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황진이에 대해서 알아보기 이전에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 보아야 한다. 조선시대,고려시대 말기부터 받아 들여진 성리학이 조선시대에는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남자를 중요시 여기던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자들의 위치는 점점 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남존여비 사상(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삼종의 도(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른다.)등이 있다. 이걸 보면 조선시대 여자들이 얼마나 천대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여자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차별대우를 받아 남자아이들은 글을 가르치고 여자 아이들은 바늘을 가르쳤다 한다. 또한 여자는 결혼하면 홍역을 하는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힘든 결혼생활을 했다. 한번 살펴보면은 남자는 여러 첩을 거느릴 수 있으나 여자는 질투를 하는 것조차 금기였다. 결혼하면 항상 남자의 말에 복종해야 하며 독수공방하기 일수 였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피곤하였으며 경제적 고통까지 격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자살하는 여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기생의 삶은 어떠하였을지 알아보자(황진이가 기생이니 당연히 알아보는게 좋겠다.) 기생은 조선 8천중의 하나로 천민계급이다. 하지만 대하는 사람들은 고관대작이기때문에 여러 방면에 능통하여야 한다. 시, 산문, 노래, 가야금, 거문고, 그림, 춤등 고관 대작들을 대하기 위해서 매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그 실력이 아주 뛰어나 이름이 알려진 기생을 명기라고 했는데 쉽게 말하면 초 앨리트 기생이라고 할 수 있다. (황진이는 조선의 명기로 유명하다. 명기중의 명기 앨리트 중의 초 앨리트 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황진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이다. 조선 중기 개성(송도)의 명기로 유명하다. 1520년대부터 ~ 1560년대쯤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황진이는 용모가 출중하고 예민하였으면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그의 어머니 진현금은 개성의 병부교 아래서 빨래를 하다가 황진이의 아버지 황진사를 만나서 그의 첩이 됐다고 한다.
황진이는 많은 남자를 쉽게말하면 후렸다. 그 명단을 공개해보자. 황진이가 10대일때부터 외모가 출중하여 여러사람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옆집 총각이 황진이를 짝사랑 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황진이의 어머니는 그 총각을 절대로 만날 수 없게 하여서 그 옆집 총각은 그만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다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의 속저고리를 덮어주었더니 움직여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황진이는 왜 자신때문에 그 나자가 죽었을까를 생각하며 기생이 됐다는 말이 있다.
두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이다. 대부인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 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 지게 된다. 황진이는 송공과 그전부터 함께 지낸 사이라고 한다.
세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이다.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다가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그 노래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개성에 이사종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그사람인가 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아보게 하였는데 정말 이사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찾아가 서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러밤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중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종에게 "내 마땅히 당신과 6년을 살아야 겠소"라고 말하고는 이사종에 집에 3년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 가서 살고 3년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걸 보면 황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했으며 당당한 여자인지 알 수 있다.
네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이다.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끝이 끝내겠다라고 큰소리 쳤다고 한다. 황진이와 30일을 지낸후 황진이가 송별소양곡을 불렀다. 그걸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황진이와 함께 몇일을 더 살았다고 한다.
다섯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이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안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꽤를 내어 황진이 집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말고 앞만 보고 갔다고 한다. 그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망공산할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읊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벽계수가 뒤돌아 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라 풍유랑이라 라고 말하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다.
여섯번째 남자는 이생으로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갈때 이생이 먹을것을 짊어지고 갔는데 여행도중 다 떨어져서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황진이가 몸을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헤어졌다고 한다.
일곱번째 남자는 지족선사로 그는 면벽수련 30년이라고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용모가 빼어났던지 면벽수련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마지막 남자는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한 서경덕이었다.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다. 여러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해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줄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제자가 됐고 황진이는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이 세개를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한다.
서경덕을 위해서 황진이는 많은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나니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도 이와 같아 가고 아니 오노매라
황진이
일단 황진이에 대해서 알아보기 이전에 시대적 상황에 대해서 알아 보아야 한다.
조선시대,고려시대 말기부터 받아 들여진 성리학이 조선시대에는 정치이념으로 받아들여짐으로써 남자를 중요시 여기던 성리학의 영향으로 여자들의 위치는 점점 떨어졌다. 그 대표적인 예로 남존여비 사상(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 삼종의 도(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를 따르고 결혼하고 나서는 남편을 따르고 남편이 죽은 후에는 아들을 따른다.)등이 있다. 이걸 보면 조선시대 여자들이 얼마나 천대 받았는지 알 수 있다. 여자들은 태어나면서 부터 차별대우를 받아 남자아이들은 글을 가르치고 여자 아이들은 바늘을 가르쳤다 한다. 또한 여자는 결혼하면 홍역을 하는것과 같다고 할 정도로 힘든 결혼생활을 했다. 한번 살펴보면은 남자는 여러 첩을 거느릴 수 있으나 여자는 질투를 하는 것조차 금기였다. 결혼하면 항상 남자의 말에 복종해야 하며 독수공방하기 일수 였다.
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이 피곤하였으며 경제적 고통까지 격어야 했다. 그래서 조선시대에는 자살하는 여인들도 많았다고 한다.
그러면 조선시대 기생의 삶은 어떠하였을지 알아보자(황진이가 기생이니 당연히 알아보는게 좋겠다.)
기생은 조선 8천중의 하나로 천민계급이다. 하지만 대하는 사람들은 고관대작이기때문에 여러 방면에 능통하여야 한다. 시, 산문, 노래, 가야금, 거문고, 그림, 춤등 고관 대작들을 대하기 위해서 매우 많은 것들을 배웠다. 그중에서도 그 실력이 아주 뛰어나 이름이 알려진 기생을 명기라고 했는데 쉽게 말하면 초 앨리트 기생이라고 할 수 있다. (황진이는 조선의 명기로 유명하다. 명기중의 명기 앨리트 중의 초 앨리트 이다.)
