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토리묵을 같이 나눠먹었으면...

kkil길2003.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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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좀 ....잡숴봐요.."
동네 아주머니가 야들야들한 모습의 도토리 묵을 쑤어 가지고 왔다.
도토리를 줍게 해서 고마운듯...

아니면 올해도 도토리를 줍게 해달라는 암시인양 일년전에 주은 도토리 가루로 만든 묵이라 했다.
도토리는 원래 농사가 잘 되지 않으면 많이 열린 다는 속설이 있다.
작년 재작년 울안에 도토리는 얼마 열리지 않았다.
그래도 빌딩 높이의 도토리 나무는 제 몫을 다하듯 바닥에 그 열매를 떨어뜨려 놓고서 가을이 가는 걸 바라보고 있다.
사람들이 자기가 떨어뜨린 씨를 줍는걸 바라보고 무슨 생각을 할까? 잠시 생각했다.
참나무는 공기를 청정하게 해준다고도 해서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시골이라 큰 공해는 없다해도 내가 사는 집주변에 맑은 공기를 만들어 주고 도토리를 떨구어 그것으로 만든 도토리묵이 몸을 정화시켜 주는 식품이라니 여간 고맙지가 않다.
도토리 나무는 울타리 안에서 자연그대로의 모습으로 서있다.
태어난 위치에서 생존경쟁하듯 컸기에 조밀하다.
이번 여름 장마비가 오고, 폭풍이 지나갈때 몇몇 나무는 그힘에 지쳐 몸을 뉘이기도 해 그걸 잘라내어 장작을 만들어 쌓아놓고 삼겹살을 구어 먹을때도 그러려니 하며 그나무의 가치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집을 지을때엔 별 관심이 없이 참나무 숲이 있다는 장점만으로 땅을 소유하게 되었다.
해마다 떨어지는 도토리를 동네사람들이 부러워해서 대문을 열어주었다.
세어보지는 않았지만 도토리 나무가 100여그루는 될듯하다.
크기도 삼사십 미터는 될듯 하지만 숲을 만들어 준 것에만 고마움을 느꼈고, 바람부는날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소리를 듣게 해준것과 달밝을때 달이 제 가지에 걸리게 해준 게 고마웠다.
바람이 지나간 날에는 어김없이 지천으로 떨군 그 알맹이가 마당에 가득하다.
내가 자란 고향 뒷산에도 도토리 나무가 많았다.
어른들을 따라 가서 줍는 재미가 있어 가을이면 어느새 뒷산은 이웃사람들과 도토리 줍는 시합을 하듯 열심히 줍기도 했다.
배고픈 시절에 도토리묵은 별미이며 허기를 채우는 음식이었다.
큰 떡메를 어깨에 메고 가서 힘껏 내리치면 도토리 나무는 비명을 지르듯 제 씨앗을 떨구었다.
우박이 내리듯 떨어지는 도토리는 누구의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의 것이였다.
나무는 배고픈 사람의 허기 만큼의 상처를 입는다.
떡메로 친 부위는 껍질이 벗겨지고, 새살이 돋고, 또 벗겨지는 순환으로 딱딱한 상처 투성이의 모습이다.
역전의 용사처럼 아직도 고향 뒷산엔 그 도토리 나무가 성처를 아물리지 못하고 오늘도 아마 동네 사람들의 떡메맛을 운명이려니 하며 받으며 제 씨앗을 떨구고 있을 것이다.
"나무는 때리지 마시고..."
어느새 몇가마의 도토리가 모였다고 했다.
도토리가 알을 떨구는 시기는 한 열흘쯤 되는 듯하다.
추석이 지나고 지금 구월말, 시월 초가되면 절정에 이르른다.
태양에 말려 껍질을 벗기고 맷돌로 갈아 그 앙금을 몇번이고 우려 내어 야 제맛이 난다고 한다.
누가 그 방법을 생각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생각이 끝이 없다는 찬사가 나온다.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그 알맹이를 주어 먹고 그것으로 묵을 쑤어 먹는 방법을 터득했을까 생각해본다.
어렸을때 묵은 도토리를 주어 껍질을 까면 까맣게 변해있는걸 먹을 수 있었다.
햇도토리는 좀 뜳고 맛이 없었지만 묵은 도토리는 그래도 조금은 달작지근한 맛을 내었다.
가을산에 올라 할일없이 배고픔을 채우려는 본능으로 알밤을 주워 먹는 중 발견한 것이지만, 그역시 다람쥐나 동물들이 먹은 나머지 이기에 별미로 몇개를 맛본 기억일게다.
"다람쥐 몫은 좀 남기세요.."
농담처럼 말하면서 그들에게 미안해 한다.
청솔모와 다람쥐가 그 나무들의 주인이라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다.
집뒤에 알밤을 주우면서 다람쥐 몫으로 남겨 놓은걸 확인하러 가면 이미 없어져 그들몫이 되었다는 안도의 마음을 갖기도 했다.
기분 좋게 돌아가는 동네 부인들이 내년이면 어느날 도토리 묵을 쑤어 올 것이라 생각했다.
그때는 가까운 친지를 불러 도토리묵 파티를 해야겠다.
원래 내것이 아닌 도토리나무가 내집에 자라서 준 것이기에 내가 소유하고 있는 동안만이라도 잘 다듬고 가꾸어, 그와 공존하는 삶이 언제까지 일줄은 모르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은 개발이 밀려와도 기필코 지켜주리라 다짐한다.
오늘 햇살은 앞 들에 누런 벼이삭의 머리를 더 수그리게 했다.
가슴에 풍요가 밀려와 배가 부른듯 파란하늘을 나는 물오리 떼가 정겹다.
나는 저 들판에 곡식처럼 고개를 숙이고 겸손한가?

 

창밖의 흐르는 강물과 먼산을 응시하며 사색에 잠겨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