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랑쉬굴의 슬픈 노래

맑은마음2003.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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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얼마전에 노무현 대통령께서 정부입장에서 사과를 하였습니다.

이 기사는 얼마전의  "정부 공식사과"에 지난해에 제 클럽에 올렸던 기사를 다시 올려 보는 겁니다.

 

4.3은 지금도 계속 진행형이다. 54년이 지났으나 후손들은 영령들 앞에 어느 무엇 하나 떳떳한 행동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까지도 진상파악중이기 때문이다.

1948년 12월 18일 다랑쉬굴에 피신해 있던 민간인 11명이 군·경 합동 토벌대가 굴 입구에 지핀 불의 연기에 질식해 참혹하게 숨졌다. 44년이 지난 1992년 다랑쉬 굴에서 유골이 발굴됐고, 다시 10년이 흘렀다.

지난 5일 '살아남은 자들의 흰 그늘'이란 주제로 억울한 영혼들을 맞이한 김윤수 심방(인간문화재 제71호 칠머리당굿 기능보유자)의 위령굿은 보는 이의 가슴을 쓸어내리기에 충분했다. 유가족은 자신과 관련된 가족의 이름이 김심방의 입에서 복창될 때 심방 앞으로 나와 대화를 하며 울먹이는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이애주(인간문화재·승무 살풀이 기능 보유자)의 영혼들을 위한 살풀이 춤은 발굴 당시 사진 앞에 이르러서 절정을 이루었다.

동굴에는 뼈만 남은 시신들과 그들이 동굴로 피신하면서 가지고 간 살림살이들인 곡괭이, 호미같은 농기구들, 제사때 필요한 놋그릇, 놋수저 등 제기 등이다.

문무병(제주교육박물관 운영부장) 씨의 <나비로나 환생하소서>는 그날 위령제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곳에서는 11구의 유골이 확인됐다. 희생자는 9세의 어린이와 부녀자 3명, 성인남자 7명으로 판명됐다. 유해가 공개되자 당국에서는 서둘러 유골을 화장해 버리고 굴 입구는 포크레인을 동원, 봉쇄해 버렸다.

길이 40m 정도의 작은 용암동굴인 다랑쉬굴은 피난민 학살에서부터 발견, 유해처리 과정이 4·3의 총체적 모순을 보여주는 상징적 공간이다.

뼈를 묶고 기워서, 영육 한 몸 재가 되어 바당에 뿌려졌기에, 저승으로 가는 길 질고 부정하여, 저승으로 가는 길 너무 서러워 조상님 저승 가는 길, 신길 바로잡고 뼈다귀로만 항변하던 그 누명의 옷, 부정 서정을 훌훌 털어 버리시라고 오늘은 다랑쉬굴 열한 조상에, 10년만에 한번 하는 큰굿 해원의 탑을 세우고, 상생의 굿을 합니다. 설우신 님이시여, 눈물수건 드리오니 눈물수건으로 눈물을 닦으시고 땀배인 옷으로 뼈를 싸 얼었던 몸 녹이고, 얼은 마음 풀어서, 44년 지나도 울지 못한 설움을 10년만에 풀어서 저승 상마을로 가 나비로서 환생하소서(출처:오마이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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