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직.....직........남부지방에는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구름의 이동방향은.....지직...”
“야 우리 이래도 괜찮은거야? 눈내린다는데?”
“괜찮을거야. 지리산에 눈 온다고는 안했으니까. 뭐 눈이 와도 눈내리는산 타는 재미도 있잖아??”
“그래도.... 지리산은 눈만 내리면 워낙 사고가 많이 나잖아요..... 불안한데...”
“괜찮을거야. 얼른 정상까지 갔다 오자구. 우리 앞에 출발한 등산객들도 있잖아. 빨리와”
현우는 말을 마치자 훌쩍 먼저 올라가버렸다.
“아우~ 현우오빠 같이가요!!”
현우의 뒤를 이어 해림도 툴툴거리며 현우를 따라갔다.
“아유... 쟤네는 힘들지도 않은가봐.”
“쿡쿡... 그러게 말이다.”
“응? 명진이 너 왜 웃어?”
“아니야. 아니야. 우리도 얼른 올라가자.”
명진은 선주를 끌다 시피해서 현우를 따라 갔다.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해지고 있었고, 날씨는 더욱더 추워지고 있었다.
“어? 현우오빠. 눈 오는거 같은데? 나 뭐 맞았어.”
“눈? 벌써?? 어 그럼 안되는데...”
“김현우!!”
어느 새 현우를 따라잡은 명진이 말했다.
“야 진짜 눈오는 데 어떡하지? 지금은 조금이지만 만약에 더 굵어지면, 여기서 고립될 수도 있어.”
“아우... 이제와서 다시 내려가기는 너무 먼데.... 아 맞다! 이 근처에 산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너 지도 있잖아 찾아봐.” 명진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여기네. 여기가 임시로 만든 산장 인가봐. 음... 이쪽으로 가면 되겠다. 얼른 가자구.”
“그래 빨리 가자....... 현우야?? 뭐해?”
“응? 아... 아무것두..”
일행은 현우를 앞서 출발했다. 그러나 현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무언가가... 매우 불안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이러지... 아유 기분 탓일거야. 얼른 가자.”
현우는 일행을 따라 부지런히 뛰어갔다. 그러나 현우는 몰랐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그림자의 정체를.... . . . . .
“어이쿠. 이거 눈이 오는구나... 큰일이로군 지리산은 눈만 오면 사고가 빈번한데... 이거 어쩌나... 근처에 산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산장을 찾아보아야겠군.”
이보살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어허. 큰일이로고..... 눈이 내리는 산은, 산을 떠도는 영혼들이 사람들을 가장 많이 해칠 때 인데..... 이거 사고라도 나지 않으려나 걱정이로구만.”
이보살은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외면서 좁은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보살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에 모여 있는 수많은 영의 기운을.
"어허... 떠도는 분들께서 비천한 인간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영들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영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이 보이는 영이 이보살 앞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때...가... 되었소... 때가....”
“무슨... 때가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그 영은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그... 그분이 오신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 죽음
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시는 .... 그 분.... 그 분께서...오신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니... 이거야 원...”
“허나...우리는.... 그 분을 원하지 않아.... 그 분은 세상을..... 파멸로 몰아가실 분... 지금...이 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분이 계신다.....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계시지만... 우리도 자세히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 분이 깨닫기 전에... 깨닫기 전에.....”
“설마... 확실히 하기 위해서....지금 이 산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입니까?”
“어쩔 수....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지켜야만해.... 당신은... 죽음을 보는 자로군... 당신에겐...우리를 해할 힘이 있어... 그러나... 우리들이 전부 덤빈다면..... 당신 하나쯤은...”
이보살은 천천히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다.
“당신들은 지금 이승과 저승의 법도를 어기고 있소. 저승의 계약에 묶인 자들은 이승의 존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소.”
“우리의...존재자체가.... 소멸되더라도.... 우리는 지켜야만 한다... 우리의...”
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 모여 있는 영들이 점점 이보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휴...이거야 원...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조금만 더 가면 산장일텐데... 감히 영혼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난 무당... 죽음을 보는 자로써, 내 목숨을 걸고 당신들을 편안한 잠으로 이끌어 드리겠소. 나의 주신은 하늘이 낸 명의 허준. 나의 치유는 하늘의 손길이니!!”
이보살은 부적에 자신의 힘을 모아 날렸다. 영들은 피하려 했지만, 부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하나씩 영들의 이마에 붙었고, 부적이 붙은 영들은 소멸되어갔다.
이보살의 손은 마치 허준이 환자를 치료할 때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빨랐다. 부적에 맞은 영들은 빠르게 소멸되어갔다. 그러나 수가 너무나 많았다. 부적의 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수의 영이 남아있었다.
영들은 계속 이보살에게 달려들었고 이보살의 몸에 상처를 내는 영들도 있었다. 어느새 이보살의 주위는 영들에게 둘러 쌓였고, 영들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헉...헉.... 휴.. 너무 많군요... 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몸... 그러나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나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소...”
“그러나...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죽어라......”
영들은 천천히 이보살에게 다가왔다. 이보살은 눈을 질끈 감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어쩔 수 없군... 이곳에서 그 분을 불러야 하다니... 죄송합니다. 나의 전투의 능력은 이분에게서 빌려오는 것이니, 그대들은 모두 무릎을 꿇지어다!”
이보살의 몸에서 기운이 뻗치기 시작하더니, 이보살의 몸에서 세찬 바람이 일었다. 주위에 있는 작은 풀들은 뿌리 채 뽑힐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보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보살의 뒤, 허공에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 나타났다. 눈에는 형형한 불빛을 뿜고 있었고, 그 기세는 영들을 이보살의 주위에서 벗어나게 하기 충분했다. 이보살의 입을 빌려 장군이 말하였다.
“감히 이런 영들을 상대로 나를 불러내다니... 나는 오래 전, 살수에서 수나라 군을 궤멸시켰던 을지문덕이다... 이 무당이 나를 불러낸 것은 틀림없이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인데... 네 놈들이 감히 나의 앞을 가로막겠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네 놈들을 소멸시켜버리리라.”
갑작스러운 을지문덕 장군의 등장으로 영들은 혼란에 빠졌다. 을지문덕이라면 자신들을 전부 소멸시켜버리고도 남을 존재이리라. 그러나 영들은 마음을 굳힌 듯, 역사의 영웅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무(無)로 돌아가리라!!”
을지문덕의 검이 한차례 휘둘러졌고 순식간에 반이 넘는 영들이 소멸되었다. 곧이어 나머지 영들까지 을지문덕의 칼에 소멸되었다.
“한 줌 재만도 못한 것들..... 죽음을 보는자... 네가 나를 불러내면
그 대가는 알고 있겠지? 너의 수명을 가지고 가겠다. 이것도 인과의 굴레에 속해 있는 일.....”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부를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신이시여... 쿨럭...”
을지문덕의 영혼이 희미해져가더니, 곧이어 사라졌다. 이보살은 힘을 쏟은 탓인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풀썩 꿇었다.
“휴... 끝난건가...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산에 있는 등산객들은 전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군... 큰일인데... 윽... 지금처럼 눈이온다면... 산장에 사람들이 많겠군... 떼죽음을 막아야 해... 으윽...”
이보살은 다친 몸을 이끌고 산장으로 가기 시작했다. . . . .
.
.
.
.
. 현우 일행이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눈은 폭설로 바뀌어 있었고 한 걸음 가기도 힘들만큼 쌓여있었다.
“야! 저기 산장이야!! 얼른 들어가자.”
일행은 눈길을 헤쳐가며 산장에 이르렀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와 있는 듯, 산장 안은 북적거렸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현우 일행은 이미 안에서 대피해있던 다른 등산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난로 곁에 앉았다.
“이거 원... 오랜만에 지리산에 찾아왔는디... 왜 하필 오늘 눈이 쌔리 퍼붓는겨...”
나이 꽤나 드신 어르신이 창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산장안에는 현우 일행을 포함해 가톨릭 신부 1명, 느끼클럽(?) 회원 3명, 칠순이 넘으신 노인 1명 그리고 구석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 1명까지 총 10명의 사람이 있었다.
현우 일행은 짐을 풀어놓고 산장을 둘러보았다. 산장은 2층으로 되어있는 굉장히 큰 집이었다. 이 산장은 원래 산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 었다.
그러나 몇 년전, 눈사태로 이 집에 사는 가족들 전부가 눈에 생매장되는 사고가 발생해, 그때부터는 빈집으로 남게 되었다. 국립공원 측에서는 빈집을 철거하기보다는 산장으로 쓰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해서 산장으로 쓰게 된 것이다.
현우는 이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전에 이 집에 살았던 가족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가족은 모두 4명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 하나씩 이렇게 4명이었다.
“쯧쯧... 이렇게 단란한 가정이 사고한번에..................어?”
현우는 안타까움에 중얼거렸는데. 그때 사진 속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이럴 수가... 아닐거야... 아닐거야...”
현우는 도망치듯이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현우는 잊지 못했다.
‘빨간 눈을 조심하게나....’
그 노인이 해준 경고.... 그것은 불행히도 현실이 되고 있었다. 사진속의 가족 4명은 모두 빨간 눈이었던 것이다....
. . . . . .
“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다른 등산객들은 다들 대피 했으려나...”
신부는 다른 등산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느끼클럽 회원들은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웃기는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계속 창밖을 보며 다른 등산객이 오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구석이 처박혀 있는 사내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휴... 눈이 언제 그치려나... 이러다가 오늘 하루 밤새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이 일을 어쩌지... 일단 다들 집에 전화드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내려갈 수가 없다고. 잘못하면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내려가야 될지도 모르니깐.”
“...오빠? 현우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현우를 해림이 다그쳤다.
“어? 아니야.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신경쓰지마. 피곤하겠다. 넌 좀 쉬어 해림아.”
현우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눈길을 헤치며 온 이보살이 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보살은 경악하고 말았다.
“으악! 저게 도대체 뭔 일이야!!”
산장은 100명이 넘는 영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도대체 그 많은 영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인건지 이보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산을 떠도는 영이란 사고로 죽은 영들이 많은데, 그 영들은 원한이나 원념이 대부분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각자 따로 행동하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영들이 모여야만 한다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이보살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영들이 산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어갈 수 없어보였다. 산장은 희미한 빛에 둘러 쌓여있었고, 그 빛 안으로 영들은 들어 가지 않았다.
