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약간 멍청한 듯한 표정과 어눌한 몸놀림의 아버지였지만 둥그런 눈 속에 비치는 그윽한 그늘은 너무도 깊고 깊었다. 겉으로는 세상을 관조하듯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냉철하게 평생을 지내신 분이다.
아버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술과 계집질로 집안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다섯 살 때에 새벽에 얼어 죽었다. 추운 겨울날 과음하여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쓰러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시장골목에서 술집을 하며 연명하던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것도 열두 살 때까지다. 당시에 얼굴이 곱상하였고, 젊었던 할머니는 소장수와 눈이 맞아서 아버지를 버려둔 채 멀리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시장사람들 틈에서 걸식하다시피 하며 자랐다. 밤이면 물건을 걷어 들인 좌판 위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해장국집을 기웃거리며 잔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혈혈단신인 아버지는 그렇게 시장바닥의 천덕꾸러기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아버지의 첫 범죄,
열다섯 살 때에 아버지는 어물전에서 돈을 훔치다 걸렸다. 발각되었기에 첫 범죄라고 하는 것이고, 경찰서로 끌려가 절도범으로 조사를 받았기에 첫 범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 어디서 얼마나 돈을 훔쳤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본 받고 싶으며 감탄하는 점은,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반성의 태도다. 실수는 한번으로 끝난다. 똑 같은 실수를 두 번씩이나 되풀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평생을 통하여 두 번씩이나 되풀이 된 실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경찰서에서 호된 야단을 맞고 풀려난 아버지는 어른이 될 때까지 두 번 다시 도둑으로 몰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것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발각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하여 완전범죄를 저지른 때문이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인 도둑질을 쉽사리 버릴 수는 없었다.
나와 여동생을 낳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었다. 절대로 붙잡히지 않는 아버지의 도둑질 솜씨에 집안은 풍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낭비를 하지 않는 살림을 꾸려나간 아버지였다. 일반적으로 절도범은 한탕을 한 후에는 긴장감이 풀리는 법이다. 훔쳐온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금방 돈이 떨어지기 일쑤다. 아버지는 시시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철저히 생활비만 지출했다.
그러나 새엄마가 문제였다. 자연히 남편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탕 털어서 가져온 돈을 흥청망청 쓰지 못해 안달했다. 부잣집에서 훔쳐온 패물을 아버지 몰래 시장에 갖고 나가 팔았다. 형사에게 그 물건이 흘러온 과정이 역추적 되었고 주도면밀했던 아버지는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보내졌다.
아버지가 두 번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철저함은 새엄마와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일년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아버지는 새엄마를 내쫓았으며 철저히 나와 여동생이라는 혈육만의 가정생활을 시작했다. 젊은 나이의 아버지였지만 그 이후로 여자에게 흔들리는 법이 절대 없었다.
2.
아버지에게 있어서 도둑질은 생존의 문제였다. 도둑의 세계에 이름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며, 절대로 공범관계를 맺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범행 이었으며,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철저한 암행의 작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경찰로 입소하면서 아버지는 손을 놓았다. 그때까지 얼마나 남의 물건을 훔쳤는지 알 수 없지만, 나와 여동생은 평범한 가정의 생활수준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확하게 아버지의 절도행각은 삼십 여년을 지속했다. 물론 몇 회에 걸쳐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훔쳤는지 모른다. 그 동안에 발각된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열다섯 살 때에 첫 절도전과가 붙은 후, 재혼한 후에 새엄마의 부주의로 발각되었을 뿐이다. 실로 신출귀몰한 도둑질 솜씨인 것이다. 또한 훔쳐온 재물을 철저하게 절약하며 생활한 탓도 있었다. 그만큼 남의 물건을 덜 훔쳐도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시시한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거나한 한탕이었다. 부잣집을 물색한 후에 그 집안 식구의 동태를 일일이 파악한다. 몇 시에 누가 외출하며, 언제 집에 들어오는가를 면밀히 조사하여 식구들의 행동양식을 철저히 분석한다. 아버지는 상대편의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떻게 재물을 관리하는가를 아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귀금속보다는 현찰을 더 많이 훔쳤기 때문이다. 귀금속은 돈으로 바꾸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현찰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의 직업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새엄마의 사건 때문이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는 매일 나와 여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아버지가 도둑놈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짓을 하지마라...... 주로 그런 내용이었다.
어렸을 적에 친엄마는 철저히 아버지의 직업을 부동산업자라고 속였다. 아버지는 매일 밖으로 나가면 저녁 일찍 집에 돌아왔다. 어떤 때에는 몇 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방에 출장 갔다고 나에게 말했다. 친엄마는 완벽한 도둑의 파트너였다. 장롱 바닥에 훔쳐온 돈이 쫙 깔려 있어도 절대로 흥분하거나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수더분한 옷차림으로 시장바구니를 들고 콩나물 값을 따지는 평범한 주부였다.
친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를 얻었다가 봉변을 당한 아버지는 혼자 살았다. 물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으니 학교 동창도 없었으며, 친구도 전혀 없었다. 이사를 자주 다녔으며 이웃사람을 멀리했다. 손에 긴 쇠막대를 하나 가지고 야밤에 잠입하는 도둑의 발걸음처럼 고독한 생애를 지낸 것이다. 평생 한 잔의 술을 마시는 법도 없이 맨 정신으로 그렇게 살았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3.
나는 경찰이다. 그것도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강력반장이다. 의무경찰시절에 절도범을 잡은 공로가 인정되어 정식경찰로 채용되었다. 절도범을 잡은 공로는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다. 금은방이 털린 사건인데, 내가 지나는 말로 그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 하자 아버지는 범인을 딱 집어내었다.
