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자락마다 붉고 노랗게 단풍 번져 그 고운 자태를 뽐내며 가을은 화려하게 불타오르다 이제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임종을 앞두고 있다. 익숙해진 가을의 푸짐함도 서리 내리면 겨울이려니 만, 초야를 앞 둔 새색시의 황홀한 불안처럼 겨울은 슬금슬금 소리 없는 걸음으로 다가와 바로 저쯤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익은 가을 보고 싶어 고운 단풍에 내 마음 물들이고자 찾아가는 지리산 언저리 길목의 산청(山淸) 땅에는 산자락에 기댄 마을마다 선홍색 감이 주렁주렁 고운 자태로 동화처럼 하늘을 향해 가을을 수놓고 있다. 마음 푸근하고 눈으로만 보아도 단맛 달착지근한 저 서정의 과일은 가을이 있기에 붉게 익어가고 가을은, 감나무에 초롱처럼 매달린 붉은 감이 있기에 더 가을답다. 단풍지고 처마 밑에 매달리면 호랑이도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뺀다는 달디 단 곶감으로 다시 탄생하리라.
긴긴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씹으면 씹을수록 혀에 착착 감기는 연한 속살의 곶감을 명주수건으로 흰 가루 털어내며 질화로 불씨 토닥거려 불기운 세운 후,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도란도란 옛이야기와 함께 바람 무서운 겨울 긴 밤을 편히도 나게 해 주었던 감동의 별미였다.
고향의 풍경 속엔 언제나 토실하게 붉은 감나무가 있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후 어쩌다 한적한 시골을 만나는 해후의 길에서 저미도록 넋을 빼앗는 것은 가을의 붉은 감나무였다. 마음의 고향에서 언제나 살아있는 정겨운 감나무는 사람 사는 곳에선 늘 푸른 대나무 숲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고향의 진실이었다.
감꽃 떨어지면 알알이 주어모아 꽃목걸이 만들어 가녀린 목에 걸면 그날 하루는 쌉쌀한 단맛 향긋한 감꽃이 군것질거리가 되었다. 장맛비에 떨어진 풋감 날름 입에 넣었다가 그 떫음에 땡감 씹은 얼굴이 되기도 하다가 어느새 따스한 가을 햇살에 붉게 익어 가지가 휘어진 감나무는 바라다보기만 해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든가, 깊은 골바람 시리게 부는 저물녘의 쓸쓸함도 산 노을 곱게 비치자 감나무의 격조만 높여 준다. 골 깊은 지리산자락 사래긴 돌밭에 감나무는 끝이 없다. 아름다운 가을의 보석 같은 열매 붉은 감 지천인 동네 산청인지라 포도 알처럼 감 소복 매달린 곁가지 손에 쥐고 땅거미 내리는 장바닥으로 어슬렁거리다 신발 전 목판위에 곱게 진열된 하얀 고무신을 발견하고 나는 반가움에 환호한다.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다 눈을 뜨니 눈에 보이는 꿈, 바로 눈을 뜨고 꾸는 꿈이런가. 하얀 고무신 몇 켤레……. 저 하얀 고무신으로 발시린 겨울을 견뎌내었고 얼음 언 강바닥위에서 지치지도 않고 썰매를 지쳤다. 봄이면 진달래 동산을 달렸고, 여름이면 송사리 잡아 담은 어항이 되었다. 가을이면 추수 끝난 논배미의 미꾸라지 웅덩이 물 퍼내기는 고무신이 우리들의 유일한 무기였다.
때로는 꽃에 앉은 벌을 고무신으로 잽싸게 훌쳐 정신없이 빙빙 돌리다 땅바닥에 패대기치면 벌은 기절하고 벌의 꽁무니에서 침을 빼내어 친구 목덜미에 살짝 벌침을 놓기도 했던 저 하얀 고무신이 몇 문 몇 이드라? 10문 7이던가? 내 어릴 적 발 크기가 아슴아슴하다.
고무신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마음 편하다. 고무신은 유년의 상징이자 성장의 징표이며 고향을 증거하는 물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쉽사리 구하지도 못하는 귀물 아닌 귀물이 되어 도시에서는 보기가 수월치 않다.
낡은 고무신을 신고 공이라도 찰라치면 공보다 먼저 날아간 머쓱함에 뒷머리 긁적인 순수의 시절은 누군들 없을까만, 쉽사리 잘 헤어지는 탓에 어머니는 굵은실로 헤어진 곳을 도탑게 꿰매어 주는 애틋한 정감어린 손길도 있었다.
