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노리카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자 부관은 어쩔줄을 몰라하며 겨우 말을 이었다.
"예.....그게....... 가짜입니다." "확실한가?"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오래전 만들어진 로봇의 부품들이라고 합니다." "로봇이라니?" "호파스의 비행선에서 보았던........ 구식 전투로봇입니다." "그걸 알아내는데 며칠씩이나 걸렸단 말인가?" "물건을 파손할까봐 조심하다 보니......" "이럴수가......... 당했군........" "그 자가 살아있다면 경비를......." "그가 날 죽이고자 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미노리카는 의자에 몸을 던지듯이 앉으며 절망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명성대로군."
미노리카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병원에 누워있는 리코사령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 우리의 작전을 모두 봉쇄한 인물입니다. 절대 그냥 있지 않을겁니다. 조심하십시오.'
후회가 일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동료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거나 헤밍스의 만행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료를 인질로 잡고 처음부터 조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그녀에겐 또 다른 무서운 적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이 무거워지는 찰나, 밖에서 뛰어온 경비병이 경례를 붙이는 것도 잊고 더듬거렸다.
"가가....각하! 크...크크....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부관이 다그치자 경비병이 겨우 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때 그 놈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경비초소를 전부 부수고..... 이쪽으로......" "쿠앙!"
무언가 지글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의 총소리도 들려왔지만 그 속에 군인들의 비명소리도 함께 들렸다. 미노리카는 벌떡 일어서며 서랍속에서 총을 꺼내들었고 부관도 허리춤의 총을 꺼냈다. 하지만 갑자기 잠잠해진 밖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부관이 땀을 흘리며 경비병을 향해 턱짓을 하자 경비병이 덜덜 떨며 겨우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하지만 연기만 자욱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연기가 거의 다 빠져나가도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미노리카가 직접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나와라!"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미노리카는 총을 허리춤에 찔러 넣으며 부관에게 명령했다.
"피해상황을 보고하고 모든 출입문에 그와 같은 자가 나타나면 공격하지 말라고 전해라." "하지만 각하. 그는 상처를....." "괴물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이대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날 밤, 미노리카의 거처가 있는 건물의 주변엔 수많은 군인들이 경계를 강화하는데 동원되었다. 스파키는 군인들의 움직임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눈빛은 강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미노리카는 리코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전기를 뿜어대는 이방인을 놓치고 며칠째 한숨도 자지 못하던 그녀는 오늘의 소란을 끝으로 그가 사라지길 바라며 겨우 잠에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볼을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깨고 말았다.
"뭐.... 헉!" "잘 자는군." "어..... 어떻게....." "경비가 강화될수록 규칙성을 띄는 법이지. 규칙이 있는 한 빈틈은 있다."
미노리카가 이불을 걷으며 윗몸을 일으켰을 때, 스파키는 바로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챘다. 그녀의 손엔 권총이 들려있었다. 총을 쥔 손을 통째로 잡은 그는 안전장치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그대로 팔목을 꺽었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스파키가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바짝 갖다댔다.
"네 비명이 이 나라의 마지막 외침이 될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스파키는 모니터에 환하게 불이 들어온 소형 컴퓨터를 흔들었다.
"이게 뭔지 아나?" "설마......" "그래. 컴퓨터다. 핵탄두에게 자폭코드를 전송하는 일은 아주 쉽게 생각하는 놈이지. 물론 호파스의 작품이니 그 품질은 확실하다."
미노리카의 눈이 커지자 스파키는 얼굴의 두건을 벗으며 그녀의 눈을 조용히 응시하더니 눈에 힘을 실어 가느다란 스파크를 튀겼다. 그걸 보는 미노리카의 심장은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고 이마에선 뜨거운 땀이 솟기 시작했다. 단 한번의 실수로 국가의 운명이 이 남자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호파스와 노엘, 그리고 아리아와 쟌느라는 여자들을 찾아내라. 찾아내는 즉시 구출해서 안전하게 이 도시 안에 데려다 놓고 날 기다려라." "왜 내가 그런 일을 해야 하지?" "나라를 구해야 하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난 지금도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스파키는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력의 양을 높였다. 그러자 스파크가 그녀의 몸에 닿았고 짧은 순간이지만 미노리카는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나 비명조차 낼 수 없었다.
"내 동료를 꼭 찾아라. 만일 그들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생기는 날엔 난 이 컴퓨터를 헤밍스에게 주겠다." "그가 어떤 자인지 아나?" "좀 더 겸손해라."
스파키가 다시 전력을 쓰려고 하자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히며 떨었다.
"그, 그만! 당신의 뜻을 알았어요." "그냥 아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최선을 다하겠어요. 그러니 그것을....." "그리고 도시 남쪽에 작은 비행선을 준비해라. 충분한 식량과 물과 함께." "다른건 없나요?" "내일 당장 도시 중심에 이 칼과 똑같이 생긴 기념비를 세워라. 그리고 여기에 적힌대로 세겨라." "이건 왜......" "말이 많군." "알았어요. 정말 당신의 동료들만 찾으면......" "당신이 약속을 이행한다면 핵탄두는 헤밍스의 침대 밑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당신의 것이 된다. 물론 암호도 함께." "좋아요."
스파키의 마지막 말은 그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왜 이 무지막지한 자가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인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핵탄두의 기폭장치를 손에 넣고 그것이 헤밍스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된다.
"다시 자라."
이 말과 함께 스파키는 그녀의 목 뒤에 손을 댔다. 미노리카는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다음날 새벽 바로 부관을 불렀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갈 때, 광장에 커다란 기념비가 세워졌다. 타흐만이 그 기념비 앞에서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며 입이 양쪽으로 찢어진 채 웃고 있었다. 그 기념비 밑에 있는 글을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위대한 군인의 후손이 위대한 평화의 장을 열어갈 것이다."
그의 옆에서 주위를 살피던 흑인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목. 일이 많이 밀렸는데요. 서쪽 입구로 마약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가자. 잡으러." "근데.... 두목." "왜?" "저 비석같이 생긴것 말입니다. 모양이 어디선가 꼭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는 부하에게 그는 작은 단도를 꺼내 보여줬다.
"이거 말이냐? 내 아들거다. 임마."
부하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타흐만은 계속 웃었다.
스파키와 캔은 비행선을 숨기기 위해 많은 양의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스파키는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캔은 아직 후유증이 남았는지 땀을 많이 흘렸다.
"캔. 괜찮냐?" "네. 견딜만 합니다." "미안하구나."
스파키는 캔의 눈을 보며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작전때문에 캔의 여동생까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타흐만이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걷기 시작했다. 숲을 지나 언덕을 지나자 바로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게......" "내 조국이었던 곳이다." "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지. 지금은 다르다. 빚을 받아야 할 뿐이지." ".........."
캔이 무슨 소린지 궁금한 표정이 되자 스파키는 퍼석 웃었다.
"자, 가자."
