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성의 먹성 늘 붙어 다니며 서로를 디스하기 바쁜 단짝 친구였던 너. 그런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듬직한 남자로 느껴졌던 건,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바로 너의 남성미 넘치는 먹성 때문이었어. 또 개그 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진짜, 진짜야. 웰빙 트렌드에 역행하는 편식 외길 인생을 살아온 내게 아무거나 다 잘 먹는 너는 정말 감동이었어.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내가 뒤적뒤적 골라 빼놓는 양파, 마늘, 당근 같은 채소들을 넌 “밥상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구박하면서도 대신 다 먹어줬잖아. 나중에는 아예 음식이 나오자마자 알아서 먼저 채소 필터링을 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먹도록 피처링을 해줬지. 그거 모르지? 가끔은 네가 무릎 나온 잠옷 바지처럼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 다시 친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어. 하지만 그때마다 날치알 비빔밥에서 날치알을 골라 먹어주던 네가 떠올라 마음을 다잡곤 했지. 이제 왜 내가 너와 헤어진 후 한동안 밥상머리에서 눈시울을 붉혔는지 알겠지? 서동현·칼럼니스트
그놈 목소리 너의 무심함과 이기심에 시시때때로 열폭하다가도,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건 순전히 네 목소리에 중독돼서야. 신은 너에게 커다란 머리와 짧은 다리를 주는 대신, 동굴 성대도 주셨나 봐. 대학 시절에도 노래방에서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너만큼 잘 부르는 남자애는 없었지. 전화 온 줄 몰랐다든지, 클럽 가는 걸 허락해달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변명과 요구사항을 번번이 오케이 하고 마는 것도 너의 목소리 때문인 것 같아. 여기에 부모님이 아나운서나 국어 선생님이 아닌가 의심했을 만큼 또박또박한 발음도 한몫하지. 네가 잠시 어학연수 갔을 때 친구가 강추하는 훈남이랑 비밀 소개팅을 했는데, 변성기 중학생 같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날 밤 죄책감을 느껴 너한테 전화했을 때, 낮고 깊은 네 목소리에 새삼 감동받았어. 결론은? 목 관리 잘해라…가 아니라 그래도 나한테 잘해라. 이지영·문구 디자이너
나만의 바보 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약간은 덜 떨어진 네 모습. 나를 향한 그 바보스러움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없어. 매일 늦게 퇴근하는 너를 기다리는 일에 지쳤을 즈음, 그날도 너는 어김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며 저녁 약속을 펑크 냈지. 체념 반, 분노 반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때 마침 배터리가 떨어져 휴대폰이 꺼졌어. 집에 와서 전원을 켜보니 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메시지를 남겼고 또 몇 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지. 지금 회사에서 도망쳐 우리 집 앞으로 오고 있다고!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는 미안함과 환희가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지.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인 네 모습이 정말 바보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화난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어.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짜증에 신경질을 부리며 싸움을 걸었지만, 내가 너를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기도 해. 백현지·영화 칼럼니스트
