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제 나이 서른인데...왜 이리 풀리지않은 멍을 안고 사는지... 너무 힘이 듭니다. 오늘두 출근길 앞좌석에 엄마품에 안기어 새록새록 잠이 든 아이를 봅니다. 그래....내 기억속에 우리 아기두 저 아기만할때쯤이였지... 많이 컸을텐데...어떤 모습으로 자라있을까... 한시두 시선을 못뗀체 그 아기만 보구 우리 아기 떠올려보구... 아침부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저 23살적.... 같은 회사동료를 짝사랑했습니다. 능력보단 그 사람일하는 모습을 사랑했습니다. 평소 쾌활한 성격으로 대인관계도 조았구... 업무능력도 뛰어나 졸업후 사회초년생이였던 저에겐 너무도 빛나보이는 존재였습니다. 관심을 갖다보니 그 사람에 대한 정보도 하나둘씩 알아가게되었습니다. 현재 대학때부터 사귀어온 동갑내기 여친두 있는것두 알게되었구여... 소극적인 성격이였던 저는 아예 그 사람을 생각치않을려구 노력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그 사람을 저의 마음에서 밀어낼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저혼자 짝사랑해온지 일년쯤되었을까여... 우리가 가까워질수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둘이 함께 외부거래처를 나갈일이 있었습니다. 다녀오던중....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즐거운 대화였던지 우린 함께 웃고 저로썬 너무 행복한 시간이였져... 근데....갑자기 쿵.....먼가 순식간에 제 몸이 앞으로 쏠렸구 그 순간에... 머리와 가슴에 충격을 받은듯했는데... 황급히 괜찮냐구 그 사람말소리에 저두 서둘러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람의 어깨와 팔에 제 몸이 받혀져있더군여... 그 사람이 절 받혀주지않았다면 전 아마두 크게 다칠뻔했는데.... 그 사람이 충격을 완충시켜서인지 약간 놀란거하구 목쪽이 좀 아픈거 빼군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이리저리 절보며 괜찮냐구 몇번씩이나 안다쳣냐구 아픈데 있음 병원가자며... 당황해하는 그 사람보단 전 그 사람이 더 걱정되구 차두 걱정되구 암튼 전 그랬습니다. 차는 쇠로된 차도와 인도를 분리시켜놓은 그 블록에 받혀서 조수석쪽 앞바퀴가 블록을 타고 넘어가 바퀴를 이어주는 축이 부러진상태였구...아뭏든 가벼운 사고는 아닌듯했습니다. 저는 차 어떡해염...마니 고장났네 계속 걱정하니깐 괜찮다며 저 안다쳤으니 다 괜찮다구... 멋쩍게 웃으며 저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다 사고냈자나여...하며 웃더군여... 그 날 이후 저흰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렇다구 이성적으러 가까워진건 아니였지만 출근을 가치 하게 되구 시간이 맞음 퇴근도 가치할때도 있었구... 업무적으로 연계가 되어 더 회사안에서두 접하게 되었구... 하옇든 공적이나 사적이나 우린 호흡두 잘 맞았구...그 덕에 함께 한 프로젝트두 잘 되어 보너스와 함께 3일 휴가를 얻게 되었져...^^ 우리측 팀과 그 사람팀은 그 휴가기간을 이용해 1박 2일간 제부도로 단합대회를 가게되었답니다.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알찬 시간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저는 그 사람과 또 한직원과 함께 동승을 하게되었는데... 그 사람은 안산이 집이라 거기서 내려주고 우리 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루의 휴가가 더 남았는데...왠지 아쉽던 차에... 우리의 차는 어느새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제부도로 다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밤은 우리의 첫날밤이 되었구 전 그 밤을 후회하지 않았답니다. 남자의 본성으로 하룻밤 안았다 하더라도 바보같은 여자인 저는 내가 사랑한 사람이였기에... 바보가치 바보가치........그를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미안하다면 책임지겠단 그 사람말에 버럭 화를 냈던것두 나였구... 이런 일루 매달리는 그런 구차한 여자아니라며 내가 내린 결정이고 난 성인이니 이런 일쯤으로 남자한테 책임전가 시키지 않는다며 걱정말라고 큰소리쳐주었습니다. 그 날이후 우리의 관계는 그냥 공적인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마음으론 울었지만 그 사람앞에선 더 더욱 당당한척했으니깐여... 