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檀園’이라는 관서 아래의 도서는 주문방인(朱文方印) ‘弘道’와 백문방인‘士能’이다. 그 우측에 마성린(馬聖麟:1727~1798 이후)이 1797년에 추서(追書)한 화제는 다음과 같다. “6월 더위 찌는 밤에 구름과 달이 아스라하니, 붓끝의 조화가 사람을 놀래켜 아찔하게 하는구나" 화제 머리에 찍은 백문타원인은 ‘游藝(예술에 노닌다)’ 이고 아래는 백문방인 ‘馬氏’와 주문방인 ‘景義’이다. 화제를 1797년에 썼다는 점은 마성린의 다음 기록에서 짐작된다.
내 어느날 김의현(金義鉉)의 유죽헌(有竹軒)에 들러 보니 책상에 『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한 권이 있었다. 펼쳐 보니, 단원 김홍도가 맨앞의 그림을 그렸고 고송유수관 이인문이 이어서 그렸으며, 그 다음은 여러 군자가 각기 시를 짓고 썼는데, 무릇 그 화법의 신묘함과 시와 글씨의 맑고 참됨이 난정수계(蘭亭脩계)나 서원아집(西園雅集)에 비길 만한 것이었다… 71세 미산옹 마성린이 쓰다.
작품의 소재는 당시 중인들의 문학운동을 주도하던 송석원시사(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 광경으로서 이 모임은 1791년 6월 15일에 있었다. 송석원은 천수경(千壽慶)의 집을 가리킨다. 무더운 여름밤에 펼쳐진 시인들의 아취있는 모임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
단원(檀園) 김홍도(金弘道) - 송석원시사야연도(松石園詩社夜宴圖)
내 어느날 김의현(金義鉉)의 유죽헌(有竹軒)에 들러 보니 책상에 『옥계청유첩(玉溪淸遊帖)』한 권이 있었다. 펼쳐 보니, 단원 김홍도가 맨앞의 그림을 그렸고 고송유수관 이인문이 이어서 그렸으며, 그 다음은 여러 군자가 각기 시를 짓고 썼는데, 무릇 그 화법의 신묘함과 시와 글씨의 맑고 참됨이 난정수계(蘭亭脩계)나 서원아집(西園雅集)에 비길 만한 것이었다… 71세 미산옹 마성린이 쓰다.
작품의 소재는 당시 중인들의 문학운동을 주도하던 송석원시사(송석원시사(松石園詩社) 광경으로서 이 모임은 1791년 6월 15일에 있었다. 송석원은 천수경(千壽慶)의 집을 가리킨다. 무더운 여름밤에 펼쳐진 시인들의 아취있는 모임이 눈앞에 보이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