“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저 빛은 또 무엇이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젠장... 중요한건 저길 뚫고 일단 산장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을지문덕 장군을 하루에 두 번 씩 부른다면 이번엔 수명을 깎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텐데...”
이보살은 결국 영들의 반사신경이 느린 것을 감안해 죽어라 뛰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서 산장까지는 50m 남짓되겠구나... 한번 해보자구...”
이보살은 손에 부적을 쥐었다. 부적에 힘을 불어넣자 부적이 파란 빛을 띄었다.
“이야앗!!”
이보살이 번개같이 뛰어갔고, 영들은 이보살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이보살을 막기위해 빽빽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보살이 던지는 부적에 길을 막는 영들은 소멸되었고, 이보살은 무사히 산장으로 들어갔다.
“우휴! 골인입니다~ 죽는 줄 알았네. 아우 내 옷 걸레되겠네.....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보살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10명의 사람이 있었다.
‘음... 저 분은 신부님 같은데... 그래서 영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군....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한다...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이보살은 마음속으로 신부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곤 주저앉아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명진아... 저 사람 좀 이상해보이지 않아? 옷차림이 무슨... 한복을 입고 등산을 하다니 이 날씨에... 그리고 저 구석에 박혀 있는 남자... 아깐 멀쩡했는데 지금은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어... 뭔가 초조한거 같은데... 그래도 저 남자는 기분이 나빠.”
선주는 구석에 있는 사내하나도 기분 나빠 죽겠는데, 이보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연신 명진에게 쏘아댔다. 명진은 웃으며 선주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명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나간다... 휴...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이 눈이 내일 까지 계속된다면 어떡하지... 현우 저 녀석은 또 왜 저리 저기압이야....’
명진은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러지.... 야 김현우.”
명진이 현우에게 다가가자, 대뜸 현우가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다.
“쳇 저 녀석. 싱겁긴....”
그러나 명진은 보지 못했다. 창문 밖을 보고 있는 현우의 표정을.....
“이....이게 도대체 무슨....”
현우는 경악했다. 창문밖에는 엄청난 수의 귀신들이 마치 벌레 떼처럼 바글바글거렸고, 그들은 마치 산장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미쳤어...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때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구석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미소를 지었고, 벌떡 일어났다. 그 남자의 얼굴에는 눈이 없었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 오실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점점 커지고 송곳니가 길어지고, 피부가 초록색으로 변했으며,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 키는 거의 천장에 닿일 정도로 커졌다.
“꺅!!”
해림이 비명을 지르며 현우의 뒤로 숨었다. 명진은 선주를 감쌌고, 신부는 나머지 사람들을 뒤로 피신 시켰다.
“저게 도대체 무슨 괴물이야!!”
“....아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보살은 그 괴물을 자세히 보았다. 아마 그 괴물은 도깨비인 듯 했다.
“도깨비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도깨비는 모습을 다 드러내자, 사람들에게 말했다.
“때가 왔다... 죽음을 다스리며, 세계를 파멸로 이끄시는 분. 지옥을 인간 세상에 옮겨놓으실 분이 이제 오실 때가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각성’ 하실 때가..... 그 분 말고는 여기 있는 놈들은 필요 없다. 모두 죽어라!”
도깨비가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더니, 큰 몸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몸놀림으로 명진에게 휘둘렀다. 명진은 선주를 뒤로 밀고 눈을 감았다.
“퍼억!”
“꺄악!”
“신부님!”
현우가 소리쳤다. 명진이 도깨비 방망이에 맞으려는 찰나, 신부가 번개같이 뛰어들어 자기가 대신 맞았던 것이다. 이보살이 저 멀리 날아간 신부에게 달려갔으나 신부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신부님! 신부님!..... 젠장.... 너 이 빌어먹을 도깨비새끼...”
이보살이 품에서 부적을 꺼내려는 때, 도깨비가 훌쩍 뛰더니 맨 뒤에 있는 노인을 한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으악!!! 컥... 컥....엑에엑.....”
노인은 도깨비의 손안에서 발광을 하더니 이윽고 숨이 끊어졌다. 도깨비는 노인이 숨이 끊어지자 웃으며, 노인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본 해림은 기절했고, 명진과 선주는 넋이 나갔다.
현우는 도망칠 것을 대비해 해림을 업었다. 현우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아온 터라,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건 처음이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두명이 죽었다. 그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일 것이다.
“이자식!!”
이보살이 소리 지르며 부적을 날렸다. 부적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도깨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두르자 부적은 모두 힘을 잃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딴 종이쪼가리로 나를 막으려고? 아직 200년은 이르다. 당신은 죽음을 보는 자로군. 당신부터 처치해야겠어.”
말을 끝마치자마자 도깨비는 놀라운 속도로 이보살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보살은 가까스로 방망이를 피했다.
“으윽... 이거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군... 또 장군님을 불러야 하는 것인가... 이번엔 쉽게 오시지 않을 텐데... 제기랄!!”
이보살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 찰나, 도깨비의 방망이가 한번 더 휘둘러졌고, 이보살은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윽....으윽...”
이보살은 엄청난 고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깨비는 바로 이어서 엄청난 힘으로 느끼클럽 회원 3명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죽였다.
잘 버티던 명진과 선주도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이보살도 그 끔찍한 장면에 치를 떨었다.
도깨비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성큼성큼 현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현우는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어떻게 되던지 자신에게 업혀있는 해림이만은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괴물 앞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이리라. 그러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흉측한 도깨비가 현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제 각성하실 때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자여...”
이보살은 매우 충격을 받았다. 현우가 죽음을 다스리시는 자라니...
“무....무슨 소리야!! 내가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니!! 난 아니야!!”
현우는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러나 도깨비는 현우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 저와 함께 가셔야합니다.”
현우는 이제 두려움보다는 화가 치밀었다. 대뜸 와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니...
“말도 안돼! 난 평범한 학생이라고!! 죽음을 다스리는 자 따위는 될 수도 없단 말이야.”
현우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현우는 불안했다. 어릴 때부터 영혼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눈, 아직도 멀었느냐는 이상한 꿈, 그리고 이상한 노인이 얘기해준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불안감이 커질 수록 현우는 점점 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 대답을 하지 않으시군요. 그럼 억지로라도 저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뭐야? 이 도깨비새끼 난 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현우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도깨비가 점점 더 미워졌다. 자신의 행복을 파괴하려는 이 존재가 점점 더 증오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억! 이게 뭐야!! 네놈들은!!”
“어떻게 저자들이!!”
이보살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산장안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고, 영혼들이 도깨비를 둘러싸고 기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까는 신부님이 계셔서 들어 올 수 없었지... 지금은 신부님이 돌아가셨으니 빛이 사라졌겠구나... 젠장 이거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으악! 이 비천한 영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네놈들은 나를 해칠 권한이 없어!!”
“넌..... 그 분을 깨우려 하고 있어.... 이 세상에 지옥을 불러오실 분.... 우리는 그 분을 막아야해... 우리의 세상을 위해....”
도깨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에 맞은 영들은 바로 소멸되었지만, 너무나 많은 수였다. 결국 도깨비는 영들의 공격에 쓰러졌다.
“안돼... 오늘이 지나면 다시 또 몇 년을 기다려야해... 오늘 데리고... 죽음을 다스리는 자여.....”
도깨비는 마지막까지 현우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도깨비가 죽으니 몸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여 흩어졌다.
“휴... 일단은 이긴 건가?”
이보살은 현우와 해림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절한 사람들을 모아서 영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조그만 결계를 쳤다. 얼마 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보게... 몸은 괜찮나?”
이보살은 얼이 빠져있는 현우에게 물었다. 현우는 이보살은 쳐다보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도대체...아까 보니 이상한 술수도 쓰던데...”
“아.. 난 무당이란다. 그래서 저런 괴물들을 좀 알지... 으윽... 팔이 부러졌나보다...”
“아...아저씨... 다 들으셨지요? 저는 죽음을 다스리는 자래요...”
현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보살은 측은해졌다. 아직 창창한 젊은이인데....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운명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거든...., 운명이라면....”
현우는 이보살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 말을 해준 할머니가 있는데... 난 진짜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가 봐요...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난 저 영혼들이 보인단 말이에요!...으흑...”
이보살은 놀랐다.
“영혼이 보인다고? 너도 죽음을 보는 눈이라고?”
“네... 어릴 때부터 귀신이 보였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이보살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네같은 사람이... 설마... 영혼을 보는 눈이라니.... 요사이 이상
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자네의 신변에...”
“어떻게 아저씨가.... 알고 계세요? 요새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데... 도망치려하지만 도망 칠 수가 없어요... 아직도 멀었느냐는 소리도 막 들리고.... 막 무슨 무기도 보여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쓰던 무기 같은...... 아...저씨???”
이보살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새파랗게 질렸고, 몸도 덜덜 떨고 있었다.
“너넌.... 그 분이야....설마...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역시... 전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가요?...”
“그건 모르겠어... 그렇지만 넌... 내가 알기에... 넌... 무당이 되어야 해...”
현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당이라니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에요?”
이보살은 결계를 살펴보았다. 이제 영혼들은 결계를 거의 부수어 갔고 결계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보살은 다급하게 말했다.
“잘 들어... 난 그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지 뭔지 그자가 너라는 건 잘 몰라. 그렇지만 이건 확실해 넌 ‘그 분’을 받을 유일한 무당이야. 우리 무당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모든 무당이 받기를 원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힘 때문에 받기만 하면 자신의 영혼이 불타버리는 ‘그 분’...
그 신을 받을 유일한 무당은 오로지 그 신께서 정하신다는 거야. 그 증거로 그 분이 쓰는 그 무기가 보이는 거야. 그러나 넌 강력한 의지로 계속 그 분을 피하고 있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그 분의 의지로 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니... 넌 도대체... 아무튼 지금 넌 꿈을 꾸어야해... 그 꿈에서 그 무기를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 상태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 것 뿐일거야... 원래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신내림 굿을 받아야 하지만 그 분이 선택한 사람은 신내림 굿을 받을 필요가 없어.
그 무기를 잡으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그 무기를 잡기 전에 그 분에게 잡혀서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그 분의 시험에서 탈
락하는 거지... 할 수 있겠니?”
현우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무당이라니 ‘그 분’ 이라니... 꿈에서 보던 ‘그 것’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였단 말인가. 현우는 망설였다.
무당이 되면 지금까지 누려왔던 삶과는 영원히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피씨방을 가고 독서실을 가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쇼핑을 하고... 왠지 이 모든 것들과 영원히 이별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현우는 너무나 우울해졌다.
