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

굿다2008.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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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U> 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 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1997년 4월 23일 경찰이 삼합회의 범죄 현장을 수사하고 있다. (photo AP)
인민군 1000여명 배치, 즉결처분·특수감옥행 등 강력한 법 집행… 1만여명의 조폭들 종적 감춰

 

1997년 5월 4일 오후 3시쯤. 마카오 시내에 있는 리스보아(Lisboa)호텔 앞. 고급 승용차 곁으로 두 대의 오토바이가 다가왔다. 오토바이에 탄 청년 2명은 7.62㎜ 중국제 반자동권총을 꺼내기 무섭게 9발을 난사, 승용차에 있던 3명 모두를 죽이고 달아났다. 

 

이날 살해된 3명은 당시 홍콩 삼합회(三合會)의 최대 파벌 중 하나인 14K의 중간 보스들. 이 중 한 명인 섹윙쳉(당시 37세)은 차세대 두목으로 꼽히던 거물. 한 달 전인 4월 17일 마카오를 근거로 한 우온록(和安樂·일명 수방)파의 보스인 람푸이창(44) 저격살해사건을 배후 조종한 인물로 알려졌다. 이날 사건은 람푸이창 사건에 대한 우온록파의 보복인 셈이다.

 

그로부터 다섯 달이 경과한 10월 20일. 마카오 시내에서 차량으로 10분쯤 떨어진 타이파(Taipa)섬의 하얏트 리젠시호텔 밖에서 14K파 소속 갱 2명이 총을 맞고 살해된 채로 발견됐다. 이어 26일 새벽에는 같은 14K파의 다른 파벌 두목인 량꿔시융(梁口雄·40)이 자기 아파트 주차장에서 5발의 총을 맞고 현장에서 숨졌다. 이 일주일 동안에만 3명의 갱이 살해됐고 1997년 들어 10개월 동안 24명의 조직폭력배가 목숨을 잃었다. 마카오 경찰은 2건의 총격 살해사건에 대해 “같은 14K파 소속의 라이벌 파벌 간에 카지노 이권과 고리대금업을 둘러싼 분쟁에서 발생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마카오 토착 조직폭력 조직인 우온록파와 홍콩세력인 14K파 간에 시작된 마카오 갱 전쟁이, 우온록파의 기세가 꺾이면서 14K파 세력끼리 치고받는 내전(內戰)으로 증폭된 것이다.

 

<EM> </EM>우리나라의 서울 종로구만한 크기의 마카오(27㎢)는 1999년 12월 중국으로 주권이 회복되기 전까지만 해도 저우룬파(周潤發), 장궈룽(張國榮), 쩡즈웨이(曾志偉) 등이 등장하는 홍콩 누아르 영화 속과 다를 바 없는 무법천지이자 ‘갱들의 천국’이었다.

 

 

 한 현역 마카오 경찰 고위간부 A씨의 증언이다.

 

“1999년 주권 반환 직전 포르투갈 당국의 경계가 느슨한 치안공백기를 틈타, 14K와 우온록 외에 중국계 다이후엔(大園), 홍콩계 선이온(新義安) 등과 대만·태국 조직까지 가세해 1996~1999년에는 갱만 1만명 가까이 활개를 쳤지요.”

 

 그는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갱들 간에 총격전이 벌어졌다”며 “경찰 내부에 단속 사실을 몰래 알려주는 부패한 밀거래자들이 만연해 경찰이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당했다”고 말했다. 호텔이나 여관 침대 밑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는가 하면, 갱들은 권총 이외에 기관총과 시한폭탄, 박격포 등으로 중무장을 할 정도였다고 한다.


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 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1999년 중국 반환 후 인민해방군에 의해 치안이 확보되면서 마카오는 급속한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photo 조선일보 조인원)


“1998년 5월에는 14K파가 불법 카지노 영업 단속을 펴는 마카오 경찰청장과 정보국장, 담당반장 등이 탄 차량을 상대로 리모컨으로 폭탄을 터뜨려 1명이 사망하고 2명이 부상당하는 공권력 정면 도전사태까지 터졌지요.”(퇴직 경찰 간부 B씨)

 

그러다 보니 갱들은 가라오케·식당·디스코테크는 물론 강력사건 전담 특경(特警)에까지 무차별 총격과 방화를 가해, 매일 밤 마카오 곳곳은 피로 얼룩졌다. 심지어 삼합회 조직원에게 실형을 선고한 판사가 대낮에 거리에서 살해됐다.

