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래정씨 정원용

잘생긴 소년2005.0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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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래정씨 정원용 조선 후기 문신. 자는 선지(善之), 호는 경산(經山). 본관은 동래(東萊). 1802년(순조 2) 정시문과에 급제, 가주서를 거쳐 검열·부응교·대사간 등을 지냈다. 21년 관서위유사(關西慰諭使)가 되어 괴질로 민심이 흉흉한 서북지방을 수습하였다. 31년 동지사로 청(淸)나라에 다녀와 37년(헌종 3) 예조판서에 오르고 48년 영의정이 되었다. 이듬해 헌종이 죽자 덕완군(德完君;哲宗)의 영립(迎立)을 주장, 실현하게 했으며, 그 뒤 관기(官紀)가 문란해지고 민란이 잇따르자 암행어사제도의 부활을 건의하였다. 62년 궤장을 받고 삼정이정청(三政釐正廳) 총재관이 되어 삼정(三政)의 문란을 시정하고자 했다. 이듬해 철종이 죽자 원상(院相)이 되어 고종이 즉위하기까지 국정을 맡아보았고 《철종실록》의 편찬에도 참여하였다. 청렴결백하여 칭송을 받았다. 저서로 《경산집》 《황각장주(黃閣章奏)》 《북정록(北征錄)》 등이 있다. 시호는 문충(文忠).

동래정씨 정원용 동래정씨 정원용의 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