“니 생각 어떤지 안다... 난 14살 때 신을 받았거든...”
“아... 엄청 어릴 때 받으셨네요...”
“그래서 잃은 것도 너무나 많았어.. 가족... 친구... 후훗 지금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야...... 자 이건 몽유부(夢遊符)란다. 이걸 들고 눈을 감으면 바로 잠에 빠져 꿈을 꾸게 되지...
행운을 빈단다. 여긴 내가 맡으마... 목숨을 걸고 니가 깨어날 때까지 너의 친구들을 지키고 있으마...”
“안돼요... 난 못해요... 난... 내 삶을 잃고 싶지 않아요...”
이보살의 표정이 험해졌다.
“운명이야... 니가 이런다고 운명은 널 비켜가질 않아. 가끔 운명을 무시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러나 운명은 무시할 수 없어.
정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대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운명이지... 니가 여기서 신을 받지 않으면 우린 모두 죽
어. 맘을 굳게 먹어라.”
현우는 무서웠다. 이 상황보다도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그러나 이젠 방법이 없었다. 현우는 잠시 부적을 바라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풀썩 쓰러져 잠이 들었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너라.... 자 이제 영혼님들과 한바탕 놀아보실까?”
이보살은 두 손에 부적을 한가득 잡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결계는 10분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보살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 . . . .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에 차고,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우는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기가 왜 뛰는지 무엇 때문에 뛰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무기가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멀었다.
뛰기가 싫었다. 현우는 쉬고 싶었다. 점점 달리는 속력이 줄어들었다. 귓가에서 ‘그 것’이 속삭였다.
“그래... 쉬고싶지? 그럼 쉬어... 도대체 저걸 왜 잡아야 하는데? 니가 뭣 땜에?”
‘그래... 내가 뭣 때문에... 저걸.. 잡아야하지...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
현우는 생각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
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뛰지도 말자... 쉬자... 쉬고 싶어....’
현우의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그것’의 속삭임은 더욱 달콤했다.
“그래... 쉬는거야... 이제 쉬자... 영원히.......”
현우의 발걸음은 이제 거의 걷는 것에 가까워졌고, 현우의 뒤에서 굉장히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가 현우를 에워싸려고 했다.
그때였다. 현우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있었다. 선주. 선주였다. 그리고 해림이 떠올랐다. 명진도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현우는 여기서 멈추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는 달렸다. 숨이 차고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멈추어선 안될 것 같았다. 저것을, 저 무기를 잡아야만 무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현우의 귀에는 이미 ‘그 것’의 속삭임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저것을 잡아야 한다. 그것 밖에는 없었다. 현우는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결국 무기를 잡았다.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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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대로 끝인가?...쿨럭...”
이보살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부적을 날리고 있었다. 이미 10분전 결계는 깨졌다. 그러나 현우가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이보살은 마지막으로 결계를 하나 더 쳤고, 그것마저 이제 몇 분 후면 깨질 것이었다.
“결국... 이대로 끝인 건가... 안돼... 난 죽더라도 이 사람들만은 살
려야 한다... 을지문덕 장군님... 저의 영혼을 거둬 가시더라도 저 사람들은 지켜주소서...”
그러나 미처 이보살이 을지문덕을 불러내기도 전에 결계는 깨졌고, 영혼들이 폭풍같이 밀어닥쳤다.
“윽!! 안돼!!”
이보살은 죽을힘을 다해서 남은 부적을 모두 던졌다. 앞으로 쏟아져 나오던 영혼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었다. 아직 남은 영혼들만 수백명 이었고, 그 영혼들은 다시 이보살을 향해 밀어닥쳤다. 이보살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크아악!!”
한 무리의 영혼들이 이보살의 뒤에서 나온 빛에 맞아 소멸되었다. 이보살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현우가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우의 몸을 빌린 ‘그 분’이었다. 이보살은 전율을 느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일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아...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현우의 입을 빌린 ‘그 분’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럼 일단 이 조무래기들부터 처리하고 말해주지...”
‘그 분’의 영에서 이보살이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투기와 패기가 흘러나왔다.
“나의 힘은 드넓은 고구려의 기상이니... 나의 충성스런 부하들아... 너희들의 힘을 보여라!”
‘그 분’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엄청난 수의 군사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영들을 닥치는 대로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이보살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보살은 ‘그 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적들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는 전쟁의 왕..... 이보살은 눈을 감았다.
이제 영들은 거의 다 소멸되었고, 남은 영들은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그리고는 군사를 거두었다.
“너희 들이 이 일의 장본인들이렸다!!”
‘그 분’이 남은 영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영들은 두려움에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4명의 영은 남아있었다. 이보살은 눈을 뜨고 그 영들을 바라보았다.
그 영들은 여느 영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영들의 눈은 모두 빨간색이었던 것이다. 4명의 영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영이 말했다.
“그렇소... 우리들이..... 죽음을 다스리는 자에 대해서... 이 산속의 영들에게 말을 했고... 그래서.... 영들이 사람들을 해치게 된 것이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소... 아직 죽음을 다스리는 자가 각성하지 않았소.... 우리는 그가 각성한 뒤에... 그를 없애려했으나... 멍청한 영들이 무작정 일을 저질러버려서.... 그러나... 당신은 전혀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인물이었소... 당신은... 도대체 ...... 누구시오... 누구신데... 이렇게 죽어서 혼만 남아있는 우리들마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만드는...... 그러한 패기를 가지고 계시오...”
‘그 분’은 이보살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영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고구려의 19대왕... 고구려의 기운을 타고난 전쟁의 왕.... 북방민족에게 파괴의 신으로 불리던 왕... 나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으로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광개토대왕이다.”
이보살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다. ‘그 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으며, 타민족에게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몇 안되는 ‘대왕’의 칭호를 부여받은 광개토대왕이었던 것이다.
“네놈들이 멋대로 꾸민 일에 나의 후손들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각오는 되었느냐.”
“후후... 이왕 죽은 몸... 소멸된다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소... 대왕님의 손에 죽으니 참으로 영광이로소이다.” 영들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광개토대왕은 친히 자신의 검으로 영들을 소멸시켰다. 이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이보살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도 무당이로군... 자네의 몸에도 나의 까마득한 후손들이 보이는구만... 허허허... 난 이만 물러가겠다. 지금은 나의 의지로 모든 것을 행했지만, 앞으로는 내가 몸을 빌린 이 청년의 의지가 나를 지배할 것이다. 곧 나의 힘이 이 청년의 힘이 되어, 나의 군대를 부리며, 나의 검을 쓸 것이다. 자네가 이 청년을 보살펴주게, 이제 이 청년은 자신의 삶을 다가올 커다란 위험에 담을 것이라.”
“커다란 위험이 무엇입니까?...”
“나도 잘은 모른다. 그러나 느껴진다. 곧 세상은 어둠의 힘에 지배당할 것이다. 그때에 나의 힘을 가진 이 청년이 뛰어난 활약을 할 것이다.”
“그럼... 역시 죽음을 다스리는 자는.....”
“아니, 그것은 나도 모른다. 이 청년이 그렇게 될지는 앞으로의 일에 달려있겠지... 무당, 그럼 다음에 또 만나세. 이 청년을 잘 보살펴주게나!! 아주 내 맘에 쏙 드는 청년이야. 우하하하!”
광개토대왕의 영은 크게 웃으며 사라졌고, 현우는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아?”
현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배가 고파서 죽을 거 같아요...”
이보살은 싱긋 웃었다. 광개토대왕의 말대로 이 청년은 앞으로 크게 되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 .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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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산장에는 경찰들이 와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그 자리에는 현우일행은 없었다. 거기에 있어봤자 경찰들에게 이리저리 채여 성가시기 때문이다.
현우는 이보살을 따라 가기로 하였다. 선주, 해림, 명진은 이보살의 힘을 빌어 산장에서의 기억을 지웠고, 현우의 부모님께는 현우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생각을 심어두었다. 이 모든 것은 이보살의 신, 천재 명의 허준의 힘 덕분이었다.
“현우오빠... 지금 떠나면 이제 언제 보는 거지?”
해림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언젠가 우리의 인연이 닿을 때...”
“에이... 뭐야... 공부만 하고 돌아올 건데... 다시는 못 만날 사람처럼 말하냐..”
“푸훗. 선주 너한테 좋은말은 언제 들어보겠니 내가.”
“그나저나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라. 갔다올때는 우리 동생 데리고 갈 준비하고.”
“오빠!!”
“명진이 너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지 마... 진짜 그래야 될 것 같잖아...”
“현우오빠!!”
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해림은 삐진 것 같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좋은 것 같았다.
“그럼 잘 다녀오렴. 공항까지 가줘야 하는데... 니가 한사코 말리니 여기서 배웅하마.”
“고맙다... 꼭 다시 보자.”
“이녀석 3년뒤에 올거면서 무슨 영영 떠나버리는 것처럼 말하는 거봐.”
현우는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지금 이보살을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당의 길을 걸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아무튼 고맙다. 이제 갈게. 잘 있어.”
현우는 차에 올라탔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
이보살이 물었다.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살은 출발했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만... 강원도에 내 스승님이 계시거든? 그분께 일단 먼저 가보자. 앞으로 우리의 일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몰라. 그분은 굉장한 예지능력을 지니셨거든..,”
현우는 창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겨울하늘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우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나의 길이라면... 내가 앞으로 닥쳐올 세상의 위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겠어...’
현우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좋은 생각만 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현우와 이보살은 앞으로 나아갔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미래를 위해....
잃어버린 시간 단편 - 현우의 이야기
안녕하세요 봄입니다.
저의 소설은 순전한 저의 상상력과 역사적인 자료들을 결합함으로
써, 여러군데에서 왜곡된 사실이 나올 수 있으니 그 점 유의 하여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워낙 퇴마록과 신비소설 무의 팬이라서 그런지
비슷한 스토리나 상황설정이 나올지도 모르겠네요;;; 작가의 한계라
고 생각해주시길 ;;;
'잃어버린 시간은' 처음에 우리나라의 잃어버린 역사에 대해서
저 나름대로의 상상력과 자료를 바탕으로 세명의 주인공이
하나씩 하나씩 밝혀나간다는 취지로 시작했는데요. 지금은
그것을 뛰어넘어 세계의 미스터리에 관련된 비밀들과 음모, 그리고
나아가서 제가 생각하는 '세상의 종말'에 대해서 쓰고자 합니다.
