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보는 데뷔 첫 해부터 가요 차트를 싹슬이하며 인기 가도를 달렸다. 1집인 [280km/h Speed]에서 ‘나 어릴적 꿈’과 ‘검은 고양이’, ‘선택’ 등이 연달아 히트했고, 거리에서든 클럽에서든 쉴 새 없이 터보의 노래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1996년에 발표한 2집 [New Sensation] 역시 ‘트위스트 킹’, ‘어느 재즈바’, ‘Love Is’ 등 내놓는 곡마다 가요 프로그램 정상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이어 나갔다. 이는 김종국의 댄스가수 답지 않은 빼어난 가창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주영훈과 윤일상 등 히트 제조기로 불리던 작곡가들의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2집 활동 후 터보는 해체 위기까지 맞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소속사와의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인해 빚어진 불화가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멤버 중 김정남이 그룹에서 탈퇴하게 되고, 대신 재미교포 출신의 마이키가 멤버로 새롭게 가세한다. 해체 직전까지 갔던 터보는 간신히 기사회생해서 1997년 3집 [Born Again]을 내놓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여러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3집 역시 가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타이틀곡 ‘금지된 장난’과 ‘굿바이 예스터데이’는 전작들의 성공을 능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종국은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자작곡을 선보이며 뮤지션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김종국은 1998년부터 한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 활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터보의 멤버로서도 4집과 5집을 거푸 성공시키며, 가요계의 가장 확실한 흥행 보증 수표임을 입증해 보였다. 터보의 인기는 사실 다른 멤버보다는 김종국 개인의 인기에 비롯한 측면이 많았고, 때문에 김종국의 솔로 데뷔설은 터보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루머 가운데 하나였다. 이처럼 말로만 떠돌던 ‘솔로 가수’로서의 김종국의 모습은 2001년 비로소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전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터보가 해산하고 김종국이 솔로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김종국의 솔로 앨범은 [Renaissance]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1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기존의 음악 파트너인 윤일상을 비롯해 이승호, 박해운 등의 정상급 작사/작곡가들이 참여한 음반이었다. 김종국 개인의 인기와 가창력, 작곡가들의 명성 등을 감안할 때 김종국의 솔로 음반은 성공이 보증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분주한 방송 활동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솔로로서의 김종국은 터보 시절만큼의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한동안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던 김종국은 2004년 애절한 발라드 ‘한 남자’를 앞세운 솔로 2집을 발표하며 재기를 노렸다. 다행히도 ‘한 남자’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하며 김종국의 인기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처럼 높은 인기에는 당대의 트렌드인 이른바 ‘몸짱’ 열풍에 부응하는 그의 근육질 몸매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김종국은 이듬해 ‘제자리 걸음’이라는 또 하나의 발라드 곡을 머릿곡으로 한 3집 앨범 [This Is Me]를 발표했다. ‘제자리 걸음’ 역시 기대대로 대히트를 거둠으로써 김종국의 드높은 대중적 인기를 확인시킬 수 있었다.
터보 1집: 검은 고양이 - 나 어릴적꿈 - 선택
터보 2집: 트위스트 킹 - 어느 째즈바 - LOVE...IS
터보 3집: 회상 - 금지된 장난 - 굿바이 예스터데이
터보 4집: 애인이 생겼어요 - X - 스키장에서
터보 5집: TONIGHT - 사이버러버
김종국 솔로1집: 남자니까 - 행복하길
김종국 솔로2집: 중독 - 한 남자 - FEELING
김종국 솔로3집: 사랑스러워 - 제자리걸음 - 별,바람,햇살..
터보와 김종국을 논한다!!!!
그룹 터보로서 대한민국 댄스음악을 대표하던 가수에서
이제는 솔로로서 한획을 그은 대표적인 가수가 되었다.
(그룹 터보와 김종국....)
※ 터보 1~2집: (김정남, 김종국)
※ 터보 3~5집: (마이키, 김종국)
※ 2001년 12월 김종국 솔로데뷔.
※ 2005년 10월 김정남 솔로데뷔.
