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습사이렌도 없이 날아 온 가을햇살이 마구 폭탄을 터뜨리고 지나간 산과들이다. 그토록 풍성한 푸름을 나부끼던 나뭇잎, 들판을 파도처럼 일렁이게 하던 벼이삭, 계곡마다 해변마다 꽉 들어찼던 사람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한 점 바람의 힘도 견디지 못하여 가지에서 손을 놓는 낙엽은 가을파편에 맞아 오그라진 채 어깨 위로 날린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깃들었던 연약한 생명이다. 봄에 맑은 광선을 받아 움텄던 조그만 생명은 한철 여름의 풍성함으로 그 힘을 다하고 떠난다.
흙에서 생명으로, 다시 생명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굴레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을낙엽과 함께 산천을 방황하며, 밤이슬에 떨며, 아침을 두려운 눈으로 맞아야 하는가,
성서의 창세기로 올라서서 원죄의 의문을 던진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다는 사건에 연루되어 대대로 그 죄 값을 상속받아야 하는 서글픔이 앞선다. 죄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동적인 개념일진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존재 그 자체에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렸다.
성서의 페이지는 이어진다. 먹지 말라고 했던 열매를 따 먹은 조그만 사건으로부터 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나오며 지르는 출생의 울음소리와 함께 죄를 뒤집어쓴 인간들은 수없는 의문과 절규를 무시당한 채 알량한 삶을 지켜왔다.
욥은 사탄의 비웃음을 비웃기 위한 시험대위에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냈다. 차라리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땅속에 묻혔으면, 자신이 태어난 날이 세상에 없었으면,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저주했다. 가을날의 낙엽처럼 신의 가지를 잡았던 손을 놓으려했다.
신의 알 수 없는 역사는 계속되었다. 구약을 지나 신약으로 들어선 아담의 후예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질렀던 절규에 또 한번 전율했다. "신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간, 인간의 소리로 신을 대변해보자. 무섭고 두렵기만 한 신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으며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신으로 가까이 해보자. 높고 높은 곳에서 내려온 신은 거리에서 웃고 떠들며, 오늘처럼 가을의 패잔병으로 산천에 내버려진 나와 마주앉는다.
"원죄의 덫을 풀어주십시오." "너는 죄인이 아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일 뿐이다."
율법을 넘어선 믿음의 구원을 말했던 사도바울은 어디 있는가? 꼬치꼬치 캐물어 죄를 논하기 보다는 용서와 구원만이 신의 본질이라고 외쳤던 가슴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속삭이던 바울의 그림자를 찾는다. 나는 예수의 절규대신에 사도바울의 절규를 던진다.
"신이여 나를 사랑하옵소서......"
한줌의 낙엽을 흐르는 물에 던진다. 원죄대신에 사랑을 뒤집어쓴 생명의 흔적을 뿌린다. 내년에 돌아오는 생명은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여 봄을 아름답게 지상에 내리고, 여름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며 가을을 피로 물들이지 않았으면,
성서의 마지막 장인 요한묵시록은 지금 발아래 떨어진 낙엽, 메마른 가지, 텅 빈 산천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탈 것이다. 죄가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마찬가지다. 조건 없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 삶의 순환에 흔들리고 시달렸다는 고통 하나만으로 누구나 천당행 티켓을 딸 것이다.
원죄를 탓하지 않고 사랑할 것이다. 가을의 쓸쓸함을 가슴에 안을 것이다. 세상의 괴로움이 모두가 인간의 몫으로 내린 신의 선물이라면, 나는 사랑이 가득 찬 그 선물의 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원죄를 사하여 용서와 구원의 손길을 미리 내릴 것이다. 죄 없는 삶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 것이다.
개울에 주저앉아 쇠락해 가는 햇볕을 쫓는다. 광야에 몸져 누워있는 욥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초라한 내 삶처럼 낙엽은 날린다. 찬바람에 옷깃여미며 걷는 가을의 패잔병 뒤로 길게 그림자 드리운다.
가을의 패잔병과 신의 속삭임
가을의 패잔병과 신의 속삭임
공습사이렌도 없이 날아 온 가을햇살이 마구 폭탄을 터뜨리고 지나간 산과들이다. 그토록 풍성한 푸름을 나부끼던 나뭇잎, 들판을 파도처럼 일렁이게 하던 벼이삭, 계곡마다 해변마다 꽉 들어찼던 사람들은 자취도 없이 사라졌다.
