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문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것은 한글, 한복, 김치, 된장, 풍물굿, 판소리, 한지 등으로 참 많다.
한글은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글자로 인정받고, 한복은 아름다움, 편함, 건강을 살려주는 옷으로 평가받으며, 김치와 된장이 건강에 기여하는 위대한 항암음식임이 증명되었다.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풍물굿,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판소리, 1200년 동안 썩지 않은 한지를 보아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은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자원이 없고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 군사 어느 것으로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문화를 가지고는 어떤 강대국과도 당당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문화가 제나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잊혀지고, 계승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통문화가 왜곡되고, 상업성에 더렵혀진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그 까닭으로 다음의 7가지를 들고 싶다. “너무 옛것을 고집한다”, “원칙을 버리고, 지나치게 현대화, 서양화한다”, “전통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명망가만을 위한 소수의 것으로 전락했다”,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교육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문화를 도외시한다”,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지 않는다.”
먼저 “너무 옛것을 고집한다.”를 생각해보자. 일부 전통문화인들은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에 집착하여 옛것을 고집하는데 머무른다. 따라서 전통이 현대와는 동떨어진 고루한 것으로 비쳐지고,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전통이 일반 대중의 외면을 받기에 이른다.
8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생활한복에 대해 일부는 부정적인 눈길을 보낸다. 자신들은 전통한복도 입지 않으면서 생활한복은 전통한복을 왜곡한 것으로 한복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창작국악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국악기의 개량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한복에 있는 약간의 불편함을 개선하여 현대인에게 다가서려는 것이나 새롭게 국악을 창작하고, 국악기를 음폭이 넓거나 음량이 크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가다듬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켜 주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모른다.
둘째 “원칙을 버리고, 지나치게 현대화, 서양화 한다.”이다. 전통의 계승은 모름지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어야 한다. 즉 옛것을 정확히 알고 그에 대한 애정을 통해서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많은 문화 계승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전통문화의 본질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채로 적당히 뛰어든다. 그러니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들이 요구한다는 명분으로 전통의 원칙, 철학을 버리고,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지나친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복의 경우를 보면 섶, 직선진동, 사폭, 대님 따위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없앨 때는 한복의 맛과 장점은 사라지게 된다. 한복을 지어왔던 평면재단이 아니라 서양옷을 짓는 입체재단을 하면서 몸에 딱 붙는 옷이 되어 편한 그리고 건강을 위한 옷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이 난무한다.
또 김치에 들어있는 고춧가루는 젖산균의 성장을 도와 김치를 맛있게 발효시키며, 잡균을 억제한다. 또 고추는 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해 김치의 저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혈액암세포의 성장을 막는 항암식품임이 증명되었는데도 맵게 먹으면 안 된다는 서양의학의 논리에 빠져 고추없는 김치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풍물굿과 사물놀이는 뿌리는 같지만 내용은 많이 다른 것이다. 풍물굿은 연주자와 청중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며, 단순히 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풀이, 윗놀음, 상모놀이, 짝쇠놀이, 무동놀이 등의 놀이문화와 함께하는 종합예술이다. 또 풍물굿은 서서 하는 선반이라고 하며, 우리문화의 진수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좁은 마당이나 무대에서도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양의 무대예술처럼 4개의 악기를 연주하고, 청중의 박수를 받는 형태이다. 앉아서 연주하는 앉은반이며, 놀이형태는 없다. 따라서 사물놀이가 풍물굿을 또 다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풍물굿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물놀이가 풍물굿을 뛰어넘는 대단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셋째 “전통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도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에 걸림돌이 된다. 물론 전통은 적당히 상업을 활용하고, 마케팅을 도입하여야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업화한 나머지 왜곡하여 오히려 퇴보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양에 가서 한복패션쇼를 하면서 서양인의 구미에 맞추려고 전통한복의 특징이 사라진 옷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서 역수입된 다도를 우리 것처럼 교육시키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녹차가 전통차인 것처럼 왜곡시키면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결국 진정한 전통을 죽이는 역효과를 만든다.