소설의 스토리는 처음에,
- 봄의 이야기
- 지백의 이야기
- 현우의 이야기
이렇게 3편의 단편으로 시작합니다.
이 3편의 단편은 주인공들의 과거와 내력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4번째부터는 주인공들이 만나는 내용으로써
소설의 진짜 스토리가 나오게 됩니다.
업데이트는 최소 2주일에 1편정도로 생각하고 있구요.
작가가 워낙 게으른지라 그것도 장담 못하겠네요. 이제 고3이구
에구;;;;;;;;;;;
아직 부족한 글솜씨지만 많이 지적해주시고 사랑해주세요!!
<잃어버린 시간>
-단편
<현우의 이야기>
...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에 차고,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우는 멈출 수 없었다. 이번에 잡히면 뭔가 벌어질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것’은 너무나 빨랐다. 어느새 현우의 바로 뒤에까지 다가왔다. '그 것'의 숨결이 뒷덜미로 느껴졌다. 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그러나 자신은 도망가는 것 밖에 할 수도 없었다. 도망치지 않으면, 분명히 뭔가 끔찍한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다.
저 앞에 무기가 보였다. 마치 관우가 썼던 청룡언월도같은... 저 무기를 잡아야만 무언가 끝이 날 것 같았다. 그러나 ‘그 것’은 이제 자신의 어깨를 잡고 있었다.
뿌리치려했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아직도...아직도 멀었느냐?”
“으악!!”
현우는 꿈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언제나 꿈에서 깨면 4시였다. 1분의 오차도 없이.... 현우는 그것이 싫었다. 단순한 꿈이라고 넘기기에는 너무나 이상한 꿈이었다.
어릴 때도 이 꿈을 꾸었었다. 그러나 그때는 꿈이 지속되지도 않았고, 이렇게 생생하지 않았다. 그러나 20살이 되는 생일이 지나고부터 꿈은 다시 시작되었다.
아주 생생하게.....꿈이 다시 시작된 지 2달이 다 되어 갔지만 갈수
록 꿈은 더욱 생생해졌다. 현우는 무의식중에 느끼고 있었다. 분명히 무언가가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언젠가 분명히 무언가가 벌어질 것이라는 것을 현우는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현우는 몰랐다. 자신은 상상도 할수 없는 엄청난 운명이 현우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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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다녀올께요.”
“그래 조심해서 다녀오거라. 지리산은 지금 꽤 춥다더라.”
인사를 하고 현우는 집을 나섰다. 오늘은 친구들과 지리산 등반을 하기로 해서 일찍 시외버스 주자창으로 출발하는 것이다. 아직 6시 밖에 안되어서 그런지 밖은 아직 어두컴컴했다.
현우는 정류장에 섰다. 아직 첫차가 오려면 10분정도 기다려야 되기 때문에 현우는 헤드폰을 쓰고 음악을 틀었다. 한겨울의 아침은 정말 추웠다.
“아우, 버스는 언제 오는 거야.... 추워죽겠네.”
그때, 현우의 옆으로 모자를 쓴 노인이 다가왔다. 현우는 슬쩍 옆으로 비켰지만 노인은 앞으로 가지 않고 현우의 옆에 우뚝 멈춰섰다.
그리고는 모자를 벗고 현우를 매서운 눈으로 쏘아보았다. 현우는 움찔했다. 노인은 아주 작은 키의 할머니였는데, 눈빛이 얼마나 매서운지 현우는 자기를 쏘아보고 있는 할머니의 눈을 바라볼 수 조차 없었다.
“쯧쯧쯧..... 불쌍한 놈일세......”
노인은 갑자기 입을 열었다.
“네? 할머닌 누구세요? 왜 갑자기...”
“시끄러 이놈아... 으이그... 너의 눈은 죽음을 보는 눈이로군..... 이미 정해졌구먼... 피할 수가 없을게야...”
현우는 혼란스러워졌다. 도대체 이 할머니가 뭐하는 사람인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지금 자신의 마음상태를 꿰뚫고 있는 것 같아 긴장되기 시작했다.
“놀랄 것 없어.. 나도 너랑 비슷한 몸이니께... 너 옛날부터 귀신 많이 봤지?”
현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것은 부모님께도 말하지 않은 자신만의 비밀이었다. 어릴 때부터 현우의 눈에는 귀신이 보였다. 처음에는 그것이 귀신인줄 몰랐다.
여느 사람이랑 똑같이 보였기 때문에 다가가서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현우가 말을 걸면 한결같이 똑같은 질문을 했다.
자기가 보이느냐고...... 어릴 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몰랐다. 그러나 크면서 현우는 알게 되었다. 자신은 귀신을 보는 능력이 있다는 것을..... 그러나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말해도 믿지 않을 것은 뻔할 뻔자고, 마침 사춘기에 들어간 현우는 그 사실이 죽도록 싫었기 때문이다. 눈을 파내버릴까도 몇 번이나 고민했다.
흉가에서 목을 매달고 혀를 길게 빼고 있는 귀신이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것이 보이는, 이 눈이 너무나 싫었다. 그래서 지금 이날까지 가
장 친한 친구에게도 말을 하지 않고 비밀로 해 왔는데.....
이 할머니는 한번에 현우가 귀신을 보는 것을 알아맞췄다. 현우는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할...할머니는 누구세요? 어.....어떻게 그걸?...”
“나도 너랑 비슷한 몸이랑께... 조심해야혀.... 널 둘러싼 운명은 매우 가혹하구먼...”
“네? 운...명이라니요?”
“곧 알게 될것이여.... 곧.....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구먼.... 그러나 명심하라구... 운명은 모든 것을 포함해... 운명을 거스를 수는 없어... 명심하게... 빨간 눈을 조심하게나...그자들은 죽음을 업고 있을게야... 흘려듣지 말게나.....”
혼란스러웠다. 갑자기 나타나 자신의 비밀을 알아채더니, 대뜸 빨간 눈을 조심하라니 현우는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할머니... 도대체 누구세요? 왜 갑자기 나타나서...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건지...”
“곧 알게 될거랑께. 홀홀... 저기 버스 아닌가?”
현우는 뒤를 돌아보았다. 버스가 오고있었다. 얼른 차비를 꺼내고 현우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넸다.
“할머니 도대체....어?”
현우가 다시 돌아보았을 때.... 노인은 없었다. 말 그대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현우는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현우는 애써 놀란 마음을 억누르고 얼른 버스를 타고 출발했다.
가는 버스를 바라보며 어느새 반대편 정류장에 서있던 노인은 안타까운 듯 한참 버스를 바라보다가 길을 걸어갔다.
“쯧쯧... 인간으로써 갈 길이 너무나 멀구나... 부디 운명을 거역하지 마시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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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는 시계를 보았다. 6시 30분이었다. 현우를 뺀 나머지 아이들은 모두 모였다. 6시 40분에 지리산으로 가는 버스가 있으니까 10분밖에 남지않았다.
선주는 언제나 약속시간에 늦는 현우를 떠올리며 혀를 찼다. 현우, 선주, 명진, 해림은 오랜만에 맞은 휴일을 맞이하여 지리산에 가기로 하였다. 선주는 겨울에 산을 타는 것을 좋아하진 않지만, 마음속으로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명진 때문에 산에 가는 것이었다.
“아우 삼각 김밥 먹어도 배가 고프네, 언니는 아침 드시고 오셨어요?”
삼각 김밥 두 개에다가 케로로 빵까지 먹고 있는 해림이 선주에게 물었다.
“아니 헤헤. 괜찮아 나 원래 아침은 잘 안먹는걸.”
“에~ 니가 아침을 안먹는다고? 넌 하루에 네 끼는 꼬박 챙겨먹을거 같은데?”
선주는 뒤를 돌아보았다. 어느새 도착한 현우가 싱글싱글 웃으며 놀린 것이었다.
“어? 현우오빠 오셨어요?”
“응. 해림이 일찍 왔네? 늦잠 잘 줄 알았는데 하하.”
“넌 제일 늦게 온 주제에 아침부터 한다는 말이 그거냐?”
선주는 현우에게 톡 쏘고는 음료수를 고르고 있는 명진에게로 걸어가버렸다.
“에이 장난 좀 친거가지고..... 선주는 너무 예민하다니깐.”
“에...언니는 이상하게 오빠한테만 까칠하신것 같은데요? 히히.”
“뭐야? 해림이 너......”
“농담이에요 농담. 히히.....”
현우와 해림이 대화를 하고 있는 사이 선주와 명진이 음료수와 간식을 사가지고 왔다. 명진이 현우에게 말했다.
“현우 넌 어떻게 매일 늦냐?”
“미안해 미안해. 아이고 버스 늦겠다. 얼른 가자~ 렛츠 고!!!”
현우는 자신을 질책하는 아이들을 얼렁뚱땅 달래고 버스로 올랐다.
“하여간 저 녀석은... 자 우리도 얼른 가자.”
명진은 아이들을 데리고 버스로 올랐다. 몇 분 뒤, 버스가 출발했다. 명진과 선주는 아침에 일찍 일어난 탓인지 잠이 들었다. 현우는 창밖을 내다보고 있었고, 해림은 현우의 옆에서 음악을 듣고 있었다.
“현우오빠?”
음악을 듣던 해림이 이어폰을 빼고 현우에게 말을 걸었다. 현우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왜 불러...”
“오빠... 아직도 선주 언니 좋아해?”
현우는 창밖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풋... 모르겠다.... 아무리 좋아해봤자 나한텐 눈길한번 안주는걸... 선주 맘속엔 니네 오빠 밖에 없다구.... 선주가 행복해진다면야... 그게 젤 좋겠지만...”
“에구...오빠도 참...”
창밖에서 시선을 거둔 현우가 해림의 볼을 꼬집으며 말했다.
“아유 우리 해림이가 오빠 걱정해주는거야? 기특한것.”
“아유... 나 어린애 아니에요!”
해림이 얼굴을 붉히며 대답했다.
“야 니가 도토리만할 때부터 봐왔는데 뭐... 니가 내 눈에 어른으로 보이려면 아마 앞으로 200년은 더 흘러야 될꺼다.”
“오빠!!”
“알았어 알았어. 으이그.... 아우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피곤하다... 오빠 좀 잘게. 너두 좀 자두렴. 지리산 올라가는거 진짜 힘들어... 아훔~~.....”
현우는 옆으로 돌아누운지 얼마 안되서 잠이 들었고, 그런 현우를 해림은 슬픈 눈으로 바라보았다.
