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檀紀) 4008년(서기 1675), 조선조(朝鮮朝)의 숙종(肅宗) 2년에 지은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우리의 고대사를 기록하면서 1. 한님[桓因]의 전설시기를 창시기(創始紀)로, 2. 배달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한웅[桓雄]시대를 태시기(太始紀)로, 3. 통일만주와 한반도 정착시기를 단군기(檀君紀)로 하여, 3시기로 구별하여 썼다. 본서도 북애자의 시대별구분법을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국 시조 안파견한님[桓國 始祖 安巴堅桓因]
우리 민족사의 시원(始原)에 대한 기록은 여러 역사서(史書)들을 통해 알 수 있으나, 우선 한단고기[桓檀古記]와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중심으로 하여 안파견한님이 민족 최초의 임검으로 등극(登極)하는 장면을 보기로 하자.
이상의 기록 중 한님은 하느님의 준말로서 “한[桓]”은 하늘을 뜻하고, “님[仁, 因]”은 최상의 존경을 뜻하는 의미이다. 즉 한민족 최초의 시조는 곧 하느님 자신이시거나 그분의 분신이라는 것이다.
천산(天山)은 파미르고원이므로 이 기록을 풀어보면, 아득한 옛날에 안파견(安巴堅)이라는 한님이 세계의 지붕이라고 알려진 파미르고원에 내려오셔서 수두[蘇塗]를 설치하고 그곳에 제천단(祭天壇)을 쌓은 후 사람들에게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다는 뜻이 된다.
안함로(安咸老)가 쓴 삼성기전(三聖記全 上篇)에 “한님[桓因]은 또한(亦以) 감군(監群)”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 보인다. 여기서 보이는 감군을 지금까지는 각 글자의 뜻을 그대로 풀어 “무리의 감독관”으로 해석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본서는 아직 한자가 없었던 시절에도 벌써 우리의 말이 먼저 존재(存在)했다는 기초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하느님(天神)을 한님으로 부르고 한자기록은 환인[桓因]으로 쓴 것과 마찬가지로, 지신(地神)을 뜻하는 우리의 고유 발음 “, 감”님의 한자표기를 “監”자로 골라 썼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님은 하늘(天界)의 신(神)일 뿐만 아니라 지상의 신(地神)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신(地神)의 우리말이 “(감)”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며,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서 “”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과 발음이 비슷한 “곰” 발음의 한자 곰 웅(熊)을 쓰게 된 이유도 알 수 있다.
※ 고어(古語)에 “천왈한[天曰桓]”이라는 말이 있다. 즉 하늘(天)과 한[桓]은 같은(曰)말이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안파견한님이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흡수통합하고 그들의 추대를 받아 임검으로 등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하여 보아야할 점은 그의 통치방식이 처음부터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화백(和白)제도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① 안파견한님[安巴堅桓因]
삼성기(三聖記)에 전하기를 우리민족 태시조의 이름은 안파견이라 했다. 이때는 아득한 옛날이어서 아직은 성씨제도가 없던 시절이므로 안파견의 “안”을 성씨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안파견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민족이 쓰고 있는 알타이 언어는 소리글이 아닌 뜻글자로는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남아있는 우리의 옛 역사들은 모두 한문을 사용한 것들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 한문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애초의 발음과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지명이나 인명은 모두 이두식의 발음이 아닌, 중국 현지인들의 발음을 비교하여보면 그래도 원래의 발음을 찾는데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 안파견의 중국식 발음은 “안바첸”이다. 위에서 이미 보았듯이, 인류의 조상을 나반(아바 아바이: 할아버지), 아만(아마 아마이: 할머니)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민족의 시조인 안파견을 아버지 호칭인 안바첸/아바체/아바치/아버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비슷한 예로서,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에게 당시의 사람들은 국부(國父: 나라의 아버지)라는 경칭을 올렸었고, 북한에서도 그들의 영도자인 김일성에게 아버지라는 존칭으로 존경을 표시했었다.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란(遼)태조 역시 아보기(阿保機)라고 쓰고 읽기는 정확하게 “아버지”라고 읽었다. 이상의 경우는 나라의 지도자를 모두 “아버지”라는 경칭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② 수두[蘇塗]
수두는 민족의 시조인 안파견한님에 의하여 처음부터 설치되었던 제천단(祭天壇)의 성역으로 매 절기 및 나라의 중대한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서 제사하였다. 대체로 숲이 울창한 곳에 위치했으며, 주위엔 검줄(神索)을 쳐서 부정한자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숨어 들어오면 그를 보호해주고 벌을 면해주었다. 대문에는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와 솟대④를 세웠으며, 제사를 드릴 때는 노래와 춤을 중요시했다. 수두 경내의 경당은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다섯 가지 계율과 글짓기, 활쏘기, 말타기, 노래와 음악, 주먹치기, 칼쓰기 등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였다.