아팠지만 참아야했지여... 그렇게 두달뒤쯤 임신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나 혼자 해결해야해...아이를 지워야해...그 사람에게 짐이 돼선 안돼... 그렇게 외치고 또 외치며 혼자 병원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길 몇번... 힘들게 들어가선 진찰만 받구 낙태란 말은 입에 꺼내보지두 못한체 되돌아오기두 해보구... 날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입덧은 어찌나 심하던지 물도 못삼킬정도로 구역질이 나오는데.. 노란 위액까지 토하다 못해 피까지 토하더군여...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보니 조심한다 했는데두 엄마가 눈치를 채시는 바람에... 그래여...모든걸 엄마가 알게 되었구... 그렇게 우린 임신 5월째 몸으로 결혼식을 하게되었습니다. 신혼여행도 생략하고 바로 신혼살림에 들어갔지만... 행복하질못했습니다. 자꾸만 겉도는 그 사람은 잦은 외박에 때때로 집에 들어와있을때두 예전 여친과 저나통화를 하며 그 여자에게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더군여... 그런 그를 몰래 지켜보며 내 잘못으로 내 인생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까지 아푸러 태어날 내 아이의 인생 까지 망쳐놓았단 죄책감에 임신우울증까지 겹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계단에서 굴르기까지 하며 내 몸에 자해를 가해가며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았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어느 분은 그렇게 얘기하시겠져... 아이를 수술해버리지 그랬냐구...하지만 저두 머라 드릴말이 없네여... 몇번을 시도해보았지만 보호자가 있어야만 했고... 정말 참기 힘든 시기에 그렇게 하자고 함께 병원에만 가달라고 부탁두 해보았지만... 그렇게는 싫다는 그 사람이였기에...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시간만 흘러 배는 만삭이고 그래두 낳기를 바라는건가 싶어... 아이를 낳으면 나에게 우리 아기에게로 돌아오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못한체... 예정일을 조금 남겨놓구 통은 시작되었구 17시간 진통하다 끝내 제왕절개로 우리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데두 참 이뿌구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 주다니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게 미안해지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널 미워하거나 원망안할꺼라 우리 아기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장한 우리 아기.... 그 사람 이틀째 되는 날에서야 병원에 오더군여... 것두 우리 엄마가 반강제로 데려온거더군여... 퇴원하고 엄마집에서 산후조리한지 일주일되었을까여... 무조건 집으로 오라는 겁니다. 보내지 않을려는 친정엄마와 그렇게 싸우더니... 끝내는 집으로 찾아와 내 짐과 아기 짐을 모두 차에 실어 집으로 데려가더군여... 보고 싶었을까? 그래서 일까? 그래 집에 혼자있으니 내가 보고 아기가 보고 싶었던 걸꺼야... 그러니깐 이렇게 데려가겠지... 하지만 제 오산이더군여... 집에 가보니 돼지우리가 따로 없이 가관이 따로 없더군여...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차려내라 합니다. 밥을 차려주었습니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빨래를 하였습니다. 빨래속에서 못보던 여자옷이 나오더군여...제 옷은 아니엿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니가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할 권리는 없는데... 해도해도 너무한단 생각에 주저앉어 서러워 엉엉울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시조카 둘을 이집에서 자취를 시키겠답니다. 받아주었습니다. 밤새 아기가 울어 아침서야 깜빡 잠이 들어 아침밥 한번 못차려주었더니... 당장 시고모한테 저나가 옵니다. 무슨 애가 그리 게을러서 애들 아침밥까지 굶겨보내냐구... 결혼하고 생활비한번 안준 남편입니다. 친정이 좀 넉넉했기에...도움을 받아가며 살림을 꾸려왔지만... 