그러면 지금부터 황진이에 대해서 알아보자.
본명은 진 기명은 명월이다. 조선 중기 개성(송도)의 명기로 유명하다.
1520년대부터 ~ 1560년대쯤 살았을 것으로 추측하고 있고 정확한 자료는 남아 있지 않다고 한다. 황진이는 용모가 출중하고 예민하였으면 예술적 재능이 뛰어나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그의 어머니 진현금은 개성의 병부교 아래서 빨래를 하다가 황진이의 아버지 황진사를 만나서 그의 첩이 됐다고 한다.
황진이는 많은 남자를 쉽게말하면 후렸다. 그 명단을 공개해보자.
황진이가 10대일때부터 외모가 출중하여 여러사람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옆집 총각이 황진이를 짝사랑 하여 상사병에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황진이의 어머니는 그 총각을 절대로 만날 수 없게 하여서 그 옆집 총각은 그만 상사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을 지나다가 땅에 붙어서 움직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의 속저고리를 덮어주었더니 움직여서 갈 수 있었다고 한다. 황진이는 왜 자신때문에 그 나자가 죽었을까를 생각하며 기생이 됐다는 말이 있다.
두번째 남자는 개성 유수 송공이다. 대부인 연회석에 황진이를 초대 하였는데 그때 여러 사람들이 황진이의 빼어난 모습을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황진이가 유명해 지게 된다. 황진이는 송공과 그전부터 함께 지낸 사이라고 한다.
세번째 남자는 선전관 이사종이다. 사신으로 송도를 지나다가 천사원 냇가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그 노래가 아주 출중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그 노래에 빠져 들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개성에 이사종이라는 사람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데 그사람인가 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리고 알아보게 하였는데 정말 이사종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찾아가 서로 마음속에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는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초대하여 여러밤을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러던중 마음에 들었는지 이사종에게 "내 마땅히 당신과 6년을 살아야 겠소"라고 말하고는 이사종에 집에 3년동안 먹고 살 돈을 가져 가서 살고 3년후 이사종을 자신의 집으로 대려와 살았으며 6년이 지난 후에는 깨끗이 헤어졌다고 한다. 이걸 보면 황진이가 얼마나 자존심이 강했으며 당당한 여자인지 알 수 있다.
네번째 남자는 양곡 소세양이다. 그 남자는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 라고 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황진이와 30일을 지내고 깨끝이 끝내겠다라고 큰소리 쳤다고 한다. 황진이와 30일을 지낸후 황진이가 송별소양곡을 불렀다. 그걸 듣고 소세양은 나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하고 황진이와 함께 몇일을 더 살았다고 한다.
다섯번째 남자는 왕족 벽계수이다. 벽계수는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면 만나주질 안아 고민하다가 친구인 이달에게 물어 꽤를 내어 황진이 집근처 정자에서 노래 한곡을 크게 부르고 황진이가 따라와서 돌아보지말고 앞만 보고 갔다고 한다. 그때 황진이가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오기 어려오니 명월이 망공산할제 쉬어간들 어떠리"라고 읊었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듣고 벽계수가 뒤돌아 보다가 말에서 떨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명사가 아니라 풍유랑이라 라고 말하고 돌아가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는 벽계수 낙마곡으로도 유명하다.
여섯번째 남자는 이생으로 황진이가 말년에 금강산 유랑을 하고 싶어 하여 동행을 청해서 함께 금강산을 돌아다녔다고 한다. 갈때 이생이 먹을것을 짊어지고 갔는데 여행도중 다 떨어져서 곳곳의 절을 돌아다니며 황진이가 몸을팔아 음식을 얻었다고 한다. 여행이 끝나고 헤어졌다고 한다.
일곱번째 남자는 지족선사로 그는 면벽수련 30년이라고 유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지족선사를 찾아가 유혹했다고 하는데 얼마나 용모가 빼어났던지 면벽수련 30년을 깨고 파계승이 되어 버렸다고 한다.
마지막 남자는 황진이가 정말로 사랑한 서경덕이었다. 황진이는 서경덕의 학문이 높음을 듣고 서경덕에게 가서 유혹하였으나 넘어오질 않았다. 여러가지 방법을 써보고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서경덕은 의연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황진이가 감탄하여 "지족선사는 30년 면벽수련에도 내앞에 무릎을 꿇었는데 서경덕은 함께 오랜 시절을 지냈으나 끝까지 나에게 이르지 않았으니 진정 성인이다."라고 말해고 서경덕에게 제자로 받아줄것을 부탁했다. 그래서 제자가 됐고 황진이는 서경덕 황진이 박연폭포이 세개를 송도삼절이라고 불렀다한다.
서경덕을 위해서 황진이는 많은 시를 지은 것으로 보인다.
산은 옛 산이로되 물은 옛 물이 아니로다
주야에 흐르나니 옛 물이 있을손가
인걸도 이와 같아 가고 아니 오노매라
청산은 내 뜻이요 녹수는 님의 정이라
녹수는 흘러간들 청산이야 변할손가
녹수도 청산이 그리워 울어 예어 가는가
한편 송세양을 그리워 하며 쓴 시라고 전해지는 것도 있다.
동짓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베혀내어
춘풍 이불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
어론님 오시어든 구비구비 펴리라
어져 내 일이야 그릴줄을 모로더냐
있으라 하면 가랴마는 제 구태여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
이상 황진이에 대한 이야기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