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베일에 가려진 채 1700년 동안 7~8미터 화산 잿더미 속에 말없이 파묻혀 있었던 사라진도시 폼페이는 문헌에 로마 귀족들의 휴양도시이자 환락의 도시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실제 그곳이 어디인지 행적을 모르다가 1709년 4월 어느 날 수도원 뜰, 우물 작업을 하던 인부의 곡괭이에 걸린 쇠붙이가 계기가 되어 마침내 세상에 그 정체를 드러내기 시작했답니다.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우스 화산이 용암을 토하다. 그 당시 광경을 컴퓨터 그래픽로 담아 낸 모습)
인도와 차도가 구분된 당시의 폼페이 도로
현대 최고급 일류 호텔 사우나시설 못지않는 당시의 우아하고 훌륭한 사우나 시설에 경탄이 절로 납니다
원형 극장 전경 : 수용 인원은 약 8,000명 정도라는 기록인데, 실제 보면 20,000명도 넘게 들어 가는 수준이랍니다
화석이 되어버린 연인
화석이 되어버린 사람들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화석으로 굳어져 버린 사람들. 얼마나 급작스러운 화산 폭발이었기에 미처 피하지도 못했을까?
사실 폼페이사람들은 그 일을 당하기 십 수년 전에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때는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막상 또 한 번의 폭발이 있자 그저 화산폭발에 동반된 지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리며 탈출을 늦추다 고스란히 생매장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품페이의 화산 흔적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화산폭발을 하게 되면 엄청난 화산재와 용암으로 인해 시신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될 텐데 품페이의 유적은 표정까지 살아있을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게 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 이유는 먼저 시신들이 거의 공기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화산재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대기중에 떠다니는 미생물들이 시신을 분해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랍니다. 이와 함께 뜨거운 화산재와 고열의 유독가스가 사람 몸 속에 있던 미생물을 순식간에 제거해 몸의 부패를 막을 수 있었고, 베수비오 화산이 용암을 내 품는 화산이 아닌 폭발형 화산이었던 것이 품페이 유적 보존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하는군요
어느 노예의 모습
폼페이에서 가장 큰 부자가 살았던 집이라네요
이탈리아 남부 나포리만 연안 항구도시 폼페이는 수 많은 광관객들의 의아스런 눈총을 받아 가며
옛 화려했던 향수를 갈망하면서 도시국가와 로마의 속국 자리를 맴돌았지만
결국 1861년 이탈리아로 완전 종속 되었다는군요
품페이의 눈물
(AD 79년 8월 24일 베수비우스 화산이 용암을 토하다. 그 당시 광경을 컴퓨터 그래픽로 담아 낸 모습)
일상생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채 화석으로 굳어져 버린 사람들. 얼마나 급작스러운 화산 폭발이었기에 미처 피하지도 못했을까?
사실 폼페이사람들은 그 일을 당하기 십 수년 전에도 베수비오 화산 폭발로 피해를 입은 적이 있었답니다. 하지만 그때는 화산재가 도시를 뒤덮을 정도는 아니었기에, 막상 또 한 번의 폭발이 있자 그저 화산폭발에 동반된 지진이 지나가기 만을 기다리며 탈출을 늦추다 고스란히 생매장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품페이의 화산 흔적을 보면 특이한 점이 있는데
화산폭발을 하게 되면 엄청난 화산재와 용암으로 인해 시신의 형태를 알아볼 수 없게 될 텐데 품페이의 유적은 표정까지 살아있을 정도로 너무나 생생하게 하게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그 이유는 먼저 시신들이 거의 공기와 접촉하지 않았다는 점을 들 수 있는데 화산재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덮어버렸기 때문에, 대기중에 떠다니는 미생물들이 시신을 분해할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랍니다. 이와 함께 뜨거운 화산재와 고열의 유독가스가 사람 몸 속에 있던 미생물을 순식간에 제거해 몸의 부패를 막을 수 있었고, 베수비오 화산이 용암을 내 품는 화산이 아닌 폭발형 화산이었던 것이 품페이 유적 보존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하는군요
옛 화려했던 향수를 갈망하면서 도시국가와 로마의 속국 자리를 맴돌았지만
결국 1861년 이탈리아로 완전 종속 되었다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