전 이집안에 가정부구나...내 가치는...내 존재는...이젠 업구나... 남편은 다행히 아이는 참 이뻐하였습니다. 부정이 더 강하다는데...아마두 남편두 그랬나봅니다. 나한텐 눈길한번 안주는 남편이지만 아이는 이뻐 죽을라 합니다. 그래서 미웠다가도 아이를 얼르고 쭉쭉빠는 모습을 보면 그래두 아이아빠라고 의지가 되고 믿음이 가더군여... 저렇게 아이를 이뻐하는데 설마 이가정을 버리진않을거란 희망을 또 가져봅니다. 결혼이후 잠자리한번 없었답니다.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해들어올때두 입은 옷이라두 벗겨줄라 몸을 만지면 그 정신에도 자기몸에 손대지말라고 너 땜에 내가 불행해........다 너때문에........ 저를 책망합니다. 그러며 예전 그의 여자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하며 잠이 듭니다. 그런 세월을 견디어가며 우린 세번의 이사을 하였고 마지막에 먼 지방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며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도 없구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전 아이만을 의지한채 아이의 돌을 치렀구... 적지않은 돈을 친정에서 사업자금으로 빌려주어 사업을 키워나갔구... 남편두 당시엔 잘했습니다. 한 5개월쯤 잘되는가 싶더니 사업이 삐끄덕거리는거 같더니 완전 폐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친정집에서 집 담보로 빌려준 7천만원에 엄마가 사준 차까지 다 넘어가 버리고... 사업이 망해서였는지 다시 남편은 어디론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린지 한달째... 엄마두 이젠 안되는거 인정하시더군여... 그만 집으로 가자...그때 널 병원으로 못데려가고 억지로 둘이 맺어놓은거 미안하다며... 그만 다 끝내고 집으로 가서 인생다시 시작하자고 저 데려갈려고 내려오신차에... 정말 마지막으로 정뗄려한건지... 드디어 나타나더군여...그 여자와 함께...친정엄마가 계시는데두... 우리엄만 설마 이정도 일줄은 모르고 직접 눈으로 보시곤 실신까지 하시는데도 그 둘은 눈하나 깜짝않고 너무도 당당히 이혼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합의이혼서에 도장찍고 달랑 살고있던 아파트하나 위자료로 받았지만 지방에 작은 평수 아파트라 친정집빛갚는 돈두 안되더군여... 이혼후 아이만큼은 포기못했던 저라 아이와 함께 친정살이를 하였지만... 그렇게 힘들거라고 겁내하던 홀로서기는 우리 이쁜 아기가 있어서인지... 후련했고 살만했습니다. 남편과는 볼짱 다 본 사이라 정리하기가 더 쉬웠구...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기위해 1여년동안 영어학원과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웹쪽으로 관심이 많던지라 1년동안 자격증두 이것저것 마련하여... 나름데루 취업두 하게되었구....점차 안정을 찾게 되었구... 딸두 친정식구들 틈에서 밝고 건강히 잘자라주었지만... 아직은 이쁘고 젊은 딸이 이혼녀 낙인찍혀 아이까지 딸려있으니... 손녀는 이쁘면서두 내 딸 앞길막는다는 생각이 드셧던지... 친정엄마가 자꾸 아이를 보내라는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럴순 없다구 그럼 나 못산다구 몇번을 말씀드렷건만... 저희 엄만 홧병으로 들어누우셧구... 이렇게 맨날 엄마 걱정만 끼치는 못난 딸이 저였습니다. 그래두 아이만큼은 보낼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워낙 아이를 이뻐해서 몇번인가 딸아이를 데려갔었는데... 이젠 아이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였고... 친권까지 내 세우며...좀 세게 나오더군여... 난 여전히 그 사람에게 맞설 용기가 없었나봅니다. 뒤에선 엄마의 강요까지 그렇게 아이를 보냈습니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빠이빠이를 하며 고 뽀얗피부에 보조개가 쏘옥 파이도록 웃으며... 그렇게 내 시야에서 멀어져간뒤... 아이가 내 눈에서 사라졌건만 전 그 자리를 떠나지못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떠나간 문만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고... 며칠동안을 잠만 잤던거 같습니다. 자다 일어나보면 베개가 흥건히 젖도록 자면서도 울었고...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흘렀고... 