한 점 바람의 힘도 견디지 못하여 가지에서 손을 놓는 낙엽은 가을파편에 맞아 오그라진 채 어깨 위로 날린다. 나뭇잎 하나하나에 깃들었던 연약한 생명이다. 봄에 맑은 광선을 받아 움텄던 조그만 생명은 한철 여름의 풍성함으로 그 힘을 다하고 떠난다.
흙에서 생명으로, 다시 생명에서 흙으로 돌아가는 순환의 굴레는 무엇인가?
왜 우리는 삶과 죽음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가을낙엽과 함께 산천을 방황하며, 밤이슬에 떨며, 아침을 두려운 눈으로 맞아야 하는가,
성서의 창세기로 올라서서 원죄의 의문을 던진다.
아담과 이브가 금단의 열매를 따 먹었다는 사건에 연루되어 대대로 그 죄 값을 상속받아야 하는 서글픔이 앞선다. 죄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일으켜야 한다는 동적인 개념일진데,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존재 그 자체에 죄를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형벌을 내렸다.
성서의 페이지는 이어진다. 먹지 말라고 했던 열매를 따 먹은 조그만 사건으로부터 피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아기가 뱃속에서 나오며 지르는 출생의 울음소리와 함께 죄를 뒤집어쓴 인간들은 수없는 의문과 절규를 무시당한 채 알량한 삶을 지켜왔다.
욥은 사탄의 비웃음을 비웃기 위한 시험대위에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냈다. 차라리 어머니의 뱃속에서 나오자마자 땅속에 묻혔으면, 자신이 태어난 날이 세상에 없었으면, 그렇게 자신의 생명을 저주했다. 가을날의 낙엽처럼 신의 가지를 잡았던 손을 놓으려했다.
신의 알 수 없는 역사는 계속되었다. 구약을 지나 신약으로 들어선 아담의 후예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질렀던 절규에 또 한번 전율했다.
"신이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인간,
인간의 소리로 신을 대변해보자. 무섭고 두렵기만 한 신이 아니라, 같이 이야기 할 수 있으며 만찬을 즐길 수 있는 신으로 가까이 해보자. 높고 높은 곳에서 내려온 신은 거리에서 웃고 떠들며, 오늘처럼 가을의 패잔병으로 산천에 내버려진 나와 마주앉는다.
"원죄의 덫을 풀어주십시오."
"너는 죄인이 아니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일 뿐이다."
율법을 넘어선 믿음의 구원을 말했던 사도바울은 어디 있는가?
꼬치꼬치 캐물어 죄를 논하기 보다는 용서와 구원만이 신의 본질이라고 외쳤던 가슴이 그립다. 무엇보다도 사랑만이 제일이라고 속삭이던 바울의 그림자를 찾는다. 나는 예수의 절규대신에 사도바울의 절규를 던진다.
"신이여 나를 사랑하옵소서......"
한줌의 낙엽을 흐르는 물에 던진다. 원죄대신에 사랑을 뒤집어쓴 생명의 흔적을 뿌린다. 내년에 돌아오는 생명은 더욱 사랑으로 충만하여 봄을 아름답게 지상에 내리고, 여름을 더욱 풍성하게 할 것이며 가을을 피로 물들이지 않았으면,
성서의 마지막 장인 요한묵시록은 지금 발아래 떨어진 낙엽, 메마른 가지, 텅 빈 산천에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인간에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천국으로 가는 열차를 탈 것이다. 죄가 있는 자도, 없는 자도 마찬가지다. 조건 없는 사랑만이 진짜 사랑이다. 삶의 순환에 흔들리고 시달렸다는 고통 하나만으로 누구나 천당행 티켓을 딸 것이다.
원죄를 탓하지 않고 사랑할 것이다. 가을의 쓸쓸함을 가슴에 안을 것이다.
세상의 괴로움이 모두가 인간의 몫으로 내린 신의 선물이라면, 나는 사랑이 가득 찬 그 선물의 신이 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원죄를 사하여 용서와 구원의 손길을 미리 내릴 것이다. 죄 없는 삶을 내 눈으로 보고야 말 것이다.
개울에 주저앉아 쇠락해 가는 햇볕을 쫓는다. 광야에 몸져 누워있는 욥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초라한 내 삶처럼 낙엽은 날린다. 찬바람에 옷깃여미며 걷는 가을의 패잔병 뒤로 길게 그림자 드리운다.
신이여 나는 사랑하는 당신의 아들입니다.
글 / 은하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