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23일자와 28일자 게시판에 (내 아내가 뺏어간 청춘과 사랑과 행복....)이란 주제로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저의 과거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려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용기어린 말씀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신 모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미처 답장해 드리지 못한 분들께 죄송하다는 글을 올립니다.
차라리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말고 저 혼자만의 일로 가슴앓이를 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듭니다. 23일자에 글을 올리고 3일이 지나 저의 메일함으로 날아 든 한통의 편지...28일자 글에서도 알려드렸듯이 그 편지를 받아 읽고 난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여지껏 겪었던 고통과 번민들...좌절감과 허탈감...배신과 증오...이 모든 것들을 가슴에 안고 오직 두 아들을 위해 내 자신의 안위는 뒤로한 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1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곱게만 보지 않는 세상의 눈초리들...좌절감에 빠져 헤어져 나오지 못할 뻔 한 때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천애고아가 되어 버릴 나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용케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아내 없는 빈 자리는 참을 순 있어도 엄마 없는 빈 자리가 허전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가난이 싫고 나 싫다고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그 사람이 10여년이 다가오는 세월까지 연락 한 번 없든 그 사람이 한 번만 만나고 싶다고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보고 연락이 왔습니다.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갈등이 시작 되었죠. 단지 아이들에겐 비밀로 했습니다. 큰 아들놈은 이제 제법 어른스러워 저를 많이 위로해 주는 편이지만 동생은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아이죠. 둘 다 한참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정을 떼었으니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그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로 아이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지금도 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 오는 것 같습니다.
이틀 밤을 잠 못 이루고 고민 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한 번 만나보자. 흔들리지 않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서 만나기로 결정하고 약속장소를 정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이 들었습니다. 내 뭉개진 고통과 상처는 고사하고 평생 아이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그 사람의 그 잘난 얼굴이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그 동안 한 맺힌 응어리들을 풀고 나면 조금은 홀가분해 지겠지 라는 생각보다도 아이들을 버리고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떠난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는지 정말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연민의 정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붙들고 애원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멍들고 구멍이 나버린 내 가슴에 예전처럼 그 사람을 받아들일 조그마한 자리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약속이 있던 날, 그 사람을 만나러 약속장소에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만나면 그 동안 간직해 온 온갖 회한의 응어리들을 헤쳐 놓고 싶었는데...
만나면 그 잘난 얼굴 따귀라도 한대 때려 줄려고 했었는데...
만나면 왜 그렇게 떠났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정작 만나고 보니 할말이 없었습니다. 길다면 긴 세월동안 헤어져 남남으로 있다가 만난 자리였기에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왔지만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 나오지 말았을 걸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커피 잔을 사이에 놓고 둘은 정작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 시점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한참을 그랬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 둘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첫 선을 보러온 자리라 해도 그렇게 서먹서먹하진 않았을 겁니다.
너무나도 긴 세월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했을까요?
무거운 정적이 어깨를 짖눌렀습니다. 전 커피 한 모금을 입에다 대고 쇼파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지난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여지껏 힘들게 쌓아왔던 모든걸 다 잃고 친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해운대 앞바다에 가서 조용한 안식처를 찾고자 했던 기억...
너무나 가슴이 아려 수면제 수십 알을 먹고 세상을 등지고자 했던 기억...
수중에 돈이 없어 허기에 찬 아이들이 밤새 나를 찾다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서로 웅크리며 자고 있던 모습을 본 그 당시의 가슴 아린 기억...
큰 아들놈이 동네 친구들이 엄마가 없는 아이라고 놀려서 패줬는데 어떻게 때렸는지 코뼈가 내려앉아 그 아이집 부모를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면서 애원하던 기억...
작은 아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린다며 몇 일간 학교에 간다고 해놓고서 오락실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을 알고서는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아픔을 머금고 아이를 혼냈던 기억...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입을 옷조차 제때 빨아주지 못해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울음을 삼키던 기억들....이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험한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남남이 되어 수 년이 흐른 지금 헤어진 후 지금까지 고통 받았던 얘기를 지금 와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따귀를 한대 때린들 무엇 하겠습니까?
순간 내가 참으로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와선 안되는 자리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죄인인양 앉아 있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대신 사죄의 눈물인지 가식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모를 눈물만 흘렸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한참을 그러다 입을 열었습니다. 헤어진 후 얼마 안 있어 많이 후회하고 고민하고 가슴 아파 했다던군요.
