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쌈(납치혼)의 사회적 의미

또이2006.11.12
조회243
납치혼은 세계도처에서 나타나죠. 중국의 소수민족 실위족, 말갈족도 1000 여년 전에 행해졌다고 합니다. 또한 라오스 산악족인 흐몽(Hmong)족도 그런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납치혼이라 해서 강제로 싫은 여자를 납치하는 것이 아니죠. 대개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에 언약을 한 뒤 남자쪽에서 여자를 납치하는 형식을 취합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는데 전통관습에 의한 행위, 집단이나 부모가 반대할 경우 등이 있어요.

사랑이 없이 진짜 강제로 납치하는 경우도 있죠. 부족이나 국가간의 전쟁 등으로 인해 포로나 전리품으로 여성을 약탈한후 자신의 아내로 삼지요. 이 약탈혼도 세계 전역에서, 역사속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결혼 형태입니다.

우리나라의 보쌈-납치혼의 모습

우리나라에도 보쌈이라는 것이 있죠. 조선시대에 보쌈은 보통 홀아비가 과부를 상대로 하죠. 모두 잠든 깊은 방에 큰보자기나 가마니 같은 것에 넣어 홀아비의 집으로 데려오죠. 여자가 심하게 반항을 하면 조용한 밤이라 들킬 위험이 많죠. 하지만 대부분 어느정도 서로간의 합의가 이루어진 한 상태에서 하는 행위이기 때문에 그런 일은 잘 벌어지지가 않죠. 납치한 자들과 막으려고 뒤쫓는 자들도 모두 하나의 각본에 따라 움직인다고 보면 됩니다.

물론 강제로 하는 경우도 있죠. 하지만 위헙부담이 크죠. 들켜서 어떤 중재자(마을어른, 관아수령 등)로 일이 잘 풀려 같이 살게되면 다행이지만, 혹 그렇지 않은 경우엔 중재자가 끼어들기도 전에 과부를 지키려는 남정네들에게 뭇매를 맞을수도 있읍니다. 심한 경우는 관아에서 죄값을 받기도 합니다.

보쌈의 문화적 성격은 유교문화가 제시한 하나의 해결책이라고 봅니다. 조선중기이후 유교문화는 양반사회에서 서민사회로 전반적인 수용이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조선의 법도 여성의 재혼을 금하고 있죠. 당연히 자식없는 과부들은 평생을 홀로 살아야 하는 신세고, 생계도 만만치 않죠. 이것을 해결하는 방안이 보쌈입니다.

남성에 의해 납치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은 여성을 위한 배려라고 보면 됩니다. 법이 금지하고, 특히 유교사회에서 금지하는 것을 합의가 아닌 남성에 의한 어쩔수 없는 납치라는 명목이 여성의 심리적 부담과 사회적 시선을 절감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납치하는 사람들을 각본에 따라 몽둥이 들고 쫓는 시늉은 이런 효과를 극대화시키죠. 관아에서도 이를 알면서도 대부분 눈을 감아 줍니다. 또는 관아에서 사건에 대한 심문이 있을때 직접 중재하기도 합니다.

참고로 파푸아 뉴기니아의 먼더거머족의 결혼형태를 소개합니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서 그 종족의 결혼 풍습을 설명하는 부분만 발췌했읍니다.

파푸아 뉴기니아 섬의 유아트 강 유역에 사는 먼더거머(Mundugumor)족 사회에서도 가장 이상적인 가족 형태는 많게는 8명에서 10명까지의 아내를 거느리는 대규모의 일부 다처제 가족이다. 먼더거머 사회의 일부 다처제는 티위 족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부와 권력을 상징한다는 관념 이외에도 독특한 사회적 유대 관계의 형태와 관련이 있다.

호전적 성격이 강한 먼더거머 인들은 동성 간에는 강한 적대감을 갖고 있으며 동성 관계에 있어서의 유대는 오직 반대 성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만 가능했다. 즉 남자와 그 딸, 그 딸의 아들이라는 식이나 혹은 여자와 그녀의 아들, 그 아들의 딸이라는 식의 관계에서만 가능했던 것이다.

따라서 아버지와 아들, 어머니와 딸은 사용하는 족내 언어도 달랐고 항상 적대감이 형성되어 있었다. 게다가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누이를 아내로 맞으려면 자신의 누이를 그에게 주어야 한다는, 오빠와 누이의 교환 결혼 관습은 딸을 이용해 보다 젊은 아내를 얻으려는 아버지의 욕심과 상치되어 부자간이나 형제간의 갈등을 심화시켰다.