수두는 종교와 교육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우리민족만의 독창적인 제도로서 우리 민족이 진출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우리 민족은 이름 그대로 천손(天孫-하늘의 자손)족으로 하늘을 우러러 경배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수두를 중심으로 하여 있어왔으니 태초의 수두교[蘇塗敎], 부여의 대천교(代天敎), 신라의 숭천교(崇天敎) 또는 배달교(倍達敎), 풍류교(風流敎), 풍월교(風月敎), 고구려의 경천교(敬天敎), 밝해의 신종교(眞倧敎), 고려의 임검교(壬儉敎), 이씨조선의 대종교(大倧敎) 등이 모두 그것들이다.
③ 한화[桓花]
현재 대한민국의 나라꽃인 무궁화(槿花)를 말한다. 단군세기(檀君世紀)와 단기고사(檀奇古史)에도 제5세 단군 구을(丘乙) 16년, B.C 2084년에 고역산 제천단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궁화(槿花)는 국[桓國]의 꽃이어서 한화[桓花]라고 부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민족의 탄생과 함께 벌써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④ 솟대
솟대는 수두와 함께 전승되어온 우리민족의 정신이며 상징이다. 원래는 수두의 경내에 세워놓고 조상에 대한 중요한 제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 멀고먼 하늘인 구천(九天)에서 쉬고 계시는 조상님들의 혼령을 현세까지 모시고 오는 신조(神鳥,까마귀)의 날개를 쉬게 하고 그 수고를 위로해준다는 뜻에서 세웠던 샛대였던 것이다.
독자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가 끝난 후 반드시 제삿밥을 나누어 까마귀들에게 던져주는 아름다운 우리 풍습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수두와 더불어 솟대를 세우는 유속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대륙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하늘기둥(天柱, 地柱)이라고 부르는 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천둥새(Thunderbird)나 가루다(Garuda) 혹은 까마귀를 올려놓는다.
까마귀는 또한 태양신의 사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까마귀를 신조(神鳥)로 또는 태양신의 사자로 보는 신화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흔히 까마귀를 현조(玄鳥-검은새)라 부르며, 시베리아를 위시하여 멀리 신대륙에서까지 무당들이 굿을 할 때는 까마귀의 깃털을 어깨에 달고 신(神)과의 대화(對話)를 시도하곤 한다.
캄챠카반도의 코리약족은 그들의 전설 속의 까마귀를 조물주(Creator)로 보고 있고, 북부유럽의 신화에서도 오딘(Odin)이 움직일 때는 늘 세 마리의 까마귀들을 동반하고 있다.
중국의 습유기(拾遺記)에 보이는 까마귀는 중명(重明)이라 하여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두 개 있기도 하다. 까마귀는 여러민족에서 공통적으로 신조(神鳥) 또는 일신의 사자(日神의 使者)로 제관(祭官)들에게 받들어졌다.
검은 새 현조는 하느님이 보낸 사자(使者)인 천조(天鳥)로서 태양속에 있다는 까마귀(三足烏, 金烏, 陽烏)를 가리키는 것이다.
시조 안파견 한님
단기(檀紀) 4008년(서기 1675), 조선조(朝鮮朝)의 숙종(肅宗) 2년에 지은 북애자(北崖子)의 규원사화(揆園史話)는 우리의 고대사를 기록하면서 1. 한님[桓因]의 전설시기를 창시기(創始紀)로, 2. 배달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한웅[桓雄]시대를 태시기(太始紀)로, 3. 통일만주와 한반도 정착시기를 단군기(檀君紀)로 하여, 3시기로 구별하여 썼다. 본서도 북애자의 시대별구분법을 아주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그대로 따르기로 하였다.
국 시조 안파견한님[桓國 始祖 安巴堅桓因]
우리 민족사의 시원(始原)에 대한 기록은 여러 역사서(史書)들을 통해 알 수 있으나, 우선 한단고기[桓檀古記]와 단기고사(檀奇古史), 그리고 규원사화(揆園史話)를 중심으로 하여 안파견한님이 민족 최초의 임검으로 등극(登極)하는 장면을 보기로 하자.
