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 content="Microsoft DHTML Editing Control" name=GENERATOR> 친정어머니와 부동산 내 어릴적 친정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가을이면 추수를 한 곡식을 팔아 몫돈을 모으시고 몇년간 모은 돈으로 어머니는 기름진 논을 사셨다. 많은 전답을 몸이 약한 아버지 혼자 힘으로 감당이 어려워 머슴을 데려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셨지만 자녀들 뒷바라지에 늘 돈이 모잘랐다. 우리형제들은 시골에도 학교가 있었지만 고등학교 부터는 마산에서 다녔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나중엔 우리형제들이 사는 마산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하시고 이사를 하셨다... 어머니의 시골 논이 아닌 최초의 부동산은 그 작은 아파트이다. 그것도 대부분 나의 도움으로.. 그 아파트는 우리가족이 살기 위해서 산 것이다. 다음에 학교를 졸업한 남동생이 건설회사에 취직을 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상가를 하나 샀다. 그런데 동생은 공부가 더 하고 싶어 유학을 가고 싶다며 자신의 힘으로 산 상가를 팔아 유학 경비를 만들겠다고 하여 어머니가 가진 돈을 동생 유학 비용으로 대고 상가는 계속 동생 명의로 있지만 실제 주인은 어머니가 됐다. 부모님 연세 환갑을 지나 퇴직금과 일생동안 칠남매를 키우며 푼돈을 모아 저축한 돈과 시골에 있는 논을 약간 팔아 진영의 허름한 집을 구입했다. 그곳은 앞으로 개발예정지구라 시골이지만 만만치 않은 돈을 주고 샀는데 지금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 사시지만 개발이 완료되면 大路가 생길 예정이라 어머니 생전 어쩌면 십년쯤 지나서 빌딩을 짖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논을 사고, 마산에서 아파트를 사고, 다른 도시에 상가를 사고, 마지막으로 지금 사는 집을 산것 중에 투기를 위해 산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고 노후에 자식들 신세 안지고 고생 않고 살기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사시며 구입한 부동산이다. 그곳엔 어머니의 피와 땀과 험한 세월 참고 살아온 노고가 담긴 것이다. 이번 태풍 매미가 내 고향마을과 우리가족이 오랫동안 살았던 마산 어시장 근처를 쑥대밭을 만들고 지나갔는데 우선 내 어머니가 재해를 피할 수 있어 자녀로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아직 고향에서 농사를 짖고 사셨더라면 더 늙었을것 같고 빚이 많을 터인데.. 그리고 올해 지은 농사를 망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실텐데... 지금 사는 집도 주위엔 대부분 슬레트집이라 지붕이 날라가고 난리인데 3년전 마산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지은 빨간 벽돌집은 피해를 면했다. 우리형제들을 마산에 있는 학교를 보낼때 고향마을 몇몇분들은 부보님 흉을 많이 보셨다고 한다. 잘난(하찮다는 뜻) 딸 공장에나 보내지 고생하며 공부시킨다고... 나는 내가 자라며 어머니가 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낮에는 밖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안 일을 하셨기 때문에.. 몇년 후 내가 직장 다닐 때.. 우리부모님 흉보던 고향분들의 자녀들이 직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 넣어(입사)달라는 부탁하러... 나는 가능한 부탁 모두 들어 줬으며 야간 학교 공짜로 다닐 수 있도록 회사측에 손을 써주기도 했다. 그뒤로 고향사람들이 어머니께 하던 흉이 칭찬으로 바뀌었다. 나는 일생을 최선을 다해 사신 어머니를 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나도 어머니처럼 살고 싶다.
친정어머니와 부동산
친정어머니와 부동산
내 어릴적 친정부모님은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사셨다.
가을이면 추수를 한 곡식을 팔아 몫돈을 모으시고 몇년간 모은 돈으로 어머니는
기름진 논을 사셨다. 많은 전답을 몸이 약한 아버지 혼자 힘으로 감당이 어려워
머슴을 데려 어머니와 함께 농사를 지으셨지만 자녀들 뒷바라지에 늘 돈이 모잘랐다.
우리형제들은 시골에도 학교가 있었지만 고등학교 부터는
마산에서 다녔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나중엔 우리형제들이 사는 마산에 조그마한 아파트를 장만하시고 이사를 하셨다...
어머니의 시골 논이 아닌 최초의 부동산은 그 작은 아파트이다.
그것도 대부분 나의 도움으로.. 그 아파트는 우리가족이 살기 위해서 산 것이다.
다음에 학교를 졸업한 남동생이 건설회사에 취직을 해서 모은 돈으로 작은 상가를 하나
샀다. 그런데 동생은 공부가 더 하고 싶어 유학을 가고 싶다며 자신의 힘으로 산 상가를
팔아 유학 경비를 만들겠다고 하여 어머니가 가진 돈을 동생 유학 비용으로 대고
상가는 계속 동생 명의로 있지만 실제 주인은 어머니가 됐다.
부모님 연세 환갑을 지나 퇴직금과 일생동안 칠남매를 키우며 푼돈을 모아
저축한 돈과 시골에 있는 논을 약간 팔아 진영의 허름한 집을 구입했다.
그곳은 앞으로 개발예정지구라 시골이지만 만만치 않은 돈을 주고 샀는데
지금 헌집을 헐고 새집을 지어 사시지만 개발이 완료되면 大路가 생길 예정이라
어머니 생전 어쩌면 십년쯤 지나서 빌딩을 짖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어머니가 시골에서 논을 사고, 마산에서 아파트를 사고, 다른 도시에 상가를 사고,
마지막으로 지금 사는 집을 산것 중에 투기를 위해 산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 자식들 먹이고 공부시키고 노후에 자식들 신세 안지고 고생 않고 살기위해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사시며 구입한 부동산이다.
그곳엔 어머니의 피와 땀과 험한 세월 참고 살아온 노고가 담긴 것이다.
이번 태풍 매미가 내 고향마을과 우리가족이 오랫동안 살았던 마산 어시장 근처를
쑥대밭을 만들고 지나갔는데 우선 내 어머니가 재해를 피할 수 있어 자녀로 정말
다행한 일이다. 아직 고향에서 농사를 짖고 사셨더라면 더 늙었을것 같고 빚이
많을 터인데.. 그리고 올해 지은 농사를 망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실텐데...
지금 사는 집도 주위엔 대부분 슬레트집이라 지붕이 날라가고 난리인데
3년전 마산에 있는 아파트를 팔아 지은 빨간 벽돌집은 피해를 면했다.
우리형제들을 마산에 있는 학교를 보낼때 고향마을 몇몇분들은 부보님 흉을
많이 보셨다고 한다. 잘난(하찮다는 뜻) 딸 공장에나 보내지 고생하며 공부시킨다고...
나는 내가 자라며 어머니가 쉬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낮에는 밖에서 일하고 밤에는 집안 일을 하셨기 때문에..
몇년 후 내가 직장 다닐 때..
우리부모님 흉보던 고향분들의 자녀들이 직장으로 나를 찾아왔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 넣어(입사)달라는 부탁하러...
나는 가능한 부탁 모두 들어 줬으며 야간 학교 공짜로 다닐 수 있도록 회사측에 손을
써주기도 했다. 그뒤로 고향사람들이 어머니께 하던 흉이 칭찬으로 바뀌었다.
나는 일생을 최선을 다해 사신 어머니를 이 세상 누구보다 존경하고
나도 어머니처럼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