그래, 그 사람과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나와 헤어지고 1년이 지나 헤어졌다는군요. 내용인 즉, 그 사람은 전형적인 제비족이였다 그러더군요. 그리고 식당 일을 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후회하고 눈물 지우고 지냈답니다. 만약에 다시 받아 준다면 정말 잘 할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난, 지금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이 자리가 지옥과 같다. 그런 말로 날 이용하려 들지 말아달라, 당신이 흘리는 그 가식적인 눈물도 내가 지난 날 흘렸던 눈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신이 정말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면 어떻게 당신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가 있었냐고...하나는 걷게 하고 하나는 가슴에 안고 살려고 발버둥쳐 온 나를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느냐고...엄마 없는 아이란 소릴 듣고 자란 아이들의 울부짖는 그 소리를 한번쯤 생각해 보았느냐고...당신이 가슴 아파 했다지만 한파가 몰아치던 그 추운 날 두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손발이 찢기고 갈라 터져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살아 볼려고 울부짖으며 가슴 아파했던 내 아픔만큼 했겠느냐고...내가 만약 당신의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과 헤어진 직후에 날 찾아와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받아 주던 안받아 주던 상관없이...그땐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을 때이니까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난 그 동안의 연민의 정으로 해서 받아 준다고 치고 그럼 아이들은 무슨 얼굴로 다시 보겠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아무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스런 이야기들을 하고나니 마음 한 구석이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가슴이 찡할 정도의 이상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그리고 한참을 있다가 말을 했습니다.
다시는 날 찾지 말아 달라고...아이들을 생각해서 지금의 이 행복을 깨지 말아달라고...가난이 싫어 떠난 사람이니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 달라는 말을 건네고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며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뒤로 한 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시간 이 후로 난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비록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진 못 하지만 한 하늘 아래서는 같이 숨을 쉬고 살아가니까 그 걸로 서로 위로 받으며 살아가자고 말을 하곤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망상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이유는 사고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었다. 이 사고의 능력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일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등줄기를 타고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빈 허공에다 외치면 울림이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사랑한다고 한 말은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떠 올리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 접어 두고 싶을 뿐이다.
사랑은 그냥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새는 하늘을 향해 제 맘대로 날아가는 것이기에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리라. 메아리도 산이 없으면 되돌아오는 법이 없듯이 내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사람을 다시 받아주게 된다면 난 그 사람의 사랑을 소유하는 것이 되고 그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풋사과와 같았던 젊은 시절, 열병을 앓듯 사랑에 빠져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그 열병은 충격으로 인해 땅에 떨어진 풋사과처럼 그렇게 자신의 속을 다 부패 시킨 후에야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지금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등 뒤로 애원하며 붙잡는 그 사람을 매정하게 떠나보냈지만 마음 한편으로 그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가을하늘을 꿈꾸며 정제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미우나 고우나 한때 서로가 사랑에 빠져 열병을 앓고 몸을 섞은 사람이 아니었든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오늘은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오늘 밤은 왠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더없이 처량해 보인다.
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처량하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달래고, 여치의 방아타령을 보며 열심히 생활하고, 메뚜기의 짧은 날개로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꿈꾸며, 별빛이 쏟아지는 밤 하늘의 달을 올려다 보며 그렇게 다시 꿈을 키우는 생활을 시작해야겠다.
가끔 명상에 잠긴 날, 그 느낌을 한께 한 날을 떠올리는 때가 있을 때, 비록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내 육신은 상처받고 찢겨져 썩어 없어져 더 이상 상할 염려도 없지만 커가는 우리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들일 내 또 하나의 육신은 싱싱하지 않은가...
사람은 오로지 사랑과 행복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 깡그리 비우는 것임을 알게 될 때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극함이 지극할수록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마치 오래 묵힌 포도주가 참 맛이 우려 나듯이 고통 받고 상처받은 사람이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에 매달리지 않고 기나긴 기다림으로 삭히는 날들을 지나고서야 그 참맛을 나타내듯이 진정한 사랑의 포도주를 빚어 홀로 그 잔을 들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을 난 유일한 낙으로 삼을 것이다.