이상의 기록 중 한님은 하느님의 준말로서 “한[桓]”은 하늘을 뜻하고, “님[仁, 因]”은 최상의 존경을 뜻하는 의미이다. 즉 한민족 최초의 시조는 곧 하느님 자신이시거나 그분의 분신이라는 것이다.
천산(天山)은 파미르고원이므로 이 기록을 풀어보면, 아득한 옛날에 안파견(安巴堅)이라는 한님이 세계의 지붕이라고 알려진 파미르고원에 내려오셔서 수두[蘇塗]를 설치하고 그곳에 제천단(祭天壇)을 쌓은 후 사람들에게 하늘의 도리를 가르쳤다는 뜻이 된다.
안함로(安咸老)가 쓴 삼성기전(三聖記全 上篇)에 “한님[桓因]은 또한(亦以) 감군(監群)”이라는 대단히 중요한 대목이 보인다. 여기서 보이는 감군을 지금까지는 각 글자의 뜻을 그대로 풀어 “무리의 감독관”으로 해석하여 오고 있다. 그러나 본서는 아직 한자가 없었던 시절에도 벌써 우리의 말이 먼저 존재(存在)했다는 기초적인 상식에 근거하여, 하느님(天神)을 한님으로 부르고 한자기록은 환인[桓因]으로 쓴 것과 마찬가지로, 지신(地神)을 뜻하는 우리의 고유 발음 “, 감”님의 한자표기를 “監”자로 골라 썼다고 보고 있다.
다시 말하면, 한님은 하늘(天界)의 신(神)일 뿐만 아니라 지상의 신(地神)이기도 하다는 뜻이다. 이것은 지신(地神)의 우리말이 “(감)”이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며,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서 “”의 뜻을 전달하기 위하여 ""과 발음이 비슷한 “곰” 발음의 한자 곰 웅(熊)을 쓰게 된 이유도 알 수 있다.
※ 고어(古語)에 “천왈한[天曰桓]”이라는 말이 있다. 즉 하늘(天)과 한[桓]은 같은(曰)말이라는 뜻이다.
이제 우리는 안파견한님이 백성을 위한 선정을 베풀어 주위의 모든 사람들을 흡수통합하고 그들의 추대를 받아 임검으로 등극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유의하여 보아야할 점은 그의 통치방식이 처음부터 백성들의 뜻을 하나로 모으는 화백(和白)제도를 통치이념으로 하는 완전한 민주주의였다는 점이다.
① 안파견한님[安巴堅桓因]
삼성기(三聖記)에 전하기를 우리민족 태시조의 이름은 안파견이라 했다. 이때는 아득한 옛날이어서 아직은 성씨제도가 없던 시절이므로 안파견의 “안”을 성씨로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안파견이라는 이름의 뜻은 무엇일까? 우리민족이 쓰고 있는 알타이 언어는 소리글이 아닌 뜻글자로는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지금 남아있는 우리의 옛 역사들은 모두 한문을 사용한 것들뿐이어서 어쩔 수 없이 그 한문자가 표현하려고 하는 애초의 발음과 의미를 찾아내야 하는 노력이 필요하게 되었다. 특히 지명이나 인명은 모두 이두식의 발음이 아닌, 중국 현지인들의 발음을 비교하여보면 그래도 원래의 발음을 찾는데 좀더 가까이 갈 수 있지 않을까?
※ 안파견의 중국식 발음은 “안바첸”이다. 위에서 이미 보았듯이, 인류의 조상을 나반(아바 아바이: 할아버지), 아만(아마 아마이: 할머니)으로 기록한 것으로 보아 민족의 시조인 안파견을 아버지 호칭인 안바첸/아바체/아바치/아버지로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비슷한 예로서, 대한민국의 초대대통령 이승만에게 당시의 사람들은 국부(國父: 나라의 아버지)라는 경칭을 올렸었고, 북한에서도 그들의 영도자인 김일성에게 아버지라는 존칭으로 존경을 표시했었다. 좀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거란(遼)태조 역시 아보기(阿保機)라고 쓰고 읽기는 정확하게 “아버지”라고 읽었다. 이상의 경우는 나라의 지도자를 모두 “아버지”라는 경칭으로 쓰고 있는 것이다.
