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서로 비판을 가장한 비난으로 일색하며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는 모습은 결국 자신을 향한 쓴소리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어제 부산 벡스코(?)에서 하는 기독교 행사와 관련된 동영상중에 사찰이 무너지기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의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 때문에 많은 비 기독교인 분들께서 다시 한번 기독교의 타 종교 배척사상에 대해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습니다.
행사 주최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명히 표현상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솔직히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타 종교를 깎아내리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이단처럼 여기는 풍토 역시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 될까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 종교를 깎아내리거나 자극적인 비난이나 비판을 통해서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고 많은 믿음의 동역자 분들, 비 기독교인인들이 우리를 향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때 우리는 침묵하며 오히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맞설 논리적인 반박을 하는 것도, 똑같이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도구는 우리의 멋진 말도, 우리의 논리적인 반박도 아닙니다.
오로지 무릎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진실된 기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얼마 전, 기독교 방송에서 하는 기도 대성회를 보았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가 얕아서인지는 모르지만, 무의식중에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집회가 은혜스러운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제 맘을 울리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대성회를 해야만 기도의 능력이 배가 되는 것인지...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침묵속 골방의 기도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영성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기도대성회에서 왜 아이들은 높은 단상위에 있는 목회자 부부를 향해서 헌화를 하며 또 그들은 마치 하나님 대신에 왕이 된 것처럼 손을 흔들며 화답을 하는 것인지...
하지만 전 그것이 옳다 그르다 감히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분께서 내가 틀렸다 하면 내가 틀린 것이오. 또 내가 맞았다 한들 자랑할 것도 없겠지요...인간은 맞았다고 하는 그 순간 틀릴 수 있는 존재니까...
나그네와 같은 삶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모습도 아니오, 기도의 모습도 아니오, 선교의 모습도 아니오. 오직 주를 향한 순종의 순간이 아닐까 깊이 회개하며 반성해 봅니다. 한번쯤 진지하게 하나님앞에 무릎 꿇고 여쭈어야 합니다.
지금 내 신앙에서 '모습' 을 빼면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 대답 역시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언젠가 누가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음성으로 응답을 들려주시니? 아니! 그럼 하나님이 갑자기 네게 모습을 보이셔서 말씀을 해주시니? 아니! 그런데 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니? 그건...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들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신앙의 베옷을 입고, 낮아지고 낮아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 뿐이지요. 세상 속에서 나의 가치가 높아져도 낮아지기를 기도하고, 낮아지면 또 더욱 낮아지기를 기도하고...그것이 진정한 나그네와 같은 삶이 아닐까요..낮아지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 따라오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이 몰래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고, 허영을 사랑하며, 서로의 교만을 부추기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이룬 업적으로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낮아질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엄연히 틀린 말입니다. 우리가 그 업적을 칭송받을 단 하나의 이유도 우리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업적은 그 분의 것이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부산 집회에서 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왜 우리는 모든 것을 무너트려야지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고 착각 하는 것인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진리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당위적인 윤리성마저 흔들리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직면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물질로 세상의 가치를 따지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우고 청소년들의 탈선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묵인되어지고, 사람의 생명이 땅에 떨어지며 교회의 신뢰는 이미 추락하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참된 혁명' 을 외치면서, 부흥을 부르기 위한 부흥집회들과 문화축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기업화되고, 목회자들이 정치판과 경제판에 뛰어들어 세상의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 많은 성도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연다고 해서 부흥이 되고 참된 혁명이 이루어질까요?
부흥병에 걸려 버린 한국 기독교,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단 한명의 의인은 어디에 있니?'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소위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나 크리스쳔들이 아니라 침묵속에서 눈물로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대신 회개하고 있는 어린양과 같은 단 한명의 의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참된 혁명은 어느 오래 전 신학자의 말처럼 전복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 역시 '유대사회의 전복'을 통해서 그 분의 사역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그 분은 파괴나 전복이 아닌 '희생과 완성'을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분은 나그네와 같은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분은 자신의 삶에 나침반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자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뜻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무너트려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오직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또는 어떤 존재이든지간에 모두 그 분의 것입니다. 그분의 허락없이 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 무엇도 무너트리거나 파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참된 혁명' 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가 할 것은 나그네 되지 못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런 비판들을 인내와 겸허함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우리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우리의 침묵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기 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화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시편 31 : 23~24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오직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말씀에서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여호와를 바란다면 말이지요.