그 당시에 이 사건을 담당하였던 형사들이 금은방주변을 탐문하였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혐의자가 없었다. 아버지는 범행수법을 자세히 듣더니 내부자의 소행일 것이며, 금은방주인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범행수법은 초보자의 수준이지만, 정확하고 짧은 시간에 물건을 훔쳐낸 솜씨는 아무나 하는 짓이 아니라고 했다. 금은방주인의 아들이 범인이었다.
아버지의 공로는 계속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내 능력이 인정된 계기는 강도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야간에 부잣집을 침입한 강도는 침실에서 자던 부부를 살해하고 금고에서 돈과 귀금속을 털었다. 초보형사인 나에게 그 사건이 배당된 것이었다.
지문 하나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프로의 솜씨였다. 강도와 절도의 전력이 있는 불량배를 상대로 하여 탐문해 나갔다. 아버지는 집에도 못 들어오며 사건에 매달리는 나를 보더니 슬쩍 귀띔을 해 주었다. 그렇게 완벽한 범행을 저질렀다면 도망가는 솜씨도 귀신같을 것이다.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나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서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간 범인을 쫓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이후에 접수된 다른 사건을 조사했다. 강도의 전과가 있는 사람이 술집에서 폭행을 하고 구속된 것을 알아내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자가 강도살인사건이 벌어지던 날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샅샅이 조사했다.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다. 범인은 강탈한 물건을 애인에게 맡긴 채 일부로 폭행사건을 저질렀다. 당분간 교도소로 도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확한 물증과 아리바이를 들이대며 범인을 추궁하자 그는 자신의 범행임을 자백했다. 그 사건해결로 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승진과 아울러 유능한 형사로 인정되어 강력사건만 맡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아버지 도움이 있었다. 급속한 승진을 거듭하여 강력반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섰다.
아버지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세계를 환히 알고 있었다. 한 발자국만 먼저...... 이것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쫓는 자는 쫓기는 자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먼저 알아채고 앞질러야 한다고 했다. 그 이면에는 도망가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쫓아 올 것인가를 미리 알고 한발 먼저 도망간다면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뒤로 쫓는 것이 아니라 앞질러야 한다. 앞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쫓는 자의 뒤에 서야 한다. 이것이 숨은 아버지의 절도비법이었다.
4.
“칠레에 가면 망막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데......” 아버지는 여동생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 숙였다. 박봉의 경찰 월급으로는 동생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음 달이면 아내가 첫 아이를 낳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서 들었는지, 남미에 있는 칠레라는 나라에 망막이식 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있다고 했다.
열아홉 살인 여동생은 눈이 안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의무경찰로 근무하면서부터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구워 팔았다.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도와 같이 노점상으로 나섰다. 새벽이면 피곤한 몸을 끌고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년 전, 새벽길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아버지가 졸음에 겨워 앞에 서 있던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 받았다. 그 때에 봉고차 앞유리창이 산산이 부셔지면서 유리파편이 동생의 눈을 덮쳤다. 동생의 뺨에는 빨간 피 대신에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고독한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은 나와 여동생이었다. 항상 말이 없으며 엄격한 표정을 잃지 않은 아버지는 흡사 유격훈련장의 교관 같았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탓으로 한글도 서투르게 쓰지만,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열의는 대단했다. 항상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동네아이들하고 패싸움을 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었다. 보호자를 찾는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와 백배 사죄하고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에서 나의 뺨을 철썩 때린 것이다.
나는 반항했다. 도둑질을 해서 먹고사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왈칵 솟았다. 눈을 치켜들고 아버지는 나를 때릴 자격이 없다고 대들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어깨가 찔끔하며 온 몸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아버지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뺨따귀가 사정없이 날아왔다. 그 때에 아버지는 신음소리를 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획 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밤늦게 까지 방황하다 집으로 와 보니 아버지는 안 계셨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아버지는 터덜터덜 대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는 나를 본 아버지는 뒤 돌아서더니 멀리 뜬 달을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 밥을 먹었냐고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선 아버지는 여동생이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계셨다. 발로 찬 이불을 끌어올려 동생의 턱 밑에까지 덮어 준 아버지는 나를 올려다보며 뺨따귀를 때려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때에 아버지는 나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나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다. 낡은 봉고차를 사서 개조하여 토스트를 구워 파는 노점상으로 나섰다.
5.
내가 결혼하자 아버지는 나를 내쫓다시피 했다. 자신의 과거를 며느리가 알까봐 근심했던 것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도둑놈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내하셨던 것이다. 경찰이 도둑놈의 아들이라니......
여동생이 당한 교통사고는 아버지의 피눈물이었다.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시력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이미 터진 각막이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야 한다는 슬픔에 여동생은 보이지 않는 눈을 껌뻑이며 울었다.
“돈이 많이 들지만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꼭 수술을 받아야지.” 담배를 연신 피우며 말하는 아버지였다.
“돈이 얼마나 든다고 해요?” 나는 물었다. “글세...... 비행기 표하고, 이식할 각막이 마련될 때까지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고, 또 수술을 해야 하니 만만치 않게 들껄.”
나는 어림하여 수술비를 계산해 보았다. 최소한도 몇 천만 원은 족히 들 것이다.