먼더거머 사회에서는 아내가 많으면 많은 처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더욱 중요한 것은 아내들이 주요 거래 상품인 담배의 주생산자이기 때문에 쉽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으므로 여자에 대한 아버지나 형제들 간의 소유욕이 매우 강했던 것이다.

먼더거머 족의 결혼 방식에는 세 가지가 있다. 먼저 중매혼은 아버지들 간의 협정에 의하거나 오빠와 누이의 교환 결혼 풍습에 의해 이루어지는데 대개 여자가 어린 나이에 이루어지며, 도주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여자 아이가 사춘기에 달하면 즉시 약혼자의 집으로 보내지는 형태이다.

다음으로 연애혼은 어릴 때부터 싸움과 경쟁에 익숙해 있는 먼더거머 족의 남녀에게 상존하는 소유욕과 애정욕의 습성에서 연유한다. 그러나 대개의 연애혼은 신부의 처녀성을 중시하는 관습이 있는 먼더거머 문화에서는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게 되므로 성립되는 경우가 드물고 단순히 비밀스러운 혼전 정사로 그치고 만다.

마지막으로 가장 흔히 있는 결혼 형태는 신부를 훔쳐다가 결혼하는 도주혼(또는 납치혼)이다. 사랑에 빠진 남자가 여자를 납치하여 도망친 다음 여자의 가족과 친구들이 잠잠해지거나 또는 결혼을 승낙할 때까지 숨어 사는 방식이다. 이것은 결혼이 정식으로 인정되기 어렵거나 특정의 제약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방식으로 이용된다. 먼더거머 사회에서는 이미 약혼을 한 여자가 다른 남자와 눈이 맞아 도망치거나 남자가 마음에 드는 여자를 납치하다시피 하여 결혼하는 도주혼이 전체 결혼의 1/3을 차지하는 정도이다.

한 남자가 이미 약혼한 여자를 데리고 올 때, 여자의 아버지가 이해심 많고 너그럽거나 그 남자에게 자신의 애인과 맞바꿀 수 있는 미혼의 젊은 누이가 있으면 일은 조용하게 해결된다. 그러나 사정이 여의치 못할 경우에는 싸움이 불가피해진다. 도주할 날짜를 정한 후 남자는 동원할 수 있는 한 모든 친척을 주위에 불러 모은다. 여자가 정해진 장소로 도망가면 이들은 그녀를 보호하기 위해 그 곳에 모인다. 격분한 여자의 친척들이 그녀를 찾아 나서면 싸움이 시작되는데, 싸움의 과격성은 지불 조건과 그 여자에 대한 아버지나 오빠의 소유욕 정도에 따라 달라진다.

티위 족과 먼더거머 족, 두 원주민 사회에서의 결혼 풍속에는 특기할 만한 모습이 있다. 그것은 사회학적으로 이들의 결혼 풍속이 어느 부류에 속하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결혼 개념이 무엇에 근거한 것이며, 결혼에 있어서 여자의 가치가 무엇이었는가에 관한 것이다.

그들의 결혼은 재물이나 돈, 혹은 사회적 지위와 권위에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말해 준다. 즉, 티위 족이나 먼더거머 족의 결혼 풍속에 공통적으로 내재되어 있는 생각은, 결혼이 그 사회 내에서의 현재의 부와 권위, 그리고 장래의 발전성에 밀접히 연계되어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며 그 유용한 수단은 여자였던 것이다.
............(중간생략)...........

또한 인류학자들에 따르면, 오늘날 결혼식의 모습은 먼더거머 문화에서 유행했던 것과 같은 도주혼 또는 납치혼의 풍습으로부터 많은 것이 유래되었으리라고 한다. 납치되거나 또는 함께 도주한 여자의 친척들의 위협을 피하여 남자는 당분간 안전하게 숨어 살 수 있는 곳으로 도망을 치는데 이것이 오늘날 신혼 여행의 원형이라는 것이다. 또 신랑이 신부를 납치하고 신부의 친척에 대항하여 싸우는 데 도움을 준 신랑의 친구나 친척이 결혼식 들러리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명확한 근거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함축성이 있는 설명이다.

남자가 신부가 될 여자를 납치해 갈 때 격분하여 뒤쫓아오는 신부측 부족 사람들이 던지는 돌과 창은 신혼 여행 자동차 뒤에 매달린 물건들과 관련이 있다는 학설도 있다. 신혼여행 자동차의 범퍼에 신발을 묶어놓는 영국의 풍습은, 신부를 데려간다고 신랑에게 신발을 집어 던지던 관습에 기원을 두고 있다. 신발을 던지는 행동은 그 옛날 신부를 훔쳐 달아나는 자에게 화가 나서 무언가를 던지던 모습을 연상시키는 것 같아 흥미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