넷째, “명망가만을 위한 소수의 것으로 전락했다”도 짚어보아야만 한다. 전통은 온 겨레 모두가 같이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일부 명망가가 주도하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성을 쌓는다. 결국 소수의 놀음으로 그치고 만다.
일반 대중은 물론 전통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지만 그의 책임이 그들에게가 아니라 계승자들에게 더 많이 있다. 주변의 권유를 받고 우연히 국악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주 훌륭한 연주여서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객석은 홍보를 하지 않은 탓으로 1/3만 찼을 뿐이었다. 청중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공연만 한다는 태도였다. 결국 소수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다섯째,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를 보자. 한 신문은 발기선언문에서 “표현의 자유 속에서 참다운 민족문화를 꽃피게 하는 것”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신문에게서 민족문화는 없다. 그저 민족문화는 단신정도만 취급하고, 기획, 취재하는 애정은 없다. 그런데 서양문화를 다루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청와대에 여러 번 정책건의를 한 적이 있다. ‘적어도 외교사절 접견이나 큰 행사 때는 대통령이 두루마기를 입어 달라’, ‘서양식의 칵테일 파티가 아니라 전통음식 잔치를 해달라’ 등 전통문화와 관련해 5가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고, 이후 전혀 변화의 기미를 감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한복을 평상시에는 입지 않으면서 감옥에 갈 때나 국민에게 죄를 지어 석고대죄, 삼보일배 할 때만 입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서양 것에 매몰되어 한글이 아닌 외래어와 한자말을 써야 유식한 것으로 착각하고, 양복이나 양장을 입고 양식을 먹어야 세련된 것으로 생각하며, 풍물굿을 시끄럽다고 외면하는 모습은 문화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일까?
여섯째, “교육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문화를 도외시한다”이다. 전통 문화의 계승은 어렸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듣고 배우는 것이 일생을 지배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학교는 좋은 대학 가기와 취업을 위한 학원 정도로 전락한 나머지 문화를 가르칠 여력도 애정도 없다.
나는 교육운동을 해왔기에 진보적인 교사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전통이 살아있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명절의 세시풍속이나 전통 의식주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앞에서는 맞장구를 치면서 돌아서면 잊었다. 학교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려는 의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곱째,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지 않는다.”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에 불과하다. 계승은 물론 발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애정까지 요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계승자라는 사람들이 즐기지 못한다면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에 불과할 것이다. 한복을 짓는 사람들이 한복이 아닌 서양옷을 늘 입고 다니며, 전통차에 쓰이는 다기를 빚는 장인이 커피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이나 우리말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생활 속에선 외래어를 남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일곱 가지로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죽어온 까닭을 짚어본다.
지금 세계는 무한대의 경쟁 속에 놓여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기도 하지만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냉정히 따진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우방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속에서 김영삼 정권 이후 우리는 세계화를 외쳐왔다. 하지만 그 세계화란 진정한 우리 것의 토대 아래에 성립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어떤 이는 유럽에 가서 앞쪽에는 영어로, 뒤쪽에는 한자라만 쓰인 명함을 내밀었다가 망신을 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은 유럽인에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나.
주요소에 가서 차가 “앵꼬되었다. 만땅 넣어달라”라며 일본말찌꺼기를 쓰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나무라봤자 그들은 여전히 그 짓거리를 한다. 건강에 유해한 미국의 대표적 음식, 콜라와 햄버거를 즐기면서 미군의 행패를 꾸짖어봤자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진정 이 무한대의 세계 경쟁시대에 무엇이 진정 우리를 살려줄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문화는 경제에 앞서 우리를 살려줄 대단한 무기이며, 문화로 세계인을 사로잡을 때 우리는 당당해지고, 든든해짐을 알았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앞에서 지적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일곱 가지의 것들을 이제부터라도 몰아내야 한다. 너무 옛것을 고집하지도 말고, 새롭게 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어야 하며, 전통을 왜곡시키지 않는 마케팅 기법을 쓰고, 온 국민이 같이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고쳐주어야 하며, 학교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교육하도록 도와야 하고, 모두가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도록 할 필요가 절실하다 하겠다.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
우리 문화를 대표하고, 상징하는 것은 한글, 한복, 김치, 된장, 풍물굿, 판소리, 한지 등으로 참 많다.