사고를 당하여 죽기 일보 직전인 안구 기증자유족에게 위자료도 지급해야 할 것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돈을 마련해 보죠.”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벌써 일 년째 앞을 못 보는 딸이 안타까웠다. 토스트를 구워 파는 일로는 먼 나라까지 가서 수술을 받을 비용을 마련치 못할 것이 뻔했다. 더듬거리는 딸의 모습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미마저도 없이 자란 딸이 아닌가......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밤늦게까지 아비를 기다리며 주방에서 밥을 짓는 모습은 비수가 되어 아버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고민했다. 여동생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면 아버지는 한을 품고 저 세상에 갈 것이다. 또한 하나 뿐이 없는 여동생이다. 그러나 결혼할 당시에 겨우 마련한 임대아파트가 내 재산의 전부인 것이다. 그것을 처분해봐야 이천 만원도 안 되지만, 다음 달에 아내는 아이까지 낳을 것이니 처분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며 조금만 기다리자고 말했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말없이 웃었다. 눈물이 글썽이는가...... 아버지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요즈음에 장사를 뜸하게 하시죠?” 나는 주머니에서 십 만원을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아버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돈을 내려보더니 나에게 도로 밀었다.
“너도 힘들텐데, 그냥 가지고 가라.” 나는 돈을 집어서 동생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아버지를 뒤로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6.
몇 일후에 아내와 병원에 다녀왔다. 출산예정일이 잡힌 것이다. 배가 잔뜩 부른 아내는 차 안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내 어깨에 기댔다. 의사의 눈치로 봐서는 아들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아내는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며 아기를 감쌀 옷과 이불을 꺼내 보여주었다. 요즈음에 벌이는 조직폭력배단속 때문에 아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조차 몰랐다. 오늘밤에도 야근이다.
대충 아내를 다독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별안간 차에 설치된 무전기가 울렸다. “반장님, 긴급입니다. 000 으로 빨리 가보세요.” 김형사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특수절도범이 차를 몰고 도망치고 있어요. 하얀색 소나타 0000 번입니다. 저 쪽 서의 관할에서 우리 관할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저도 그 쪽으로 가는 중이예요.”
나는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무전기에서는 계속 상황보고가 떨어지고 있었다. 대기업 사장의 집을 털은 절도범은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빈 집의 금고를 털어 나오던 범인이 도난방지시스템에 걸려든 것이다.
언뜻 들리는 말에 의하면 5억이라는 거액을 털린 것이다. 나는 픽 웃었다. 오억의 현찰이라면 여동생의 눈을 찾아 주어도 몇 번은 찾았을 것이다. 부잣집 금고에서 잠자는 현찰을 꺼낸 도둑놈이 왠지 기특하게 느껴졌다. 무사히 도망이라도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절도범은 여러 대의 차량과 충돌하면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방에 깔린 경찰의 그물망에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범인은 샛길을 빠지면서 경찰차량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동양프라자 빌딩 주차장으로 범인차량이 들어갔다.” 무전기에서 들린 상황보고였다.
나는 코너를 휙 돌았다. 멀리 동양프라자 빌딩이 보였다. 사방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리며 출동차량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는 가속패달을 힘껏 밟으며 빌딩의 지하주차장으로 돌진했다. 먼저 도착한 김형사와 오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범인이 사용한 차는 주차장화장실 입구에 옆구리를 들이박고 서 있었으며, 범인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빌딩의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감도 안 잡혔다. 범인은 렌트카를 사용했다. 급하게 도망가느냐 차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였다. 좌석과 트렁크는 텅텅 비었다. 돈을 몽땅 짊어지고 사라진 것이었다. 망연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무전기로 상황이 떨어졌다. “범인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7.
나와 오형사, 그리고 김형사는 승강기에 올랐다. 십오 층에서 내린 우리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올랐다. 순간 창문 밖으로 날리는 돈이 보였다. 옥상에서 뿌리는 만 원권 지폐가 허공을 마구 날며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 저 새끼 또라이 아녀요?” 김형사는 입을 벌린 채 소리쳤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위를 올려보았다. 바로 위의 옥상에서 돈을 밖으로 마구 던지는 손이 희끗 보였다. 어둠이 깔린 지상으로 내리는 돈...... 여동생의 눈알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씨팔~ 저렇게 뿌릴 돈이면 나에게 줄 것이지......” 내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겨드랑이에서 권총을 꺼내는 김형사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미친 새끼를 잡아와.”
김형사와 오형사는 옥상으로 난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있었다. 나는 계속 밖으로 시선을 내놓았다. 건물 아래는 차를 세워놓고 내린 사람들이 돈을 잡으려 아우성 치고 있었다. 실도 돈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아버지가 파는 토스트 한 개의 값은 천오백 원이다. 오억 원의 돈으로 계산하여 토스트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여 쫙 깔리면 몇 번이나 깔릴까...... 앞을 못 보는 여동생이 머리에 떠올랐다. 화려한 돈의 제전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탕~
총소리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 밖으로 튀어 나왔다. 어둑한 구석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고 그 옆에는 김형사와 오형사가 앉아서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이 새끼가 가스총을 겨누어서, 나는 진짜 총인 줄 알고 쏘았어요.”
김형사가 내뱉은 말이었다. 엎어져 있는 범인의 등에서 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급히 구급차를 부르라고 무전으로 연락하며 오형사에게 말했다.
“얼굴을 보여줘 봐. 어떻게 생긴 놈인데 또라이 짓을 하고 그러는거야?”
오형사는 웃옷을 벗어서 피가 나오는 범인의 등과 가슴을 틀어막으며 옆으로 비켜 앉았다. 나는 범인의 머리카락을 덥석 잡아서 얼굴을 위로 돌렸다.
순간, 억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7.
아버지였다. 가슴에서 피를 쏟는 아버지의 얼굴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뺨을 문지르며 울부짖었다. 주름진 눈꺼풀이 꿈틀꿈틀하더니 가늘게 뜬 아버지의 눈동자가 보였다. 손을 들어 나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사님, 죄송해요. 돈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이런 짓을 했어요. 허공에 돈을 훌훌 뿌리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어요. 평생을 괴롭힌 돈을 내 마음껏 뿌리며 누구든지 주워가게 하고 싶었어요......”