집안의 아이의 흔적을 보며 아이의 환영을 보고... 엄마라 부르는 환청까지 듣고...살아갈 의욕이 안생겼습니다. 매일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잊기위해 마셨습니다.... 낯선 남자들과 어울려가며 난 스스로 날 버렸습니다. 내 엇나간 인생에 대한 화살은 엄마에게로 돌려졌고... 난 뒤늦게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 술집을 나가고 담배를 피우고 집에도 잘 안들어가고... 완전 밑바닥어둠속에서 헤어나오지못하고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엄마의 깊은 속내를 알면서도 외면했던거... 누구보다도 어디에 있든 내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였어야하는건데... 정신을 차린건 전 남편의 한통의 전화였습니다. 마침 술에 잔뜩 취해있을때였습니다. 마니 힘드냐구 위로를 해주더군여...오랜만의 그 사람의 따뜻한 말투를 들어봅니다. 아이의 소식부터 묻자... 그 어린것이 글쎄...첨엔 좀 절 찾더니...사람들이 엄마 어딧냐 물어보면... 우리 엄마 공부해...공부다하고 훌륭한 사람되서 온다고 했다고... 누가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러고 다닌답니다. 아마도 예전에 공부할때 놀아달라하면 엄마 공부열씨미해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되어야 우리 아기랑 행복하게 잘살수 있는거라며 타이른것이 아직도 아이에게 기억되고 있나봅니다. 그래...아라쪄...엄마 공부해...라며 풀죽어 뒤돌아가던 아이의 작디작은 뒷모습이 떠오르며... 그때 놀아주지않은게 참 마니 후회가 됍니다. 아가....그당시엔 어떤게 중요한지를 엄만 몰랐던거야... 엄마의 방법이 최상의 방법인줄만 알았어... 우리아기랑 좀더 가치하고 함께했어야하는걸 엄만 이제야 알았단다... 벌써 널 떠나보낸지 3년이란 시간이 되었어... 참 마니 컸겠구나... 엄만 아직도 니 또래의 아이만 보면 다 너같아서 이뿌고 안아주고 싶고... 또 널 아주 많이 그리워한단다. 엄마가 기억하는 넌 안으면 달콤한 향기가 참 좋았던 품안으로 쏙들어와버리는 아주 작은 인형같았는데... 보고싶단다.....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훨훨날아 니 곁으로 가고 싶단다. 엄만 이글을 쓰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넌 어디에 있든 환한 웃음만이 있기를 엄만 바란단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엄만 이글을 쓰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넌 어디에 있든 환한 웃음만이 있기를 엄만 바란단다...
그래여...지금 힘든건 제가 무지했던 탓의 벌을 받는거라 할께여...
이제 제 나이 서른인데...왜 이리 풀리지않은 멍을 안고 사는지...
너무 힘이 듭니다.
오늘두 출근길 앞좌석에 엄마품에 안기어 새록새록 잠이 든 아이를 봅니다.
그래....내 기억속에 우리 아기두 저 아기만할때쯤이였지...
많이 컸을텐데...어떤 모습으로 자라있을까...
한시두 시선을 못뗀체 그 아기만 보구 우리 아기 떠올려보구...
아침부터 마음이 아팠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저 23살적....
같은 회사동료를 짝사랑했습니다.
능력보단 그 사람일하는 모습을 사랑했습니다.
평소 쾌활한 성격으로 대인관계도 조았구...
업무능력도 뛰어나 졸업후 사회초년생이였던 저에겐 너무도 빛나보이는 존재였습니다.
관심을 갖다보니 그 사람에 대한 정보도 하나둘씩 알아가게되었습니다.
현재 대학때부터 사귀어온 동갑내기 여친두 있는것두 알게되었구여...
소극적인 성격이였던 저는 아예 그 사람을 생각치않을려구 노력했지만...
노력하면 할수록 그 사람을 저의 마음에서 밀어낼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그 사람을 저혼자 짝사랑해온지 일년쯤되었을까여...
우리가 가까워질수있는 계기가 생겼습니다.
둘이 함께 외부거래처를 나갈일이 있었습니다.
다녀오던중....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참 즐거운 대화였던지 우린 함께 웃고 저로썬 너무 행복한 시간이였져...
근데....갑자기 쿵.....먼가 순식간에 제 몸이 앞으로 쏠렸구 그 순간에...
머리와 가슴에 충격을 받은듯했는데...
황급히 괜찮냐구 그 사람말소리에 저두 서둘러 정신을 차려보니...
그 사람의 어깨와 팔에 제 몸이 받혀져있더군여...
그 사람이 절 받혀주지않았다면 전 아마두 크게 다칠뻔했는데....
그 사람이 충격을 완충시켜서인지 약간 놀란거하구 목쪽이 좀 아픈거 빼군 괜찮았습니다.