그들은 누가 보아도 장사꾼으로 보였다. 둘 다 지저분한 외투를 걸치고 커다란 짐을 멨다. 짐 속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작은 단도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여러가지 장신구와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이 입구에 다가가자 총을 든 군인 두 명이 앞을 막았고 입구의 위쪽에 있는 초소에서는 기관총을 겨냥하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로 왔나?" "장사꾼입니다." "어디서 왔나?" "지금 막 러시아 시티에서 좋은 물건들을 갖고 오는 길입죠..... 헤헤....."
스파키는 허리까지 굽신거리며 말했지만 군인들은 엄한 표정을 하며 총을 들이댔다.
"짐을 풀어라. 확인해야겠다." "예~ 예~ 대신 흠집만 내지 마십쇼. 그럼 값이 떨어지거든요." "잔말 말고 어서 풀어봐."
스파키와 캔이 짐을 내려놓자 군인들이 짐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군인이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꺼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스파키는 왜 저러나 하며 보다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손에 들려진 물건은 남자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모형이었다.
"이건 뭐야? 이 변태자식." ".............."
스파키도 캔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군인이 뭘 눌렀는지 그것이 요상하게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자 군인들이 크게 웃어댔다.
"크하하하. 이런 게 다 있다니...... 이자식..... 이런거 팔려고 왔냐?" "이야~ 그거 이리 줘봐. 쥑이는데~"
그때, 스파키가 얼른 다가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헤헤..... 이건 그냥 인사드리는 겁니다요......" "음... 흠흠..... 이런걸 다......"
군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 이상한 물건을 다시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많이 팔고 가슈." "거 여자처럼 생긴 건 없소? 있으면 내가 살텐데." "헤헤..... 담에 올때 구해보겠습니다."
무사히 짐을 챙겨 도시 안으로 들어온 스파키와 캔은 우선 작은 여관에 들러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은 상태여서 칼은 두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우선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술집에 들어서자 상당히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했던 그곳은 오히려 조용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스파키는 타흐만이 준비해 준 아메리카시티의 화폐를 확인했다. 군인들에게 거의 대부분을 주는 바람에 얼마 남지 않았지만 대충 보니 여관비와 술값은 계산할 수 있을 듯 했다.
"저...... 스파키..... 전 술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요."
이런 분위기를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캔이 기죽은 표정으로 묻자 스파키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술을 잘 못먹는 부하가 있으면 언제나 행하던 행사...... 스파키는 오랜만에 캔을 남자로 만들고 싶어졌다.
"지금 배우면 된다." "예? 뭘 배웁니까?" "술 먹는법." "그것도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전에 보니까 호파스는 그냥 마시던데....." "바로 그게 방법이지."
귀여운 여직원이 지나가는 것을 본 스파키는 바로 손가락을 튕겨 부르더니 가장 독한 술을 시켰다. 곧 커다란 잔에 검은 액체가 담겨서 날아왔고 스파키가 먼저 잔을 들며 말했다.
"이렇게 잔을 들고 서로 살짝 부딪힌다." "이....이렇게요?" "그렇지."
캔이 잔을 가져다 부딪히자 스파키가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크아~"
예상은 했었지만 순수 증류법이 아닌 것에 의해 만들어진 술은 너무 독했다. 스파키 자신도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코에서 독한 알콜내음이 진하게 올라오는 것이 정신을 어질어질하게 하는 듯 했다.
"자, 너도 마셔."
스파키가 웃으며 권하자 캔도 잔을 입에 가져가더니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한모금을 마시자마자 입을 뗐다.
"크악~ 이걸 어떻게 마십니까?" "더 마셔봐. 알테니까." "윽......."
스파키가 엄한 얼굴을 하고 노려보자 캔은 억지로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얼굴을 테이블에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그는 캔이 귀엽게 보였다. 쓰러진 캔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스파키는 다시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술 한잔 더. 좀 약한 걸로 부탁해." "어머, 고맙습니다."
스파키가 여종업원이 든 쟁반에 동전 두개를 올려놓으며 얘기하자 종업원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아마 저 정도면 술값을 계산하고도 넉넉하게 남는 모양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도시의 술 공급이 원활하고 술이 넉넉하단 얘기는 그만큼 생활이 윤택하다는 증거다. 스파키가 두번째 잔을 들어 입술로 가져가는 순간,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다. 죽은듯이 누워있던 캔이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우아~ 이게 뭐야~" "캐.....캔.." "어? 이게 누구야? 잘난 우리 스파키 아냐? 도데체 내 동생은 어디 있는 겁니까? 앙?" "이런......."
스파키가 얼른 일어나 캔의 팔을 잡았지만 캔은 팔을 뿌리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술 더 가져와!" "앉아라."
스파키가 조용히 얘기했지만 이미 캔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나 앉아! 난 이거 더 먹을거야. 야! 더 가져오라니까! 야!"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걱정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저쪽 구석에서 머리를 모으고 무언가 열심히 얘기하던 떡대 세명이 일어서더니 바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는지 앉았던 다리에서 일어서며 길을 비켜주기에 바빴다. 스파키는 사태가 커지기 전에 수습하기 위해 얼른 손을 썼다. 캔의 팔을 잡으며 전력을 살짝 올렸다. 그냥 기절이라도 시키려고 그런 것인데 그게 좀 약했는지 더 안좋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억! 으아~ 이 전기뱀장어~" "윽.... 캔..... 앉아라. 제발....." "어? 저기 적들이 온다. 돌연변이 하나.....둘......오호~ 세마리군." ".........." "내가 전부 헤치울까요? 금방인데...... 어? 근데 여긴 어딥니까? 왜 이렇게 비행선이 흔들립니까?"
이미 평화적인 사태수습은 물건너 가고 떡대 세 명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쥐새끼같은 놈...... 뭐? 돌연변이?" "죽여버려." "목만 비틀어."
스파키는 하는 수 없이 떡대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 친구가 좀 취했으니 이해해 주시기......" "뭐? 이해? 돌연변이가 무슨 이해를 해!" "............" "가진것 다 내놓으면 그때 생각해보지." "..........." "왜 대답이 없어? 우선 다리부터 분질러 놓고 얘기를 해야 하나?"
그때, 여종업원이 달려와 사정하듯 말했다.
"손님, 그만 하세요. 취한 사람이 실수한 걸 가지고......" "뭐야? 넌 비켜!"
떡대는 힘자랑이라도 하듯 종업원의 얼굴을 밀어버렸고 힘없이 날아간 그녀는 다른 테이블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전부 방금 여종업원을 밀친 떡대를 노려보았다.
"어쭈~ 째려보면 어쩔건데?"
어깨를 다쳤는지 한 쪽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일어선 종업원이 떡대를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실로 번개같은 솜씨였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놀랐지만 스파키는 그녀의 번개같은 발검술을 보았다. 가느다란 검의 끝이 떡대의 목 앞에서 멈추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목에 구멍이 더 필요한가? 도와줄수도 있는데." "이런.... 비겁하게....." "비겁? 좋아. 그럼 맨손으로 하자."
이렇게 말한 여자는 칼을 다시 집어넣더니 칼집을 풀어 동료들에게 던졌다. 칼집을 받아든 동료들은 전부 남자였지만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응원을 하고 있었다.