나와 김형사, 그리고 오형사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임종을 지켜보았다. 내 손을 꽉 잡은 아버지의 손가락마디 하나가 손바닥을 꾹 누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날 뉴스시간에는 이 사건이 첫 화면으로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육십 대 남자가 오억 원을 털어서 동양프라자 건물의 옥상에서 뿌렸습니다. 그 남자는 평생을 괴롭혀온 돈을 허공에 마구 뿌려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며 사망했습니다. 길거리에는 돈을 줍는 사람으로 아우성이었으며......”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나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돈을 허공에 마구 뿌린 아버지의 저의가 과연 마지막 말과 같은 것일까? 여동생의 눈수술 비용을 걱정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우매한 짓을 할 분인가,
문득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에 손가락 마디로 내 손바닥을 꾹 누르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동양프라자 빌딩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옥상으로 무거운 돈을 짊어지고 올라가려면 자동차를 분명히 승강기 앞에 세워 놓았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옆구리가 화장실 입구에 부딪친 채로 서 있었다.
승강기와 차가 세워져 있던 화장실입구의 거리는 꽤 멀었다. 일부러 화장실 입구에 차를 세워놓은 아버지가 아닐까......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자 화장실입구에 섰다.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서며 사방을 살폈다. 세 개의 대변기와 다섯 개의 소변기가 가지런히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분명히 이 곳을 들렸던 것이다.
번쩍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천정귀퉁이에 살짝 들린 합판조각이 보였다. 나는 대변기 위에 올라서서 천정조각을 밀었다. 그리고 손을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묵직한 무게의 가방이 손에 잡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방을 힘주어 꺼냈다. 가방 속에 가득 담긴 만 원권 지폐.
아버지는 돈의 일부를 여동생 수술비로 감추어 놓은 것이다. 감춘 수술비를 은폐하려고 허공에 마구 돈을 뿌린 것이다. 오억 원이라는 돈을 모두 허공에 뿌렸다고 죽는 순간에 말했다.
도둑질하는 현장이 발각되자 아버지는 일부러 내 관할로 도망쳤다. 내가 먼저 출동할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아들인 나를 보고 형사님이라고 불렀다. 비몽사몽 아무것도 못 알아보는 척 하면서 내 손을 잡았고, 손가락마디로 싸인을 보냈다.
절도범인 아버지와 형사인 아들 (단편소설)
절도범인 아버지와 형사인 아들
1.
담배를 피우는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약간 멍청한 듯한 표정과 어눌한 몸놀림의 아버지였지만 둥그런 눈 속에 비치는 그윽한 그늘은 너무도 깊고 깊었다. 겉으로는 세상을 관조하듯 살았지만 누구보다도 치열하고 냉철하게 평생을 지내신 분이다.
아버지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술과 계집질로 집안을 헌신짝처럼 내버린 할아버지는 아버지가 다섯 살 때에 새벽에 얼어 죽었다. 추운 겨울날 과음하여 길거리를 방황하다가 쓰러진 것이었다. 아버지는 시장골목에서 술집을 하며 연명하던 할머니의 손에 자랐다. 그것도 열두 살 때까지다. 당시에 얼굴이 곱상하였고, 젊었던 할머니는 소장수와 눈이 맞아서 아버지를 버려둔 채 멀리 떠나버렸다.
아버지는 시장사람들 틈에서 걸식하다시피 하며 자랐다. 밤이면 물건을 걷어 들인 좌판 위에서 잠을 잤다. 낮에는 해장국집을 기웃거리며 잔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었다. 혈혈단신인 아버지는 그렇게 시장바닥의 천덕꾸러기로 어린시절을 보냈던 것이다.
아버지의 첫 범죄,
열다섯 살 때에 아버지는 어물전에서 돈을 훔치다 걸렸다. 발각되었기에 첫 범죄라고 하는 것이고, 경찰서로 끌려가 절도범으로 조사를 받았기에 첫 범죄라고 하는 것이다. 그 이전에 어디서 얼마나 돈을 훔쳤는지 아무도 모른다.
내가 아버지에게 가장 본 받고 싶으며 감탄하는 점은, 두 번 다시 잘못을 되풀이 하지 않는 철저한 자기반성의 태도다. 실수는 한번으로 끝난다. 똑 같은 실수를 두 번씩이나 되풀이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다. 아버지에게는 평생을 통하여 두 번씩이나 되풀이 된 실수는 거의 없을 것이다.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지만 경찰서에서 호된 야단을 맞고 풀려난 아버지는 어른이 될 때까지 두 번 다시 도둑으로 몰리는 경우가 없었다. 그것은 도둑질을 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발각된 이유를 철저히 분석하여 완전범죄를 저지른 때문이었다. 배고픔을 달래는 유일한 방법인 도둑질을 쉽사리 버릴 수는 없었다.
나와 여동생을 낳은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에 아버지는 재혼을 했었다.
절대로 붙잡히지 않는 아버지의 도둑질 솜씨에 집안은 풍족한 편이었다. 그러나 절대로 낭비를 하지 않는 살림을 꾸려나간 아버지였다. 일반적으로 절도범은 한탕을 한 후에는 긴장감이 풀리는 법이다. 훔쳐온 돈을 흥청망청 쓰다가 금방 돈이 떨어지기 일쑤다. 아버지는 시시한 감정에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철저히 생활비만 지출했다.
그러나 새엄마가 문제였다.
자연히 남편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한탕 털어서 가져온 돈을 흥청망청 쓰지 못해 안달했다. 부잣집에서 훔쳐온 패물을 아버지 몰래 시장에 갖고 나가 팔았다. 형사에게 그 물건이 흘러온 과정이 역추적 되었고 주도면밀했던 아버지는 절도범으로 체포되어 교도소로 보내졌다.
