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교차가 심한 계절이라 방한복이라도 걸쳐 입어야만 오토바이 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체열에 감당 못할 시간에 거추장스러워 그냥 나가면 이가 저절로 부딪칠정도로 춥지만
남부끄러워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게 10년 이상 된 경력자로서의 예의이며, 강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이며, 만능엔터테인먼트라 칭송받는 엄마의 본연이기에,
잔머리 굴리지 않고, 허황된 꿈꾸지 않고, 형제나 부모에게 혀 굳은 소리 하기 싫은 자존심 강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지만 체,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이 뿔뿔이 각자의 자리로 떠나야 한다.
바쁘다, 빠른 걸음조차 허용되지 않고 뜀박질만이 용납되는 4시간동안에 주어지는 여유는 엘리베이터속에서의 일 이 분, 그 동안에 머릿기사를 훑고 전문분야의 기사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에 볼 요량으로 따로 뜯어 호주머니에 보관한다. 어제의 반성과 오늘의 계획과 내일의 설계만으로도 빠뜻한 시간이기에,
오늘도 주제는 허망하다. 씁쓸하다. 황당하다.
노동부 직업안정센터의 직업상담원 대부분의 파업이다.
골 빈 사람들, 복이 목구멍 끝까지 찬 사람들,
묻고 싶다. 긴 긴 장마에, 몹쓸 태풍에 쭉정이만 남은 벼 이삭이라도 추수를 해야 하는 농부를 보았는가? 양반가문의 곱디고운 안방마님같은 분이 태풍에 집을 잃고 생전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고 헐레 벌레 걸어가던 뒷모습을 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춘투에서,하투까지 올해의 노동자파업이 끝났는가 싶으면 여기 저기서 아우성이다.
혼자 세워두면 술집도 혼자 못 가는 졸장부들이, 화장실조차 같이 가야 마음이 편안한 겁쟁이들이,
생리적 욕구조차 어깨동무를 하고 나서야 하는 얼간이들이,
의사라며 파업이고, 교사라며 파업이고 무슨 연대, 무슨 연합 운운하며 파업, 파업, 파업의 천국이다.
새마을 운동이 그립고 *영등포 잠바의 의리가 그립다.
까마득하나 어제 같은 날, 호사스러운 기분으로 이 일을 시작했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에 운동을 시작했으나 쉽지 않았다. 눈이 온다. 빼먹고 비가 온다. 빼먹고
이래 저래 하기 싫으면 변명을 위한 변명까지 동원하며 시작한 운동에 의무를 부여해야 했다. 책임감을 부여해야 했다. 오로지 운동을 위한 시간할애였으나 생활은 사치스런 사고를 용납하지 않았다. 처절하도록 열심히 살았으나 그것도 잠시 였다.
이젠 습관으로 움직이며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하루 종일 께름찍한 기분으로 살아야 하기에 옛날을 생각하며 뛴다.
한 달에 휴간이 한 번 뿐이었을때를 생각하며 뛰고 그 돈으로 쪼개고 쪼개며 살때를 생각하며 뛰지만
오늘의 매듭은 이 땅의 정녕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 짚고 넘어 가야 할 일이다.
십년 하고도 몇 달 전, 한달 구독료 6천원에 배달료 부당 1쳔 5백원이었다.
2천 3년 지금 한달 구독료 1만 2천원에 부(部)당 배달료 1천 5백원 그대로다. 하루에 부(部)당 배달료 50원꼴이다.
하루에도 환율은 수없이 요동을 치는데, 이 새벽의 세계만은 예외다. 영구한 역사에 기네스에 오를 지도 모를 일이다.
구독료는 2배 인상이지만 무게도 2배이상 증가했다. 지면확장내지는 치열한 경쟁에 편승한 업자들의 광고효과를 노린 전단지때문이다. 구독료가 전단지 수입의 삼분의 일이 안된다는게 불과 3년전의 어느 지국장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주말과 휴일을 노린 금요일에는 책을 방불케한다.
