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3일 서거했습니다. 제264대 교황인 바오로 2세는 1978년부터 서거한 때까지 27년 동안 재임했습니다. 교황청 연감에 따르면 제255대 교황인 비오 9세는 1846년부터 1878년까지 32년간 재위했습니다. 바오로 2세의 재위 기간은 비오 9세에 이어 두 번째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제256대 교황인 레오 13세는 1878~1903년 25년간 카톨릭을 이끌었습니다.
바오로 2세는 현대의 교황답게 대중매체에 모습을 많이 드러냈습니다. 바오로 2세의 일거수일투족은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사였습니다. 바오로 2세가 외국을 방문할 때 무릎을 꿇고 땅에 입 맞추는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공중파를 이용한 한 미사 때는 전 세계 100만 명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집계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 2세처럼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교황은 과거에 없었다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1978년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카를 보이티야 추기경의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27년 전과 후를 비교하면 바오로 2세의 열정적인 활동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2세의 대외 활동은 교황이 이제 영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세계 외교무대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점도 일깨워주는 요소였습니다. 사실 냉전(Cold War)이 기승을 부릴 때 폴란드 출신의 교황이 선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 바오로 2세가 동유럽 민주화를 위해 수행한 역할을 되돌아보면 교황의 정치적 역할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 2세의 종교적 성향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바오로 2세의 재위 기간 동안에는 출산조절이나 낙태, 이혼 같은 문제에 교황청이 흔들리지 않는 보수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신부의 독신생활이 바뀔 때가 되었다든가, 여성도 성직자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문제도 토론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바오로 2세의 재임 중 교황청의 권력 집중화 현상도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교들의 의견이 교황청에 반영되기는 힘들었다는 지적입니다. BBC는 로마 카톨릭이 전에 없이 공개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던 시기에 교황의 힘이 아주 중앙 집중화된 것은 일종의 역설이라는 한 전문가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바오로 2세가 남긴 이러한 기록은 후임 교황에게 고스란히 이어질 것입니다. 어떤 내용은 고무적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내용은 짐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아마 바오로 2세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또 교황청의 보수적인 입장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어려울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오로 2세는 21세기의 첫 교황이 아니라, 20세기의 마지막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합니다.
마지막 기도 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기쁜 부활의 노래가 울려퍼집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사도들 앞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뒤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고통스런 수난의 표시인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요한복음 20장20절)고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8일 후에 이를 믿지 못하는 토마 사도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셨던 저 영광스러운 상처들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 성자를 주신"(요한복음 3장16절)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이 사랑의 신비야말로 오늘 주님 자비주일 예식의 중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때때로 악의 권세와 이기심, 두려움에 패배하고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에게 그 분의 드넓은 사랑과 화해를 선물로 주시고 영혼을 희망으로 다시 열어주십니다.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은 정말로 이를 알아야만 하고 주님의 자비를 입어야 합니다.
오! 당신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보이신 주여, 우리는 당신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 예수여 당신을 믿으며 우리와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내일 우리가 기념할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성심(聖心)'으로부터 피어난 이 자비로운 사랑의 오묘한 신비를 성모 마리아의 눈으로 묵상하게 합니다.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동정 마리아께 태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수난하고 죽으신 당신께서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는 참 부활의 기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렐루야!』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세오”
바오로 2세는 현대의 교황답게 대중매체에 모습을 많이 드러냈습니다. 바오로 2세의 일거수일투족은 카톨릭 신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관심사였습니다. 바오로 2세가 외국을 방문할 때 무릎을 꿇고 땅에 입 맞추는 장면은 우리 모두에게 익숙한 모습이었습니다. 공중파를 이용한 한 미사 때는 전 세계 100만 명이 참여했을 것이라는 추측성 집계도 있습니다.
이 때문에 바오로 2세처럼 대중적이고 잘 알려진 교황은 과거에 없었다는 평가까지 나옵니다. 1978년 바오로 2세가 교황으로 선출됐을 때 카를 보이티야 추기경의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거의 없었습니다. 27년 전과 후를 비교하면 바오로 2세의 열정적인 활동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바오로 2세의 대외 활동은 교황이 이제 영적인 존재만이 아니라 세계 외교무대의 중요한 구성원이라는 점도 일깨워주는 요소였습니다. 사실 냉전(Cold War)이 기승을 부릴 때 폴란드 출신의 교황이 선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정치적인 의미를 띠고 있었다고 해석할 수도 있겠습니다. 이후 바오로 2세가 동유럽 민주화를 위해 수행한 역할을 되돌아보면 교황의 정치적 역할을 가늠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오로 2세의 종교적 성향은 보수적이라는 평가를 받습니다. 바오로 2세의 재위 기간 동안에는 출산조절이나 낙태, 이혼 같은 문제에 교황청이 흔들리지 않는 보수적 판단을 내렸습니다. 신부의 독신생활이 바뀔 때가 되었다든가, 여성도 성직자가 될 수 있다든가 하는 문제도 토론의 대상이 되지도 못했습니다.
바오로 2세의 재임 중 교황청의 권력 집중화 현상도 한층 강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구석구석에서 활동하고 있는 주교들의 의견이 교황청에 반영되기는 힘들었다는 지적입니다. BBC는 로마 카톨릭이 전에 없이 공개적인 방향으로 움직이던 시기에 교황의 힘이 아주 중앙 집중화된 것은 일종의 역설이라는 한 전문가의 말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바오로 2세가 남긴 이러한 기록은 후임 교황에게 고스란히 이어질 것입니다. 어떤 내용은 고무적일 수도 있겠지만, 다른 내용은 짐이 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아마 바오로 2세처럼 전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합니다. 또 교황청의 보수적인 입장을 갑자기 바꾸는 것도 어려울 듯합니다. 이런 점에서 바오로 2세는 21세기의 첫 교황이 아니라, 20세기의 마지막 교황이라는 평가를 받는 듯합니다.
마지막 기도 전문
『친애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오늘도 기쁜 부활의 노래가 울려퍼집니다. 오늘 요한복음의 말씀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 저녁에 사도들 앞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뒤에도 남아있을 정도로 고통스런 수난의 표시인 "그 분의 손과 옆구리를 그들에게 보여주셨다"(요한복음 20장20절)고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8일 후에 이를 믿지 못하는 토마 사도에게 직접 만져보게 하셨던 저 영광스러운 상처들은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 성자를 주신"(요한복음 3장16절)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냅니다.
이 사랑의 신비야말로 오늘 주님 자비주일 예식의 중심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때때로 악의 권세와 이기심, 두려움에 패배하고 지배되는 것처럼 보이는 인간에게 그 분의 드넓은 사랑과 화해를 선물로 주시고 영혼을 희망으로 다시 열어주십니다.
마음을 변화시키고 평화를 주는 것은 사랑입니다. 세상은 정말로 이를 알아야만 하고 주님의 자비를 입어야 합니다.
오! 당신 죽음과 부활로 아버지의 사랑을 드러내보이신 주여, 우리는 당신을 굳게 믿으며 오늘도 이렇게 기도합니다 : 예수여 당신을 믿으며 우리와 세상에 자비를 베푸소서.
내일 우리가 기념할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성심(聖心)'으로부터 피어난 이 자비로운 사랑의 오묘한 신비를 성모 마리아의 눈으로 묵상하게 합니다. 성모님의 도우심으로 `동정 마리아께 태어나셔서, 우리를 위해 수난하고 죽으신 당신께서 정말로 부활하셨다'는 확실한 사실에 근거하는 참 부활의 기쁨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알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