아버지가 두 번의 실수를 허용하지 않는 철저함은 새엄마와의 이혼으로 이어졌다. 일년간 교도소에 수감되었다 출소한 아버지는 새엄마를 내쫓았으며 철저히 나와 여동생이라는 혈육만의 가정생활을 시작했다. 젊은 나이의 아버지였지만 그 이후로 여자에게 흔들리는 법이 절대 없었다.
2.
아버지에게 있어서 도둑질은 생존의 문제였다.
도둑의 세계에 이름을 노출시키지 않았으며, 절대로 공범관계를 맺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단독범행 이었으며, 사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철저한 암행의 작업이었다. 내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의무경찰로 입소하면서 아버지는 손을 놓았다. 그때까지 얼마나 남의 물건을 훔쳤는지 알 수 없지만, 나와 여동생은 평범한 가정의 생활수준에서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정확하게 아버지의 절도행각은 삼십 여년을 지속했다. 물론 몇 회에 걸쳐서 얼마나 많은 물건을 훔쳤는지 모른다. 그 동안에 발각된 적은 딱 두 번이었다. 열다섯 살 때에 첫 절도전과가 붙은 후, 재혼한 후에 새엄마의 부주의로 발각되었을 뿐이다. 실로 신출귀몰한 도둑질 솜씨인 것이다. 또한 훔쳐온 재물을 철저하게 절약하며 생활한 탓도 있었다. 그만큼 남의 물건을 덜 훔쳐도 되었던 것이다.
아버지는 시시한 물건을 훔치지 않았다. 정확하게 거나한 한탕이었다.
부잣집을 물색한 후에 그 집안 식구의 동태를 일일이 파악한다. 몇 시에 누가 외출하며, 언제 집에 들어오는가를 면밀히 조사하여 식구들의 행동양식을 철저히 분석한다. 아버지는 상대편의 얼굴만 보아도 그 사람이 어떻게 재물을 관리하는가를 아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귀금속보다는 현찰을 더 많이 훔쳤기 때문이다. 귀금속은 돈으로 바꾸는 위험을 감수해야 하지만 현찰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아버지의 직업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안 것은 새엄마의 사건 때문이었다. 교도소에 수감된 아버지는 매일 나와 여동생에게 편지를 썼다. 나는 아버지가 도둑놈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공부를 열심히 해라, 커서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남에게 폐를 끼치는 짓을 하지마라...... 주로 그런 내용이었다.
어렸을 적에 친엄마는 철저히 아버지의 직업을 부동산업자라고 속였다. 아버지는 매일 밖으로 나가면 저녁 일찍 집에 돌아왔다. 어떤 때에는 몇 일간 집에 들어오지 않기도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버지가 지방에 출장 갔다고 나에게 말했다. 친엄마는 완벽한 도둑의 파트너였다. 장롱 바닥에 훔쳐온 돈이 쫙 깔려 있어도 절대로 흥분하거나 내색하는 법이 없었다. 수더분한 옷차림으로 시장바구니를 들고 콩나물 값을 따지는 평범한 주부였다.
친엄마가 돌아가시고 새엄마를 얻었다가 봉변을 당한 아버지는 혼자 살았다. 물론 학교에 다닌 적도 없으니 학교 동창도 없었으며, 친구도 전혀 없었다. 이사를 자주 다녔으며 이웃사람을 멀리했다. 손에 긴 쇠막대를 하나 가지고 야밤에 잠입하는 도둑의 발걸음처럼 고독한 생애를 지낸 것이다. 평생 한 잔의 술을 마시는 법도 없이 맨 정신으로 그렇게 살았다. 지독한 외로움 속에서......
3.
나는 경찰이다. 그것도 강력사건을 담당하는 강력반장이다. 의무경찰시절에 절도범을 잡은 공로가 인정되어 정식경찰로 채용되었다. 절도범을 잡은 공로는 순전히 아버지 덕분이다. 금은방이 털린 사건인데, 내가 지나는 말로 그 사건의 내용을 이야기 하자 아버지는 범인을 딱 집어내었다.
그 당시에 이 사건을 담당하였던 형사들이 금은방주변을 탐문하였지만 뚜렷하게 떠오르는 혐의자가 없었다. 아버지는 범행수법을 자세히 듣더니 내부자의 소행일 것이며, 금은방주인의 가족 중에 한 사람일 것이라고 단언했다. 범행수법은 초보자의 수준이지만, 정확하고 짧은 시간에 물건을 훔쳐낸 솜씨는 아무나 하는 짓이 아니라고 했다. 금은방주인의 아들이 범인이었다.
아버지의 공로는 계속 이어졌다. 결정적으로 내 능력이 인정된 계기는 강도살인사건 때문이었다. 야간에 부잣집을 침입한 강도는 침실에서 자던 부부를 살해하고 금고에서 돈과 귀금속을 털었다. 초보형사인 나에게 그 사건이 배당된 것이었다.
지문 하나도 남기지 않은 완벽한 프로의 솜씨였다. 강도와 절도의 전력이 있는 불량배를 상대로 하여 탐문해 나갔다. 아버지는 집에도 못 들어오며 사건에 매달리는 나를 보더니 슬쩍 귀띔을 해 주었다. 그렇게 완벽한 범행을 저질렀다면 도망가는 솜씨도 귀신같을 것이다.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나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서 아무도 쫓아오지 못하는 곳으로 도망간 범인을 쫓기 시작했다.
사건이 일어난 날 이후에 접수된 다른 사건을 조사했다. 강도의 전과가 있는 사람이 술집에서 폭행을 하고 구속된 것을 알아내었다. 구치소에 수감된 자가 강도살인사건이 벌어지던 날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샅샅이 조사했다.