센서티브 배려남 어릴 적 우리 엄마는 가방 들어주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어. 남자가 여자 가방 들고 다니는 것만큼 줏대 없어 보이는 건 없다고. 하지만 내 가방은 늘 무거웠어. 지갑, 파우치, 선글라스, 카메라, 핸드 크림, 휴지, 책, 칫솔, 치약 등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체감 무게 3킬로그램짜리 가방이 됐으니까. 게다가 걷는 걸 좋아해서 걸어도 너무 걷는 우리. 홍대에서 선유도를 지나 여의도까지 열심히 산책하는 날이면 내 어깨는 빠질 듯 아팠어. 그럴 때면 오빠는 나의 짐꾼임을 자처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지. 하지만 번쩍이는 금색 에나멜 가방을 든 오빠의 모습은 사뭇 안쓰러웠어. 엄마의 충고가 이해되는 순간이었지. 그 다음번 만남에 오빠는 일부러 내 가방을 들어주기 위해 금색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어. 골드로 깔맞춤한 그날의 패션이 참 고맙고 기분 좋았어. 바로 그런 배려와 센스가 우리 사이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주는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배려와 센스는 나한테만 하는 걸로! 정희기·이후갤러리 큐레이터
기타를 치는 예쁜 손 친구의 소개로 널 처음 만난 날.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선배’라는 친구의 설명과 달리 심심한 외모와 수더분한 옷차림의 너. 게다가 여자 치고 꽤 큰 날 올려다보며 식겁하던 네 눈빛에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이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구나’ 하고 예감했지. 하지만 대화를 할수록 네가 편안하고 따뜻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더라. 게다가 하얗고 기다란, ‘섬섬옥수’란 말이 딱 어울리는 네 손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예쁘다” 하고 감탄했어. 그렇게 시작된 만남으로 연인이 된 우리. 어느 날 그 하얗고 긴 손으로 나만을 위해 기타를 연주해줬던 것, 기억하니? 멋쩍은 마음에 괜히 딴청을 부렸지만 네 손이 만들어냈던 아름다운 선율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다투고 토라져 있는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네 예쁜 손을 위해 핸드 크림을 선물해야겠어. 소지현· 패션 에디터
바래다 주세요 참 질기게도 오래 연애한 우리. 그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널 만난 이유가 네가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매력남이기 때문인 건 아니야. 솔직히 네가 나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말들과 행동의 90퍼센트는 허탕에 가까웠어. 내 연기력이 서툴러서 너도 눈치 채고 있을 거야. 몇 년 전 서점에 갔다가 이지민 작가의 라는 책을 집어 들었어. 짝사랑하는 인기남을 만날 집에 바래다(만) 주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야. “집은 바뀌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수많은 나날 중 단 한 번은 기억하지 않을까. 언젠가 이 그림자처럼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던 한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 그 바보 같은 여자의 말이 맞아. 나는 이 대목에서 너를 떠올렸어. 술을 먹든, 돌아갈 차비가 없든, 내 폭언에 맘을 상했든, 그 많은 날들 동안 항상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 줬던 너의 한결같은 마음을. 이게 바로 나를 항복시킨 네 매력의 실체야. 어제도 밤늦게 차를 몰고 야근한 나를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내가 잘 때는 브레이크 좀 살살 밟아줄래? 김아름· 피처 에디터
당신과 헤어지지 않는 이유
마성의 먹성 늘 붙어 다니며 서로를 디스하기 바쁜 단짝 친구였던 너. 그런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듬직한 남자로 느껴졌던 건, 그래서 가슴이 두근거렸던 건, 바로 너의 남성미 넘치는 먹성 때문이었어. 또 개그 치는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이건 진짜, 진짜야. 웰빙 트렌드에 역행하는 편식 외길 인생을 살아온 내게 아무거나 다 잘 먹는 너는 정말 감동이었어. 함께 밥을 먹으러 갈 때마다 내가 뒤적뒤적 골라 빼놓는 양파, 마늘, 당근 같은 채소들을 넌 “밥상에 대한 예의가 없다”고 구박하면서도 대신 다 먹어줬잖아. 나중에는 아예 음식이 나오자마자 알아서 먼저 채소 필터링을 해 내가 좋아하는 것들만 먹도록 피처링을 해줬지. 그거 모르지? 가끔은 네가 무릎 나온 잠옷 바지처럼 너무 편하게 느껴져서 다시 친구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했어. 하지만 그때마다 날치알 비빔밥에서 날치알을 골라 먹어주던 네가 떠올라 마음을 다잡곤 했지. 이제 왜 내가 너와 헤어진 후 한동안 밥상머리에서 눈시울을 붉혔는지 알겠지?
서동현·칼럼니스트