반가운 하얀 고무신, 고향의 아련한 기억을 살린 듯 어설픈 목판 위 진열된 하얀 고무신을 보는 순간, 나는 숨겨진 고향의 때를 벗겨낸다. 파란 색으로 찍힌 상표의 동그라미 안에서 나는 처음 기차를 보았었다. 기차표 고무신에서 기차를 배운 것이었지 아마도…….
나는 정말 고무신을 신고 처음 기차를 탔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경주 역에서, 안동(安東)에서도 더 먼 예안(禮安)의 일가 집 잔치에 가는 날이었다. 내 생에 첫 여행은 고무신을 신고 맵시 낸 어린 멋쟁이의 나드리었다. 적어도 나는 그날만큼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가 새로 장만한 깨끗하고 눈부시도록 하얀 고무신의 멋스러움에 하늘을 날 만큼 발이 가벼웠었다.
고무신에 얽힌 사연은 또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등하교 길에 눈여겨 봐 두었던 외딴 밭 한가운데 지킴이처럼 서 있던 감나무를 우리는 서리하기로 하였다. 그날 하교 길 아직은 덜 익어 떫은 감을 수북 따서 모두들 책보자기에 싸서는 줄행랑을 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법 물살 빠른 여울을 건너야 했는데 어제 내린 비로 여울은 더 급하여 아랫도리를 벗고도 건너기가 수월찮았다. 여울을 반쯤 건너는 순간 나는 이끼 낀 강돌에 미끄러지며 그만 신고 있던 고무신을 급한 물살에 빼앗기고 말았다. 감 몇 알의 행복감은 순간 어머니의 꾸중을 생각하니 악머구리 같은 근심의 포자가 되어 모든 것이 일순 아득해 졌다.
해가 뉘엿한 뒤 숨어들 듯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시침 뚝 따며 신발이 없어졌다고 걀망스레 소란을 떠니 어머니는 애꿎은 누렁이를 나무라며 마루 밑이며, 뒤꼍으로, 헛간으로 헤집으며 찾았지만 냇물에 떠내려 간 고무신이 다시 나타날 리 만무하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 낡은 고무신을 질질 끌며 학교로 갔다. 그것은 내 유년기의 또 다른 추억이다.
고무신은 어찌할 수 없는 우리네 신발이다. 여자들 고무신은 버선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솟아난 코가 어찌 버선이 아닌가. 버선코가 예쁘게 들어 올려지듯 보란 듯 봉긋 솟아 오른 고무신코는 그대로 버선목을 잘라버린 외씨버선이다. 누군가 버선을 보고 파시스트 적이라 했다. 어찌 버선이 파시스트인지 깊은 속내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을 두고 파시스트라 하지는 않았으리라.
구두를 신거나 운동화를 신고 선뜻 물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무신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설령 물에 잠겼다 해도 세차게 몇 번 뿌려버리면 그만이다. 가까운 나들이에 신어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 어릴 때는 고무신을 신고 소똥을 일부러 밟아 본다. 소똥은 냄새도 없으려니와 금방 배설한 소똥은 심지어 먹음직스럽게도 보이기 때문에 악동들은 고무신을 신고 곧장 소똥 밟기 놀이를 즐겼다.
시골아이들은 소똥을 피하지 않았다. 얇은 고무신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금방이라도 내 피부에 닿을 것처럼 보드랍기만 하지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소똥 밟은 고무신은 흐르는 냇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무신은 결코 쩨쩨하지 않다. 나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사들고서 흐뭇하게 장을 빠져 나왔다.
파장을 뒤로하며 구수한 보리밥집을 찾았다. 청보리밭에 일렁이는 바람을 타듯 밀려오는 가을바람에 낙엽도 시름없이 나불거린다. 보리밥 익기를 기다리며 약간의 떫은맛이 매혹적인 도토리 묵 한 접시와 막걸리 한잔으로 입맛을 다신다. 알싸한 도토리묵과 텁텁한 막걸리 한 잔, 너무도 잘 어울리는 궁합이 또 한 가을 맛이다.
향 가득 상큼한 맛이 얼요기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할 때, 흰머리 보기 좋은 할머니가 갖은 산나물에 매콤한 고추장을 얹어 소담스럽게 내어왔다.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아도 지리산 자락 봄나물 잘 말려 다시 데친 후 깨소금 뿌려 참기름향 가득담은 나물 무침과 싱그러운 산골바람 마시며 경호강 아침 맑은 이슬 먹고 자란 푸른 채소들이 깊은 시장기를 일으킨다.