아버지의 예상은 적중했다.
범인은 강탈한 물건을 애인에게 맡긴 채 일부로 폭행사건을 저질렀다. 당분간 교도소로 도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정확한 물증과 아리바이를 들이대며 범인을 추궁하자 그는 자신의 범행임을 자백했다. 그 사건해결로 나는 일약 스타가 되었다. 승진과 아울러 유능한 형사로 인정되어 강력사건만 맡게 되었다. 그 이후에도 몇 번의 아버지 도움이 있었다. 급속한 승진을 거듭하여 강력반장이라는 자리에 올라섰다.
아버지는 쫓는 자와 쫓기는 자의 세계를 환히 알고 있었다.
한 발자국만 먼저...... 이것이 승패를 좌우한다고 했다. 쫓는 자는 쫓기는 자가 어느 방향으로 갈 것인지 먼저 알아채고 앞질러야 한다고 했다. 그 이면에는 도망가는 방법이 제시되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쫓아 올 것인가를 미리 알고 한발 먼저 도망간다면 붙잡히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다. 뒤로 쫓는 것이 아니라 앞질러야 한다. 앞에서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쫓는 자의 뒤에 서야 한다. 이것이 숨은 아버지의 절도비법이었다.
4.
“칠레에 가면 망막이식 수술을 받을 수 있다는데......”
아버지는 여동생의 손등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나는 고개 숙였다. 박봉의 경찰 월급으로는 동생의 수술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더구나 다음 달이면 아내가 첫 아이를 낳는 것이다. 아버지는 어디서 들었는지, 남미에 있는 칠레라는 나라에 망막이식 수술만 전문으로 하는 병원이 있다고 했다.
열아홉 살인 여동생은 눈이 안보였다. 아버지는 내가 의무경찰로 근무하면서부터 길거리에서 토스트를 구워 팔았다. 여동생은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아버지를 도와 같이 노점상으로 나섰다. 새벽이면 피곤한 몸을 끌고 봉고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일년 전, 새벽길에서 교통사고가 난 것이다. 아버지가 졸음에 겨워 앞에 서 있던 트럭을 정면으로 들이 받았다. 그 때에 봉고차 앞유리창이 산산이 부셔지면서 유리파편이 동생의 눈을 덮쳤다. 동생의 뺨에는 빨간 피 대신에 검은 물이 흘러내렸다.
아버지의 고독한 삶을 지탱해 준 버팀목은 나와 여동생이었다.
항상 말이 없으며 엄격한 표정을 잃지 않은 아버지는 흡사 유격훈련장의 교관 같았다. 학교에 다니지 못한 탓으로 한글도 서투르게 쓰지만, 자식을 공부시키려는 열의는 대단했다. 항상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할 당시에 내가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대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동네아이들하고 패싸움을 벌려서 경찰서에 끌려갔었다. 보호자를 찾는 전화를 받은 아버지는 경찰서에 들어와 백배 사죄하고는 나를 데리고 나왔다. 그리고 어두운 골목에서 나의 뺨을 철썩 때린 것이다.
나는 반항했다.
도둑질을 해서 먹고사는 아버지라는 생각이 왈칵 솟았다. 눈을 치켜들고 아버지는 나를 때릴 자격이 없다고 대들었다. 순간적으로 아버지의 어깨가 찔끔하며 온 몸이 오그라드는 듯 했다. 아버지의 눈이 크게 떠지면서 뺨따귀가 사정없이 날아왔다. 그 때에 아버지는 신음소리를 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획 돌아서더니 빠른 걸음으로 골목 밖으로 사라졌다.
밤늦게 까지 방황하다 집으로 와 보니 아버지는 안 계셨다.
나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마루에 우두커니 앉아 있었다. 자정을 넘긴 시간에 아버지는 터덜터덜 대문으로 들어섰다. 나는 벌떡 일어섰다.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도 초라해 보인 것이다. 눈물을 글썽이며 서 있는 나를 본 아버지는 뒤 돌아서더니 멀리 뜬 달을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 밥을 먹었냐고 묻는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방에 들어선 아버지는 여동생이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보고 계셨다. 발로 찬 이불을 끌어올려 동생의 턱 밑에까지 덮어 준 아버지는 나를 올려다보며 뺨따귀를 때려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그 때에 아버지는 나에게 사정을 하고 있었다. 초라한 모습으로 나를 붙잡고 용서를 구하는 모습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도둑질에서 손을 떼었다. 낡은 봉고차를 사서 개조하여 토스트를 구워 파는 노점상으로 나섰다.
5.
내가 결혼하자 아버지는 나를 내쫓다시피 했다.
자신의 과거를 며느리가 알까봐 근심했던 것이다. 더 큰 이유는 내가 도둑놈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들을까봐 겁내하셨던 것이다. 경찰이 도둑놈의 아들이라니......
여동생이 당한 교통사고는 아버지의 피눈물이었다. 병원마다 찾아다니며 딸의 시력을 되찾으려는 노력은 허사로 돌아갔다. 이미 터진 각막이었다. 평생을 장님으로 살아야 한다는 슬픔에 여동생은 보이지 않는 눈을 껌뻑이며 울었다.
“돈이 많이 들지만 앞을 볼 수 있게 된다면 꼭 수술을 받아야지.”
담배를 연신 피우며 말하는 아버지였다.
“돈이 얼마나 든다고 해요?” 나는 물었다.
“글세...... 비행기 표하고, 이식할 각막이 마련될 때까지 병원에서 대기해야 하고, 또 수술을 해야 하니 만만치 않게 들껄.”