오히려 이리저리 절보며 괜찮냐구 몇번씩이나 안다쳣냐구 아픈데 있음 병원가자며...
당황해하는 그 사람보단 전 그 사람이 더 걱정되구 차두 걱정되구 암튼 전 그랬습니다.
차는 쇠로된 차도와 인도를 분리시켜놓은 그 블록에 받혀서 조수석쪽 앞바퀴가 블록을 타고 넘어가
바퀴를 이어주는 축이 부러진상태였구...아뭏든 가벼운 사고는 아닌듯했습니다.
저는 차 어떡해염...마니 고장났네 계속 걱정하니깐 괜찮다며 저 안다쳤으니 다 괜찮다구...
멋쩍게 웃으며 저 웃는 얼굴이 너무 예뻐서 쳐다보다 사고냈자나여...하며 웃더군여...
그 날 이후 저흰 급속도로 가까워졌습니다.
그렇다구 이성적으러 가까워진건 아니였지만
출근을 가치 하게 되구 시간이 맞음 퇴근도 가치할때도 있었구...
업무적으로 연계가 되어 더 회사안에서두 접하게 되었구...
하옇든 공적이나 사적이나 우린 호흡두 잘 맞았구...그 덕에 함께 한 프로젝트두 잘 되어
보너스와 함께 3일 휴가를 얻게 되었져...^^
우리측 팀과 그 사람팀은 그 휴가기간을 이용해 1박 2일간 제부도로 단합대회를 가게되었답니다.
사람들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 알찬 시간 1박 2일의 여행을 마치고
모두 뿔뿔히 흩어지고
저는 그 사람과 또 한직원과 함께 동승을 하게되었는데...
그 사람은 안산이 집이라 거기서 내려주고 우리 둘만이 남게 되었습니다.
아직 하루의 휴가가 더 남았는데...왠지 아쉽던 차에...
우리의 차는 어느새 다시 오던 길을 되돌아 제부도로 다시 달리고 있었습니다.
그밤은 우리의 첫날밤이 되었구 전 그 밤을 후회하지 않았답니다.
남자의 본성으로 하룻밤 안았다 하더라도 바보같은 여자인 저는 내가 사랑한 사람이였기에...
바보가치 바보가치........그를 받아들여주었습니다.
미안하다면 책임지겠단 그 사람말에 버럭 화를 냈던것두 나였구...
이런 일루 매달리는 그런 구차한 여자아니라며 내가 내린 결정이고 난 성인이니 이런 일쯤으로
남자한테 책임전가 시키지 않는다며 걱정말라고 큰소리쳐주었습니다.
그 날이후 우리의 관계는 그냥 공적인 관계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였습니다.
마음으론 울었지만 그 사람앞에선 더 더욱 당당한척했으니깐여...
아팠지만 참아야했지여...
그렇게 두달뒤쯤 임신사실을 알게되었습니다.
무서웠습니다...
나 혼자 해결해야해...아이를 지워야해...그 사람에게 짐이 돼선 안돼...
그렇게 외치고 또 외치며 혼자 병원앞까지 갔다가 되돌아오길 몇번...
힘들게 들어가선 진찰만 받구 낙태란 말은 입에 꺼내보지두 못한체 되돌아오기두 해보구...
날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는데 입덧은 어찌나 심하던지 물도 못삼킬정도로 구역질이 나오는데..
노란 위액까지 토하다 못해 피까지 토하더군여...
그 정도가 너무 심하다보니 조심한다 했는데두 엄마가 눈치를 채시는 바람에...
그래여...모든걸 엄마가 알게 되었구...
그렇게 우린 임신 5월째 몸으로 결혼식을 하게되었습니다.
신혼여행도 생략하고 바로 신혼살림에 들어갔지만...
행복하질못했습니다.
자꾸만 겉도는 그 사람은 잦은 외박에 때때로 집에 들어와있을때두 예전 여친과 저나통화를 하며 그 여자에게 계속 미안하다는 말만 조금만 기다려달라는 말만 하더군여...
그런 그를 몰래 지켜보며 내 잘못으로 내 인생은 물론 그 사람의 인생까지
아푸러 태어날 내 아이의 인생 까지 망쳐놓았단 죄책감에 임신우울증까지 겹쳐 임신 8개월의 몸으로
계단에서 굴르기까지 하며 내 몸에 자해를 가해가며 하루하루 죽지못해 살았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어느 분은 그렇게 얘기하시겠져...
