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마다 떨어지는 기온에 잠에서 깨어나 덧옷을 걸쳤다. 어제 새로사온 베란다의 노란 국화가 하룻밤새 꽃망울을 더 펼치며 그윽한 향기로 나를 반긴다. 차츰 떠오르는 태양...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은 국화꽃은 베란다를 하루만에 환하게 바꾸어 놓았다. 쌀쌀한 아침.. 작은 녀석은 일어나더니..... 엄마~~!!! 추워~~~라며 소파에서 웅크린다 난 작은 녀석에게 어릴때 덮고 자던 자그마한 토막 이불을 가져다가 폭~~덮어 주었다 오늘따라 엄마~~~라고 부르는 그 낱말이 가슴에 와서 애틋하게 박힌다. 건조한 가을바람 탓인지 녀석들 입술은 조금 거칠 거칠.... 등교하는 두녀석 입술에 차례대로 입크림을 발라주었다. =================================================================================== * 기억 저편속으로의 여행 1* 25년전... 내가 국민학교 6학년 겨울... 그시절만 해도 먹고 사는게 힘들때였다. 남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빠가 새엄마와 재혼후 세상을 뜬지도 3년이 지났을 때다. 새엄마는 데리고 온 딸이 하나..거기에 아빠하고 사이에서 동생이 둘 태어났고 4학년 가을에 할머니와 살다가 새엄마와 처음으로 같이 산지 만 2년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만 독차지 해오던 내겐 새엄마가 무서웠고 내게 동생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낯설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먹고살기 바쁜 엄마에게 할머니처럼 내게 자상하게 신경을 써 주는 일은 아예 기대도 하지 말아야했다 그건 동생들한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할머니 생각에 주르르......눈물이 흐르고... 날마다 할머니의 따스한 품에 안겨서.. 할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할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 그때가 한없이 그리웠다. 엄마는 넷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아빠가 살아 생전에 일궈 놓은 팔밭에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담배를 여자의 몸으로 해마다 심었다. 엄마는 어린 자식들과 먹고 살기위해 아침에 별보고 밭에 나가서 별보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무섭게 일을했다. 할머니와 살때는 그렇게 기다려지던 여름방학이 엄마와 살면서는 차라리 방학이 없었으면 싶었다. 방학만 되면 점심을 싸고 공부할것 챙겨서 아침이면 모두 밭으로 가서 그 뜨거운 태양아래 숨쉬기 조차 힘든 끈적 끈적한 담배 밭에서 밭을 매고 담배 옆순을 따고 나면 온몸이 담배진으로 끈적거리며 머리카락은 뻣뻣해서 도저히 빗어지지가 않았다. 여름날의 하루해는 왜그리 길고 길던지... 모두들 지친 몸으로 별을 보며 집으로 와선 이내 골아 떨어진다. 6학년 겨울방학 즈음... 학교에선 교실마다 중학교 입학할 서류를 받고... 난 친구들의 질문을 받아야했다. 왜? 왜 너는 중학교 안가는데? 응? 부끄러움인지 열등감인지 모를 그 무엇이 친구들 앞에서 내 얼굴을 화끈 달아 오르게 하고.. 난 나오려는 눈물을 꾹 꾹 참아야했다. 내 힘으론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픈 공부인데.. 언제나 상위권에 들던 내가 중학교에 안간다니 친구들은 의아해할뿐... 엄마는 말했다 딸 셋은 국민학교 졸업으로 끝이라고.. 막내인 아들... 그 아들만 대학까지 보낸다고.. 너희 딸 셋이 벌어서 남동생 대학 가르치라고... 그런 엄마에게 난 대들지도 못하는 그냥 시치면 시키는 대로하는 힘없는 작은 계집아이였다. 그렇게 6학년 그해 겨울은 내게 너무나 매섭고 추운 겨울이었다. 날씨 보다도 꽁꽁 언 마음이............ 계속 ps: 어제부터 이 글을 쓰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어쩔수 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하지만 지금 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에 아픈 과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저편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해 해주시리라 생각하고 제가 다니던 시절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고 불리었기에 그냥 그시절처럼 국민학교라고 썼습니다. ※아침부터 30대방에 아픈 글을 올려서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흐린날만 있으라는 법은 없겠지요. 흐린날 다음엔 반드시 맑게 갠 화창한 날도 찾아 오겠지요. 30대방 모든분들 행복한 하루 되시길.......^^
살아가면서...(가정이라는 울타리 2)
아침마다 떨어지는 기온에 잠에서 깨어나 덧옷을 걸쳤다.
어제 새로사온 베란다의 노란 국화가 하룻밤새 꽃망울을
더 펼치며 그윽한 향기로 나를 반긴다.