나는 어림하여 수술비를 계산해 보았다. 최소한도 몇 천만 원은 족히 들 것이다.
사고를 당하여 죽기 일보 직전인 안구 기증자유족에게 위자료도 지급해야 할 것이다. 나는 웃으며 말했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돈을 마련해 보죠.”
그러나 아버지 생각은 달랐다. 벌써 일 년째 앞을 못 보는 딸이 안타까웠다. 토스트를 구워 파는 일로는 먼 나라까지 가서 수술을 받을 비용을 마련치 못할 것이 뻔했다. 더듬거리는 딸의 모습은 견디기 힘들었다. 어미마저도 없이 자란 딸이 아닌가......
중학교에 다니면서부터 집안 살림을 도맡아 했던 것이다. 보이지 않는 눈으로 밤늦게까지 아비를 기다리며 주방에서 밥을 짓는 모습은 비수가 되어 아버지의 가슴을 파고들었다.
나는 고민했다. 여동생의 눈을 뜨지 못하게 하면 아버지는 한을 품고 저 세상에 갈 것이다. 또한 하나 뿐이 없는 여동생이다. 그러나 결혼할 당시에 겨우 마련한 임대아파트가 내 재산의 전부인 것이다. 그것을 처분해봐야 이천 만원도 안 되지만, 다음 달에 아내는 아이까지 낳을 것이니 처분할 수도 없는 것이다.
나는 여동생의 어깨를 감싸며 조금만 기다리자고 말했다. 여동생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는 말없이 웃었다. 눈물이 글썽이는가......
아버지의 눈가에 촉촉한 이슬이 맺히는 듯 했다.
“요즈음에 장사를 뜸하게 하시죠?” 나는 주머니에서 십 만원을 꺼내어 내밀며 말했다.
아버지는 쓴 웃음을 지으며 돈을 내려보더니 나에게 도로 밀었다.
“너도 힘들텐데, 그냥 가지고 가라.”
나는 돈을 집어서 동생의 손에 꼭 쥐어 주었다. 아버지를 뒤로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6.
몇 일후에 아내와 병원에 다녀왔다. 출산예정일이 잡힌 것이다.
배가 잔뜩 부른 아내는 차 안에서 어리광을 피우며 내 어깨에 기댔다. 의사의 눈치로 봐서는 아들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아파트에 들어서니 아내는 자기가 직접 만들었다고 하며 아기를 감쌀 옷과 이불을 꺼내 보여주었다. 요즈음에 벌이는 조직폭력배단속 때문에 아내가 집에서 무엇을 하며 지내는지 조차 몰랐다. 오늘밤에도 야근이다.
대충 아내를 다독거리고 경찰서로 향했다.
별안간 차에 설치된 무전기가 울렸다.
“반장님, 긴급입니다. 000 으로 빨리 가보세요.” 김형사의 목소리가 급하게 들려왔다.
“특수절도범이 차를 몰고 도망치고 있어요. 하얀색 소나타 0000 번입니다. 저 쪽 서의 관할에서 우리 관할로 넘어왔다고 합니다. 저도 그 쪽으로 가는 중이예요.”
나는 급하게 차를 몰기 시작했다.
무전기에서는 계속 상황보고가 떨어지고 있었다. 대기업 사장의 집을 털은 절도범은 경찰에 쫓기고 있었다. 빈 집의 금고를 털어 나오던 범인이 도난방지시스템에 걸려든 것이다.
언뜻 들리는 말에 의하면 5억이라는 거액을 털린 것이다. 나는 픽 웃었다. 오억의 현찰이라면 여동생의 눈을 찾아 주어도 몇 번은 찾았을 것이다. 부잣집 금고에서 잠자는 현찰을 꺼낸 도둑놈이 왠지 기특하게 느껴졌다. 무사히 도망이라도 갔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절도범은 여러 대의 차량과 충돌하면서 계속 도망치고 있었다.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사방에 깔린 경찰의 그물망에 걸리는 것은 시간문제다. 범인은 샛길을 빠지면서 경찰차량의 추적을 따돌리고 있다.
“동양프라자 빌딩 주차장으로 범인차량이 들어갔다.” 무전기에서 들린 상황보고였다.
나는 코너를 휙 돌았다. 멀리 동양프라자 빌딩이 보였다.
사방에서 사이렌소리가 들리며 출동차량이 한꺼번에 몰려들었다. 나는 가속패달을 힘껏 밟으며 빌딩의 지하주차장으로 돌진했다. 먼저 도착한 김형사와 오형사의 모습이 보였다. 범인이 사용한 차는 주차장화장실 입구에 옆구리를 들이박고 서 있었으며, 범인은 보이지 않았다.
거대한 빌딩의 어느 구석에 숨었는지 감도 안 잡혔다.
범인은 렌트카를 사용했다. 급하게 도망가느냐 차의 시동도 끄지 않은 채였다. 좌석과 트렁크는 텅텅 비었다. 돈을 몽땅 짊어지고 사라진 것이었다. 망연한 기분으로 서 있는데 무전기로 상황이 떨어졌다. “범인은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7.
나와 오형사, 그리고 김형사는 승강기에 올랐다. 십오 층에서 내린 우리는 옥상으로 향하는 계단을 뛰어 올랐다. 순간 창문 밖으로 날리는 돈이 보였다. 옥상에서 뿌리는 만 원권 지폐가 허공을 마구 날며 떨어지는 것이었다.
“어? 저 새끼 또라이 아녀요?” 김형사는 입을 벌린 채 소리쳤다.
우리는 창문을 열고 위를 올려보았다. 바로 위의 옥상에서 돈을 밖으로 마구 던지는 손이 희끗 보였다. 어둠이 깔린 지상으로 내리는 돈...... 여동생의 눈알이 떨어지는 것 같았다.