"이봐, 샤안. 살살하라구." "5분 안에 끝내면 내가 술 사줄께." "1분이면 족해."
목에 칼이 박힐 뻔 했던 떡대가 여자가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사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자는 쉽게 주먹을 흘리며 지나간 팔뚝을 잡더니 그대로 뒤로 돌아 떡대의 허리를 발로 밀며 팔을 잡아끌었다.
"끄악!" "어때? 아파? 저 여잔 팔이 빠졌다. 너도 빠져봐."
곧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떡대의 팔이 아래로 축 쳐졌다. 그걸 본 캔이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어? 이건 또 뭐야? 어...... 쟌느? 언제 왔니?"
캔이 다리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번에 도약하며 여잘 끌어안고 말았다. 여잔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캔을 피하지 못했고 그만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캔은 여자의 몸을 짓누른 채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이게......"
스파키가 얼른 다가가 캔의 몸을 들어서 카운터 쪽으로 집어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또 실수를......."
그때였다. 남은 두 명의 떡대가 동시에 스파키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무어라 경고의 말을 해주려고 했지만 스파키의 행동이 더 빨랐다. 스파키는 그대로 몸을 날려 먼저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턱을 정확하게 발로 가격하고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돌려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정수리에 주먹을 꽂았다. 전력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급소를 맞은 이상 다시 덤비진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놈들은 금방 벌떡 일어서며 스파키의 팔을 잡았다. 역시 덩치값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할만큼 놈들의 힘은 좋았다. 스파키는 하는 수 없이 아무도 모르게 전력을 돌리려는 찰나, 끼어든 여자의 동료 두명이 동시에 몸을 날리며 스파키 쪽으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곧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스파키를 잡았던 놈들이 나가떨어지며 다른 테이블을 덮쳤고 그 테이블의 손님들이 화가 나서 집단으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떤 취객은 소리를 지르며 무조건 뛰어들어 보이는대로 주먹을 휘둘렀고 팔이 빠진 떡대는 의자들을 집어던지며 자신의 팔을 뺀 여자를 잡으려고 했다. 순식간에 거의 모든 테이블이 쓰러지고 각자 자신의 술잔을 엎은 사람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그러는 와중에 그 여자가 스파키에게 소리쳤다.
"친구를 데리고 나가요! 어서!"
그 말에 스파키가 캔을 돌아보니 언제 깼는지 누군가에게 얻어터져서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힘겹게 사람들 틈을 빠져 나와 캔의 팔을 붙잡고 겨우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 스파키..... 아냐? 언제 왔어요? 날 버릴땐 언제고...." "잠깐 죽어라."
스파키는 기절할 만큼 캔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고 캔은 기절했다. 캔을 업은 스파키가 누가 보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자신들을 도왔던 사람들도 술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봐. 신세를 졌으면 인사를 해야지. 그냥 가면 어떻해?"
남자들은 둘 다 금발이었고 여잔 진하진 않았지만 붉은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캔이 착각을 일으킬만도 했다.
"어쨌든 미안하오." "말로는 안된다니까. 당신 친구가 우리 술자리를 망쳤으니까 당신이 한 잔 사면 되겠구만 그래." "..........." "술집은 많아. 내가 안내하지."
그들은 바로 근처의 다른 술집에 둘러앉았다. 처음 나섰던 여자는 엉겁결에 한 대 맞았는지 턱을 연신 주므르고 있었고 금발의 남자 중 덩치가 작은 자는 눈 한쪽이 멍이 들어 있었다.
"내 이름은 마크요. 그리고 이쪽은 무크. 내 형이지. 그리고 이쪽은 샤안. 여자라고 깔보면 다친다구."
마크라는 사내는 멍든 눈을 꿈뻑거리며 일행을 소개했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스파키도 인사를 해야 한다.
"난 스파키라고 하오. 이쪽은 캔." "그 친구 술이 약하구만...... 왜 술을 먹였소?" "처음 마신거요." "근데 그 독한 술을 먹인거요? 그게 무슨 술인지나 알고 있는거요?" ".........." "모르는가 보구만. 그거 데져드를 발효시켜서 만든 거요. 그 사막의 거미같이 생긴 놈 말요. 아쇼?"
스파키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설픈 얘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싸한 핑계가 필요하던 그는 딱 맞는 이름을 떠올렸다.
"저쪽 도시의 타흐만이 내 친구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장 놀라는 것은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근데 왜 여기까지 온거요?" "그 자 밑에서 일하다가 그냥 답답해서 떠났소. 난 구속은 싫어하는 체질이라서....." "우리 친구합시다."
뜬금없는 제의에 스파키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상대방들은 스파키의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친구라니..... 만난지 겨우....." "이것도 다 운명인거요.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것은 전부 ......." "그만해. 마크."
붉은 머리의 여자가 나섰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아시안이었다.
"죄송해요. 실은 저희는 용병이에요. 이 도시에서 용병에게 비싼 임금을 준다고 해서 왔어요. 근데 다섯명이 동시에 가면 돈을 더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안해 본 거에요." "용병이라......"
갑자기 튀어나온 용병이라는 단어에 반가움이 일었지만 스파키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난 이곳에 오면서 돈 대신 물건을 가져왔소. 딱히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긴 한데...." "어때요? 당신 실력이면 시험에 통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텐데요." "이 친구가 깨어나면 상의해서 결정하겠소." "좋아요."
샤안이라는 여자는 스파키의 희망적인 대답에 활짝 웃었다. 그때, 캔이 벌떡 일어섰다.
"어? 쟌느! 언제 왔어~"
캔이 또 다시 샤안을 안으려 하자 이번엔 마크와 무크형제가 동시에 캔을 기절시켰다.
스파키는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지만 갑자기 친구?가 되어버린 일당들 때문이다. 돈이 없다며 같이 들어온 이들은 각자 베낭을 메고 바닥에 드러누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숙박비를 냈다는 것을 인정받아 스파키와 캔이 침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방 안은 작은 진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스파키도 거친 사내들 틈에서 생활하던 주인공이지만 이렇게 심하게 코고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특히 샤안의 소리가 특이했다. 누가 여자 아니라고 할까봐 날카롭게 코를 코는 소리는 정상인으로서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술이라도 많이 마실걸 그랬구만."
하지만 데져드로 만든 술의 향기가 떠오르자 그냥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다음날 스파키가 겨우 억지로 잠이 들었던 눈을 떠보니 일행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밑으로 내려와보니 식당에 전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캔이 먼저 스파키를 보았지만 그저 슬쩍 웃기만 할 뿐이었고 다음으로 샤안이 그를 보고는 의자를 권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캔에게 어제 일을 얘기해 주고 있는 중이에요." "저기....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
스파키는 말 없이 자리에 앉았고 바로 음식들이 날라왔다. 각자의 앞에 놓인 접시엔 이것저것 다양한 먹을것들이 보기 좋게 담아져 있었다. 캔은 조용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마크가 입심을 부렸다.