한글은 언어학자들로부터 세계 최고의 글자로 인정받고, 한복은 아름다움, 편함, 건강을 살려주는 옷으로 평가받으며, 김치와 된장이 건강에 기여하는 위대한 항암음식임이 증명되었다. 모두를 하나로 묶어주는 풍물굿,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판소리, 1200년 동안 썩지 않은 한지를 보아도 우리 문화의 우수성은 아무도 이의를 달지 못한다.
자원이 없고 규모가 작은 우리나라에서 정치, 경제, 군사 어느 것으로도 선진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문화를 가지고는 어떤 강대국과도 당당해질 수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그런 위대한 문화가 제나라 사람들에게서 멀어지고, 잊혀지고, 계승이 되지 못하고 있다. 더 나아가 전통문화가 왜곡되고, 상업성에 더렵혀진다. 그 까닭은 무엇일까?
나는 그 까닭으로 다음의 7가지를 들고 싶다. “너무 옛것을 고집한다”, “원칙을 버리고, 지나치게 현대화, 서양화한다”, “전통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 “명망가만을 위한 소수의 것으로 전락했다”,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린다”, “교육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문화를 도외시한다”,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지 않는다.”
먼저 “너무 옛것을 고집한다.”를 생각해보자. 일부 전통문화인들은 전통을 계승한다는 차원에 집착하여 옛것을 고집하는데 머무른다. 따라서 전통이 현대와는 동떨어진 고루한 것으로 비쳐지고, 더 이상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따라서 전통이 일반 대중의 외면을 받기에 이른다.
80년대 후반부터 생기기 시작한 생활한복에 대해 일부는 부정적인 눈길을 보낸다. 자신들은 전통한복도 입지 않으면서 생활한복은 전통한복을 왜곡한 것으로 한복일 수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가 하면 창작국악을 유치한 것으로 치부하고, 국악기의 개량도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은 전통한복에 있는 약간의 불편함을 개선하여 현대인에게 다가서려는 것이나 새롭게 국악을 창작하고, 국악기를 음폭이 넓거나 음량이 크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도록 가다듬는 것이야말로 현대인들에게 전통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시켜 주고, 애정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을 모른다.
둘째 “원칙을 버리고, 지나치게 현대화, 서양화 한다.”이다. 전통의 계승은 모름지기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이어야 한다. 즉 옛것을 정확히 알고 그에 대한 애정을 통해서 새롭게 발전시켜야 한다. 그런데 많은 문화 계승자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전통문화의 본질에 대한 공부를 하지 않은 채로 적당히 뛰어든다. 그러니 전통문화에 대한 가치를 모르는 현대인들이 요구한다는 명분으로 전통의 원칙, 철학을 버리고, 현대인의 구미에 맞도록 지나친 왜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복의 경우를 보면 섶, 직선진동, 사폭, 대님 따위는 중요한 특징이다. 이런 특징을 없앨 때는 한복의 맛과 장점은 사라지게 된다. 한복을 지어왔던 평면재단이 아니라 서양옷을 짓는 입체재단을 하면서 몸에 딱 붙는 옷이 되어 편한 그리고 건강을 위한 옷을 포기하는 어리석음이 난무한다.