“씨팔~ 저렇게 뿌릴 돈이면 나에게 줄 것이지......” 내 입에서 욕이 저절로 나왔다.
겨드랑이에서 권총을 꺼내는 김형사에게 말했다.
“얼른 가서 미친 새끼를 잡아와.”
김형사와 오형사는 옥상으로 난 철문을 조심스럽게 열고 있었다. 나는 계속 밖으로 시선을 내놓았다. 건물 아래는 차를 세워놓고 내린 사람들이 돈을 잡으려 아우성 치고 있었다. 실도 돈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아버지가 파는 토스트 한 개의 값은 천오백 원이다. 오억 원의 돈으로 계산하여 토스트가 서울과 부산을 왕복하여 쫙 깔리면 몇 번이나 깔릴까...... 앞을 못 보는 여동생이 머리에 떠올랐다. 화려한 돈의 제전이 지금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탕~
총소리에 나는 번쩍 정신이 들었다.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 옥상 밖으로 튀어 나왔다. 어둑한 구석에 한 사람이 쓰러져 있고 그 옆에는 김형사와 오형사가 앉아서 범인에게 수갑을 채우고 있었다.
“이 새끼가 가스총을 겨누어서, 나는 진짜 총인 줄 알고 쏘았어요.”
김형사가 내뱉은 말이었다. 엎어져 있는 범인의 등에서 붉은 피가 울컥거리며 나오고 있었다. 나는 급히 구급차를 부르라고 무전으로 연락하며 오형사에게 말했다.
“얼굴을 보여줘 봐. 어떻게 생긴 놈인데 또라이 짓을 하고 그러는거야?”
오형사는 웃옷을 벗어서 피가 나오는 범인의 등과 가슴을 틀어막으며 옆으로 비켜 앉았다. 나는 범인의 머리카락을 덥석 잡아서 얼굴을 위로 돌렸다.
순간,
억 하는 외마디 비명을 질렀다.
7.
아버지였다.
가슴에서 피를 쏟는 아버지의 얼굴은 하얗게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뺨을 문지르며 울부짖었다. 주름진 눈꺼풀이 꿈틀꿈틀하더니 가늘게 뜬 아버지의 눈동자가 보였다. 손을 들어 나의 손을 잡은 아버지는 숨넘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형사님, 죄송해요. 돈이 너무 원망스러워서 이런 짓을 했어요. 허공에 돈을 훌훌 뿌리고 세상을 떠나고 싶었어요. 평생을 괴롭힌 돈을 내 마음껏 뿌리며 누구든지 주워가게 하고 싶었어요......”
나와 김형사, 그리고 오형사는 아버지의 마지막 말을 들으며 임종을 지켜보았다.
내 손을 꽉 잡은 아버지의 손가락마디 하나가 손바닥을 꾹 누르는 것이었다. 그리고 손아귀가 스르르 풀리더니 이내 눈을 감았다.
그날 뉴스시간에는 이 사건이 첫 화면으로 크게 보도되고 있었다.
“육십 대 남자가 오억 원을 털어서 동양프라자 건물의 옥상에서 뿌렸습니다. 그 남자는 평생을 괴롭혀온 돈을 허공에 마구 뿌려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말하며 사망했습니다. 길거리에는 돈을 줍는 사람으로 아우성이었으며......”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른 나는 한 가지 의문에 사로잡혔다. 돈을 허공에 마구 뿌린 아버지의 저의가 과연 마지막 말과 같은 것일까?
여동생의 눈수술 비용을 걱정하던 아버지가 그렇게 우매한 짓을 할 분인가,
문득 아버지가 눈을 감는 순간에 손가락 마디로 내 손바닥을 꾹 누르던 일이 생각났다. 나는 벌떡 일어서서 동양프라자 빌딩으로 향했다. 아버지가 옥상으로 무거운 돈을 짊어지고 올라가려면 자동차를 분명히 승강기 앞에 세워 놓았어야 될 것이다. 그런데 자동차는 옆구리가 화장실 입구에 부딪친 채로 서 있었다.
승강기와 차가 세워져 있던 화장실입구의 거리는 꽤 멀었다. 일부러 화장실 입구에 차를 세워놓은 아버지가 아닐까......
나는 지하주차장으로 들어서자 화장실입구에 섰다.
천천히 화장실로 들어서며 사방을 살폈다. 세 개의 대변기와 다섯 개의 소변기가 가지런히 눈에 들어왔다. 눈을 감았다. 아버지는 분명히 이 곳을 들렸던 것이다.
번쩍 고개를 들어 천정을 올려다보았다. 천정귀퉁이에 살짝 들린 합판조각이 보였다. 나는 대변기 위에 올라서서 천정조각을 밀었다. 그리고 손을 안으로 쑥 집어넣었다.
묵직한 무게의 가방이 손에 잡혔다.
눈물이 핑 돌았다. 가방을 힘주어 꺼냈다. 가방 속에 가득 담긴 만 원권 지폐.
아버지는 돈의 일부를 여동생 수술비로 감추어 놓은 것이다. 감춘 수술비를 은폐하려고 허공에 마구 돈을 뿌린 것이다. 오억 원이라는 돈을 모두 허공에 뿌렸다고 죽는 순간에 말했다.
도둑질하는 현장이 발각되자 아버지는 일부러 내 관할로 도망쳤다. 내가 먼저 출동할 것을 염두에 둔 행동이었다. 그리고 죽는 순간에도 아들인 나를 보고 형사님이라고 불렀다. 비몽사몽 아무것도 못 알아보는 척 하면서 내 손을 잡았고, 손가락마디로 싸인을 보냈다.
여동생 수술비는 마련했다고......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