그놈 목소리 너의 무심함과 이기심에 시시때때로 열폭하다가도, 끝내 돌아서지 못하는 건 순전히 네 목소리에 중독돼서야. 신은 너에게 커다란 머리와 짧은 다리를 주는 대신, 동굴 성대도 주셨나 봐. 대학 시절에도 노래방에서 김동률의 ‘취중진담’을 너만큼 잘 부르는 남자애는 없었지. 전화 온 줄 몰랐다든지, 클럽 가는 걸 허락해달라는 등의 어처구니없는 변명과 요구사항을 번번이 오케이 하고 마는 것도 너의 목소리 때문인 것 같아. 여기에 부모님이 아나운서나 국어 선생님이 아닌가 의심했을 만큼 또박또박한 발음도 한몫하지. 네가 잠시 어학연수 갔을 때 친구가 강추하는 훈남이랑 비밀 소개팅을 했는데, 변성기 중학생 같은 목소리를 듣는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 그날 밤 죄책감을 느껴 너한테 전화했을 때, 낮고 깊은 네 목소리에 새삼 감동받았어. 결론은? 목 관리 잘해라…가 아니라 그래도 나한테 잘해라. 이지영·문구 디자이너
나만의 바보 내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는, 약간은 덜 떨어진 네 모습. 나를 향한 그 바보스러움이 때로는 답답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것만큼 내 마음을 움직이는 것도 없어. 매일 늦게 퇴근하는 너를 기다리는 일에 지쳤을 즈음, 그날도 너는 어김없이 야근을 해야 한다며 저녁 약속을 펑크 냈지. 체념 반, 분노 반으로 집으로 향하는데 때 마침 배터리가 떨어져 휴대폰이 꺼졌어. 집에 와서 전원을 켜보니 너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메시지를 남겼고 또 몇 초 지나지 않아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했지. 지금 회사에서 도망쳐 우리 집 앞으로 오고 있다고! 그 말을 듣는 동시에 나는 미안함과 환희가 교차하는 묘한 기분을 느꼈지. 별것도 아닌 일에 호들갑인 네 모습이 정말 바보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화난 마음은 눈 녹듯이 사라졌어. 2년이 가까운 시간 동안 온갖 짜증에 신경질을 부리며 싸움을 걸었지만, 내가 너를 결코 이길 수 없는 이유기도 해. 백현지·영화 칼럼니스트
센서티브 배려남 어릴 적 우리 엄마는 가방 들어주는 남자는 절대 만나지 말라고 했어. 남자가 여자 가방 들고 다니는 것만큼 줏대 없어 보이는 건 없다고. 하지만 내 가방은 늘 무거웠어. 지갑, 파우치, 선글라스, 카메라, 핸드 크림, 휴지, 책, 칫솔, 치약 등 하나하나 챙기다 보면 체감 무게 3킬로그램짜리 가방이 됐으니까. 게다가 걷는 걸 좋아해서 걸어도 너무 걷는 우리. 홍대에서 선유도를 지나 여의도까지 열심히 산책하는 날이면 내 어깨는 빠질 듯 아팠어. 그럴 때면 오빠는 나의 짐꾼임을 자처해 가방을 들어주겠다고 했지. 하지만 번쩍이는 금색 에나멜 가방을 든 오빠의 모습은 사뭇 안쓰러웠어. 엄마의 충고가 이해되는 순간이었지. 그 다음번 만남에 오빠는 일부러 내 가방을 들어주기 위해 금색 운동화를 신고 나타났어. 골드로 깔맞춤한 그날의 패션이 참 고맙고 기분 좋았어. 바로 그런 배려와 센스가 우리 사이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주는 것 같아. 하지만 그런 배려와 센스는 나한테만 하는 걸로! 정희기·이후갤러리 큐레이터
기타를 치는 예쁜 손 친구의 소개로 널 처음 만난 날. ‘순정만화에서 갓 튀어나온 듯한 선배’라는 친구의 설명과 달리 심심한 외모와 수더분한 옷차림의 너. 게다가 여자 치고 꽤 큰 날 올려다보며 식겁하던 네 눈빛에 ‘내 인생의 첫 소개팅이 이렇게 실패로 끝나는구나’ 하고 예감했지. 하지만 대화를 할수록 네가 편안하고 따뜻한 매력을 지닌 사람이란 걸 깨닫게 되더라. 게다가 하얗고 기다란, ‘섬섬옥수’란 말이 딱 어울리는 네 손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예쁘다” 하고 감탄했어. 그렇게 시작된 만남으로 연인이 된 우리. 어느 날 그 하얗고 긴 손으로 나만을 위해 기타를 연주해줬던 것, 기억하니? 멋쩍은 마음에 괜히 딴청을 부렸지만 네 손이 만들어냈던 아름다운 선율은 절대로 잊지 못할 거야. 다투고 토라져 있는 내 손을 꼭 잡아주고 어깨를 토닥거려주는 네 예쁜 손을 위해 핸드 크림을 선물해야겠어.
소지현· 패션 에디터
바래다 주세요 참 질기게도 오래 연애한 우리. 그 오랜 시간 동안 내가 널 만난 이유가 네가 도무지 헤어날 수 없는 매력남이기 때문인 건 아니야. 솔직히 네가 나한테 멋있어 보이려고 했던 말들과 행동의 90퍼센트는 허탕에 가까웠어. 내 연기력이 서툴러서 너도 눈치 채고 있을 거야. 몇 년 전 서점에 갔다가 이지민 작가의 라는 책을 집어 들었어. 짝사랑하는 인기남을 만날 집에 바래다(만) 주는 어떤 여자의 이야기야. “집은 바뀌어도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 수많은 나날 중 단 한 번은 기억하지 않을까. 언젠가 이 그림자처럼 나를 집까지 바래다 주던 한 여자가 있었다는 사실을.” 그래, 그 바보 같은 여자의 말이 맞아. 나는 이 대목에서 너를 떠올렸어. 술을 먹든, 돌아갈 차비가 없든, 내 폭언에 맘을 상했든, 그 많은 날들 동안 항상 집 앞까지 나를 바래다 줬던 너의 한결같은 마음을. 이게 바로 나를 항복시킨 네 매력의 실체야. 어제도 밤늦게 차를 몰고 야근한 나를 데리러 와줘서 고마워. 그런데 내가 잘 때는 브레이크 좀 살살 밟아줄래? 김아름· 피처 에디터
*자세한 내용은 엘르걸 본지 11월호를 참조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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