또 김치에 들어있는 고춧가루는 젖산균의 성장을 도와 김치를 맛있게 발효시키며, 잡균을 억제한다. 또 고추는 미생물의 발육을 억제해 김치의 저장성을 높이는 것은 물론 혈액암세포의 성장을 막는 항암식품임이 증명되었는데도 맵게 먹으면 안 된다는 서양의학의 논리에 빠져 고추없는 김치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풍물굿과 사물놀이는 뿌리는 같지만 내용은 많이 다른 것이다. 풍물굿은 연주자와 청중의 구분이 없이 모두가 하나되어 즐기며, 단순히 음악만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진풀이, 윗놀음, 상모놀이, 짝쇠놀이, 무동놀이 등의 놀이문화와 함께하는 종합예술이다. 또 풍물굿은 서서 하는 선반이라고 하며, 우리문화의 진수라는 평을 받는다.
하지만 사물놀이는 풍물굿을 좁은 마당이나 무대에서도 쉽게 연주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서양의 무대예술처럼 4개의 악기를 연주하고, 청중의 박수를 받는 형태이다. 앉아서 연주하는 앉은반이며, 놀이형태는 없다. 따라서 사물놀이가 풍물굿을 또 다른 형태로 발전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풍물굿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또 사물놀이가 풍물굿을 뛰어넘는 대단한 음악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셋째 “전통을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이용한다”는 것도 전통문화의 올바른 계승에 걸림돌이 된다. 물론 전통은 적당히 상업을 활용하고, 마케팅을 도입하여야만 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상업화한 나머지 왜곡하여 오히려 퇴보하도록 만드는 경우도 있다.
서양에 가서 한복패션쇼를 하면서 서양인의 구미에 맞추려고 전통한복의 특징이 사라진 옷을 만들기도 한다. 일본에서 역수입된 다도를 우리 것처럼 교육시키고, 대량생산이 가능한 녹차가 전통차인 것처럼 왜곡시키면서 마케팅에 적극 활용하는 것을 본다. 하지만 이런 행위는 결국 진정한 전통을 죽이는 역효과를 만든다.
넷째, “명망가만을 위한 소수의 것으로 전락했다”도 짚어보아야만 한다. 전통은 온 겨레 모두가 같이 할 때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일부 명망가가 주도하고, 자신들만의 것으로 만들어 성을 쌓는다. 결국 소수의 놀음으로 그치고 만다.
일반 대중은 물론 전통에 대한 이해와 애정이 없지만 그의 책임이 그들에게가 아니라 계승자들에게 더 많이 있다. 주변의 권유를 받고 우연히 국악공연을 보러 갔는데 아주 훌륭한 연주여서 청중들의 기립박수를 받았다. 하지만 객석은 홍보를 하지 않은 탓으로 1/3만 찼을 뿐이었다. 청중이 많든 적든 상관없이 공연만 한다는 태도였다. 결국 소수만의 잔치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다섯째,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린다”를 보자. 한 신문은 발기선언문에서 “표현의 자유 속에서 참다운 민족문화를 꽃피게 하는 것”을 부르짖었다. 하지만 그 신문에게서 민족문화는 없다. 그저 민족문화는 단신정도만 취급하고, 기획, 취재하는 애정은 없다. 그런데 서양문화를 다루는 것은 주저하지 않는다.
나는 청와대에 여러 번 정책건의를 한 적이 있다. ‘적어도 외교사절 접견이나 큰 행사 때는 대통령이 두루마기를 입어 달라’, ‘서양식의 칵테일 파티가 아니라 전통음식 잔치를 해달라’ 등 전통문화와 관련해 5가지를 주문했다. 하지만 응답이 없었고, 이후 전혀 변화의 기미를 감지하지 못한다. 오히려 정치인들이 한복을 평상시에는 입지 않으면서 감옥에 갈 때나 국민에게 죄를 지어 석고대죄, 삼보일배 할 때만 입는 어리석음을 보인다.
