니까

힘들어도 버티기가 훨씬 수월합니다

 

계속 속썩이던 울신랑도

미안하다...

한마디 하더군요

 

이럴때 미안하다고 하는거 아니야...

아버님도 아프고 싶어서 편찮으신거 아니고

당신이 편찮으시라고 그런거 아니잖아...

미안한거 아니야...

 

그럼... 뭐라고 해...

 

수고한다... 애쓴다...

그렇게 다독여주면 돼

 

알았어...

 

어머님은 저마저 병나면 어쩌냐고

격일로 오라 하십니다.

저도 그렇게 할 생각이구요...

매일가고 싶지만

그럼 집안이 엉망이 되겠죠...

 

무엇보다...

어머니 반찬이며, 빨래며 해드려야 하니

그리해야겠습니다.

 

추석선물로 우족이 들어왔는데...

이번주에는 그거나 푹 고아야 겠습니다.

커다란 보온병 하나 사서는

어머님 매일 가져다 드려야지요...

 

연휴동안 잠깐 친정에 들렀습니다.

30분정도 앉아 걱정하시는 부모님께

안심하시라고 말씀드리고

차한잔 마셨지요...

돌아오는 길에 엄마께 손흔들며 말했습니다.

"나 잘하고 있어! 걱정하지마 엄마!"

 

2003년 추석연휴는

병원에서 모두 보냈습니다.

잊지 못할겁니다...

 

울아버님...

완쾌까지 몇달이 걸릴지 모르지만

기다릴겁니다...

의지 강한 분이니 이겨내시겠지요...

 

다만 병원에 계신 오랜 시간동안

쌓이는 걱정과 짜증 때문에

가족끼리 서로 할퀴는 말을 하게 되지는 않을지...

조금은 염려가 됩니다.

 

가족끼리 고단함에 짜증부리지 않고

서로서로 다독이며 잘 버티길 바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