보릿고개 눈물고개 태산보다 높다는 한 많은 설움의 고개를 우리네 부모님들은 뒤돌아 볼 틈도 없이 허리띠 졸라매며 간난시절 넘어온 지 한시절도 되지 않는다. 평생 쌀 한 말도 먹지 못하고 시집간다는 우리의 누이들은 또 얼마나 있었던가. 보리밥이라도 끼니만 굶지 않고 한 발 더하여 걱정 없이 배불리라도 먹어봤으면 하는 염원이 아니었던가.
시절이 변하여 보리밥은 별미가 되어 자동차를 타고 소문난 보리밥집을 시간 아까와 하지 않고 찾아간다. 입안에 뱅뱅 도는 보리밥알의 돌기 때문에 아이들은 입에도 대기 싫어하지만 풍요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시절 좋은 세상에 길들여짐 때문인가 어떠한 감흥이나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서글퍼지는 마음은 나 혼자만 느끼는 감상은 아닐지려니…….
어머니는 저녁밥 지으실 때면 울타리 타고 오르는 연한 호박잎을 따오라 하셨다. 가늘게 돌기 돋친 까실한 가시가 싫었지만 보드라운 호박잎을 밥솥에 함께 쪄 식구들 밥상에 올리면 보리밥 한 술 돌돌 호박잎쌈을 싸고 풋고추 된장에 폭 찍어 입안 가득 오물거리면 진정 촌스런 그 맛은 내 어릴 적 성장의 영혼이 담긴 또 다른 그리움의 한 장이 되어 새곰새곰 잃어버린 고향을 돋을새김으로 각인하고 있다.
밥상 물리자 작은 오지항아리에 내어오는 구수한 숭늉냄새에 나는 또 다른 상념에 잠긴다. 냄새만 맡아도 입에 침이 고이는 숭늉은 가을 찬바람 불고 나서야 제 맛이다. 무쇠 솥에 한소끔 펄펄 끓인 보리밥 구수한 누룽지숭늉의 포만감은 또 다른 나의 오감을 적시고 할머니는 바가지에 눌은밥 숭늉을 푸지게 담아서 시퍼런 무청 김치를 눌은밥에 척척 걸쳐 드시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언제나 숭늉에 만 보리밥을 어린 나를 보란 듯 맛나게 드셨고 나는 할머니가 맛나게 드시는 보리밥 숭늉이 나 몰래 먹는 특별한 별미인가 보다 탐욕에 이끌려 내 작은 수저로 기어이 추렴하곤 했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보리밥 구수한 숭늉은 여정의 가슴을 눅눅히 적셔 준다. 이 어찌 행복이 아닌가.
병풍처럼 둘러있는 지리산 단풍이야 내일도 그 자리 지키고 있을지니 산 맑고 강물 아름다운 산고장강(山高長江)의 산청 땅에 하루쯤 쉬어가는 여정의 길도 잊지 못할 호사이리라. 경호강 내려다보이는 깨끗한 여관에 짐을 풀고 창밖 내려다보니 푸른 강줄기에 쏘가리 뛰는가? 포말 더 날리고, 강물은 넉넉하고 유유히 흐른다.
달빛 젖어 반영된 환한 강물은 새콤한 여수(旅愁)를 실어 나르기 숨 가쁘다. 가을밤하늘은 더 높고도 높아 별이 초로롱 탐스럽기만 하여 쏟아져내려오는 별빛에 눈을 씻는다. 날카롭게 빛나는 별들이 어찌나 크고 가까운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하다. 풀벌레 처량히도 우는 이 가을밤 다 새도록 영롱한 별이나 푸지게 따야 되려나 보다.
가을 여정(旅情)
가을 여정(旅情) -감과 고무신과 숭늉-
산자락마다 붉고 노랗게 단풍 번져 그 고운 자태를 뽐내며 가을은 화려하게 불타오르다 이제 계절의 끝자락에 매달려 임종을 앞두고 있다. 익숙해진 가을의 푸짐함도 서리 내리면 겨울이려니 만, 초야를 앞 둔 새색시의 황홀한 불안처럼 겨울은 슬금슬금 소리 없는 걸음으로 다가와 바로 저쯤에서 기웃거리고 있다.