② 수두[蘇塗]
수두는 민족의 시조인 안파견한님에 의하여 처음부터 설치되었던 제천단(祭天壇)의 성역으로 매 절기 및 나라의 중대한 경조사가 있을 때마다 이곳에서 제사하였다. 대체로 숲이 울창한 곳에 위치했으며, 주위엔 검줄(神索)을 쳐서 부정한자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나 죄인이 잘못을 뉘우치고 숨어 들어오면 그를 보호해주고 벌을 면해주었다. 대문에는 방울과 북을 단 큰 나무와 솟대④를 세웠으며, 제사를 드릴 때는 노래와 춤을 중요시했다. 수두 경내의 경당은 미혼의 젊은이들에게 충(忠), 효(孝), 신(信), 용(勇), 인(仁)의 다섯 가지 계율과 글짓기, 활쏘기, 말타기, 노래와 음악, 주먹치기, 칼쓰기 등을 가르치는 교육의 장소였다.
수두는 종교와 교육을 절묘하게 조화시킨 우리민족만의 독창적인 제도로서 우리 민족이 진출한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으로 구석구석 퍼져나갔다. 우리 민족은 이름 그대로 천손(天孫-하늘의 자손)족으로 하늘을 우러러 경배하는 종교적인 의식이 수두를 중심으로 하여 있어왔으니 태초의 수두교[蘇塗敎], 부여의 대천교(代天敎), 신라의 숭천교(崇天敎) 또는 배달교(倍達敎), 풍류교(風流敎), 풍월교(風月敎), 고구려의 경천교(敬天敎), 밝해의 신종교(眞倧敎), 고려의 임검교(壬儉敎), 이씨조선의 대종교(大倧敎) 등이 모두 그것들이다.
③ 한화[桓花]
현재 대한민국의 나라꽃인 무궁화(槿花)를 말한다. 단군세기(檀君世紀)와 단기고사(檀奇古史)에도 제5세 단군 구을(丘乙) 16년, B.C 2084년에 고역산 제천단 주변에 무궁화를 많이 심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무궁화(槿花)는 국[桓國]의 꽃이어서 한화[桓花]라고 부른 듯 보이는데 그렇다면 민족의 탄생과 함께 벌써 무궁화를 나라꽃으로 정하기라도 했던 것일까?
④ 솟대
솟대는 수두와 함께 전승되어온 우리민족의 정신이며 상징이다. 원래는 수두의 경내에 세워놓고 조상에 대한 중요한 제사가 있을 때마다, 제일 멀고먼 하늘인 구천(九天)에서 쉬고 계시는 조상님들의 혼령을 현세까지 모시고 오는 신조(神鳥,까마귀)의 날개를 쉬게 하고 그 수고를 위로해준다는 뜻에서 세웠던 샛대였던 것이다.
독자들은 조상에 대한 제사가 끝난 후 반드시 제삿밥을 나누어 까마귀들에게 던져주는 아름다운 우리 풍습에 대하여 생각해 보라. 수두와 더불어 솟대를 세우는 유속은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대륙의 구석구석에 아직도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중앙아시아와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하늘기둥(天柱, 地柱)이라고 부르는 기둥을 세우고 그 꼭대기에 천둥새(Thunderbird)나 가루다(Garuda) 혹은 까마귀를 올려놓는다.
까마귀는 또한 태양신의 사자로 인식되기도 한다. 까마귀를 신조(神鳥)로 또는 태양신의 사자로 보는 신화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나라에서도 볼 수 있다. 흔히 까마귀를 현조(玄鳥-검은새)라 부르며, 시베리아를 위시하여 멀리 신대륙에서까지 무당들이 굿을 할 때는 까마귀의 깃털을 어깨에 달고 신(神)과의 대화(對話)를 시도하곤 한다.
캄챠카반도의 코리약족은 그들의 전설 속의 까마귀를 조물주(Creator)로 보고 있고, 북부유럽의 신화에서도 오딘(Odin)이 움직일 때는 늘 세 마리의 까마귀들을 동반하고 있다.
중국의 습유기(拾遺記)에 보이는 까마귀는 중명(重明)이라 하여 눈 하나에 눈동자가 두 개 있기도 하다. 까마귀는 여러민족에서 공통적으로 신조(神鳥) 또는 일신의 사자(日神의 使者)로 제관(祭官)들에게 받들어졌다.
검은 새 현조는 하느님이 보낸 사자(使者)인 천조(天鳥)로서 태양속에 있다는 까마귀(三足烏, 金烏, 陽烏)를 가리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