아이를 수술해버리지 그랬냐구...하지만 저두 머라 드릴말이 없네여...
몇번을 시도해보았지만 보호자가 있어야만 했고...
정말 참기 힘든 시기에 그렇게 하자고 함께 병원에만 가달라고 부탁두 해보았지만...
그렇게는 싫다는 그 사람이였기에...
어찌해볼 도리도 없이 시간만 흘러 배는 만삭이고 그래두 낳기를 바라는건가 싶어...
아이를 낳으면 나에게 우리 아기에게로 돌아오겠지라는 희망을 버리지못한체...
예정일을 조금 남겨놓구 통은 시작되었구 17시간 진통하다 끝내
제왕절개로 우리 아기를 낳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못살게 굴었는데두 참 이뿌구 건강한 아기로 태어나 주다니
그동안 미워하고 원망했던게 미안해지고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이제 더 이상은
널 미워하거나 원망안할꺼라 우리 아기에게 약속하였습니다.
장한 우리 아기....
그 사람 이틀째 되는 날에서야 병원에 오더군여...
것두 우리 엄마가 반강제로 데려온거더군여...
퇴원하고 엄마집에서 산후조리한지 일주일되었을까여...
무조건 집으로 오라는 겁니다.
보내지 않을려는 친정엄마와 그렇게 싸우더니...
끝내는 집으로 찾아와 내 짐과 아기 짐을 모두 차에 실어 집으로 데려가더군여...
보고 싶었을까?
그래서 일까? 그래 집에 혼자있으니 내가 보고 아기가 보고 싶었던 걸꺼야...
그러니깐 이렇게 데려가겠지...
하지만 제 오산이더군여...
집에 가보니 돼지우리가 따로 없이 가관이 따로 없더군여...
도착하자마자 밥부터 차려내라 합니다.
밥을 차려주었습니다.
청소를 하였습니다.
빨래를 하였습니다.
빨래속에서 못보던 여자옷이 나오더군여...제 옷은 아니엿답니다.
눈물이 나왔습니다.
니가 나한테 이렇게 까지 할 권리는 없는데...
해도해도 너무한단 생각에 주저앉어 서러워 엉엉울고 말았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저한테 한마디 상의도 없이...
시조카 둘을 이집에서 자취를 시키겠답니다.
받아주었습니다.
밤새 아기가 울어 아침서야 깜빡 잠이 들어 아침밥 한번 못차려주었더니...
당장 시고모한테 저나가 옵니다.
무슨 애가 그리 게을러서 애들 아침밥까지 굶겨보내냐구...
결혼하고 생활비한번 안준 남편입니다.
친정이 좀 넉넉했기에...도움을 받아가며 살림을 꾸려왔지만...
전 이집안에 가정부구나...내 가치는...내 존재는...이젠 업구나...
남편은 다행히 아이는 참 이뻐하였습니다.
부정이 더 강하다는데...아마두 남편두 그랬나봅니다.
나한텐 눈길한번 안주는 남편이지만 아이는 이뻐 죽을라 합니다.
그래서 미웠다가도 아이를 얼르고 쭉쭉빠는 모습을 보면 그래두 아이아빠라고
의지가 되고 믿음이 가더군여...
저렇게 아이를 이뻐하는데 설마 이가정을 버리진않을거란 희망을 또 가져봅니다.
결혼이후 잠자리한번 없었답니다.
술이 곤드레만드레 취해들어올때두 입은 옷이라두 벗겨줄라 몸을 만지면
그 정신에도 자기몸에 손대지말라고 너 땜에 내가 불행해........다 너때문에........
저를 책망합니다. 그러며 예전 그의 여자이름을 애타게 부릅니다.
눈물까지 흘리며 미안하다 미안하다 말하며 잠이 듭니다.
그런 세월을 견디어가며 우린 세번의 이사을 하였고 마지막에 먼 지방에서 사업을 시작한다며
지방으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친구도 없구 아는 사람 아무도 없는 그 곳에서 전 아이만을 의지한채 아이의 돌을 치렀구...