"어젠 덕분에 편하게 잘 잤소. 그나저나 어서 먹고 갑시다. 조금 있으며 용병모집을 위해 군대가 올거요." "얼마나 주는거요?"
스파키는 돈때문에 용병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한 것이었다.
"우리도 아직 몰라요. 우선 다섯명이서 가면 작은 부대로 인정해준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러면 더 많이 주겠죠. 뭐." ".............." "어쨌든 잘 하세요. 어제처럼......."
스파키는 좀 석역치 않은 생각도 들었다. 이들 앞에서 몸을 움직인 것은 단 한차례 뿐인데 실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을 꼭 꼬드겨서 데리고 가려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깨지 않았을 때, 캔을 데리고 먼저 식당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점도 마음에 걸렸다. 사교성이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용병이라는 자들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은 태도였다.
헤밍스는 새로운 동지를 앞에 두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동지는 얼핏 봐서는 인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피부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큰 구슬을 박은 것처럼 단단한 것이 존재했다. 귀도 상당히 컸고 머리칼 대신 머리 중앙에 두 개의 더듬이가 나 있었다.
"넌 버림받았다." ".........." "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패했지. 넌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만 너의 조국은 너 뿐만 아니라 희생된 네 부하들의 명예까지 더럽혔다." "..........."
헤밍스가 얘기하는 동안 작은 모니터에선 레니아가 헤밍스에게 말하는 장면이 녹음한 테잎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미코대령은 죽었다. 난 널 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넌 다시 태어났다. 넌 군인이다. 새로운 조국이 널 살렸다. 널 배신한, 너의 부하들의 죽음을 치욕으로 일관한 예전의 조국은 잊어라.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라. 이곳의 국민들도 너의 국민이 될 수 있다." "크으..........미노리카........"
미코는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의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을 배반한 모든 것에 대한 복수........ 미코는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레니아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화면을 부셔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헤밍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만든 로첸박사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러시아제국의 잔재들의 숨통을 조이기에 안성맞춤인 무기가 생긴 것이다. 헤밍스가 방에서 나오자 미코가 울부짖으며 방안의 모든 것을 부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코의 울부짖는 소리를 뒤로 하며 헤밍스가 희망이라도 느끼듯 중얼거렸다.
"이것으로서 새로운 계획을 시작한다."
-스파키의 일기- 젠장..... 오늘이 며칠이더라...... 일이 복잡해지고 있다. 호파스와 아리아, 쟌느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러시아는 핵으로 아메리카를 날려버리거나 협박하려 하고 아메리카는 아직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을 실험하여 생체병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타흐만이라는 자는 그런 실험의 희생물이 된 아내의 복수를 위해 나에게 일을 맡겼고 나 또한 헤밍스라는 작자의 면상을 확인하고 싶다. 아직 죽지 못한 자들..... 벌써 죽었어야 할 인간들에 의해 이 지구는 얼마나 더 추악한 모습으로 이 우주에 남아야 하는 걸까...... 호파스의 계획은 무엇일까...... 아리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를 지독하게도 닮은 그녀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무사해야 할텐데.
스파키의 전설 - 제6화 - 죽지 못한 자들의 희망 #10
미노리카는 부관의 보고에 머릿속이 텅 비는 것을 느꼈다.
"뭐....... 뭐라고? 비었어?"
미노리카의 눈이 당장이라도 튀어나올 것처럼 커지자 부관은 어쩔줄을 몰라하며 겨우 말을 이었다.
"예.....그게....... 가짜입니다."
"확실한가?"
"박사의 보고에 따르면 오래전 만들어진 로봇의 부품들이라고 합니다."
"로봇이라니?"
"호파스의 비행선에서 보았던........ 구식 전투로봇입니다."
"그걸 알아내는데 며칠씩이나 걸렸단 말인가?"
"물건을 파손할까봐 조심하다 보니......"
"이럴수가......... 당했군........"
"그 자가 살아있다면 경비를......."
"그가 날 죽이고자 한다면 아무도 막을 수 없다."
"하지만........"
미노리카는 의자에 몸을 던지듯이 앉으며 절망의 한숨을 쉬었다.
"역시....... 명성대로군."
미노리카는 다행히 목숨을 건져 병원에 누워있는 리코사령관의 말이 떠올랐다.
'그는 과거 우리의 작전을 모두 봉쇄한 인물입니다. 절대 그냥 있지 않을겁니다. 조심하십시오.'
후회가 일었다.
차라리 처음부터 동료가 되어달라고 부탁하거나 헤밍스의 만행을 말하고 도움을 구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동료를 인질로 잡고 처음부터 조종했더라면 이런 일은 없었을텐데......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이제 그녀에겐 또 다른 무서운 적이 생긴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며 머릿속이 무거워지는 찰나, 밖에서 뛰어온 경비병이 경례를 붙이는 것도 잊고 더듬거렸다.
"가가....각하! 크...크크....큰일 났습니다."
"무슨 일인데 호들갑인가?"
부관이 다그치자 경비병이 겨우 숨을 돌리며 말했다.
"그때 그 놈이 나타났습니다. 지금 경비초소를 전부 부수고..... 이쪽으로......"
"쿠앙!"
무언가 지글거리는 소리가 잠깐 들리더니 가까운 곳에서 무언가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다.
군인들의 총소리도 들려왔지만 그 속에 군인들의 비명소리도 함께 들렸다.
미노리카는 벌떡 일어서며 서랍속에서 총을 꺼내들었고 부관도 허리춤의 총을 꺼냈다.
하지만 갑자기 잠잠해진 밖에선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부관이 땀을 흘리며 경비병을 향해 턱짓을 하자 경비병이 덜덜 떨며 겨우 문을 열고 밖을 살폈다.
하지만 연기만 자욱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한참 시간이 흘러 연기가 거의 다 빠져나가도 어떤 그림자도 보이지 않자 미노리카가 직접 몸을 날려 밖으로 나가 소리를 질렀다.
"나와라!"
하지만 아무런 기척도 느껴지지 않자 미노리카는 총을 허리춤에 찔러 넣으며 부관에게 명령했다.
"피해상황을 보고하고 모든 출입문에 그와 같은 자가 나타나면 공격하지 말라고 전해라."
"하지만 각하. 그는 상처를....."
"괴물이다. 아무도 막을 수 없다. 이대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수밖에......"
그날 밤, 미노리카의 거처가 있는 건물의 주변엔 수많은 군인들이 경계를 강화하는데 동원되었다.
스파키는 군인들의 움직임을 보며 만족스런 표정을 지었지만 눈빛은 강하게 이글거리고 있었다.
미노리카는 리코의 상태를 확인하는 것을 끝으로 일과를 마치고 피곤한 몸을 침대에 뉘었다.
전기를 뿜어대는 이방인을 놓치고 며칠째 한숨도 자지 못하던 그녀는 오늘의 소란을 끝으로 그가 사라지길 바라며 겨우 잠에 들었다.
하지만 누군가 볼을 세게 잡아당기는 바람에 깨고 말았다.
"뭐.... 헉!"