“바보..... 나 이제 진짜 어린애 아닌데...”
모자를 깊게 눌러쓴 해림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러내리는 것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간을 흘러서 일행은 지리산에 도착했다. 휴일이었지만 추운 날씨 때문인지 등산객은 매우 드물었고, 산은 아직 어둠에 휩싸여 있었다. 현우는 쏟아지는 잠을 깨기 위해 화장실에 가서 세수를 했다.
“야. 현우야.”
볼일을 보고 나오는 명진이 현우에게 말을 걸었다.
“응?”
“음...흠.... 우리 동생이 너 좋아하는 거 같더라.”
“....해림이가 나 좋아하는 건 호랑이가 체스 두던 시절부터 알고 있었어... 그치만 나한테 해림이는 동생일 뿐이야...”
“음... 오빠로서 부탁하는 건데 해림이 좀 잘 보살펴주라. 나 그래도 너라서 안심이다..... 애들 기다리겠다. 빨리 가자.”
명진은 현우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황급히 나가버렸다. 명진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현우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 난 선주라고 임마.... 너나 선주 맘 좀 알아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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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직.....직........남부지방에는 폭설이 내릴 것으로 예상됩니다.....구름의 이동방향은.....지직...”
“야 우리 이래도 괜찮은거야? 눈내린다는데?”
“괜찮을거야. 지리산에 눈 온다고는 안했으니까. 뭐 눈이 와도 눈내리는산 타는 재미도 있잖아??”
“그래도.... 지리산은 눈만 내리면 워낙 사고가 많이 나잖아요..... 불안한데...”
“괜찮을거야. 얼른 정상까지 갔다 오자구. 우리 앞에 출발한 등산객들도 있잖아. 빨리와”
현우는 말을 마치자 훌쩍 먼저 올라가버렸다.
“아우~ 현우오빠 같이가요!!”
현우의 뒤를 이어 해림도 툴툴거리며 현우를 따라갔다.
“아유... 쟤네는 힘들지도 않은가봐.”
“쿡쿡... 그러게 말이다.”
“응? 명진이 너 왜 웃어?”
“아니야. 아니야. 우리도 얼른 올라가자.”
명진은 선주를 끌다 시피해서 현우를 따라 갔다. 하늘은 이미 어두컴컴해지고 있었고, 날씨는 더욱더 추워지고 있었다.
“어? 현우오빠. 눈 오는거 같은데? 나 뭐 맞았어.”
“눈? 벌써?? 어 그럼 안되는데...”
“김현우!!”
어느 새 현우를 따라잡은 명진이 말했다.
“야 진짜 눈오는 데 어떡하지? 지금은 조금이지만 만약에 더 굵어지면, 여기서 고립될 수도 있어.”
“아우... 이제와서 다시 내려가기는 너무 먼데.... 아 맞다! 이 근처에 산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너 지도 있잖아 찾아봐.”
명진은 지도를 펼쳐 들었다.
“여기네. 여기가 임시로 만든 산장 인가봐. 음... 이쪽으로 가면 되겠다. 얼른 가자구.”
“그래 빨리 가자....... 현우야?? 뭐해?”
“응? 아... 아무것두..”
일행은 현우를 앞서 출발했다. 그러나 현우는 한동안 그 자리에 머물러있었다. 무언가가... 매우 불안했다. 아주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왜 이러지... 아유 기분 탓일거야. 얼른 가자.”
현우는 일행을 따라 부지런히 뛰어갔다. 그러나 현우는 몰랐다. 자신의 뒤에 서 있는 그림자의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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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이쿠. 이거 눈이 오는구나... 큰일이로군 지리산은 눈만 오면 사고가 빈번한데... 이거 어쩌나... 근처에 산장이 있다고 들었는데... 산장을 찾아보아야겠군.”
이보살은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눈발은 점점 굵어지기 시작했고, 급기야 눈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펑펑 내리기 시작했다.
“어허. 큰일이로고..... 눈이 내리는 산은, 산을 떠도는 영혼들이 사람들을 가장 많이 해칠 때 인데..... 이거 사고라도 나지 않으려나 걱정이로구만.”
이보살은 자신이 모시는 신의 이름을 외면서 좁은 산길을 걷고 있었다. 이보살은 이미 눈치 채고 있었다. 자신의 주위에 모여 있는 수많은 영의 기운을.
"어허... 떠도는 분들께서 비천한 인간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 겁니까."
영들은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가 영들 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것 같이 보이는 영이 이보살 앞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때...가... 되었소... 때가....”
“무슨... 때가 되었단 말씀이십니까?”
그 영은 두려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이제 곧... 그... 그분이 오신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 죽음
의 씨앗을 세상에 뿌리....시는 .... 그 분.... 그 분께서...오신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씀이십니까?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라니... 이거야 원...”
“허나...우리는.... 그 분을 원하지 않아.... 그 분은 세상을..... 파멸로 몰아가실 분... 지금...이 산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그 분이 계신다..... 아직은.... 깨닫지 못하고 계시지만... 우리도 자세히 알 수가 없어... 그래서.... 그 분이 깨닫기 전에... 깨닫기 전에.....”
“설마... 확실히 하기 위해서....지금 이 산에 있는 사람들을 모두 죽이겠다는 것입니까?”
“어쩔 수....없다.... 우리는 우리의 세상을.... 지켜야만해.... 당신은... 죽음을 보는 자로군... 당신에겐...우리를 해할 힘이 있어... 그러나... 우리들이 전부 덤빈다면..... 당신 하나쯤은...”
이보살은 천천히 주머니에서 부적을 꺼냈다.
“당신들은 지금 이승과 저승의 법도를 어기고 있소. 저승의 계약에 묶인 자들은 이승의 존재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없소.”
“우리의...존재자체가.... 소멸되더라도.... 우리는 지켜야만 한다... 우리의...”
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그리고 주위에 모여 있는 영들이 점점 이보살에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휴...이거야 원... 살아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모르겠군요... 조금만 더 가면 산장일텐데... 감히 영혼들이 살아있는 사람을 해치려 하다니... 난 무당... 죽음을 보는 자로써, 내 목숨을 걸고 당신들을 편안한 잠으로 이끌어 드리겠소. 나의 주신은 하늘이 낸 명의 허준. 나의 치유는 하늘의 손길이니!!”
이보살은 부적에 자신의 힘을 모아 날렸다. 영들은 피하려 했지만, 부적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하나씩 영들의 이마에 붙었고, 부적이 붙은 영들은 소멸되어갔다.
이보살의 손은 마치 허준이 환자를 치료할 때의 손길처럼 부드럽고 빨랐다. 부적에 맞은 영들은 빠르게 소멸되어갔다. 그러나 수가 너무나 많았다. 부적의 반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상당수의 영이 남아있었다.
영들은 계속 이보살에게 달려들었고 이보살의 몸에 상처를 내는 영들도 있었다. 어느새 이보살의 주위는 영들에게 둘러 쌓였고, 영들은 최후의 일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헉...헉.... 휴.. 너무 많군요... 나도 죽음을 두려워하지는 않는 몸... 그러나 나는 아직 죽을 수 없습니다. 나에겐 아직 해야 할 일이 있소...”
“그러나... 우리도 어쩔 수 없다..... 여기서 죽어라......”
영들은 천천히 이보살에게 다가왔다. 이보살은 눈을 질끈 감더니 큰 소리로 외쳤다.
“어쩔 수 없군... 이곳에서 그 분을 불러야 하다니... 죄송합니다. 나의 전투의 능력은 이분에게서 빌려오는 것이니, 그대들은 모두 무릎을 꿇지어다!”
이보살의 몸에서 기운이 뻗치기 시작하더니, 이보살의 몸에서 세찬 바람이 일었다. 주위에 있는 작은 풀들은 뿌리 채 뽑힐 만큼 강한 바람이었다.
그리고 이보살의 몸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곧이어 이보살의 뒤, 허공에 갑옷을 입은 장군의 모습이 나타났다. 눈에는 형형한 불빛을 뿜고 있었고, 그 기세는 영들을 이보살의 주위에서 벗어나게 하기 충분했다. 이보살의 입을 빌려 장군이 말하였다.
“감히 이런 영들을 상대로 나를 불러내다니... 나는 오래 전, 살수에서 수나라 군을 궤멸시켰던 을지문덕이다... 이 무당이 나를 불러낸 것은 틀림없이 위급한 상황이 닥쳤을 때인데... 네 놈들이 감히 나의 앞을 가로막겠다면 어쩔 수 없이 나는 네 놈들을 소멸시켜버리리라.”
갑작스러운 을지문덕 장군의 등장으로 영들은 혼란에 빠졌다. 을지문덕이라면 자신들을 전부 소멸시켜버리고도 남을 존재이리라. 그러나 영들은 마음을 굳힌 듯, 역사의 영웅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어리석은 것들..... 무(無)로 돌아가리라!!”
을지문덕의 검이 한차례 휘둘러졌고 순식간에 반이 넘는 영들이 소멸되었다. 곧이어 나머지 영들까지 을지문덕의 칼에 소멸되었다.
“한 줌 재만도 못한 것들..... 죽음을 보는자... 네가 나를 불러내면
그 대가는 알고 있겠지? 너의 수명을 가지고 가겠다. 이것도 인과의 굴레에 속해 있는 일.....”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당신을 부를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의 신이시여... 쿨럭...”
을지문덕의 영혼이 희미해져가더니, 곧이어 사라졌다. 이보살은 힘을 쏟은 탓인지 그 자리에서 한쪽 무릎을 풀썩 꿇었다.
“휴... 끝난건가... 그나저나 이런 식으로 가다간... 이 산에 있는 등산객들은 전부 죽음을 면치 못하겠군... 큰일인데... 윽... 지금처럼 눈이온다면... 산장에 사람들이 많겠군... 떼죽음을 막아야 해... 으윽...”
이보살은 다친 몸을 이끌고 산장으로 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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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우 일행이 산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눈은 폭설로 바뀌어 있었고 한 걸음 가기도 힘들만큼 쌓여있었다.
“야! 저기 산장이야!! 얼른 들어가자.”
일행은 눈길을 헤쳐가며 산장에 이르렀다. 이미 많은 등산객들이 와 있는 듯, 산장 안은 북적거렸다.
“끼이익”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 현우 일행은 이미 안에서 대피해있던 다른 등산객들의 인사를 받으며 난로 곁에 앉았다.