소위 지도자라는 사람들이 서양 것에 매몰되어 한글이 아닌 외래어와 한자말을 써야 유식한 것으로 착각하고, 양복이나 양장을 입고 양식을 먹어야 세련된 것으로 생각하며, 풍물굿을 시끄럽다고 외면하는 모습은 문화사대주의가 아니고 무엇일까?
여섯째, “교육이 취업을 위한 도구로 전락하고, 문화를 도외시한다”이다. 전통 문화의 계승은 어렸을 때가 가장 중요하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가정에서 학교에서 듣고 배우는 것이 일생을 지배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학교는 좋은 대학 가기와 취업을 위한 학원 정도로 전락한 나머지 문화를 가르칠 여력도 애정도 없다.
나는 교육운동을 해왔기에 진보적인 교사들을 많이 알고 있지만 그들에게서 전통이 살아있음을 별로 보지 못했다. 그들은 명절의 세시풍속이나 전통 의식주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앞에서는 맞장구를 치면서 돌아서면 잊었다. 학교 현장에서 이를 활용하려는 의지를 거의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일곱째,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지 않는다.”가 어쩌면 가장 중요한지도 모른다.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그것은 죽은 것에 불과하다. 계승은 물론 발전 가능성도 없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이 우리 문화에 대한 이해가 없는데 애정까지 요구할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위 계승자라는 사람들이 즐기지 못한다면 이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수작에 불과할 것이다. 한복을 짓는 사람들이 한복이 아닌 서양옷을 늘 입고 다니며, 전통차에 쓰이는 다기를 빚는 장인이 커피중독자가 되어버린 것이나 우리말글 운동을 하는 사람이 생활 속에선 외래어를 남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정말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이렇게 일곱 가지로 전통문화가 제대로 계승되지 못하고 죽어온 까닭을 짚어본다.
지금 세계는 무한대의 경쟁 속에 놓여 있다. 어제의 적이 오늘 동지가 되기도 하지만 오늘의 동지가 내일은 적이 되는 경우를 우리는 자주 목격한다. 냉정히 따진다면 우리에게 진정한 우방이란 없는지도 모른다. 그런 속에서 김영삼 정권 이후 우리는 세계화를 외쳐왔다. 하지만 그 세계화란 진정한 우리 것의 토대 아래에 성립한다는 것을 간과하고 있다.
어떤 이는 유럽에 가서 앞쪽에는 영어로, 뒤쪽에는 한자라만 쓰인 명함을 내밀었다가 망신을 당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중국인인지, 일본인인지 물은 유럽인에게 그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못했다나.
주요소에 가서 차가 “앵꼬되었다. 만땅 넣어달라”라며 일본말찌꺼기를 쓰면서 일본의 역사왜곡을 나무라봤자 그들은 여전히 그 짓거리를 한다. 건강에 유해한 미국의 대표적 음식, 콜라와 햄버거를 즐기면서 미군의 행패를 꾸짖어봤자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진정 이 무한대의 세계 경쟁시대에 무엇이 진정 우리를 살려줄 것인지를 깨달아야 한다. 문화는 경제에 앞서 우리를 살려줄 대단한 무기이며, 문화로 세계인을 사로잡을 때 우리는 당당해지고, 든든해짐을 알았으면 한다.
그런 점에서 내가 앞에서 지적한 전통문화를 계승하는데 걸림돌이 되는 일곱 가지의 것들을 이제부터라도 몰아내야 한다. 너무 옛것을 고집하지도 말고, 새롭게 하더라도 원칙을 지키는 모습이어야 하며, 전통을 왜곡시키지 않는 마케팅 기법을 쓰고, 온 국민이 같이하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한다. 또 정치와 언론의 문화사대주의가 극성을 부리지 않도록 감시하고, 고쳐주어야 하며, 학교가 우리 문화를 제대로 교육하도록 도와야 하고, 모두가 생활 속에서 실천이 되도록 할 필요가 절실하다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