"잘 자는군."
"어..... 어떻게....."
"경비가 강화될수록 규칙성을 띄는 법이지. 규칙이 있는 한 빈틈은 있다."
미노리카가 이불을 걷으며 윗몸을 일으켰을 때, 스파키는 바로 그녀의 오른손을 잡아챘다.
그녀의 손엔 권총이 들려있었다.
총을 쥔 손을 통째로 잡은 그는 안전장치를 손가락으로 돌리며 그대로 팔목을 꺽었다.
순간적으로 그녀가 비명을 지르려고 하자 스파키가 입을 틀어막으며 눈을 바짝 갖다댔다.
"네 비명이 이 나라의 마지막 외침이 될거다."
그렇게 말하면서 스파키는 모니터에 환하게 불이 들어온 소형 컴퓨터를 흔들었다.
"이게 뭔지 아나?"
"설마......"
"그래. 컴퓨터다. 핵탄두에게 자폭코드를 전송하는 일은 아주 쉽게 생각하는 놈이지. 물론 호파스의 작품이니 그 품질은 확실하다."
미노리카의 눈이 커지자 스파키는 얼굴의 두건을 벗으며 그녀의 눈을 조용히 응시하더니 눈에 힘을 실어 가느다란 스파크를 튀겼다.
그걸 보는 미노리카의 심장은 싸늘하게 식기 시작했고 이마에선 뜨거운 땀이 솟기 시작했다.
단 한번의 실수로 국가의 운명이 이 남자의 손에 달리게 된 것이다.
"일주일의 시간을 주겠다. 그동안 호파스와 노엘, 그리고 아리아와 쟌느라는 여자들을 찾아내라. 찾아내는 즉시 구출해서 안전하게 이 도시 안에 데려다 놓고 날 기다려라."
"왜 내가 그런 일을 해야 하지?"
"나라를 구해야 하니까."
"그런 말도 안되는......"
"난 지금도 이성을 잃을 수 있다."
스파키는 다시 그녀의 입을 틀어막으며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전력의 양을 높였다.
그러자 스파크가 그녀의 몸에 닿았고 짧은 순간이지만 미노리카는 온 몸이 부서지는 듯한 통증을 느꼈으나 비명조차 낼 수 없었다.
"내 동료를 꼭 찾아라. 만일 그들의 몸에 작은 상처라도 생기는 날엔 난 이 컴퓨터를 헤밍스에게 주겠다."
"그가 어떤 자인지 아나?"
"좀 더 겸손해라."
스파키가 다시 전력을 쓰려고 하자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히며 떨었다.
"그, 그만! 당신의 뜻을 알았어요."
"그냥 아는 정도로는 부족하지."
"최선을 다하겠어요. 그러니 그것을....."
"그리고 도시 남쪽에 작은 비행선을 준비해라. 충분한 식량과 물과 함께."
"다른건 없나요?"
"내일 당장 도시 중심에 이 칼과 똑같이 생긴 기념비를 세워라. 그리고 여기에 적힌대로 세겨라."
"이건 왜......"
"말이 많군."
"알았어요. 정말 당신의 동료들만 찾으면......"
"당신이 약속을 이행한다면 핵탄두는 헤밍스의 침대 밑으로 옮겨질 것이다. 그리고 이 녀석은 당신의 것이 된다. 물론 암호도 함께."
"좋아요."
스파키의 마지막 말은 그녀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는 가장 빠른 길인 것이다.
왜 이 무지막지한 자가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인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그 핵탄두의 기폭장치를 손에 넣고 그것이 헤밍스의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게 된다.
"다시 자라."
이 말과 함께 스파키는 그녀의 목 뒤에 손을 댔다.
미노리카는 온 몸이 쪼그라드는 느낌을 받으며 그대로 기절해 버렸고 다음날 새벽 바로 부관을 불렀다.
해가 조금씩 저물어 갈 때, 광장에 커다란 기념비가 세워졌다.
타흐만이 그 기념비 앞에서 눈물까지 글썽거려가며 입이 양쪽으로 찢어진 채 웃고 있었다.
그 기념비 밑에 있는 글을 그는 계속해서 중얼거렸다.
"위대한 군인의 후손이 위대한 평화의 장을 열어갈 것이다."
그의 옆에서 주위를 살피던 흑인 여자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목. 일이 많이 밀렸는데요. 서쪽 입구로 마약이 들어온 모양입니다."
"가자. 잡으러."
"근데.... 두목."
"왜?"
"저 비석같이 생긴것 말입니다. 모양이 어디선가 꼭 본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말하는 부하에게 그는 작은 단도를 꺼내 보여줬다.
"이거 말이냐? 내 아들거다. 임마."
부하의 눈이 동그래졌지만 타흐만은 계속 웃었다.
스파키와 캔은 비행선을 숨기기 위해 많은 양의 나뭇가지를 사용했다.
스파키는 체력을 완전히 회복했지만 캔은 아직 후유증이 남았는지 땀을 많이 흘렸다.
"캔. 괜찮냐?"
"네. 견딜만 합니다."
"미안하구나."
스파키는 캔의 눈을 보며 더욱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자신의 작전때문에 캔의 여동생까지 알 수 없는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타흐만이 준비해 준 옷으로 갈아입고 걷기 시작했다.
숲을 지나 언덕을 지나자 바로 거대한 도시의 모습이 드러났다.
"저게......"
"내 조국이었던 곳이다."
"네?"
"하지만 아주 오래전 일이지. 지금은 다르다. 빚을 받아야 할 뿐이지."
".........."
캔이 무슨 소린지 궁금한 표정이 되자 스파키는 퍼석 웃었다.
"자, 가자."
그들은 누가 보아도 장사꾼으로 보였다.
둘 다 지저분한 외투를 걸치고 커다란 짐을 멨다.
짐 속에는 여러가지 잡동사니가 들어 있었다.
작은 단도와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여러가지 장신구와 알 수 없는 여러가지 물건들이 들어 있었다.
그들이 입구에 다가가자 총을 든 군인 두 명이 앞을 막았고 입구의 위쪽에 있는 초소에서는 기관총을 겨냥하는 것이 보였다.
"무슨 일로 왔나?"
"장사꾼입니다."
"어디서 왔나?"
"지금 막 러시아 시티에서 좋은 물건들을 갖고 오는 길입죠..... 헤헤....."
스파키는 허리까지 굽신거리며 말했지만 군인들은 엄한 표정을 하며 총을 들이댔다.
"짐을 풀어라. 확인해야겠다."
"예~ 예~ 대신 흠집만 내지 마십쇼. 그럼 값이 떨어지거든요."
"잔말 말고 어서 풀어봐."
스파키와 캔이 짐을 내려놓자 군인들이 짐 속의 내용물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한 군인이 이상하게 생긴 물건을 꺼내며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스파키는 왜 저러나 하며 보다가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녀석의 손에 들려진 물건은 남자의 그것과 똑같이 생긴 모형이었다.
"이건 뭐야? 이 변태자식."
".............."
스파키도 캔도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군인이 뭘 눌렀는지 그것이 요상하게 운동을 시작했다.