끝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저희 형님 미니홈피 메인에 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줄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옳고 그름의 분별이 아닌 끝까지 하는 사랑입니다.'
쓰다보니 또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아졌네요. 다들 행복한 한주간 되시길....
그리고 모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추신 : 기독교의 오피니언 리더를 강조하는 진보적 입장이나 뉴라이트 운동 차원에서 볼 때는 거슬리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기독교의 진보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솔직한 심정을 적어 봅니다.
기독교..
어제 싸이월드 광장에 올라온 기독교와 관련된 동영상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기독교인이든 그렇지 않든간에 서로 비판을 가장한 비난으로 일색하며 반박을 위한 반박을 하는 모습은 결국 자신을 향한 쓴소리 밖에는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봅니다.
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서 어제 부산 벡스코(?)에서 하는 기독교 행사와 관련된 동영상중에 사찰이 무너지기 위해 기도하자는 내용의 문구가 있었습니다. 그 부분 때문에 많은 비 기독교인 분들께서 다시 한번 기독교의 타 종교 배척사상에 대해서 비난에 가까운 비판을 하였습니다.
행사 주최측의 의도와 상관없이 분명히 표현상의 문제는 있었습니다.
솔직히 오늘날에도 여전히 많은 교회들이 타 종교를 깎아내리는 방법으로 기독교의 가치를 높이려는 움직임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런 움직임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이단처럼 여기는 풍토 역시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는 것이 기독교의 가치를 높이고, 나아가서는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는 일이 될까요?
물론 우리는 하나님께서 시편에서 말씀하신 것처럼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우리에게 허락하신 하나님의 권세를 가지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타 종교를 깎아내리거나 자극적인 비난이나 비판을 통해서 된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많고 많은 믿음의 동역자 분들, 비 기독교인인들이 우리를 향한 비난의 손가락질을 할 때 우리는 침묵하며 오히려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에게 맞설 논리적인 반박을 하는 것도, 똑같이 비난과 비판의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도구는 우리의 멋진 말도, 우리의 논리적인 반박도 아닙니다.
오로지 무릎으로 나아가는 우리의 진실된 기도 뿐입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트리는 길을 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얼마 전, 기독교 방송에서 하는 기도 대성회를 보았습니다.
제가 받은 은혜가 얕아서인지는 모르지만, 무의식중에 기도할 수 밖에 없는 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의 집회가 은혜스러운 이유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탄식 소리가 제 맘을 울리는 듯 했기 때문입니다.
기도대성회를 해야만 기도의 능력이 배가 되는 것인지...하나님의 손을 움직이는 침묵속 골방의 기도는 어디로 사라져 버린 것인지...영성의 기준은 도대체 무엇인지...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것들을 우리는 너무 쉽게 판단하고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기도대성회에서 왜 아이들은 높은 단상위에 있는 목회자 부부를 향해서 헌화를 하며 또 그들은 마치 하나님 대신에 왕이 된 것처럼 손을 흔들며 화답을 하는 것인지...
하지만 전 그것이 옳다 그르다 감히 말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에, 그 분께서 내가 틀렸다 하면 내가 틀린 것이오. 또 내가 맞았다 한들 자랑할 것도 없겠지요...인간은 맞았다고 하는 그 순간 틀릴 수 있는 존재니까...
나그네와 같은 삶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리고 우리 같은 나그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배의 모습도 아니오, 기도의 모습도 아니오, 선교의 모습도 아니오. 오직 주를 향한 순종의 순간이 아닐까 깊이 회개하며 반성해 봅니다. 한번쯤 진지하게 하나님앞에 무릎 꿇고 여쭈어야 합니다.
지금 내 신앙에서 '모습' 을 빼면 무엇이 남아 있는지...
그 대답 역시 오직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으시겠지요.
언젠가 누가 제게 물었습니다.
하나님이 네게 음성으로 응답을 들려주시니? 아니!
그럼 하나님이 갑자기 네게 모습을 보이셔서 말씀을 해주시니? 아니!
그런데 넌 어떻게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니? 그건...
과연 우리는 어떤 대답들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향한 확신의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오직 하나 뿐입니다.
신앙의 베옷을 입고, 낮아지고 낮아지는 길을 선택하는 것 뿐이지요.