여리디 여린 싹인 우리 아이들이 밝은 세상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자라서 가지가 굵어지고 다시 열매를 맺을 만큼 성숙할 것이다. 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나지만 가지에 달려 익어가는 포도열매(아들)들을 보며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서 그 열매들에게 힘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또한 신은 우리에게 어떠한 풍파에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남에게 청하기보다는 감사하기를 더 많이 하고, 감사하기 이전에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 얼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에는 끄나풀이 없음을 알았기에 끈을 잡고 끌어당길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편하게 하는지 세월이 주는 고통을 이겨낸 지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늘 사랑과 행복이 공존하는 젊음의 뒤안길에 갇혀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또한 이기심만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소유하고자 하면 소유할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는 욕구를 다 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날, 하찮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약하고 힘에 부대끼는 사람을 쓰다듬고 보다듬어 그 아픔을 같이하여 작은 일이지만 열과 성을 다해 살아 가다보면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우리 아이들에게 이 기쁨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줄 것이다.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내 곁을 떠난 그 사람이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는 아마 지금의 아픔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먼 훗날 그 사람이 이름모를 풀꽃이 되어 하늘을 밝혀주는 별로 떠 있을 때, 난 그 별을 바라보며 한때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서로가 고통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다.
-그 땐 받아줄 수 없어서 참 미안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땐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오늘 밤엔 두 아들이 자고 있는 틈새로 들어가 누워 두 팔을 벌려 팔베개를 하고 가슴에 품고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내일부턴 이 두 아들놈을 위해 모든 일 접어두고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는 끝없는 질주를 해야 하지 않은가...
인간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 또한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저의 넋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이런 일들을 겪지 마시고 지금 바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힘껏 한 번 안아줍시다. 그게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받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을까요?
또한,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지지만 행복은 서로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 사람의 애원을 뿌리치고 난 그렇게 돌아섰었다.
처음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모르겠지만 전 23일자와 28일자 게시판에 (내 아내가 뺏어간 청춘과 사랑과 행복....)이란 주제로 글을 올린 사람입니다.
저의 과거사를 가슴에 안고 살아가려니 너무 힘들고 고통스러워 글을 올렸는데 많은 분들이 용기어린 말씀과 격려를 해 주셨습니다.
말씀해 주신 모든 분들께 우선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미처 답장해 드리지 못한 분들께 죄송하다는 글을 올립니다.
차라리 게시판에 글을 올리지 말고 저 혼자만의 일로 가슴앓이를 해 버렸으면 좋았을 텐데...란 생각이 듭니다. 23일자에 글을 올리고 3일이 지나 저의 메일함으로 날아 든 한통의 편지...28일자 글에서도 알려드렸듯이 그 편지를 받아 읽고 난 몹시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여지껏 겪었던 고통과 번민들...좌절감과 허탈감...배신과 증오...이 모든 것들을 가슴에 안고 오직 두 아들을 위해 내 자신의 안위는 뒤로한 채 앞만 보고 달렸습니다. 1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정말 열심히 뛰었습니다. 하지만 곱게만 보지 않는 세상의 눈초리들...좌절감에 빠져 헤어져 나오지 못할 뻔 한 때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헤어나지 못하면 천애고아가 되어 버릴 나의 아들을 생각하면서 용케도 지금까지 잘 버텨왔습니다.
하지만 아내 없는 빈 자리는 참을 순 있어도 엄마 없는 빈 자리가 허전해 보이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가난이 싫고 나 싫다고 아이들을 버리고 떠난 그 사람이 10여년이 다가오는 세월까지 연락 한 번 없든 그 사람이 한 번만 만나고 싶다고 게시판에 올려진 글을 보고 연락이 왔습니다. 많이 혼란스러웠습니다. 갈등이 시작 되었죠. 단지 아이들에겐 비밀로 했습니다. 큰 아들놈은 이제 제법 어른스러워 저를 많이 위로해 주는 편이지만 동생은 아직 받아들일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아이죠. 둘 다 한참 엄마의 사랑을 받고 자랄 나이에 정을 떼었으니 오죽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잘했든 못했든 그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어른들의 잘못된 사고로 아이들 마음에 지울 수 없는 큰 상처를 주었으니까요. 지금도 이 생각을 하면 가슴이 미어 오는 것 같습니다.
이틀 밤을 잠 못 이루고 고민 끝에 결정을 했습니다.
그래...한 번 만나보자. 흔들리지 않겠다는 마음의 각오를 하고서 만나기로 결정하고 약속장소를 정했습니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이 들었습니다. 내 뭉개진 고통과 상처는 고사하고 평생 아이들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준 그 사람의 그 잘난 얼굴이 한번 보고 싶었습니다.
만나서 그 동안 한 맺힌 응어리들을 풀고 나면 조금은 홀가분해 지겠지 라는 생각보다도 아이들을 버리고 자신의 안락한 삶을 위해 떠난 그 사람의 모습이 어떻게 변해있는지 정말 한 번 보고 싶었습니다. 연민의 정이 남아 있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만약 붙들고 애원한들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멍들고 구멍이 나버린 내 가슴에 예전처럼 그 사람을 받아들일 조그마한 자리조차도 남아 있지 않았으니까요.
