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부지 동거

글쓴넘2003.09.24
조회1,333

그러니까 내가 이 유럽에서도 그렇게도 많은 나라 중에서도 정말 조그만 하고 단순하고 재미없는 이 나라에 살고있는지 어~~언 14년째이다.

 

천구백팔십구년!

 

난 당시에 연합고사라는 국가시험을 정직하게 cut line 140개를 넘기지도 미달도 아닌 애 누리 없는 정확하게 140개로 당당 이 합격을 했다.(나의 어설픈 기억으로 시험 :180 / 체력장 :20 = 200만점)

 

암튼 그것은 뭐 지금 이 글 내용하고는 전혀 무관하지만 그 시험을 보고 천구백팔십구년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이월에 난 이 나라에 왔다.

 

그럼 내 나이는???

 

그래 내가 왔던 당시 천구백팔십구년에 나는 무서운 십대 열하고도 일곱 이였다.

 

당시에 난 집안사정이 열라 드라마틱해가 내 의사하고는 전혀 무관하게 난 걍 가라니까 암 생각 엄시 비행기를 탔고..... 지금은 열 시간이면 올 수 있는데 그때는 무려 21시간이라는 말도 안 되는 비행시간 이었다...아마 지금 기억으로 알라스카를 거쳐서 왔던 것 같다.

 

물론 이 낯선 땅 에는 우리 어머니하고 이모하고...삼촌하고...그리고 또 노랑머리 이모부가 계셨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 집.. 참 내가 생각해도 우여곡절이 많은 집이다.... 뭐 하기 사 어느 집 은 사연 엄겠냐만은.

 

울 아부지.

 

우리나라 유교정신적으로 이렇게 표현하면 안되겠지만... 참 대책 절라 없는 어른이시다.

 

직업정신은 엄스시고 술 주자 의 명품 두꺼비 정신은 투철 하셔 가 거기다가 구타정신도 타고나셔서 우리 엄니하고 날 먼~~~ 유럽으로 날려보낸 참 불쌍한 분이시다.

아직도 어렴풋이 기억 나는 것은 아부지가 여자 두 명을 데리고 안방에서 하룻밤?을 세는 것을 본 우리 엄니하고 대판 싸웠던 그때가 내 나이 약관 여섯? 이었나 보다.

 

당시에 이모가 계시는 이 나라로 오셔 가 울 엄니는 생계유지 대책으로 피부미용이라는 자격증을 따시러 용감하게 아줌마의 신분으로 공부에 댓쉬를 하신 것 이다.

 

그러시면서 항상 술만 이빠이 마시고 고령백수로 머물며 그렇게 허 성 세월을 보내는 아부지 밑에 둘 수가 엄다는 판단에 결국 울 어머니는 많은 우여곡절하에 날 이땅으로 부르신 것이다.

 

잠깐?

 

근데 자꾸 어째 야그가 주제랑 멀어지면서 사는 얘기 중에서 동거가 아닌 외국에서 사는 이야기로 가는 것 같지만.... 난 분명히 나의 동거경험에 대한 얘기를 쓸라고 하는 것이니까 혹 관리하시는 분은 글을 옮기지 말아주셨음 하는 간곡한 부탁을 드린다.

 

걍 우째 내가 여기까지 와서 그녀를 만났는지 뭐 그런 back ground를 말하다 보니 야그가 절라 난잡해진 것 같다.

 

그렇게 이 나라에 와가 난 이년 동안 영어도 아닌 것이… 독일어도 아닌 것이… 불어도 아닌 것이… 인체에 상당 해로운 언어를 난 이년 동안 공부를 하고 천구백구십이년 내 나이 스물에 정식으로 음… 그니까 university를 가기 위한 고등교육 일학년으로 입학을 했다.

 

한국에서의 중학교 생활은 지금 내가 생각해도 참 한심하기 그지 없다.

 

공부는 육십 명 중에서 항상 1/2… 하지만 노는 것은 꽤 놀았다.

 

뭐 글 타고 내가 멋지게 몬다거나 뭐 전교에서 한 주먹 하는 아님 화끈하게 놀던 넘은 절대 아니다.

 

일단 나의 체력이 미달인지라…당시에는 키가 아마도…165? 그리고 몸 무계가 50? 뭐 이랬으니 주먹하고는 일단 거리가 멀고 걍 당시에 논다는 애 덜 흉내만 내는… 당시 은어로 x삐리?가 딱 맞는 거 같다.

 

그러던 넘이 낯설은 이땅에 와서 학교-집-학교-집… 하면서 하루에 무려 6~8시간 이상을 영어-수학-과학-이 나라 언어공부 이런 식으로 이년 동안 하루도 안 빼고 열씨미? 하다 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슬슬 옛날 한국에서의 동지 덜 이 그리워지기 시작되는…향수병이 내 맘으로 꽉 차기 시작했다.

 

밖에 나가 놀고싶어도 언어가 안대… 집에서는 뭐 글타고 지금처럼 인터넷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당시 세계적인 공대에서 공부하는 삼촌이 항상 테클을 걸어.. 선택이 엄는 난 그렇게 열씨미 공부를 했다.

 

더욱이 삼촌한테 맞장 을 떠가 절라 얻어맞은 이 후로는 걍 그렇게 숨죽이면서 무신 수련 생인 냥 맘가짐을 바로잡고 절라 공부만 했다.

 

천구백구십이년 삼촌은 공부가 끝나 서울에 들어가시고 무서운 십대에서 이십대로 접어들면서 그 해 여름 이 나라에는 한국사람은 우리 가족들 만 있는 줄 알았는데 우연하게 한인교회에서 음악공부 하는 아저씨 덜 을 만나 게 되고 그렇게 그녀를… 팔짜 이빠이 쎈 그녀를 만나 게 된다.

 

[다음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