 

그러던 마카오가 중국으로 주권이 반환된 지 7년을 넘긴 지금, 범죄가 없는 최고의 안전도시로 탈바꿈했다. 현지에서 25년째 살고 있는 하랄드 브루닝(Brunning) ‘마카오 포스트’ 사장은 “솔직히 말해 중국에 반환된 이후 시내에서 총격전은 단 한 건도 일어나지 않았다”면서 “갱들도 아예 종적을 감추었다”고 말했다.

실제 반환 직전인 1999년에는 37건에 달하던 살인사건이 반환 다음해인 2000년에는 단 한 건에 이를 만큼 치안이 안정됐다. 10년도 채 되지 않아 마카오가 이렇게 환골탈태한 비밀은 무엇일까?

 

 첫째, 중국 인민해방군의 존재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현재 인민해방군은 마카오의 타이파섬과 마카오 시내에 모두 600여명, 인근 광둥(廣東)성 주하이(珠海)에 400여명 등 1000여명이 주둔 중이다. 브루닝 사장은 “갱들은 허약한 경찰은 우습게 알아도 인민해방군은 무서워한다”며 “갱들이 해방군을 어떻게 상대해야 하는지 알고 스스로 꼬리를 내린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마카오 주둔 인민해방군은 사단장급인 소장(少將)이 현지 사령관을 맡고 있으며, 유사시 광저우(廣州) 군구와 협조하는 정예군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갱들에게 위협적인 것은 공권력에 도전할 경우 즉석에서 사형을 할 정도로 엄격한 중국의 법 집행이다. 한 관계자는 “중국과 마카오 간 헌법인 마카오 기본법에는 ‘사회 혼란을 야기시킨 자는 인민재판에 회부한다’는 조항이 명문화돼 있다”며 “이는 갱이나 불법조직을 최고형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근거”라고 전했다.

중국 정부는 1997년 반환된 홍콩에서 활동 중이던 악명 높은 범죄자 일당 4명을 붙잡아 중국에서 공개처형, 마카오 갱들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중국은 1999년 반환을 앞두고 공안요원을 마카오에 보내 비밀리에 소탕작전을 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카오 정부가 1998년 발생한 마카오 경찰청장 승용차 폭파사건의 주범이자 14K파의 두목인 완코이를 주권 반환 한 달 전인 1999년 11월 전격 체포한 게 대표적 성과이다.

마카오 조폭 몰아낸 인민해방군 한국도 중국처럼 강력하게 대응하자??


 두 번째는 에드먼드 호(何厚金華) 행정수반을 필두로 한 마카오 당국의 강력한 부패 척결 및 범죄와의 전쟁 노력이다. 마카오 최남단 콜로안(Coloane)섬에 있는 특수감옥이 이를 보여준다.

 

 경찰국의 한 관계자는 “특수감옥은 ‘들어가면 죽어야 나온다’고 소문나 있다”며 “완전 콘크리트로 사방을 만든 데다 네팔·스위스 출신의 용병에게 감옥 경비와 호송을 모두 맡겨 외부와 접근, 면회가 완전 차단돼 있다”고 말했다. 포르투갈 치하에서 갱들이 감옥 안에서 휴대전화 등을 이용해 범죄를 지시할 정도로 기율이 무너졌던 것에 비하면 180도 달라진 것이다.

 

 경찰조직도 팽창 중이다. 반환 당시 4000명이던 경찰 병력은 지금 7000명으로 늘었고 사법 경찰청과 특경(特警), 정보청 등 3개 수사 파트가 연중 범죄 박멸에 나서고 있다.

 

  여기에다 2001년부터 마카오 당국이 홍콩 및 광둥성 공안과 매년 벌이는 합동단속작전도 상당한 성과를 올리고 있다. 마카오대학의 데이비스 퐁(馮家超) 교수는 “마카오가 미국 라스베이거스 자본을 매개로 글로벌 카지노·컨벤션의 메카로 도약하는 상황에 마카오에 갱들이 준동하는 사태가 재발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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