익은 가을 보고 싶어 고운 단풍에 내 마음 물들이고자 찾아가는 지리산 언저리 길목의 산청(山淸) 땅에는 산자락에 기댄 마을마다 선홍색 감이 주렁주렁 고운 자태로 동화처럼 하늘을 향해 가을을 수놓고 있다. 마음 푸근하고 눈으로만 보아도 단맛 달착지근한 저 서정의 과일은 가을이 있기에 붉게 익어가고 가을은, 감나무에 초롱처럼 매달린 붉은 감이 있기에 더 가을답다. 단풍지고 처마 밑에 매달리면 호랑이도 겁을 먹고 꽁무니를 뺀다는 달디 단 곶감으로 다시 탄생하리라.
긴긴 겨울밤이면 할머니는 씹으면 씹을수록 혀에 착착 감기는 연한 속살의 곶감을 명주수건으로 흰 가루 털어내며 질화로 불씨 토닥거려 불기운 세운 후, 어린 손자를 무릎에 앉히고 도란도란 옛이야기와 함께 바람 무서운 겨울 긴 밤을 편히도 나게 해 주었던 감동의 별미였다.
고향의 풍경 속엔 언제나 토실하게 붉은 감나무가 있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후 어쩌다 한적한 시골을 만나는 해후의 길에서 저미도록 넋을 빼앗는 것은 가을의 붉은 감나무였다. 마음의 고향에서 언제나 살아있는 정겨운 감나무는 사람 사는 곳에선 늘 푸른 대나무 숲과 함께 빠질 수 없는 고향의 진실이었다.
감꽃 떨어지면 알알이 주어모아 꽃목걸이 만들어 가녀린 목에 걸면 그날 하루는 쌉쌀한 단맛 향긋한 감꽃이 군것질거리가 되었다. 장맛비에 떨어진 풋감 날름 입에 넣었다가 그 떫음에 땡감 씹은 얼굴이 되기도 하다가 어느새 따스한 가을 햇살에 붉게 익어 가지가 휘어진 감나무는 바라다보기만 해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산이 깊으면 골이 깊다든가, 깊은 골바람 시리게 부는 저물녘의 쓸쓸함도 산 노을 곱게 비치자 감나무의 격조만 높여 준다. 골 깊은 지리산자락 사래긴 돌밭에 감나무는 끝이 없다. 아름다운 가을의 보석 같은 열매 붉은 감 지천인 동네 산청인지라 포도 알처럼 감 소복 매달린 곁가지 손에 쥐고 땅거미 내리는 장바닥으로 어슬렁거리다 신발 전 목판위에 곱게 진열된 하얀 고무신을 발견하고 나는 반가움에 환호한다.
꿈도 없이 깊은 잠을 자다 눈을 뜨니 눈에 보이는 꿈, 바로 눈을 뜨고 꾸는 꿈이런가. 하얀 고무신 몇 켤레……. 저 하얀 고무신으로 발시린 겨울을 견뎌내었고 얼음 언 강바닥위에서 지치지도 않고 썰매를 지쳤다. 봄이면 진달래 동산을 달렸고, 여름이면 송사리 잡아 담은 어항이 되었다. 가을이면 추수 끝난 논배미의 미꾸라지 웅덩이 물 퍼내기는 고무신이 우리들의 유일한 무기였다.
때로는 꽃에 앉은 벌을 고무신으로 잽싸게 훌쳐 정신없이 빙빙 돌리다 땅바닥에 패대기치면 벌은 기절하고 벌의 꽁무니에서 침을 빼내어 친구 목덜미에 살짝 벌침을 놓기도 했던 저 하얀 고무신이 몇 문 몇 이드라? 10문 7이던가? 내 어릴 적 발 크기가 아슴아슴하다.
고무신을 보면 이상하리만큼 마음 편하다. 고무신은 유년의 상징이자 성장의 징표이며 고향을 증거하는 물증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은 쉽사리 구하지도 못하는 귀물 아닌 귀물이 되어 도시에서는 보기가 수월치 않다.
낡은 고무신을 신고 공이라도 찰라치면 공보다 먼저 날아간 머쓱함에 뒷머리 긁적인 순수의 시절은 누군들 없을까만, 쉽사리 잘 헤어지는 탓에 어머니는 굵은실로 헤어진 곳을 도탑게 꿰매어 주는 애틋한 정감어린 손길도 있었다.
반가운 하얀 고무신, 고향의 아련한 기억을 살린 듯 어설픈 목판 위 진열된 하얀 고무신을 보는 순간, 나는 숨겨진 고향의 때를 벗겨낸다. 파란 색으로 찍힌 상표의 동그라미 안에서 나는 처음 기차를 보았었다. 기차표 고무신에서 기차를 배운 것이었지 아마도…….