물론 이의제기도 했고 항의도 했으나 불만이면 그만두면 될거아냐!다.
아마 지금의 노조 운운하는 공무원들이나 전교조 운운하는 교사들이나 직업상담원들이 이런 상황이면
칼부림이 나도 몇 번 났을것이며 자살자 또한 수 명 생겼을거지만 열심히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거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야 하기에, 그거라도 벌어 학비에 보태야 하기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오늘 아침도 뛰고 돌아 왔을 것이며, 어떤 이는 직장으로, 어떤 이는 학교로, 어떤 이는 도서관으로 향했을 것이다.
횡포도 이런 횡포가 어디 있으며, 독선도 이런 독선이 어디 있을까?
아마 홈쇼핑에서 대박을 터트린 이민 상품을 판매했을 때, 제일 먼저 사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이사람들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허나,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자식을 사랑하고 내 땅을 사랑하기에 굳굳이 말없이 이들은 두 번째 일을 묵묵히 시작한다. 두 번째 일뿐이랴, 그것도 모자라 저녁에는 대리 운전을 한다는 젊은 총각은 순진한 눈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우리는 이런 일이라도 할 의욕이 있어 고맙지 않냐지만 이런 계산은 대(代)를 이어 왕위계승을 하던 아득한 옛날 옛적의 전설일 뿐이다.
***어느 배달원의 10년 129일의 회고록***
***어느 배달원의 10년 129일의 회고록***
새벽 2시 어김없이 눈을 뜬다.
어린 녀석과 살기 위해 눈을 뜬 적도 있지만,이젠 습관적으로 눈을 뜬다.
일교차가 심한 계절이라 방한복이라도 걸쳐 입어야만 오토바이 위에서 느끼는 체감온도를 감당할
수 있지만 체열에 감당 못할 시간에 거추장스러워 그냥 나가면 이가 저절로 부딪칠정도로 춥지만
남부끄러워 입을 다물어야 한다.
그게 10년 이상 된 경력자로서의 예의이며, 강한 어머니로서의 모습이며, 만능엔터테인먼트라 칭송받는 엄마의 본연이기에,
잔머리 굴리지 않고, 허황된 꿈꾸지 않고, 형제나 부모에게 혀 굳은 소리 하기 싫은 자존심 강한
아름다운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 들지만 체, 차 한 잔 나눌 시간도 없이 뿔뿔이 각자의 자리로 떠나야 한다.
바쁘다, 빠른 걸음조차 허용되지 않고 뜀박질만이 용납되는 4시간동안에 주어지는 여유는 엘리베이터속에서의 일 이 분, 그 동안에 머릿기사를 훑고 전문분야의 기사는 나중에 한가한 시간에 볼 요량으로 따로 뜯어 호주머니에 보관한다. 어제의 반성과 오늘의 계획과 내일의 설계만으로도 빠뜻한 시간이기에,
오늘도 주제는 허망하다. 씁쓸하다. 황당하다.
노동부 직업안정센터의 직업상담원 대부분의 파업이다.
골 빈 사람들, 복이 목구멍 끝까지 찬 사람들,
묻고 싶다. 긴 긴 장마에, 몹쓸 태풍에 쭉정이만 남은 벼 이삭이라도 추수를 해야 하는 농부를 보았는가? 양반가문의 곱디고운 안방마님같은 분이 태풍에 집을 잃고 생전 처음으로 소주를 마시고 헐레 벌레 걸어가던 뒷모습을 보았느냐고 묻고 싶다.
춘투에서,하투까지 올해의 노동자파업이 끝났는가 싶으면 여기 저기서 아우성이다.
혼자 세워두면 술집도 혼자 못 가는 졸장부들이, 화장실조차 같이 가야 마음이 편안한 겁쟁이들이,
생리적 욕구조차 어깨동무를 하고 나서야 하는 얼간이들이,
의사라며 파업이고, 교사라며 파업이고 무슨 연대, 무슨 연합 운운하며 파업, 파업, 파업의 천국이다.
