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사랑 유령 (47)

시간공작소2003.10.26
조회339

47.

할머니가 알려준 넙적바위에 누워서 하늘을 보니 기세등등한
대나무에 눌려서 하늘이 새끼손톱만하게 보였다.
살며시 눈을 감으니 사각사각 그들의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어디선가 얕은 바람이 분다.
바람은 마치 인자한 할아버지가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듯이 미소를 띄우고
일일이 하나하나 대나무를 매만진다.
차마 지칠련도 하련만 그 부드러운 손길로 선영을 어루만지고
뭐가 그리 바쁜지 서둘러 길을 떠난다.

그들은 말한다. 선영에게...

모든것을 잊으라고...미움도 잊고...슬픔도 잊고..
내가 나였다는 사실마저도 잊고 그냥 바보처럼 살아가라고 한다.
하루하루 살아가는것이 즐거운 소풍처럼 그렇게 살아가라고 한다.


시상식까지 끝나자 모든 공식적인 행사는 끝났다.
세미나실을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영업부사람들만 남았다.

은진은
"죄송합니다...여러분 기대에 못 미쳐서...정말 죄송합니다."
하고 모두에게 고개 숙여서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아니야..잘했어..우리는 은진씨가 일등이라고 생각해..안그래?"
하고 박과장이 말하자
다들 그래요 맞아요 하고 이구동성으로 말한다.

"그래도..죄송해요...죄송해요..."
은진은 저도 모르게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바보..울긴 왜우냐?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한테 너는 일등이야.
우리한테 일등이면 된거지? 안그래?
그리고 너 열심히 한것 우리 부서사람들 다 알어.
괜찮아..잘했어."
하고 보라는 은진을 살짝안고 등을 토닥이면서 달랬다.

"자..그러면 자리를 옮길까? 오늘은 내가 쏘지.."
박과장이 말하자

우와~ 하고 박수가 나오면서 사람들은 박과장을 연호하자
박과장은 두손을 맞잡고 브라보자세로 웃으면서 화답한다.

은진은 눈물을 훔치고

"아니에요..제가 여러분 좋은 주말시간 다빼앗는데..
당연히 제가 쏴야죠..제가 쏠께요.."

보라가
"야~ 너가 무슨 돈이 있다고?.."

"언니 상금 받은 돈이 있잖아요.."

"애는 그런 돈은 모아서 시집갈때 밑천으로 쓰는거지.."

그러자 사람들이 우~ 하고 야유하자

"괜찮아요..언니 원래 주은돈은 빨리 써야 한다고 하던데요.."

박수가 터져나오면서 서은진 서은진하고 연호한다.

"아니 이것들이 간신처럼 여기붙었다 저기붙었다 하냐?
아깝다. 내가 오늘 정말 근사하게 쏠려고 집문서까지 갖고 나왔는데..
오호통재로다..."
박과장이 이렇게 말하자 보라가

"과장님 그 집문서 잘 갖고 계세요..우리나라에는 2차라는 아주 예쁜제도가
있으니깐요..다들 오늘 한번 화끈하게 죽어봅시다."

보라입에서 죽어보자는 말이 나오자 다들 얼굴이 사색이 되더니
다들 휴대폰을 꺼내고 전화하는 시늉을 한다.

"여보세요..정호냐? 뭐라고 너가 오늘 교통사고로 죽는 날이라고...
알았어 내가 지금 장례식장에 미리 가있을께." -_-;;;

"여보야~ 난데..오늘 늦을것 같은데..아니 뭐야~ 갓백일 지난 우리애가
미적분을 푼다고..알았어 내가 지금갈께"

"어머니 저 오늘 죽을지도 몰라요. 먼저가더라도 이 못난불효자식을 용서
해주시길..흐흑..."

보라는

"짜식들...약한 모습을 보이네..군인정신 몰라? 군인정신"

"야~ 너는 술을 마시는게 아니라 살인 의도로 퍼먹이잖아..
다들 얼마나 살떨려하는데 너한테서 죽어보자라는 그말이 나오면..."

"알았다..알았어..그러면 가볍게 살짝 죽자..됐지?"

"자~ 가자구 여기다가 술집 차릴거야?"
박과장은 모두 몰고 세미나실을 빠져나간다.

은진은 세미나실을 나가면서 창문을 보았다.

아직도 하늘에는 빨간 애드밸름이 떠있고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하고 있는 은진캐릭터가 바람에 왔다갔다하고 있다.