“이거 원... 오랜만에 지리산에 찾아왔는디... 왜 하필 오늘 눈이 쌔리 퍼붓는겨...”
나이 꽤나 드신 어르신이 창 밖을 내다보며 중얼거렸다. 산장안에는 현우 일행을 포함해 가톨릭 신부 1명, 느끼클럽(?) 회원 3명, 칠순이 넘으신 노인 1명 그리고 구석에 앉아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는 정체불명의 사람 1명까지 총 10명의 사람이 있었다.
현우 일행은 짐을 풀어놓고 산장을 둘러보았다. 산장은 2층으로 되어있는 굉장히 큰 집이었다. 이 산장은 원래 산장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집이 었다.
그러나 몇 년전, 눈사태로 이 집에 사는 가족들 전부가 눈에 생매장되는 사고가 발생해, 그때부터는 빈집으로 남게 되었다. 국립공원 측에서는 빈집을 철거하기보다는 산장으로 쓰는 것이 훨씬 좋겠다고 생각해서 산장으로 쓰게 된 것이다.
현우는 이층을 이리저리 둘러보다가 전에 이 집에 살았던 가족 사진이 걸려있는 것을 보았다. 가족은 모두 4명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들과 딸 하나씩 이렇게 4명이었다.
“쯧쯧... 이렇게 단란한 가정이 사고한번에..................어?”
현우는 안타까움에 중얼거렸는데. 그때 사진 속에서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이럴 수가... 아닐거야... 아닐거야...”
현우는 도망치듯이 일층으로 내려왔다. 현우는 자신의 눈을 의심했고, 기억을 지우고 싶었다. 그러나 자신의 기억 속에서 울려 퍼지는 그 소리를 현우는 잊지 못했다.
‘빨간 눈을 조심하게나....’
그 노인이 해준 경고.... 그것은 불행히도 현실이 되고 있었다.
사진속의 가족 4명은 모두 빨간 눈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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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눈이 쏟아지는데... 다른 등산객들은 다들 대피 했으려나...”
신부는 다른 등산객들을 위해서 기도를 하고 있었고, 느끼클럽 회원들은 자기들끼리 뭐가 그리 웃기는지 배꼽을 잡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어르신은 계속 창밖을 보며 다른 등산객이 오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구석이 처박혀 있는 사내는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휴... 눈이 언제 그치려나... 이러다가 오늘 하루 밤새야 하는 거 아니야?”
“그러게 말이다... 이 일을 어쩌지... 일단 다들 집에 전화드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내려갈 수가 없다고. 잘못하면 여기서 하룻밤을 보내고 나서 내려가야 될지도 모르니깐.”
“...오빠? 현우오빠??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멍하게 생각에 잠겨 있던 현우를 해림이 다그쳤다.
“어? 아니야.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신경쓰지마. 피곤하겠다. 넌 좀 쉬어 해림아.”
“치... 내가 귀찮은거지? 흥!”
해림이 토라져서 선주와 명진에게로 등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보고 현우는 쓴웃음을 지었다.
‘점점 불안해져... 도대체 이게 무슨 느낌이지... 왠지... 뭔가가 벌어질 거 같은데... 뭔가가 다가오고 있어... 확실히...’
현우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여 있을 때, 눈길을 헤치며 온 이보살이 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이보살은 경악하고 말았다.
“으악! 저게 도대체 뭔 일이야!!”
산장은 100명이 넘는 영에게 둘러 쌓여있었다. 도대체 그 많은 영이 어떻게 이렇게 많이 모인건지 이보살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보통 산을 떠도는 영이란 사고로 죽은 영들이 많은데, 그 영들은 원한이나 원념이 대부분 없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각자 따로 행동하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태반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많은 영들이 모여야만 한다면, 뭔가 엄청난 일이 벌어질 것임을 이보살은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한 가지 이상한 것은, 영들이 산장으로 들어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들어갈 수 없어보였다. 산장은 희미한 빛에 둘러 쌓여있었고, 그 빛 안으로 영들은 들어 가지 않았다.
“왜... 들어가지 못하고 있지...., 저 빛은 또 무엇이고...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거야... 젠장... 중요한건 저길 뚫고 일단 산장으로 들어가는 것인데..... 을지문덕 장군을 하루에 두 번 씩 부른다면 이번엔 수명을 깎이는 것만으로는 끝나지 않을 텐데...”
이보살은 결국 영들의 반사신경이 느린 것을 감안해 죽어라 뛰는 것을 선택했다.
“여기서 산장까지는 50m 남짓되겠구나... 한번 해보자구...”
이보살은 손에 부적을 쥐었다. 부적에 힘을 불어넣자 부적이 파란 빛을 띄었다.
“이야앗!!”
이보살이 번개같이 뛰어갔고, 영들은 이보살을 돌아보았다. 그리곤 이보살을 막기위해 빽빽이 모여들었다. 그러나 이보살이 던지는 부적에 길을 막는 영들은 소멸되었고, 이보살은 무사히 산장으로 들어갔다.
“우휴! 골인입니다~ 죽는 줄 알았네. 아우 내 옷 걸레되겠네..... 산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보살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는 10명의 사람이 있었다.
‘음... 저 분은 신부님 같은데... 그래서 영들이 들어오지 못하고 있었군.... 이제 도대체 어떻게 한다... 일단 들어오긴 했는데....’
이보살은 마음속으로 신부에게 감사를 드렸다. 그리곤 주저앉아 앞으로의 일을 생각했다.
“명진아... 저 사람 좀 이상해보이지 않아? 옷차림이 무슨... 한복을 입고 등산을 하다니 이 날씨에... 그리고 저 구석에 박혀 있는 남자... 아깐 멀쩡했는데 지금은 계속 손톱을 물어뜯고 있어... 뭔가 초조한거 같은데... 그래도 저 남자는 기분이 나빠.”
선주는 구석에 있는 사내하나도 기분 나빠 죽겠는데, 이보살을 보고 충격을 받았는지 연신 명진에게 쏘아댔다. 명진은 웃으며 선주의 말을 받아주었다. 그러나 명진의 표정은 밝지만은 않았다.
‘도대체 여기서 어떻게 나간다... 휴... 부모님께 연락을 드리긴 했지만... 이 눈이 내일 까지 계속된다면 어떡하지... 현우 저 녀석은 또 왜 저리 저기압이야....’
명진은 현우를 바라보았다. 현우는 눈을 감고 있었다. 얼굴에는 땀이 흥건했다.
“어라... 저 녀석 왜 저러지.... 야 김현우.”
명진이 현우에게 다가가자, 대뜸 현우가 벌떡 일어나 창문으로 달려갔다.
“쳇 저 녀석. 싱겁긴....”
그러나 명진은 보지 못했다. 창문 밖을 보고 있는 현우의 표정을.....
“이....이게 도대체 무슨....”
현우는 경악했다. 창문밖에는 엄청난 수의 귀신들이 마치 벌레 떼처럼 바글바글거렸고, 그들은 마치 산장으로 들어오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미쳤어...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지....”
그때 자정을 알리는 종이 울렸다. 구석에서 손톱을 물어뜯으며 초조하게 뭔가를 기다리고 있던 남자는 그 소리를 듣자마자 미소를 지었고, 벌떡 일어났다. 그 남자의 얼굴에는 눈이 없었다. 그는 크게 소리쳤다.
“드디어... 시작되었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분이 오실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남자는 이상한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근육이 점점 커지고 송곳니가 길어지고, 피부가 초록색으로 변했으며, 머리에 뿔이 돋아났다. 키는 거의 천장에 닿일 정도로 커졌다.
“꺅!!”
해림이 비명을 지르며 현우의 뒤로 숨었다. 명진은 선주를 감쌌고, 신부는 나머지 사람들을 뒤로 피신 시켰다.
“저게 도대체 무슨 괴물이야!!”
“....아멘... 이게 도대체 무슨 일입니까...”
이보살은 그 괴물을 자세히 보았다. 아마 그 괴물은 도깨비인 듯 했다.
“도깨비라니... 이게 무슨 일이야...”
도깨비는 모습을 다 드러내자, 사람들에게 말했다.
“때가 왔다... 죽음을 다스리며, 세계를 파멸로 이끄시는 분. 지옥을 인간 세상에 옮겨놓으실 분이 이제 오실 때가 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각성’ 하실 때가..... 그 분 말고는 여기 있는 놈들은 필요 없다. 모두 죽어라!”
도깨비가 도깨비 방망이를 꺼내더니, 큰 몸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몸놀림으로 명진에게 휘둘렀다. 명진은 선주를 뒤로 밀고 눈을 감았다.
“퍼억!”
“꺄악!”
“신부님!”
현우가 소리쳤다. 명진이 도깨비 방망이에 맞으려는 찰나, 신부가 번개같이 뛰어들어 자기가 대신 맞았던 것이다. 이보살이 저 멀리 날아간 신부에게 달려갔으나 신부는 이미 숨이 끊어진 상태였다.
“신부님! 신부님!..... 젠장.... 너 이 빌어먹을 도깨비새끼...”
이보살이 품에서 부적을 꺼내려는 때, 도깨비가 훌쩍 뛰더니 맨 뒤에 있는 노인을 한손으로 움켜쥐었다. 그리고는 손에 힘을 주었다.
“으악!!! 컥... 컥....엑에엑.....”
노인은 도깨비의 손안에서 발광을 하더니 이윽고 숨이 끊어졌다. 도깨비는 노인이 숨이 끊어지자 웃으며, 노인을 그대로 집어삼켰다. 그 모습을 본 해림은 기절했고, 명진과 선주는 넋이 나갔다.
현우는 도망칠 것을 대비해 해림을 업었다. 현우는 어릴 때부터 귀신을 보아온 터라, 그나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건 처음이었다. 눈앞에서 순식간에 두명이 죽었다. 그 다음은 자신들의 차례일 것이다.
“이자식!!”
이보살이 소리 지르며 부적을 날렸다. 부적이 이상한 소리를 내며 도깨비를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도깨비가 방망이를 휘두르자 부적은 모두 힘을 잃고 땅에 떨어져 버렸다.
“이딴 종이쪼가리로 나를 막으려고? 아직 200년은 이르다. 당신은 죽음을 보는 자로군. 당신부터 처치해야겠어.”
말을 끝마치자마자 도깨비는 놀라운 속도로 이보살을 향해 방망이를 휘둘렀고, 이보살은 가까스로 방망이를 피했다.