약속이 있던 날, 그 사람을 만나러 약속장소에 갔습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먼저와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했습니다.
만나면 그 동안 간직해 온 온갖 회한의 응어리들을 헤쳐 놓고 싶었는데...
만나면 그 잘난 얼굴 따귀라도 한대 때려 줄려고 했었는데...
만나면 왜 그렇게 떠났냐고 따지고 싶었는데...
정작 만나고 보니 할말이 없었습니다. 길다면 긴 세월동안 헤어져 남남으로 있다가 만난 자리였기에 하고 싶은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왔지만 차마 하지 못했습니다.
차라리 이 자리에 나오지 말았을 걸 하고 후회도 했습니다.
커피 잔을 사이에 놓고 둘은 정작 한동안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나대로 그 사람은 그 사람대로 이 시점에 무슨 말이 필요하겠습니까.
한참을 그랬습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홀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 둘만 쳐다보는 것 같았습니다.
첫 선을 보러온 자리라 해도 그렇게 서먹서먹하진 않았을 겁니다.
너무나도 긴 세월이 사람을 이렇게 만들었나 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세월이 약이라고 했을까요?
무거운 정적이 어깨를 짖눌렀습니다. 전 커피 한 모금을 입에다 대고 쇼파에 등을 기대고 잠시 눈을 감았습니다. 그 순간 지난 일들이 눈앞에 아른거렸습니다.
아내와 헤어진 후 여지껏 힘들게 쌓아왔던 모든걸 다 잃고 친지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해운대 앞바다에 가서 조용한 안식처를 찾고자 했던 기억...
너무나 가슴이 아려 수면제 수십 알을 먹고 세상을 등지고자 했던 기억...
수중에 돈이 없어 허기에 찬 아이들이 밤새 나를 찾다가 눈물이 범벅이 된 채 서로 웅크리며 자고 있던 모습을 본 그 당시의 가슴 아린 기억...
큰 아들놈이 동네 친구들이 엄마가 없는 아이라고 놀려서 패줬는데 어떻게 때렸는지 코뼈가 내려앉아 그 아이집 부모를 찾아가 무릎 꿇고 빌면서 애원하던 기억...
친구들이 엄마 없느냐고 물으면 공부하러 다른나라에 갔다며 말하곤 속이 상해서 분풀이를 나에게 하곤 책상에 엎드려 울던 아이를 부둥켜안고 마음속으로 흐느꼈던 기억...
작은 아들이 학교에 가면 엄마 없는 아이라고 놀린다며 몇 일간 학교에 간다고 해놓고서 오락실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온 것을 알고서는 폐부 깊숙이 파고드는 아픔을 머금고 아이를 혼냈던 기억...
바쁘다는 핑계로 아이들 입을 옷조차 제때 빨아주지 못해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던 아이들의 눈을 뒤로한 채 돌아서서 울음을 삼키던 기억들....이 모든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습니다.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험한 말을 하고 싶은 마음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으나 남남이 되어 수 년이 흐른 지금 헤어진 후 지금까지 고통 받았던 얘기를 지금 와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또 울분을 삭히지 못하고 따귀를 한대 때린들 무엇 하겠습니까?
순간 내가 참으로 우둔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참으로 와선 안되는 자리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몇 번씩 들었습니다.
여전히 고개를 떨구고 죄인인양 앉아 있는 그 사람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왜, 만나자고 했느냐고 물었습니다. 대답대신 사죄의 눈물인지 가식적인 마음에서 나오는 눈물인지 모를 눈물만 흘렸습니다. 순간 당황했습니다.
한참을 그러다 입을 열었습니다. 헤어진 후 얼마 안 있어 많이 후회하고 고민하고 가슴 아파 했다던군요.
그래, 그 사람과는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더니 나와 헤어지고 1년이 지나 헤어졌다는군요. 내용인 즉, 그 사람은 전형적인 제비족이였다 그러더군요. 그리고 식당 일을 하면서 혼자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과 아이들이 보고 싶어 날마다 후회하고 눈물 지우고 지냈답니다. 만약에 다시 받아 준다면 정말 잘 할 거라고 그랬습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제가 얘기를 했습니다.