그리고 고수는 처음 있던 그자리에 목석처럼 서서 이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예전부터 거기가 자신의 자신의 자리인양...
가을이라고 하나 아직 오후 햇볕이 많이 따가울텐데...

"고수놈 아직도 저러고 있네..저놈도 난놈이다..은진아~ 전화해줘라..그리고
다들 보고 싶어하니깐 회식자리에 꼭 오라고 하고.."
보라는 이렇게 말하고 자리를 떠났다.

전화를 꺼내고

"여보세요..네에..고수씨 ...안됐어요..
고수씨가 그렇게 열심히 응원해줬는데..너무 죄송해요..."

"은진씨 너무 속상해 하지마세요...괜찮아요..
그냥 재미있는 놀이 하나가 끝났다고 생각하세요.
아이들은 놀이가 끝났다고 속상해 하지않아요.
하나의 놀이가 끝나면 다른 재미있는 놀이가 있다는걸 아니깐요."

"고수씨~"

"제가 여기서 있으면서 은진씨가 지금 어떻게 하고 있을까 상상했어요.
그리고 마음속으로 기도도 했어요.
최선을 다하게 해달라고..."

"고마워요..고수씨~"

"별말씀을...아참 식사전이시죠? 저녁이나 먹으러 갈까요?"

"미안해서 어쩌죠? 지금 회식이 하기로 되었는데요..아참 그러지 마시고
고수씨도 오세요..다들 보고 싶어하는데.."

"아니..아닙니다..제가 아직은 준비가...음..그리고 이 풍선도 떼야하구요..
아까부터 경비아저씨가 뭐라고 하네요..
그럼 오늘 좋은 회식 되세요..술은 조금만 드시구요...
그리고 택시타실때는 숙대 남영동이라고 꼭 말씀하시구요.."

은진은 전에 있던 일을 떠올리고 웃는다.

"네에..그럼 고수씨도 좋은 시간되세요.."

고수는 하늘에 떠있는 애드밸름을 올려다보았다.

'휴~ 저것을 또 어떻게 떼냐?"


"언니 나야 서희..그래 잘있었어?..아~맞다 거기는 지금 새벽이겠다.
미안해 내가 자는데 깨운것 아니야?... 애들은 잘 있지?
응 그래 이메일로 사진은 잘 받았어..
똘망똘망한게 언니를 쏙 빼닮았더라. 아참 형부도 잘있고?"

"뭐..다들 고만고만하지..그건 그렇고..너는 어쩔려구?"

"........"

"그러고 있으면 안되잖아.."

"몰라 모르겠어...아직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할지...."

"지금와서 그러면 어쩔려구?"

"아직은 이대로가 좋아."

"휴~ 잘생각해라...나도 뭐라고 대답하기가 난감하다."

"알았어..잘있어..언니 또 전화할께.."

서희는 전화를 끊고 휴~ 하고 한숨을 쉬고 바닥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여보세요 승미니?"

"선영이냐?"

"어..나야.."

"이런 나쁜기집애..왜 지금 전화하는거야?
어유~ 나는 무슨일 난줄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줄 알아?
지금 어디야?"

"미안미안...지금은 담양이야..너가 말한 그 시골집이야.."

"그러면 그전에는 어디에 있었던거야?"

"어..그냥 돌아다녔어..아참 나 제주도 갔다왔다..."
선영은 자랑하듯 말하자

"아주 팔자 늘어지셨구만...누구는 집나간 딸년 기다리는 애비심정으로 기다리는데..
이것이 전화도 안하고..."

"정말 미안해..여기저기서 전화가 와서 그냥 꺼두고 있었는데..
너한테 전화한다고 생각했는데 깜빡했네.."

"그래 알았다..너 죄는 서울에 올라오면 묻도록 하고 어떠냐?
괜찮냐? 거기는 지낼만 하냐?"

"응..여기 너무 좋다.
딴데 가지말고 그냥 여기먼저 올걸 그랬어.
지금 넙적바위에 누워서 전화하는 거야? 너두 아냐 이 바위?"

"어 알지..평평하게 무슨 돌침대처럼 생긴 바위 말하는거지?"

"어 맞어."

"난 이상하게 거기만 누워있으면 잠이 쏟아지더라..
무슨 자기력이 나오는 바위인가?"

"할머니가 여기오면 대나무가 말하는소리가 들린다고 하던데...
정말 그런것 같다."