나는 정말 고무신을 신고 처음 기차를 탔었다. 아버지 어머니와 함께 경주 역에서, 안동(安東)에서도 더 먼 예안(禮安)의 일가 집 잔치에 가는 날이었다. 내 생에 첫 여행은 고무신을 신고 맵시 낸 어린 멋쟁이의 나드리었다. 적어도 나는 그날만큼은 자랑스러웠다. 어머니가 새로 장만한 깨끗하고 눈부시도록 하얀 고무신의 멋스러움에 하늘을 날 만큼 발이 가벼웠었다.
고무신에 얽힌 사연은 또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였다. 친구들과 등하교 길에 눈여겨 봐 두었던 외딴 밭 한가운데 지킴이처럼 서 있던 감나무를 우리는 서리하기로 하였다. 그날 하교 길 아직은 덜 익어 떫은 감을 수북 따서 모두들 책보자기에 싸서는 줄행랑을 치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제법 물살 빠른 여울을 건너야 했는데 어제 내린 비로 여울은 더 급하여 아랫도리를 벗고도 건너기가 수월찮았다. 여울을 반쯤 건너는 순간 나는 이끼 낀 강돌에 미끄러지며 그만 신고 있던 고무신을 급한 물살에 빼앗기고 말았다. 감 몇 알의 행복감은 순간 어머니의 꾸중을 생각하니 악머구리 같은 근심의 포자가 되어 모든 것이 일순 아득해 졌다.
해가 뉘엿한 뒤 숨어들 듯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튿날 시침 뚝 따며 신발이 없어졌다고 걀망스레 소란을 떠니 어머니는 애꿎은 누렁이를 나무라며 마루 밑이며, 뒤꼍으로, 헛간으로 헤집으며 찾았지만 냇물에 떠내려 간 고무신이 다시 나타날 리 만무하였다. 그날 나는 아버지 낡은 고무신을 질질 끌며 학교로 갔다. 그것은 내 유년기의 또 다른 추억이다.
고무신은 어찌할 수 없는 우리네 신발이다. 여자들 고무신은 버선과 너무도 자연스럽게 어울린다. 솟아난 코가 어찌 버선이 아닌가. 버선코가 예쁘게 들어 올려지듯 보란 듯 봉긋 솟아 오른 고무신코는 그대로 버선목을 잘라버린 외씨버선이다. 누군가 버선을 보고 파시스트 적이라 했다. 어찌 버선이 파시스트인지 깊은 속내는 모르겠지만 아름다움을 두고 파시스트라 하지는 않았으리라.
구두를 신거나 운동화를 신고 선뜻 물속으로 들어가지는 못한다. 그러나 고무신은 물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설령 물에 잠겼다 해도 세차게 몇 번 뿌려버리면 그만이다. 가까운 나들이에 신어도 아무런 허물이 없다. 어릴 때는 고무신을 신고 소똥을 일부러 밟아 본다. 소똥은 냄새도 없으려니와 금방 배설한 소똥은 심지어 먹음직스럽게도 보이기 때문에 악동들은 고무신을 신고 곧장 소똥 밟기 놀이를 즐겼다.
시골아이들은 소똥을 피하지 않았다. 얇은 고무신바닥으로 전해지는 따뜻함이 금방이라도 내 피부에 닿을 것처럼 보드랍기만 하지 두려움이나 거부감은 별로 없었다. 소똥 밟은 고무신은 흐르는 냇물에 살랑살랑 흔들어 버리면 그만이었다. 고무신은 결코 쩨쩨하지 않다. 나는 하얀 고무신 한 켤레를 사들고서 흐뭇하게 장을 빠져 나왔다.
파장을 뒤로하며 구수한 보리밥집을 찾았다. 청보리밭에 일렁이는 바람을 타듯 밀려오는 가을바람에 낙엽도 시름없이 나불거린다. 보리밥 익기를 기다리며 약간의 떫은맛이 매혹적인 도토리 묵 한 접시와 막걸리 한잔으로 입맛을 다신다. 알싸한 도토리묵과 텁텁한 막걸리 한 잔, 너무도 잘 어울리는 궁합이 또 한 가을 맛이다.
향 가득 상큼한 맛이 얼요기로 이만한 것이 또 있을까 할 때, 흰머리 보기 좋은 할머니가 갖은 산나물에 매콤한 고추장을 얹어 소담스럽게 내어왔다. 시장이 반찬이라 하지 않아도 지리산 자락 봄나물 잘 말려 다시 데친 후 깨소금 뿌려 참기름향 가득담은 나물 무침과 싱그러운 산골바람 마시며 경호강 아침 맑은 이슬 먹고 자란 푸른 채소들이 깊은 시장기를 일으킨다.