난, 지금 당신과 마주하고 있는 이 자리가 지옥과 같다. 그런 말로 날 이용하려 들지 말아달라, 당신이 흘리는 그 가식적인 눈물도 내가 지난 날 흘렸던 눈물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당신이 정말 인간의 탈을 쓰고 있다면 어떻게 당신 뱃속으로 낳은 아이를 버리고 떠날 수가 있었냐고...하나는 걷게 하고 하나는 가슴에 안고 살려고 발버둥쳐 온 나를 한번쯤 생각해 본 적이 있었느냐고...엄마 없는 아이란 소릴 듣고 자란 아이들의 울부짖는 그 소리를 한번쯤 생각해 보았느냐고...당신이 가슴 아파 했다지만 한파가 몰아치던 그 추운 날 두 손과 발이 동상에 걸려 손발이 찢기고 갈라 터져도 아이들을 생각하며 살아 볼려고 울부짖으며 가슴 아파했던 내 아픔만큼 했겠느냐고...내가 만약 당신의 입장이었다면 그 사람과 헤어진 직후에 날 찾아와 용서를 빌었을 것이다. 받아 주던 안받아 주던 상관없이...그땐 우리 아이들이 어려서 아무 것도 몰랐을 때이니까 라고 말을 했습니다.
난 그 동안의 연민의 정으로 해서 받아 준다고 치고 그럼 아이들은 무슨 얼굴로 다시 보겠느냐고 말을 했습니다.
내 말을 가만히 듣고 있던 그 사람은 아무말 없이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동안의 가슴속에 응어리진 한스런 이야기들을 하고나니 마음 한 구석이 후련해지는 것 같기도 하고 한편으로 가슴이 찡할 정도의 이상한 감정이 북받쳐 올라왔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그런 감정이....
그리고 한참을 있다가 말을 했습니다.
다시는 날 찾지 말아 달라고...아이들을 생각해서 지금의 이 행복을 깨지 말아달라고...가난이 싫어 떠난 사람이니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 달라는 말을 건네고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흘리며 애원하며 앉아 있는 그 사람을 뒤로 한 채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말을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 시간 이 후로 난 당신을 용서하기로 했다고 비록 한 지붕 아래서 같이 살진 못 하지만 한 하늘 아래서는 같이 숨을 쉬고 살아가니까 그 걸로 서로 위로 받으며 살아가자고 말을 하곤 그 자리를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난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인간은 참으로 망상적인 동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인간이 동물보다 나은 이유는 사고의 능력을 지녔기 때문이라고 말을 했었다. 이 사고의 능력 때문에 쉽게 생각하고 쉽게 잊을 수 있는 것일까?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등줄기를 타고 가슴속 깊이 파고들었다.
빈 허공에다 외치면 울림이 없는 법이다.
그 사람이 돌아서는 내 등 뒤로 사랑한다고 한 말은 더 이상 떠올리고 싶지 않았다. 아니, 떠 올리고 싶은 생각이 아니라 마음속에 접어 두고 싶을 뿐이다.
사랑은 그냥 자연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놓아두어야 한다. 새는 하늘을 향해 제 맘대로 날아가는 것이기에 자유가 주어진 것이 아닌가. 그래서 사랑은 소유가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해 주는 것이리라. 메아리도 산이 없으면 되돌아오는 법이 없듯이 내가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 사람을 다시 받아주게 된다면 난 그 사람의 사랑을 소유하는 것이 되고 그 존재를 인정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풋사과와 같았던 젊은 시절, 열병을 앓듯 사랑에 빠져 보지 않았던 사람이 있겠는가? 그 열병은 충격으로 인해 땅에 떨어진 풋사과처럼 그렇게 자신의 속을 다 부패 시킨 후에야 맑은 하늘을 올려다 볼 수 있을 것이다. 난 지금 이런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등 뒤로 애원하며 붙잡는 그 사람을 매정하게 떠나보냈지만 마음 한편으로 그 사람의 앞날을 축복하는 가을하늘을 꿈꾸며 정제된 마음으로 두 손 모아 행복을 빌어주고 싶다. 미우나 고우나 한때 서로가 사랑에 빠져 열병을 앓고 몸을 섞은 사람이 아니었든가?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오늘은 왠지 가슴에 와 닿는다. 오늘 밤은 왠지 귀뚜라미 울음소리가 더없이 처량해 보인다.
난 다시 시작해야 한다.