"그 할머니 너한테도 그랬냐?..그래 대나무가 뭐라고 하대?
로또 번호라고 알려주던?"

"아니..친구 가려서 사귀라고 하더라. 특히 여기와서 잠만 펑펑 자다간 애랑은
놀지 말라고 하던데.."

"뭬야~ "

선영의 웃음소리가 고요한 대나무의 바다에 맑은 울림으로 퍼진다.
승미야...
너 아니?
네가 나에게 얼마나 큰힘이 된다는걸..
고맙다..항상 고마워 친구야...


"아니 이것이 어디에 숨은거야?"

장형사는 하루종일 선영을 찾아서 이장을 찾아서 탐문도 하고 민박집을
하나하나 일일이 찾아가면서 둘러보고 물어보았지만
선영에 대한 단서는 어디에도 없었다.
핸드폰 위치추적에서는 단지 어디쯤이라는것만 알수있지 정확한 주소
까지는 알수 없으므로 이렇게 돌아다니면서 물어보는수 밖에 없었다.

장형사는 룸미러로 뒤좌석에 앉은 화령사를 힐끔보았다.

화령사는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까부터 눈을 감고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


"의원님..지금 병문안인사하러 오신분이 있는데.."

"아무도 들어보내지마..만나고 싶지 않아.."

"승일그룹 박이사님입니다."

"어..그래..들어오시라고 해.."

박이사가 들어오고 따라서 비서가 낑낑대서 한아름 선물을 들고 들어왔다.

들어가자마자 박이사는 우는 시늉을 하면서
"아이구 의원님 이게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도 유분수지 이게
무슨 일입니까?"

"허허..뭐 살다보면 이런일도 있고 저런일도 있는것 아니겠소.."

"그래도 의원님처럼 청렴하시고 국민들로부터 존경을 받으시는 분께서
이런 일을 당하시다니.."

"괜찮네..어짜피 내목숨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바치겠다고 생각하고
정치계에 입문한 나일쎄..백번아니 천번이라도 이몸이 부서져서라도
진정한 민주정치가 이땅에 자리 잡는다면 나는 그렇게 하겠네."

"의원님..흐흑.."

박의원은 고개를 돌려서 선물을 보면서

"저것은 뭔가?"

"약소하지만 받아주세요..저의 성의입니다."

"어허 이사람이..저런것을 왜 가지고 오나..우리가 무슨 남인가?
마음만 고맙게 받겠네..가져가게"

"그래도..."

"여기는 여러사람이 오가는 곳일세.."

그제서야 박이사는 눈치를 채고 비서에게 귓속말로 염의원 집으로
보내라고 말한다.

"의원님 편찮으신데..이런 말씀 드리기 죄송합니다만..흠흠.."
박이사가 헛기침을 하자

염의원은 보좌관에게 나가라는 듯 턱짓으로 문을 가르키고
보좌관이 나가자

박이사는 침대옆으로 바짝붙어서 나즈막하게

"의원님 큰일났습니다..아무래도 그일을 기자랑 검찰쪽에서 냄새를
맡은것 같습니다."

"그일이라면...대선자금을 말하는건가?"

"네에.."

염의원은 끄응~ 하고 신음소리를 내고

"그래 몇명이나 알고 있는것 같나?"

"아직은 몇명 안되는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직은 우리에게 시간이 있다는거야..
세상에 돈싫다는 놈 하나도 없으니깐...
자네가 그 기자들이랑 검찰쪽에 기름칠좀해.
돈아끼지 말고 뿌려서 입좀막아봐.
그렇게해서 시간좀 벌면 내가 몸좀 추스려서 외국으로 가서 몇년 박혀있다가
잠잠해지면 그때 들어오면 되니깐.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에 잘알겠습니다."

"자네가 잘해야하는거야..
일이 틀어지면 승일그룹 하나 문닫는걸로 끝나지 않아...
잘못되면 큰어르신까지..
음..다시한번 말하지만 잘 처리하게.."

"네에 걱정마십시오 의원님..제가 알아서 잘 처리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면서 박이사는 고개를 푹 숙여서 인사를 한다.

"피곤해 나좀 쉬어야겠네..나가보게.."

"그러면 가보겠습니다... 조속히 쾌차하시길 기원합니다."
하면서 다시 박이사는 크게 인사하면서 병실을 나왔다.

염의원은 눈을 감고 한손을 이마에 올려놓고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한동안 그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