그것이 마치 애벌레처럼 꿈틀거리자 군인들이 크게 웃어댔다.
"크하하하. 이런 게 다 있다니...... 이자식..... 이런거 팔려고 왔냐?"
"이야~ 그거 이리 줘봐. 쥑이는데~"
그때, 스파키가 얼른 다가가 작은 주머니를 건넸다.
"헤헤..... 이건 그냥 인사드리는 겁니다요......"
"음... 흠흠..... 이런걸 다......"
군인들은 서로의 눈치를 살피더니 그 이상한 물건을 다시 내려놓으며 부드러운 표정으로 웃었다.
"그럼 많이 팔고 가슈."
"거 여자처럼 생긴 건 없소? 있으면 내가 살텐데."
"헤헤..... 담에 올때 구해보겠습니다."
무사히 짐을 챙겨 도시 안으로 들어온 스파키와 캔은 우선 작은 여관에 들러 짐을 풀고 옷을 갈아입었다.
아직 도시의 분위기를 파악하지 않은 상태여서 칼은 두고 간편한 복장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우선 가까운 술집으로 향했다.
여관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술집에 들어서자 상당히 시끄러울 것으로 예상했던 그곳은 오히려 조용했다.
사람들은 조용히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고 스파키는 타흐만이 준비해 준 아메리카시티의 화폐를 확인했다.
군인들에게 거의 대부분을 주는 바람에 얼마 남지 않았지만 대충 보니 여관비와 술값은 계산할 수 있을 듯 했다.
"저...... 스파키..... 전 술을 먹어 본 적이 없는데요."
이런 분위기를 한 번도 접한 적이 없는 캔이 기죽은 표정으로 묻자 스파키는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났다.
술을 잘 못먹는 부하가 있으면 언제나 행하던 행사......
스파키는 오랜만에 캔을 남자로 만들고 싶어졌다.
"지금 배우면 된다."
"예? 뭘 배웁니까?"
"술 먹는법."
"그것도 무슨 방법이 있습니까? 전에 보니까 호파스는 그냥 마시던데....."
"바로 그게 방법이지."
귀여운 여직원이 지나가는 것을 본 스파키는 바로 손가락을 튕겨 부르더니 가장 독한 술을 시켰다.
곧 커다란 잔에 검은 액체가 담겨서 날아왔고 스파키가 먼저 잔을 들며 말했다.
"이렇게 잔을 들고 서로 살짝 부딪힌다."
"이....이렇게요?"
"그렇지."
캔이 잔을 가져다 부딪히자 스파키가 단숨에 잔을 비워버렸다.
"크아~"
예상은 했었지만 순수 증류법이 아닌 것에 의해 만들어진 술은 너무 독했다.
스파키 자신도 망치로 한 대 맞은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독한 술이었다.
코에서 독한 알콜내음이 진하게 올라오는 것이 정신을 어질어질하게 하는 듯 했다.
"자, 너도 마셔."
스파키가 웃으며 권하자 캔도 잔을 입에 가져가더니 벌컥거리며 마시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 한모금을 마시자마자 입을 뗐다.
"크악~ 이걸 어떻게 마십니까?"
"더 마셔봐. 알테니까."
"윽......."
스파키가 엄한 얼굴을 하고 노려보자 캔은 억지로 마셔버렸다.
그리고......
그대로 얼굴을 테이블에 박고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괜한 짓을 했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기분에 그는 캔이 귀엽게 보였다.
쓰러진 캔을 느긋하게 바라보며 스파키는 다시 종업원을 불렀다.
"여기 술 한잔 더. 좀 약한 걸로 부탁해."
"어머, 고맙습니다."
스파키가 여종업원이 든 쟁반에 동전 두개를 올려놓으며 얘기하자 종업원은 활짝 웃으며 좋아했다.
아마 저 정도면 술값을 계산하고도 넉넉하게 남는 모양이다.
그것만으로도 이 도시의 술 공급이 원활하고 술이 넉넉하단 얘기는 그만큼 생활이 윤택하다는 증거다.
스파키가 두번째 잔을 들어 입술로 가져가는 순간, 전혀 예상치도 않았던 문제가 발생했다.
죽은듯이 누워있던 캔이 벌떡 일어서더니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것이다.
"우아~ 이게 뭐야~"
"캐.....캔.."
"어? 이게 누구야? 잘난 우리 스파키 아냐? 도데체 내 동생은 어디 있는 겁니까? 앙?"
"이런......."
스파키가 얼른 일어나 캔의 팔을 잡았지만 캔은 팔을 뿌리치며 크게 소리쳤다.
"야! 술 더 가져와!"
"앉아라."
스파키가 조용히 얘기했지만 이미 캔은 제정신이 아니었다.
"너나 앉아! 난 이거 더 먹을거야. 야! 더 가져오라니까! 야!"
"뭐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걱정하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저쪽 구석에서 머리를 모으고 무언가 열심히 얘기하던 떡대 세명이 일어서더니 바로 이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은 그들이 누구인지 알아보는지 앉았던 다리에서 일어서며 길을 비켜주기에 바빴다.
스파키는 사태가 커지기 전에 수습하기 위해 얼른 손을 썼다.
캔의 팔을 잡으며 전력을 살짝 올렸다.
그냥 기절이라도 시키려고 그런 것인데 그게 좀 약했는지 더 안좋은 상황이 되고 말았다.
"억! 으아~ 이 전기뱀장어~"
"윽.... 캔..... 앉아라. 제발....."
"어? 저기 적들이 온다. 돌연변이 하나.....둘......오호~ 세마리군."
".........."
"내가 전부 헤치울까요? 금방인데...... 어? 근데 여긴 어딥니까? 왜 이렇게 비행선이 흔들립니까?"
이미 평화적인 사태수습은 물건너 가고 떡대 세 명이 코 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쥐새끼같은 놈...... 뭐? 돌연변이?"
"죽여버려."
"목만 비틀어."
스파키는 하는 수 없이 떡대들을 상대하기 위해 일어섰다.
"이 친구가 좀 취했으니 이해해 주시기......"
"뭐? 이해? 돌연변이가 무슨 이해를 해!"
"............"
"가진것 다 내놓으면 그때 생각해보지."
"..........."
"왜 대답이 없어? 우선 다리부터 분질러 놓고 얘기를 해야 하나?"
그때, 여종업원이 달려와 사정하듯 말했다.
"손님, 그만 하세요. 취한 사람이 실수한 걸 가지고......"
"뭐야? 넌 비켜!"
떡대는 힘자랑이라도 하듯 종업원의 얼굴을 밀어버렸고 힘없이 날아간 그녀는 다른 테이블 위에 엎어지고 말았다.
그리고 그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이 벌떡 일어섰다.
갑자기 날벼락을 맞은 그들은 전부 방금 여종업원을 밀친 떡대를 노려보았다.
"어쭈~ 째려보면 어쩔건데?"
어깨를 다쳤는지 한 쪽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며 일어선 종업원이 떡대를 노려보고 있는 여자의 팔을 잡으며 말했다.