허전하고 외로운 마음을 처량하게 울어대는 귀뚜라미 울음소리로 달래고, 여치의 방아타령을 보며 열심히 생활하고, 메뚜기의 짧은 날개로 하늘을 나는 것을 보고 꿈꾸며, 별빛이 쏟아지는 밤 하늘의 달을 올려다 보며 그렇게 다시 꿈을 키우는 생활을 시작해야겠다.
가끔 명상에 잠긴 날, 그 느낌을 한께 한 날을 떠올리는 때가 있을 때, 비록 한 여자의 사랑을 받아들일 내 육신은 상처받고 찢겨져 썩어 없어져 더 이상 상할 염려도 없지만 커가는 우리 아이들의 사랑을 받아들일 내 또 하나의 육신은 싱싱하지 않은가...
사람은 오로지 사랑과 행복을 모두 성취하는 것이 깡그리 비우는 것임을 알게 될 때 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지극함이 지극할수록 많은 시간이 필요한 법이다.
마치 오래 묵힌 포도주가 참 맛이 우려 나듯이 고통 받고 상처받은 사람이 인생의 참맛을 알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나무에 매달리지 않고 기나긴 기다림으로 삭히는 날들을 지나고서야 그 참맛을 나타내듯이 진정한 사랑의 포도주를 빚어 홀로 그 잔을 들고 그 맛을 음미하는 것을 난 유일한 낙으로 삼을 것이다.
여리디 여린 싹인 우리 아이들이 밝은 세상을 보게 되면 어느 순간 자라서 가지가 굵어지고 다시 열매를 맺을 만큼 성숙할 것이다. 늘 아픔과 고통을 어루만지는 일에 익숙해져 있는 나지만 가지에 달려 익어가는 포도열매(아들)들을 보며 기쁨과 행복을 느끼면서 그 열매들에게 힘과 용기를 잃지 말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을 것이다.
세상에는 인간이 극복할 수 없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또한 신은 우리에게 어떠한 풍파에도 견딜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남에게 청하기보다는 감사하기를 더 많이 하고, 감사하기 이전에 기쁨을 전하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음을 느낄 때, 얼었던 마음이 풀리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랑에는 끄나풀이 없음을 알았기에 끈을 잡고 끌어당길 아무런 이유도 없다는 것이 얼마나 자신을 편하게 하는지 세월이 주는 고통을 이겨낸 지금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우리 인간은 늘 사랑과 행복이 공존하는 젊음의 뒤안길에 갇혀 있을 수 만은 없는 것이다.
또한 이기심만큼 자신을 초라하게 만드는 일도 없을 것이다. 소유하고자 하면 소유할수록 더 많은 것을 소유해야 하는 욕구를 다 들어낼 수 있음을 알게 되는 날, 하찮은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을 수 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나약하고 힘에 부대끼는 사람을 쓰다듬고 보다듬어 그 아픔을 같이하여 작은 일이지만 열과 성을 다해 살아 가다보면 기쁨을 알게 될 것이다. 불러도 대답 없는 메아리마저도 사랑할 수 있게 되는 날, 그날이 오면 우리 아이들에게 이 기쁨이 어떤 것인지 설명해 줄 것이다.
지금은 생각조차 하기 싫은 내 곁을 떠난 그 사람이지만 세월이 지난 후에는 아마 지금의 아픔보다는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먼 훗날 그 사람이 이름모를 풀꽃이 되어 하늘을 밝혀주는 별로 떠 있을 때, 난 그 별을 바라보며 한때 잘못된 생각으로 인해 서로가 고통 받았던 일을 떠올리며 이 한마디를 꼭 해주고 싶다.
-그 땐 받아줄 수 없어서 참 미안했습니다-
-다시 태어날 수만 있다면 그땐 기쁜 마음으로 당신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라고.......
오늘 밤엔 두 아들이 자고 있는 틈새로 들어가 누워 두 팔을 벌려 팔베개를 하고 가슴에 품고 편안하게 잠들고 싶다.
내일부턴 이 두 아들놈을 위해 모든 일 접어두고 심장이 힘차게 박동하는 끝없는 질주를 해야 하지 않은가...
인간은 그 누구도 사랑할 수 있으며, 사랑 또한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두서없는 저의 넋두리에 함께해 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여러분들은 저와 같이 이런 일들을 겪지 마시고 지금 바로 남편은 아내를, 아내는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존경하는 마음으로 힘껏 한 번 안아줍시다. 그게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사랑을 나눌 줄 알고 받을 줄 아는 사람만이 진정한 사랑을 하지 않을까요?
또한, 사랑은 일시적인 감정으로 이루어지지만 행복은 서로의 노력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여러분! 내내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