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붉은 돌로 만든 딱정벌레 모양의 벼루이다. 벼루 뚜껑으로는 날개를 모사했고, 다리와 더듬이도 섬세하게 조각했다. 뚜껑에는 묵향에 깊이 취한다는 뜻의 ‘심취묵향(深醉墨香)’을 전서체로 양각했다. (조선 19세기)
수정과 상아로 만든 붓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를 사용하였으나, 이 작품은 몸통을 수정으로 만들고, 필두와 고리부분은 우윳빛 상아로 만들어 호사를 부렸다. 붓의 털은 축에 비해 긴 편이다. 이 밖에 금·은·마노·옥·수정·상아 등 값진 재료로 붓을 제작한 호사가들도 있었다 한다. (조선 19세기)
석제 벼루
검붉은 색과 연한 녹색이 섞인 돌로 만든 벼루다. 벼루의 한쪽을 초승달 모양으로 파서 연지를 만들고 연지의 가장자리에 물위에 뜬 잎에 올라타려는 개구리를 조각했다. 먹을 가는 도구의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조형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조선 19세기)
죽첨
타원형의 추구통과 그 안에 담긴 죽첨이다. 추구통의 몸통 앞뒷면은 대나무로, 아랫면과 윗면은 물소뿔을 붙여 만들었다. 윗면에는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죽첨을 하나씩 뺄 수 있도록 했다. 얇게 다듬은 죽첨에는 한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구(句)가 앞면에 다섯 글자, 뒷면에 세 글자가 쓰여 있다. 늘 시를 가까이했던 문인의 풍류가 느껴진다. (조선 19세기)
조각품을 연상시키는 각종 먹
흔히 보았던 길쭉하고 납작한 막대 모양의 먹 뿐 아니라, 다양한 금박 문양을 베풀거나 섬세한 조각을 새겨 넣어 미적 요소까지 고려한 먹의 모습이 이채롭다. (청대)
비밀과 계약의 상징, 봉함인
봉함인(封緘印)은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이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투의 접합부에 찍는 도장이다.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이며, 복잡한 문양을 새겨 쉽게 복제하기 어렵게 했다. 재료로 나무를 많이 쓴 것은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봉함인은 편지 봉함 외에도 금전거래문서의 금액을 표기한 부분이나 계약문서의 작성일자 위에 찍었고, 고서의 장서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 19세기)
휴대용 유기 묵호
묵호는 먹물을 담아두는 그릇인데, 이것은 야외용으로 휴대가 간편하게 제작한 것이다. 먹물을 담는 원통형 부분과 소형 붓을 넣을 수 있는 긴 대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경첩식으로 만들어 여닫을 수 있게 했다. 장소를 막론하고 지필묵을 휴대했던 조선시대 문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조선 19세기)
각종 두루마리 종이
주지(周紙)는 두루마리 상태의 종이로, 편지나 글을 쓸 때 필요한 만큼 잘라 썼다. 주지는 백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적색·연두색·황색·청색·자색 등 다양한 색상이 있었다. 편지지는 대부분 봉투의 색에 맞춰 사용했다. (조선 19세기)
백자청화철화접문시명 팔각연적
팔각기둥 모양의 백자연적이다. 윗면에는 청화와 철화 기법으로 나비를 그렸고, 옆면에도 칠언절구를 써 넣었다. 단정한 기형과 정갈한 문양, 유장한 시의 내용이 잘 어울리는 18세기 백자 연작을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조선 18세기)
백자 묵호
먹물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위아래로 납작하게 눌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담청색을 머금은 백자 유약을 입혔으며, 낮은 다리굽이 받치고 있다. 단아함과 고고한 멋이 빛나는 생활 속의 작품이다. (조선 19세기)
조선시대 문방구들
검붉은 돌로 만든 딱정벌레 모양의 벼루이다. 벼루 뚜껑으로는 날개를 모사했고, 다리와 더듬이도 섬세하게 조각했다. 뚜껑에는 묵향에 깊이 취한다는 뜻의 ‘심취묵향(深醉墨香)’을 전서체로 양각했다. (조선 19세기)
붓대는 대부분 대나무를 사용하였으나, 이 작품은 몸통을 수정으로 만들고, 필두와 고리부분은 우윳빛 상아로 만들어 호사를 부렸다. 붓의 털은 축에 비해 긴 편이다. 이 밖에 금·은·마노·옥·수정·상아 등 값진 재료로 붓을 제작한 호사가들도 있었다 한다. (조선 19세기)
검붉은 색과 연한 녹색이 섞인 돌로 만든 벼루다. 벼루의 한쪽을 초승달 모양으로 파서 연지를 만들고 연지의 가장자리에 물위에 뜬 잎에 올라타려는 개구리를 조각했다. 먹을 가는 도구의 차원을 넘어, 돌의 빛깔과 형태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는 조형물로서의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조선 19세기)
타원형의 추구통과 그 안에 담긴 죽첨이다. 추구통의 몸통 앞뒷면은 대나무로, 아랫면과 윗면은 물소뿔을 붙여 만들었다. 윗면에는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죽첨을 하나씩 뺄 수 있도록 했다. 얇게 다듬은 죽첨에는 한시의 운율을 맞추기 위한 구(句)가 앞면에 다섯 글자, 뒷면에 세 글자가 쓰여 있다. 늘 시를 가까이했던 문인의 풍류가 느껴진다. (조선 19세기)
흔히 보았던 길쭉하고 납작한 막대 모양의 먹 뿐 아니라, 다양한 금박 문양을 베풀거나 섬세한 조각을 새겨 넣어 미적 요소까지 고려한 먹의 모습이 이채롭다. (청대)
봉함인(封緘印)은 편지를 전달하는 과정에 다른 사람이 열어보지 못하도록 봉투의 접합부에 찍는 도장이다. 둥글거나 네모난 형태이며, 복잡한 문양을 새겨 쉽게 복제하기 어렵게 했다. 재료로 나무를 많이 쓴 것은 정교하게 조각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봉함인은 편지 봉함 외에도 금전거래문서의 금액을 표기한 부분이나 계약문서의 작성일자 위에 찍었고, 고서의 장서인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조선 19세기)
묵호는 먹물을 담아두는 그릇인데, 이것은 야외용으로 휴대가 간편하게 제작한 것이다. 먹물을 담는 원통형 부분과 소형 붓을 넣을 수 있는 긴 대롱으로 구성되어 있다. 뚜껑은 경첩식으로 만들어 여닫을 수 있게 했다. 장소를 막론하고 지필묵을 휴대했던 조선시대 문인의 생활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다. (조선 19세기)
주지(周紙)는 두루마리 상태의 종이로, 편지나 글을 쓸 때 필요한 만큼 잘라 썼다. 주지는 백지가 대부분이었지만, 적색·연두색·황색·청색·자색 등 다양한 색상이 있었다. 편지지는 대부분 봉투의 색에 맞춰 사용했다. (조선 19세기)
팔각기둥 모양의 백자연적이다. 윗면에는 청화와 철화 기법으로 나비를 그렸고, 옆면에도 칠언절구를 써 넣었다. 단정한 기형과 정갈한 문양, 유장한 시의 내용이 잘 어울리는 18세기 백자 연작을 대표할 만한 걸작이다. (조선 18세기)
먹물을 담아두는 그릇이다. 위아래로 납작하게 눌린 듯한 모양을 하고 있다. 담청색을 머금은 백자 유약을 입혔으며, 낮은 다리굽이 받치고 있다. 단아함과 고고한 멋이 빛나는 생활 속의 작품이다. (조선 19세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