“으윽... 이거 도저히 상대가 안되는군... 또 장군님을 불러야 하는 것인가... 이번엔 쉽게 오시지 않을 텐데... 제기랄!!”
이보살이 다음 공격을 준비하려는 찰나, 도깨비의 방망이가 한번 더 휘둘러졌고, 이보살은 그것을 피하지 못하고 날아가 벽에 부딪혔다.
“윽....으윽...”
이보살은 엄청난 고통에 말을 잇지 못했다. 도깨비는 바로 이어서 엄청난 힘으로 느끼클럽 회원 3명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죽였다.
잘 버티던 명진과 선주도 그 자리에서 기절했고, 이보살도 그 끔찍한 장면에 치를 떨었다.
도깨비는 회심의 미소를 짓더니, 성큼성큼 현우의 앞으로 다가왔다. 현우는 이제 끝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어떻게 되던지 자신에게 업혀있는 해림이만은 살리고 싶었다.
하지만 이 괴물 앞에서는 도저히 안 될 것이리라. 그러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다. 그 흉측한 도깨비가 현우의 앞에 무릎을 꿇었던 것이다.
“이제 각성하실 때가 되셨습니다. 죽음을 다스리시는 자여...”
이보살은 매우 충격을 받았다. 현우가 죽음을 다스리시는 자라니...
“무....무슨 소리야!! 내가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니!! 난 아니야!!”
현우는 고래고래 악을 질렀다. 그러나 도깨비는 현우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내밀었다.
“이제 저와 함께 가셔야합니다.”
현우는 이제 두려움보다는 화가 치밀었다. 대뜸 와서 도대체 이게 무슨 말인가?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니...
“말도 안돼! 난 평범한 학생이라고!! 죽음을 다스리는 자 따위는 될 수도 없단 말이야.”
현우는 있는 힘껏 소리쳤다. 그러나 현우는 불안했다. 어릴 때부터 영혼을 볼 수 있는 자신의 눈, 아직도 멀었느냐는 이상한 꿈, 그리고 이상한 노인이 얘기해준 이야기...
이 모든 것이 자신이 죽음을 다스리는 자라는 것을 뒷받침 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이 불안감이 커질 수록 현우는 점점 더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 대답을 하지 않으시군요. 그럼 억지로라도 저와 함께 가셔야겠습니다.”
“뭐야? 이 도깨비새끼 난 가지 않겠다고 말했잖아!!!”
현우는 자신의 말을 무시하는 도깨비가 점점 더 미워졌다. 자신의 행복을 파괴하려는 이 존재가 점점 더 증오스러워졌다. 그때였다.
“억! 이게 뭐야!! 네놈들은!!”
“어떻게 저자들이!!”
이보살은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 산장안으로 수많은 영혼들이 밀려들어오고 있었고, 영혼들이 도깨비를 둘러싸고 기어 올라가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아까는 신부님이 계셔서 들어 올 수 없었지... 지금은 신부님이 돌아가셨으니 빛이 사라졌겠구나... 젠장 이거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으악! 이 비천한 영들이 이게 도대체 무슨 짓인가!! 네놈들은 나를 해칠 권한이 없어!!”
“넌..... 그 분을 깨우려 하고 있어.... 이 세상에 지옥을 불러오실 분.... 우리는 그 분을 막아야해... 우리의 세상을 위해....”
도깨비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방망이를 휘둘렀다. 방망이에 맞은 영들은 바로 소멸되었지만, 너무나 많은 수였다. 결국 도깨비는 영들의 공격에 쓰러졌다.
“안돼... 오늘이 지나면 다시 또 몇 년을 기다려야해... 오늘 데리고... 죽음을 다스리는 자여.....”
도깨비는 마지막까지 현우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결국 죽고 말았다. 도깨비가 죽으니 몸이 순식간에 재로 변하여 흩어졌다.
“휴... 일단은 이긴 건가?”
이보살은 현우와 해림에게로 달려갔다. 그리고 기절한 사람들을 모아서 영혼들이 들어오지 못하게 조그만 결계를 쳤다. 얼마 가지는 않을 것이다.
“여보게... 몸은 괜찮나?”
이보살은 얼이 빠져있는 현우에게 물었다. 현우는 이보살은 쳐다보았다.
“아저씨... 아저씨는 뭐하는 사람이에요? 도대체...아까 보니 이상한 술수도 쓰던데...”
“아.. 난 무당이란다. 그래서 저런 괴물들을 좀 알지... 으윽... 팔이 부러졌나보다...”
“아...아저씨... 다 들으셨지요? 저는 죽음을 다스리는 자래요...”
현우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이보살은 측은해졌다. 아직 창창한 젊은이인데....
“너무 신경쓰지 말거라. 운명은 모든 것을 포함하는 것이거든...., 운명이라면....”
현우는 이보살을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오늘 아침에도 그 말을 해준 할머니가 있는데... 난 진짜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가 봐요... 난 평범한 사람이 아니니까요. 난 저 영혼들이 보인단 말이에요!...으흑...”
이보살은 놀랐다.
“영혼이 보인다고? 너도 죽음을 보는 눈이라고?”
“네... 어릴 때부터 귀신이 보였는데... 아주 어릴 때부터...”
이보살의 얼굴은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자네같은 사람이... 설마... 영혼을 보는 눈이라니.... 요사이 이상
한 일이 벌어지지 않았나? 자네의 신변에...”
“어떻게 아저씨가.... 알고 계세요? 요새 이상한... 꿈을 꾸고 있는데... 도망치려하지만 도망 칠 수가 없어요... 아직도 멀었느냐는 소리도 막 들리고.... 막 무슨 무기도 보여요...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가 쓰던 무기 같은...... 아...저씨???”
이보살의 얼굴은 이제 완전히 새파랗게 질렸고, 몸도 덜덜 떨고 있었다.
“너넌.... 그 분이야....설마... 어떻게 이런 곳에서 만나다니....”
“역시... 전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가요?...”
“그건 모르겠어... 그렇지만 넌... 내가 알기에... 넌... 무당이 되어야 해...”
현우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당이라니 생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그게 도대체 무슨 소리에요?”
이보살은 결계를 살펴보았다. 이제 영혼들은 결계를 거의 부수어 갔고 결계는 얼마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보살은 다급하게 말했다.
“잘 들어... 난 그 죽음을 다스리는 자인지 뭔지 그자가 너라는 건 잘 몰라. 그렇지만 이건 확실해 넌 ‘그 분’을 받을 유일한 무당이야. 우리 무당들 사이에서는 전설이 하나 내려오는데, 모든 무당이 받기를 원하지만 너무나 강력한 힘 때문에 받기만 하면 자신의 영혼이 불타버리는 ‘그 분’...
그 신을 받을 유일한 무당은 오로지 그 신께서 정하신다는 거야. 그 증거로 그 분이 쓰는 그 무기가 보이는 거야. 그러나 넌 강력한 의지로 계속 그 분을 피하고 있었어... 어떻게 그런 일이... 그 분의 의지로 너의 의지를 꺾을 수 없다니... 넌 도대체... 아무튼 지금 넌 꿈을 꾸어야해... 그 꿈에서 그 무기를 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가 이 상태에서 살아나갈 수 있는 방법은 그 것 뿐일거야... 원래 무당이 되기 위해서는 신내림 굿을 받아야 하지만 그 분이 선택한 사람은 신내림 굿을 받을 필요가 없어.
그 무기를 잡으렴.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 그 무기를 잡기 전에 그 분에게 잡혀서 의지를 잃어버린다면... 그 분의 시험에서 탈
락하는 거지... 할 수 있겠니?”
현우는 너무나 정신이 없었다. 무당이라니 ‘그 분’ 이라니... 꿈에서 보던 ‘그 것’이 이렇게 대단한 존재였단 말인가. 현우는 망설였다.
무당이 되면 지금까지 누려왔던 삶과는 영원히 이별을 해야 할 것이다. 평범하게 학교를 다니고 피씨방을 가고 독서실을 가고 친구들과 노래방을 가고 쇼핑을 하고... 왠지 이 모든 것들과 영원히 이별을 해야할 것만 같은 기분에 현우는 너무나 우울해졌다.
“니 생각 어떤지 안다... 난 14살 때 신을 받았거든...”
“아... 엄청 어릴 때 받으셨네요...”
“그래서 잃은 것도 너무나 많았어.. 가족... 친구... 후훗 지금 감상에 젖어있을 때가 아니야...... 자 이건 몽유부(夢遊符)란다. 이걸 들고 눈을 감으면 바로 잠에 빠져 꿈을 꾸게 되지...
행운을 빈단다. 여긴 내가 맡으마... 목숨을 걸고 니가 깨어날 때까지 너의 친구들을 지키고 있으마...”
“안돼요... 난 못해요... 난... 내 삶을 잃고 싶지 않아요...”
이보살의 표정이 험해졌다.
“운명이야... 니가 이런다고 운명은 널 비켜가질 않아. 가끔 운명을 무시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 그러나 운명은 무시할 수 없어.
정해져 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마음대로 만들어가는 것이라고도 할 수 없는 게 운명이지... 니가 여기서 신을 받지 않으면 우린 모두 죽
어. 맘을 굳게 먹어라.”
현우는 무서웠다. 이 상황보다도 앞으로의 자신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더욱 무서웠다. 그러나 이젠 방법이 없었다. 현우는 잠시 부적을 바라보더니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곤 풀썩 쓰러져 잠이 들었다.
“부디... 살아서 돌아오너라.... 자 이제 영혼님들과 한바탕 놀아보실까?”
이보살은 두 손에 부적을 한가득 잡고 준비하고 있었다. 이제 결계는 10분정도 밖에 버티지 못할 것 같았다. 이보살은 눈을 감고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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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리고 또 달렸다. 숨이 턱에 차고, 다리에 쥐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현우는 멈출 수 없었다.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었다. 그러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자기가 왜 뛰는지 무엇 때문에 뛰는 지 알 수가 없었다. 저 멀리 무기가 보였다. 그러나 너무나 멀었다.
뛰기가 싫었다. 현우는 쉬고 싶었다. 점점 달리는 속력이 줄어들었다. 귓가에서 ‘그 것’이 속삭였다.
“그래... 쉬고싶지? 그럼 쉬어... 도대체 저걸 왜 잡아야 하는데? 니가 뭣 땜에?”
‘그래... 내가 뭣 때문에... 저걸.. 잡아야하지... 난 왜 여기에 있는 거지... 왜....’