새마을 운동이 그립고 *영등포 잠바의 의리가 그립다.
까마득하나 어제 같은 날, 호사스러운 기분으로 이 일을 시작했었다.
물만 먹어도 살이 찌는 체질에 운동을 시작했으나 쉽지 않았다. 눈이 온다. 빼먹고 비가 온다. 빼먹고
이래 저래 하기 싫으면 변명을 위한 변명까지 동원하며 시작한 운동에 의무를 부여해야 했다. 책임감을 부여해야 했다. 오로지 운동을 위한 시간할애였으나 생활은 사치스런 사고를 용납하지 않았다. 처절하도록 열심히 살았으나 그것도 잠시 였다.
이젠 습관으로 움직이며 하루라도 뛰지 않으면 하루 종일 께름찍한 기분으로 살아야 하기에 옛날을 생각하며 뛴다.
한 달에 휴간이 한 번 뿐이었을때를 생각하며 뛰고 그 돈으로 쪼개고 쪼개며 살때를 생각하며 뛰지만
오늘의 매듭은 이 땅의 정녕 아름다운 사람을 위해 짚고 넘어 가야 할 일이다.
십년 하고도 몇 달 전, 한달 구독료 6천원에 배달료 부당 1쳔 5백원이었다.
2천 3년 지금 한달 구독료 1만 2천원에 부(部)당 배달료 1천 5백원 그대로다. 하루에 부(部)당 배달료 50원꼴이다.
하루에도 환율은 수없이 요동을 치는데, 이 새벽의 세계만은 예외다. 영구한 역사에 기네스에 오를 지도 모를 일이다.
구독료는 2배 인상이지만 무게도 2배이상 증가했다. 지면확장내지는 치열한 경쟁에 편승한 업자들의 광고효과를 노린 전단지때문이다. 구독료가 전단지 수입의 삼분의 일이 안된다는게 불과 3년전의 어느 지국장 입에서 나온 말이다. 지금은 주말과 휴일을 노린 금요일에는 책을 방불케한다.
물론 이의제기도 했고 항의도 했으나 불만이면 그만두면 될거아냐!다.
아마 지금의 노조 운운하는 공무원들이나 전교조 운운하는 교사들이나 직업상담원들이 이런 상황이면
칼부림이 나도 몇 번 났을것이며 자살자 또한 수 명 생겼을거지만 열심히 사는 아름다운 사람들은 그거라도 벌어 살림에 보태야 하기에, 그거라도 벌어 학비에 보태야 하기에 숨소리조차 크게 내지 못하고 오늘 아침도 뛰고 돌아 왔을 것이며, 어떤 이는 직장으로, 어떤 이는 학교로, 어떤 이는 도서관으로 향했을 것이다.
횡포도 이런 횡포가 어디 있으며, 독선도 이런 독선이 어디 있을까?
아마 홈쇼핑에서 대박을 터트린 이민 상품을 판매했을 때, 제일 먼저 사고 싶은 사람들이 바로 이사람들이 아니고 누구겠는가?
허나, 내 삶을 사랑하고 내 자식을 사랑하고 내 땅을 사랑하기에 굳굳이 말없이 이들은 두 번째 일을 묵묵히 시작한다. 두 번째 일뿐이랴, 그것도 모자라 저녁에는 대리 운전을 한다는 젊은 총각은 순진한 눈매가 하나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웃으며 우리는 이런 일이라도 할 의욕이 있어 고맙지 않냐지만 이런 계산은 대(代)를 이어 왕위계승을 하던 아득한 옛날 옛적의 전설일 뿐이다.
시대의 양심은 시장바닥에서나 찾을 일이고 시대의 의리는 뒷골목에서나 찾을 일이다.
글/이희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