"참으세요. 저 사람들은 이곳에선 아무도 건들지 않아요. 그랬다가는....."
하지만 여자는 화가 날대로 났는지 앞으로 성큼 다가서며 떡대 앞에 얼굴을 바짝 들이댔다.
"힘없는 여잘 치다니..... 너같은 자식은 죽어야 해."
"이런 겁대가리 없는....... 헉!"
실로 번개같은 솜씨였다.
다들 무슨 일이 일어난건지 놀랐지만 스파키는 그녀의 번개같은 발검술을 보았다.
가느다란 검의 끝이 떡대의 목 앞에서 멈추며 파르르 떨고 있었다.
"목에 구멍이 더 필요한가? 도와줄수도 있는데."
"이런.... 비겁하게....."
"비겁? 좋아. 그럼 맨손으로 하자."
이렇게 말한 여자는 칼을 다시 집어넣더니 칼집을 풀어 동료들에게 던졌다.
칼집을 받아든 동료들은 전부 남자였지만 전혀 걱정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응원을 하고 있었다.
"이봐, 샤안. 살살하라구."
"5분 안에 끝내면 내가 술 사줄께."
"1분이면 족해."
목에 칼이 박힐 뻔 했던 떡대가 여자가 동료들에게 고개를 돌리는 사이 주먹을 휘둘렀다.
하지만 여자는 쉽게 주먹을 흘리며 지나간 팔뚝을 잡더니 그대로 뒤로 돌아 떡대의 허리를 발로 밀며 팔을 잡아끌었다.
"끄악!"
"어때? 아파? 저 여잔 팔이 빠졌다. 너도 빠져봐."
곧 둔탁한 소리가 울리며 떡대의 팔이 아래로 축 쳐졌다.
그걸 본 캔이 또 다시 소리를 질렀다.
"어? 이건 또 뭐야? 어...... 쟌느? 언제 왔니?"
캔이 다리의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한 번에 도약하며 여잘 끌어안고 말았다.
여잔 피하려고 했지만 너무 갑작스럽게 달려드는 캔을 피하지 못했고 그만 그대로 뒤로 쓰러지고 말았다.
캔은 여자의 몸을 짓누른 채 다시 고개를 푹 떨구었다.
"이.....이게......"
스파키가 얼른 다가가 캔의 몸을 들어서 카운터 쪽으로 집어던지며 손을 내밀었다.
"죄송합니다. 제 친구가 또 실수를......."
그때였다.
남은 두 명의 떡대가 동시에 스파키를 향해 돌진해 들어왔다.
바닥에 누워있던 여자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무어라 경고의 말을 해주려고 했지만 스파키의 행동이 더 빨랐다.
스파키는 그대로 몸을 날려 먼저 왼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턱을 정확하게 발로 가격하고 그대로 공중에서 몸을 돌려 오른쪽에서 달려드는 놈의 정수리에 주먹을 꽂았다.
전력을 사용하진 않았지만 급소를 맞은 이상 다시 덤비진 못할거라는 생각을 하는데 놈들은 금방 벌떡 일어서며 스파키의 팔을 잡았다.
역시 덩치값을 하는 녀석들이었다.
벗어나려 했지만 쉽게 벗어나지 못할만큼 놈들의 힘은 좋았다.
스파키는 하는 수 없이 아무도 모르게 전력을 돌리려는 찰나, 끼어든 여자의 동료 두명이 동시에 몸을 날리며 스파키 쪽으로 덤벼들었다.
그리고 곧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스파키를 잡았던 놈들이 나가떨어지며 다른 테이블을 덮쳤고 그 테이블의 손님들이 화가 나서 집단으로 놈들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어떤 취객은 소리를 지르며 무조건 뛰어들어 보이는대로 주먹을 휘둘렀고 팔이 빠진 떡대는 의자들을 집어던지며 자신의 팔을 뺀 여자를 잡으려고 했다.
순식간에 거의 모든 테이블이 쓰러지고 각자 자신의 술잔을 엎은 사람을 향해 주먹과 발을 휘둘렀다.
그러는 와중에 그 여자가 스파키에게 소리쳤다.
"친구를 데리고 나가요! 어서!"
그 말에 스파키가 캔을 돌아보니 언제 깼는지 누군가에게 얻어터져서 코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 보였다.
스파키는 힘겹게 사람들 틈을 빠져 나와 캔의 팔을 붙잡고 겨우 밖으로 빠져나왔다.
"어? 스파키..... 아냐? 언제 왔어요? 날 버릴땐 언제고...."
"잠깐 죽어라."
스파키는 기절할 만큼 캔의 뒤통수를 세게 후려쳤고 캔은 기절했다.
캔을 업은 스파키가 누가 보기 전에 여관으로 돌아가려는 찰나, 자신들을 도왔던 사람들도 술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봐. 신세를 졌으면 인사를 해야지. 그냥 가면 어떻해?"
남자들은 둘 다 금발이었고 여잔 진하진 않았지만 붉은 머리칼을 하고 있었다.
캔이 착각을 일으킬만도 했다.
"어쨌든 미안하오."
"말로는 안된다니까. 당신 친구가 우리 술자리를 망쳤으니까 당신이 한 잔 사면 되겠구만 그래."
"..........."
"술집은 많아. 내가 안내하지."
그들은 바로 근처의 다른 술집에 둘러앉았다.
처음 나섰던 여자는 엉겁결에 한 대 맞았는지 턱을 연신 주므르고 있었고 금발의 남자 중 덩치가 작은 자는 눈 한쪽이 멍이 들어 있었다.
"내 이름은 마크요. 그리고 이쪽은 무크. 내 형이지. 그리고 이쪽은 샤안. 여자라고 깔보면 다친다구."
마크라는 사내는 멍든 눈을 꿈뻑거리며 일행을 소개했다.
이렇게까지 된 이상 스파키도 인사를 해야 한다.
"난 스파키라고 하오. 이쪽은 캔."
"그 친구 술이 약하구만...... 왜 술을 먹였소?"
"처음 마신거요."
"근데 그 독한 술을 먹인거요? 그게 무슨 술인지나 알고 있는거요?"
".........."
"모르는가 보구만. 그거 데져드를 발효시켜서 만든 거요. 그 사막의 거미같이 생긴 놈 말요. 아쇼?"
스파키는 비우가 상하며 당장이라도 무언가가 올라올 듯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당신 실력이 대단하던데. 어디 출신이쇼?"
"난 그저 떠돌이일 뿐이오."
"떠돌이라........ 그정도의 실력까지 있으면서?"
스파키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게 어설픈 얘기는 오히려 역효과를 일으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럴싸한 핑계가 필요하던 그는 딱 맞는 이름을 떠올렸다.
"저쪽 도시의 타흐만이 내 친구요."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가장 놀라는 것은 붉은 머리의 여자였다.
"내 그럴 줄 알았지. 근데 왜 여기까지 온거요?"
"그 자 밑에서 일하다가 그냥 답답해서 떠났소. 난 구속은 싫어하는 체질이라서....."