현우는 생각해내려고 했다. 그러나 도저히 생각이 나지 않았다. 생
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파왔다.
‘그래. 생각하지 말자. 뛰지도 말자... 쉬자... 쉬고 싶어....’
현우의 발걸음이 더욱 느려졌다. ‘그것’의 속삭임은 더욱 달콤했다.
“그래... 쉬는거야... 이제 쉬자... 영원히.......”
현우의 발걸음은 이제 거의 걷는 것에 가까워졌고, 현우의 뒤에서 굉장히 기분나쁜 검은 그림자가 현우를 에워싸려고 했다.
그때였다. 현우의 머릿속에 스쳐지나가는 생각이있었다. 선주. 선주였다. 그리고 해림이 떠올랐다. 명진도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현우는 여기서 멈추어선 안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우는 달렸다. 숨이 차고 피를 토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멈추어선 안될 것 같았다. 저것을, 저 무기를 잡아야만 무든 것이 끝날 것 같았다.
현우의 귀에는 이미 ‘그 것’의 속삭임 따위는 들리지 않았다. 오로지 저것을 잡아야 한다. 그것 밖에는 없었다. 현우는 달리고 달렸다. 그리고 결국 무기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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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장. 이대로 끝인가?...쿨럭...”
이보살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부적을 날리고 있었다. 이미 10분전 결계는 깨졌다. 그러나 현우가 도통 일어날 생각을 하지 않자, 이보살은 마지막으로 결계를 하나 더 쳤고, 그것마저 이제 몇 분 후면 깨질 것이었다.
“결국... 이대로 끝인 건가... 안돼... 난 죽더라도 이 사람들만은 살
려야 한다... 을지문덕 장군님... 저의 영혼을 거둬 가시더라도 저 사람들은 지켜주소서...”
그러나 미처 이보살이 을지문덕을 불러내기도 전에 결계는 깨졌고, 영혼들이 폭풍같이 밀어닥쳤다.
“윽!! 안돼!!”
이보살은 죽을힘을 다해서 남은 부적을 모두 던졌다. 앞으로 쏟아져 나오던 영혼들은 모두 소멸되었다. 그러나 그 순간뿐이었다. 아직 남은 영혼들만 수백명 이었고, 그 영혼들은 다시 이보살을 향해 밀어닥쳤다. 이보살은 모든 것을 체념하고, 눈을 감았다. 그때였다.
“크아악!!”
한 무리의 영혼들이 이보살의 뒤에서 나온 빛에 맞아 소멸되었다. 이보살은 깜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현우가 서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현우의 몸을 빌린 ‘그 분’이었다. 이보살은 전율을 느꼈다.
전설로만 내려오던 일이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진 것이다.
“아... 당신은... 당신은 누구십니까?”
현우의 입을 빌린 ‘그 분’이 말했다.
“내가... 누구인지 알고 싶은가... 그럼 일단 이 조무래기들부터 처리하고 말해주지...”
‘그 분’의 영에서 이보살이 쳐다보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투기와 패기가 흘러나왔다.
“나의 힘은 드넓은 고구려의 기상이니... 나의 충성스런 부하들아... 너희들의 힘을 보여라!”
‘그 분’의 입에서 말이 흘러나오자마자 엄청난 수의 군사가 허공에서 나타났다. 그리고는 영들을 닥치는 대로 소멸시키기 시작했다. 이보살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이보살은 ‘그 분’이 누구인지 알 것 같았다. 적들에게는 일말의 자비심도 보이지 않는 전쟁의 왕..... 이보살은 눈을 감았다.
이제 영들은 거의 다 소멸되었고, 남은 영들은 열명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분’은 그들을 소멸시키지 않았다. 그리고는 군사를 거두었다.
“너희 들이 이 일의 장본인들이렸다!!”
‘그 분’이 남은 영들에게 호통을 쳤다. 그러나 영들은 두려움에 흩어져 도망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4명의 영은 남아있었다. 이보살은 눈을 뜨고 그 영들을 바라보았다.
그 영들은 여느 영들과 똑같은 모습이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이상한 것은, 그 영들의 눈은 모두 빨간색이었던 것이다. 4명의 영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남자 영이 말했다.
“그렇소... 우리들이..... 죽음을 다스리는 자에 대해서... 이 산속의 영들에게 말을 했고... 그래서.... 영들이 사람들을 해치게 된 것이오.... 그러나... 우리의 계획은 실패로 돌아갔소... 아직 죽음을 다스리는 자가 각성하지 않았소.... 우리는 그가 각성한 뒤에... 그를 없애려했으나... 멍청한 영들이 무작정 일을 저질러버려서.... 그러나... 당신은 전혀 계획에 들어있지 않은 인물이었소... 당신은... 도대체 ...... 누구시오... 누구신데... 이렇게 죽어서 혼만 남아있는 우리들마저.... 제대로 서 있을 수조차 없게 만드는...... 그러한 패기를 가지고 계시오...”
‘그 분’은 이보살을 한번 쳐다보더니, 다시 영들을 쳐다보며 말했다.
“나는 고구려의 19대왕... 고구려의 기운을 타고난 전쟁의 왕.... 북방민족에게 파괴의 신으로 불리던 왕... 나의 시호는 국강상광개토경평안호태왕으로써, 너희들이 알고 있는 광개토대왕이다.”
이보살은 다리에 힘이 풀려 털썩 주저앉았다. 그렇다. ‘그 분’은 한반도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하고, 전쟁에서 지는 법이 없었으며, 타민족에게는 전쟁의 신으로 추앙받았으며, 우리나라의 역사에서 몇 안되는 ‘대왕’의 칭호를 부여받은 광개토대왕이었던 것이다.
“네놈들이 멋대로 꾸민 일에 나의 후손들이 목숨을 잃을 뻔하였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각오는 되었느냐.”
“후후... 이왕 죽은 몸... 소멸된다 해서 달라질 게 뭐가 있겠소... 대왕님의 손에 죽으니 참으로 영광이로소이다.”
영들이 그 말을 끝내자마자 광개토대왕은 친히 자신의 검으로 영들을 소멸시켰다. 이보살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못하고 벌벌 떨고 있었다. 광개토대왕은 이보살을 돌아보며 말했다.
“자네도 무당이로군... 자네의 몸에도 나의 까마득한 후손들이 보이는구만... 허허허... 난 이만 물러가겠다. 지금은 나의 의지로 모든 것을 행했지만, 앞으로는 내가 몸을 빌린 이 청년의 의지가 나를 지배할 것이다. 곧 나의 힘이 이 청년의 힘이 되어, 나의 군대를 부리며, 나의 검을 쓸 것이다. 자네가 이 청년을 보살펴주게, 이제 이 청년은 자신의 삶을 다가올 커다란 위험에 담을 것이라.”
“커다란 위험이 무엇입니까?...”
“나도 잘은 모른다. 그러나 느껴진다. 곧 세상은 어둠의 힘에 지배당할 것이다. 그때에 나의 힘을 가진 이 청년이 뛰어난 활약을 할 것이다.”
“그럼... 역시 죽음을 다스리는 자는.....”
“아니, 그것은 나도 모른다. 이 청년이 그렇게 될지는 앞으로의 일에 달려있겠지... 무당, 그럼 다음에 또 만나세. 이 청년을 잘 보살펴주게나!! 아주 내 맘에 쏙 드는 청년이야. 우하하하!”
광개토대왕의 영은 크게 웃으며 사라졌고, 현우는 털썩 주저앉았다.
“괜찮아?”
현우는 씁쓸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오. 배가 고파서 죽을 거 같아요...”
이보살은 싱긋 웃었다. 광개토대왕의 말대로 이 청년은 앞으로 크게 되리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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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몽같은 하루가 지나갔다. 산장에는 경찰들이 와서 대대적인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이미 그 자리에는 현우일행은 없었다. 거기에 있어봤자 경찰들에게 이리저리 채여 성가시기 때문이다.
현우는 이보살을 따라 가기로 하였다. 선주, 해림, 명진은 이보살의 힘을 빌어 산장에서의 기억을 지웠고, 현우의 부모님께는 현우가 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는 생각을 심어두었다. 이 모든 것은 이보살의 신, 천재 명의 허준의 힘 덕분이었다.
“현우오빠... 지금 떠나면 이제 언제 보는 거지?”
해림이 눈에 눈물을 글썽이며 물었다...
“언젠가 우리의 인연이 닿을 때...”
“에이... 뭐야... 공부만 하고 돌아올 건데... 다시는 못 만날 사람처럼 말하냐..”
“푸훗. 선주 너한테 좋은말은 언제 들어보겠니 내가.”
“그나저나 몸조심하고 잘 다녀와라. 갔다올때는 우리 동생 데리고 갈 준비하고.”
“오빠!!”
“명진이 너 그렇게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지 마... 진짜 그래야 될 것 같잖아...”
“현우오빠!!”
세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 해림은 삐진 것 같았지만 내심 속으로는 좋은 것 같았다.
“그럼 잘 다녀오렴. 공항까지 가줘야 하는데... 니가 한사코 말리니 여기서 배웅하마.”
“고맙다... 꼭 다시 보자.”
“이녀석 3년뒤에 올거면서 무슨 영영 떠나버리는 것처럼 말하는 거봐.”
현우는 웃었다. 그러나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기약 없는 이별이었다. 지금 이보살을 따라서 전국을 돌아다니며 무당의 길을 걸으려면 몇 년이 걸릴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래... 아무튼 고맙다. 이제 갈게. 잘 있어.”
현우는 차에 올라탔다.
“이제 출발해도 되겠지?”
이보살이 물었다. 현우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보살은 출발했다.
“그나저나...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는 겁니까?”
“나도 잘 모르겠다만... 강원도에 내 스승님이 계시거든? 그분께 일단 먼저 가보자. 앞으로 우리의 일에 대해서 뭔가 알고 계실지도 몰라. 그분은 굉장한 예지능력을 지니셨거든..,”
현우는 창밖으로 하늘을 쳐다보았다. 맑은 겨울하늘이었다. 그러나 하늘은 너무나 슬픈 표정을 짓고 있었다. 현우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그래... 나의 길이라면... 내가 앞으로 닥쳐올 세상의 위험에서 어떤 역할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포기하지 않겠어...’
현우는 모자를 푹 눌러썼다. 좋은 생각만 했다. 그러나... 눈물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현우와 이보살은 앞으로 나아갔다.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어두운 미래를 위해....
<현우의 이야기> 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