차츰 떠오르는 태양...
눈부신 아침햇살을 받은 국화꽃은 베란다를 하루만에 환하게 바꾸어 놓았다.
쌀쌀한 아침..
작은 녀석은 일어나더니..... 엄마~~!!! 추워~~~라며
소파에서 웅크린다
난 작은 녀석에게 어릴때 덮고 자던 자그마한 토막 이불을 가져다가 폭~~덮어 주었다
오늘따라 엄마~~~라고 부르는 그 낱말이 가슴에 와서 애틋하게 박힌다.
건조한 가을바람 탓인지 녀석들 입술은 조금 거칠 거칠....
등교하는 두녀석 입술에 차례대로 입크림을 발라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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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억 저편속으로의 여행 1*
25년전...
내가 국민학교 6학년 겨울...
그시절만 해도 먹고 사는게 힘들때였다.
남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아빠가 새엄마와 재혼후 세상을 뜬지도 3년이 지났을 때다.
새엄마는 데리고 온 딸이 하나..거기에 아빠하고 사이에서 동생이 둘 태어났고
4학년 가을에 할머니와 살다가 새엄마와 처음으로 같이 산지 만 2년이 흐르고 있었다.
할머니의 사랑만 독차지 해오던 내겐
새엄마가 무서웠고 내게 동생들이 있다는 그 자체가 낯설어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먹고살기 바쁜 엄마에게 할머니처럼
내게 자상하게 신경을 써 주는 일은 아예 기대도 하지 말아야했다
그건 동생들한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밤에 잠자리에 누우면 할머니 생각에 주르르......눈물이 흐르고...
날마다 할머니의 따스한 품에 안겨서.. 할머니의 젖가슴을 만지며...
할머니의 자장가를 들으며 잠들던
그때가 한없이 그리웠다.
엄마는 넷이나 되는 자식을 키우기 위해 아빠가 살아 생전에 일궈 놓은 팔밭에
남자도 하기 힘들다는 담배를 여자의 몸으로 해마다 심었다.
엄마는 어린 자식들과 먹고 살기위해 아침에 별보고 밭에 나가서 별보고 집에
돌아올 정도로 무섭게 일을했다.
할머니와 살때는 그렇게 기다려지던 여름방학이
엄마와 살면서는 차라리 방학이 없었으면 싶었다.
방학만 되면
점심을 싸고 공부할것 챙겨서 아침이면 모두
밭으로 가서 그 뜨거운 태양아래 숨쉬기 조차 힘든 끈적 끈적한 담배 밭에서
밭을 매고 담배 옆순을 따고 나면 온몸이 담배진으로 끈적거리며
머리카락은 뻣뻣해서 도저히 빗어지지가 않았다.
여름날의 하루해는 왜그리 길고 길던지...
모두들 지친 몸으로 별을 보며 집으로 와선
이내 골아 떨어진다.
6학년 겨울방학 즈음...
학교에선 교실마다 중학교 입학할 서류를 받고...
난 친구들의 질문을 받아야했다.
왜? 왜 너는 중학교 안가는데? 응?
부끄러움인지 열등감인지 모를 그 무엇이 친구들 앞에서
내 얼굴을 화끈 달아 오르게 하고..
난 나오려는 눈물을 꾹 꾹 참아야했다.
내 힘으론 갈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하고픈 공부인데..
언제나 상위권에 들던 내가 중학교에 안간다니
친구들은 의아해할뿐...
엄마는 말했다
딸 셋은 국민학교 졸업으로 끝이라고..
막내인 아들...
그 아들만 대학까지 보낸다고..
너희 딸 셋이 벌어서 남동생 대학 가르치라고...
그런 엄마에게 난 대들지도 못하는 그냥 시치면 시키는 대로하는
힘없는 작은 계집아이였다.
그렇게 6학년 그해 겨울은 내게 너무나 매섭고 추운 겨울이었다.
날씨 보다도 꽁꽁 언 마음이............ 계속
ps: 어제부터 이 글을 쓰려고 마음을 굳게 먹었지만..
어쩔수 없이 눈물이 흐르네요.
하지만 지금 제가 행복하게 살고 있기에
아픈 과거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기억저편에 남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양해 해주시리라 생각하고
제가 다니던 시절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라고
불리었기에 그냥 그시절처럼 국민학교라고 썼습니다.
※아침부터 30대방에 아픈 글을 올려서 죄송스럽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살면서 흐린날만 있으라는 법은 없겠지요.
흐린날 다음엔 반드시 맑게 갠 화창한 날도 찾아 오겠지요.
30대방 모든분들 행복한 하루 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