※ 2005년 11월 마이키 M3 혼성그룹데뷔.
터보는 데뷔 첫 해부터 가요 차트를 싹슬이하며 인기 가도를 달렸다. 1집인 [280km/h Speed]에서 ‘나 어릴적 꿈’과 ‘검은 고양이’, ‘선택’ 등이 연달아 히트했고, 거리에서든 클럽에서든 쉴 새 없이 터보의 노래가 흘러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여세를 몰아 1996년에 발표한 2집 [New Sensation] 역시 ‘트위스트 킹’, ‘어느 재즈바’, ‘Love Is’ 등 내놓는 곡마다 가요 프로그램 정상을 차지하며 전성기를 이어 나갔다. 이는 김종국의 댄스가수 답지 않은 빼어난 가창력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주영훈과 윤일상 등 히트 제조기로 불리던 작곡가들의 참여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하지만 2집 활동 후 터보는 해체 위기까지 맞는 최악의 상황과 맞닥뜨리게 된다. 소속사와의 불리한 계약 조건으로 인해 빚어진 불화가 원인이었다. 이로 인해 멤버 중 김정남이 그룹에서 탈퇴하게 되고, 대신 재미교포 출신의 마이키가 멤버로 새롭게 가세한다. 해체 직전까지 갔던 터보는 간신히 기사회생해서 1997년 3집 [Born Again]을 내놓고 새로운 출발을 알렸다. 여러 구설수에도 불구하고, 3집 역시 가요 팬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특히 타이틀곡 ‘금지된 장난’과 ‘굿바이 예스터데이’는 전작들의 성공을 능가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김종국은 이 앨범에서 처음으로 자작곡을 선보이며 뮤지션으로서의 성장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김종국은 1998년부터 한세대학교 작곡과에 입학, 본격적으로 작곡가로서 활약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또한 터보의 멤버로서도 4집과 5집을 거푸 성공시키며, 가요계의 가장 확실한 흥행 보증 수표임을 입증해 보였다. 터보의 인기는 사실 다른 멤버보다는 김종국 개인의 인기에 비롯한 측면이 많았고, 때문에 김종국의 솔로 데뷔설은 터보 활동 초기부터 끊임없이 제기된 루머 가운데 하나였다. 이처럼 말로만 떠돌던 ‘솔로 가수’로서의 김종국의 모습은 2001년 비로소 현실로 나타나게 된다. 전 소속사와의 계약 기간이 만료됨에 따라, 터보가 해산하고 김종국이 솔로로 데뷔하게 된 것이다.
김종국의 솔로 앨범은 [Renaissance]라는 타이틀을 달고 2001년 겨울에 발표되었다. 기존의 음악 파트너인 윤일상을 비롯해 이승호, 박해운 등의 정상급 작사/작곡가들이 참여한 음반이었다. 김종국 개인의 인기와 가창력, 작곡가들의 명성 등을 감안할 때 김종국의 솔로 음반은 성공이 보증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의외로 뚜껑을 열어보니,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분주한 방송 활동과 홍보에도 불구하고, 솔로로서의 김종국은 터보 시절만큼의 반향을 불러오지 못했다.
한동안 예전의 인기를 회복하지 못하던 김종국은 2004년 애절한 발라드 ‘한 남자’를 앞세운 솔로 2집을 발표하며 재기를 노렸다. 다행히도 ‘한 남자’는 스매시 히트를 기록하며 김종국의 인기를 완전히 회복시키는 견인차 역할을 했다. 이처럼 높은 인기에는 당대의 트렌드인 이른바 ‘몸짱’ 열풍에 부응하는 그의 근육질 몸매도 단단히 한몫을 했다.
이 여세를 몰아 김종국은 이듬해 ‘제자리 걸음’이라는 또 하나의 발라드 곡을 머릿곡으로 한 3집 앨범 [This Is Me]를 발표했다. ‘제자리 걸음’ 역시 기대대로 대히트를 거둠으로써 김종국의 드높은 대중적 인기를 확인시킬 수 있었다.
터보 1집: 검은 고양이 - 나 어릴적꿈 - 선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