"우리 친구합시다."
뜬금없는 제의에 스파키는 대답을 못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상대방들은 스파키의 대답을 기대하는 눈치였다.
"친구라니..... 만난지 겨우....."
"이것도 다 운명인거요. 우리가 이렇게 만났다는 것은 전부 ......."
"그만해. 마크."
붉은 머리의 여자가 나섰다.
자세히 보니 그녀는 아시안이었다.
"죄송해요. 실은 저희는 용병이에요. 이 도시에서 용병에게 비싼 임금을 준다고 해서 왔어요. 근데 다섯명이 동시에 가면 돈을 더 준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안해 본 거에요."
"용병이라......"
갑자기 튀어나온 용병이라는 단어에 반가움이 일었지만 스파키는 태연하게 말했다.
"사실 난 이곳에 오면서 돈 대신 물건을 가져왔소. 딱히 임자가 나타나지 않아서 곤란한 상황이긴 한데...."
"어때요? 당신 실력이면 시험에 통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텐데요."
"이 친구가 깨어나면 상의해서 결정하겠소."
"좋아요."
샤안이라는 여자는 스파키의 희망적인 대답에 활짝 웃었다.
그때, 캔이 벌떡 일어섰다.
"어? 쟌느! 언제 왔어~"
캔이 또 다시 샤안을 안으려 하자 이번엔 마크와 무크형제가 동시에 캔을 기절시켰다.
스파키는 쉽게 잠을 청하지 못했다.
앞으로의 일도 걱정이지만 갑자기 친구?가 되어버린 일당들 때문이다.
돈이 없다며 같이 들어온 이들은 각자 베낭을 메고 바닥에 드러누워 그대로 잠이 들어버렸다.
그래도 숙박비를 냈다는 것을 인정받아 스파키와 캔이 침대를 차지했다.
하지만 방 안은 작은 진동으로 떨리고 있었다.
스파키도 거친 사내들 틈에서 생활하던 주인공이지만 이렇게 심하게 코고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특히 샤안의 소리가 특이했다.
누가 여자 아니라고 할까봐 날카롭게 코를 코는 소리는 정상인으로서 도저히 잠을 청할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술이라도 많이 마실걸 그랬구만."
하지만 데져드로 만든 술의 향기가 떠오르자 그냥 뒤로 벌렁 누워버렸다.
다음날
스파키가 겨우 억지로 잠이 들었던 눈을 떠보니 일행들은 벌써 사라지고 없었다.
밑으로 내려와보니 식당에 전부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캔이 먼저 스파키를 보았지만 그저 슬쩍 웃기만 할 뿐이었고 다음으로 샤안이 그를 보고는 의자를 권하며 미소를 지었다.
"지금 캔에게 어제 일을 얘기해 주고 있는 중이에요."
"저기.... 죄송합니다...... 하지만 도무지 기억이......."
"..........."
스파키는 말 없이 자리에 앉았고 바로 음식들이 날라왔다.
각자의 앞에 놓인 접시엔 이것저것 다양한 먹을것들이 보기 좋게 담아져 있었다.
캔은 조용히 음식을 먹기 시작했고 마크가 입심을 부렸다.
"어젠 덕분에 편하게 잘 잤소. 그나저나 어서 먹고 갑시다. 조금 있으며 용병모집을 위해 군대가 올거요."
"얼마나 주는거요?"
스파키는 돈때문에 용병이 되려고 한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물었지만 돌아온 대답은 황당한 것이었다.
"우리도 아직 몰라요. 우선 다섯명이서 가면 작은 부대로 인정해준다는 말만 들었어요. 그러면 더 많이 주겠죠. 뭐."
".............."
"어쨌든 잘 하세요. 어제처럼......."
스파키는 좀 석역치 않은 생각도 들었다.
이들 앞에서 몸을 움직인 것은 단 한차례 뿐인데 실력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을 보면 분명 자신을 꼭 꼬드겨서 데리고 가려는 것이 확실하다.
그리고 자신이 아직 깨지 않았을 때, 캔을 데리고 먼저 식당에 와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던 점도 마음에 걸렸다.
사교성이 좋다는 것은 알겠지만 용병이라는 자들에게는 너무 어울리지 않은 태도였다.
헤밍스는 새로운 동지를 앞에 두고 부드러운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의 새로운 동지는 얼핏 봐서는 인간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피부는 푸른빛을 띠고 있었고 손가락 마디마다 큰 구슬을 박은 것처럼 단단한 것이 존재했다.
귀도 상당히 컸고 머리칼 대신 머리 중앙에 두 개의 더듬이가 나 있었다.
"넌 버림받았다."
".........."
"그를 데려가기 위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하지만 실패했지. 넌 조국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았지만 너의 조국은 너 뿐만 아니라 희생된 네 부하들의 명예까지 더럽혔다."
"..........."
헤밍스가 얘기하는 동안 작은 모니터에선 레니아가 헤밍스에게 말하는 장면이 녹음한 테잎이 계속 돌아가고 있었다.
"미코대령은 죽었다. 난 널 살리기 위해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넌 다시 태어났다. 넌 군인이다. 새로운 조국이 널 살렸다. 널 배신한, 너의 부하들의 죽음을 치욕으로 일관한 예전의 조국은 잊어라. 이제 새로운 삶을 살아라. 이곳의 국민들도 너의 국민이 될 수 있다."
"크으..........미노리카........"
미코는 붉은 눈을 번뜩였다.
그의 머릿속엔 한가지 생각밖에 없었다.
자신을 배반한 모든 것에 대한 복수........
미코는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레니아의 음성이 흘러나오는 화면을 부셔버렸다.
그런 모습을 보며 헤밍스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번에 만든 로첸박사의 작품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러시아제국의 잔재들의 숨통을 조이기에 안성맞춤인 무기가 생긴 것이다.
헤밍스가 방에서 나오자 미코가 울부짖으며 방안의 모든 것을 부수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코의 울부짖는 소리를 뒤로 하며 헤밍스가 희망이라도 느끼듯 중얼거렸다.
"이것으로서 새로운 계획을 시작한다."
-스파키의 일기-
젠장..... 오늘이 며칠이더라......
일이 복잡해지고 있다.
호파스와 아리아, 쟌느의 행방을 알 길이 없다.
러시아는 핵으로 아메리카를 날려버리거나 협박하려 하고 아메리카는 아직 확인은 하지 않았지만 사람을 실험하여 생체병기를 만들고 있는 중이라고 한다.
타흐만이라는 자는 그런 실험의 희생물이 된 아내의 복수를 위해 나에게 일을 맡겼고 나 또한 헤밍스라는 작자의 면상을 확인하고 싶다.
아직 죽지 못한 자들..... 벌써 죽었어야 할 인간들에 의해 이 지구는 얼마나 더 추악한 모습으로 이 우주에 남아야 하는 걸까......
호파스의 계획은 무엇일까......
아리아의 모습이 떠오른다.
아내를 지독하게도 닮은 그녀의 눈동자가 생각난다.
무사해야 할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