보릿고개 눈물고개 태산보다 높다는 한 많은 설움의 고개를 우리네 부모님들은 뒤돌아 볼 틈도 없이 허리띠 졸라매며 간난시절 넘어온 지 한시절도 되지 않는다. 평생 쌀 한 말도 먹지 못하고 시집간다는 우리의 누이들은 또 얼마나 있었던가. 보리밥이라도 끼니만 굶지 않고 한 발 더하여 걱정 없이 배불리라도 먹어봤으면 하는 염원이 아니었던가.
시절이 변하여 보리밥은 별미가 되어 자동차를 타고 소문난 보리밥집을 시간 아까와 하지 않고 찾아간다. 입안에 뱅뱅 도는 보리밥알의 돌기 때문에 아이들은 입에도 대기 싫어하지만 풍요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시절 좋은 세상에 길들여짐 때문인가 어떠한 감흥이나 감동도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을 보면 서글퍼지는 마음은 나 혼자만 느끼는 감상은 아닐지려니…….
어머니는 저녁밥 지으실 때면 울타리 타고 오르는 연한 호박잎을 따오라 하셨다. 가늘게 돌기 돋친 까실한 가시가 싫었지만 보드라운 호박잎을 밥솥에 함께 쪄 식구들 밥상에 올리면 보리밥 한 술 돌돌 호박잎쌈을 싸고 풋고추 된장에 폭 찍어 입안 가득 오물거리면 진정 촌스런 그 맛은 내 어릴 적 성장의 영혼이 담긴 또 다른 그리움의 한 장이 되어 새곰새곰 잃어버린 고향을 돋을새김으로 각인하고 있다.
밥상 물리자 작은 오지항아리에 내어오는 구수한 숭늉냄새에 나는 또 다른 상념에 잠긴다. 냄새만 맡아도 입에 침이 고이는 숭늉은 가을 찬바람 불고 나서야 제 맛이다. 무쇠 솥에 한소끔 펄펄 끓인 보리밥 구수한 누룽지숭늉의 포만감은 또 다른 나의 오감을 적시고 할머니는 바가지에 눌은밥 숭늉을 푸지게 담아서 시퍼런 무청 김치를 눌은밥에 척척 걸쳐 드시었다.
어머니와 할머니는 언제나 숭늉에 만 보리밥을 어린 나를 보란 듯 맛나게 드셨고 나는 할머니가 맛나게 드시는 보리밥 숭늉이 나 몰래 먹는 특별한 별미인가 보다 탐욕에 이끌려 내 작은 수저로 기어이 추렴하곤 했다. 저물어가는 가을에 보리밥 구수한 숭늉은 여정의 가슴을 눅눅히 적셔 준다. 이 어찌 행복이 아닌가.
병풍처럼 둘러있는 지리산 단풍이야 내일도 그 자리 지키고 있을지니 산 맑고 강물 아름다운 산고장강(山高長江)의 산청 땅에 하루쯤 쉬어가는 여정의 길도 잊지 못할 호사이리라. 경호강 내려다보이는 깨끗한 여관에 짐을 풀고 창밖 내려다보니 푸른 강줄기에 쏘가리 뛰는가? 포말 더 날리고, 강물은 넉넉하고 유유히 흐른다.
달빛 젖어 반영된 환한 강물은 새콤한 여수(旅愁)를 실어 나르기 숨 가쁘다. 가을밤하늘은 더 높고도 높아 별이 초로롱 탐스럽기만 하여 쏟아져내려오는 별빛에 눈을 씻는다. 날카롭게 빛나는 별들이 어찌나 크고 가까운지 손을 뻗으면 잡힐 듯 하다. 풀벌레 처량히도 우는 이 가을밤 다 새도록 영롱한 별이나 푸지게 따야 되려나 보다.
누룽지
배고픈 날 누룽지 한 조각 먹어보아라.
밥 짓다 태웠다고 푸념할 일이 아님을
꼭꼭 오래 씹어 본 사람은 그 맛을 알리라.
인생도 씹을수록 맛이 나는 누룽지처럼
더 타고 속이 타야 멋도 알고 맛도 알까?
정 상 현 _ 시집 ‘사라진 나라를 꿈꾸다’ 중에서
2003, 11, 01
푸 른 바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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