세상 속에서 나의 가치가 높아져도 낮아지기를 기도하고, 낮아지면 또 더욱 낮아지기를 기도하고...그것이 진정한 나그네와 같은 삶이 아닐까요..낮아지는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이 죽기보다 더한 고통이 따라오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이 몰래 다가와 우리의 마음을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고, 허영을 사랑하며, 서로의 교만을 부추기기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가 이룬 업적으로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지요. 그래서 우리는 이미 낮아질 수가 없는 상황에 이를 수 밖에는 없습니다.
서로의 가치를 높여주는 것이 나쁘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업적을 이루었다는 것은 엄연히 틀린 말입니다.
우리가 그 업적을 칭송받을 단 하나의 이유도 우리에게는 있지 않습니다.
우리의 업적은 그 분의 것이니까요.
다시 돌아와서 부산 집회에서 사찰이 무너지기를 기도하는 크리스천들의 모습을 보면서도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습니다..왜 우리는 모든 것을 무너트려야지만 새로운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고 착각 하는 것인지...
포스트 모더니즘 이후, 진리의 해체가 가속화되면서, 당위적인 윤리성마저 흔들리는 그런 세상에 우리는 직면해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물질로 세상의 가치를 따지는 것을 가장 먼저 배우고 청소년들의 탈선은 패러다임의 변화라는 캐치 프레이즈 아래 묵인되어지고, 사람의 생명이 땅에 떨어지며 교회의 신뢰는 이미 추락하기 시작한지 오래입니다.
그래서 교계에서는 '참된 혁명' 을 외치면서, 부흥을 부르기 위한 부흥집회들과 문화축제들이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기업화되고, 목회자들이 정치판과 경제판에 뛰어들어 세상의 모습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수 많은 성도들과 함께 대규모 집회를 연다고 해서 부흥이 되고 참된 혁명이 이루어질까요?
부흥병에 걸려 버린 한국 기독교, 그러나 정작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이렇게 묻고 계실지도 모릅니다.
'내가 원하는 단 한명의 의인은 어디에 있니?'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잊고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소위 영향력 있는 목회자들이나 크리스쳔들이 아니라 침묵속에서 눈물로 우리들의 어리석은 모습을 대신 회개하고 있는 어린양과 같은 단 한명의 의인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참된 혁명은 어느 오래 전 신학자의 말처럼 전복을 통해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랬다면 예수님 역시 '유대사회의 전복'을 통해서 그 분의 사역을 이루셨을 것입니다.
그 분은 파괴나 전복이 아닌 '희생과 완성'을 통해서 구원의 사역을 이루셨습니다.
그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그 분은 나그네와 같은 분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 분은 자신의 삶에 나침반은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나그네와 같은 자는 자신의 업적을 자랑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의 칭찬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자신이 오직 하나님의 뜻 외에는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까닭입니다.
우리는 무언가를 무너트려서 하나님 나라의 지경을 넓히고자 하는 마음보다는 오직 나그네와 같은 마음으로 오히려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 또는 어떤 존재이든지간에 모두 그 분의 것입니다. 그분의 허락없이 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고로 우리는 그 무엇도 무너트리거나 파괴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가는 것만이 '참된 혁명' 은 아닐까요?
이제 우리가 할 것은 나그네 되지 못하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에 대한 회개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두려워 해야 합니다. 기독교를 비판하는 자들에 대한 두려움이 아닙니다. 그런 비판들을 인내와 겸허함으로 감당하지 못하는 우리를 책망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 입니다.
우리의 침묵은 침묵이 아닙니다. 우리의 침묵은 하나님의 손을 움직이기 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너희 모든 성도들아 여호화를 사랑하라 여호와께서 성실한 자를 보호하시고 교만히 행하는 자에게 엄중히 갚으시느니라 강하고 담대하라 여호와를 바라는 너희들아'
시편 31 : 23~24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아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오직 여호와를 사랑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말씀에서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여호와를 바란다면 말이지요.
끝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고 있는 저희 형님 미니홈피 메인에 있는 글을 인용하면서 줄이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옳고 그름의 분별이 아닌
끝까지 하는 사랑입니다.'
쓰다보니 또 주저리 주저리 말이 많아졌네요.
다들 행복한 한주간 되시길....
그리고 모든 분들,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추신 : 기독교의 오피니언 리더를 강조하는 진보적 입장이나 뉴라이트 운동 차원에서 볼 때는 거슬리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기독교의 진보보다 중요한 건 하나님의 뜻이라는 생각에 기도하는 마음으로 솔직한 심정을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