적지않은 돈을 친정에서 사업자금으로 빌려주어 사업을 키워나갔구...
남편두 당시엔 잘했습니다.
한 5개월쯤 잘되는가 싶더니 사업이 삐끄덕거리는거 같더니 완전 폐업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친정집에서 집 담보로 빌려준 7천만원에 엄마가 사준 차까지 다 넘어가 버리고...
사업이 망해서였는지 다시 남편은 어디론가 연락도 없이 사라져버린지 한달째...
엄마두 이젠 안되는거 인정하시더군여...
그만 집으로 가자...그때 널 병원으로 못데려가고 억지로 둘이 맺어놓은거 미안하다며...
그만 다 끝내고 집으로 가서 인생다시 시작하자고 저 데려갈려고 내려오신차에...
정말 마지막으로 정뗄려한건지...
드디어 나타나더군여...그 여자와 함께...친정엄마가 계시는데두...
우리엄만 설마 이정도 일줄은 모르고 직접 눈으로 보시곤 실신까지 하시는데도
그 둘은 눈하나 깜짝않고 너무도 당당히 이혼을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합의이혼서에 도장찍고 달랑 살고있던 아파트하나 위자료로 받았지만
지방에 작은 평수 아파트라 친정집빛갚는 돈두 안되더군여...
이혼후 아이만큼은 포기못했던 저라 아이와 함께 친정살이를 하였지만...
그렇게 힘들거라고 겁내하던 홀로서기는 우리 이쁜 아기가 있어서인지...
후련했고 살만했습니다.
남편과는 볼짱 다 본 사이라 정리하기가 더 쉬웠구...
당당히 홀로서기를 하기위해 1여년동안 영어학원과 컴퓨터학원을 다니며...
웹쪽으로 관심이 많던지라 1년동안 자격증두 이것저것 마련하여...
나름데루 취업두 하게되었구....점차 안정을 찾게 되었구...
딸두 친정식구들 틈에서 밝고 건강히 잘자라주었지만...
아직은 이쁘고 젊은 딸이 이혼녀 낙인찍혀 아이까지 딸려있으니...
손녀는 이쁘면서두 내 딸 앞길막는다는 생각이 드셧던지...
친정엄마가 자꾸 아이를 보내라는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럴순 없다구 그럼 나 못산다구 몇번을 말씀드렷건만...
저희 엄만 홧병으로 들어누우셧구...
이렇게 맨날 엄마 걱정만 끼치는 못난 딸이 저였습니다.
그래두 아이만큼은 보낼수 없었습니다.
남편이 워낙 아이를 이뻐해서 몇번인가 딸아이를 데려갔었는데...
이젠 아이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하였고...
친권까지 내 세우며...좀 세게 나오더군여...
난 여전히 그 사람에게 맞설 용기가 없었나봅니다.
뒤에선 엄마의 강요까지 그렇게 아이를 보냈습니다.
아이의 마지막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 고사리같은 손으로 빠이빠이를 하며 고 뽀얗피부에 보조개가 쏘옥 파이도록 웃으며...
그렇게 내 시야에서 멀어져간뒤...
아이가 내 눈에서 사라졌건만 전 그 자리를 떠나지못했습니다.
한참을 멍하니 떠나간 문만을 바라보며 울고 또 울고...
며칠동안을 잠만 잤던거 같습니다.
자다 일어나보면 베개가 흥건히 젖도록 자면서도 울었고...
밥을 먹다가도 눈물이 흘렀고...
집안의 아이의 흔적을 보며 아이의 환영을 보고...
엄마라 부르는 환청까지 듣고...살아갈 의욕이 안생겼습니다.
매일매일 술을 마셨습니다.
잊기위해 마셨습니다....
낯선 남자들과 어울려가며 난 스스로 날 버렸습니다.
내 엇나간 인생에 대한 화살은 엄마에게로 돌려졌고...
난 뒤늦게 엄마에게 반항하기 위해 술집을 나가고 담배를 피우고 집에도 잘 안들어가고...
완전 밑바닥어둠속에서 헤어나오지못하고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부끄럽습니다.
엄마의 깊은 속내를 알면서도 외면했던거...
누구보다도 어디에 있든 내 아이에게 떳떳한 엄마였어야하는건데...
정신을 차린건 전 남편의 한통의 전화였습니다.
마침 술에 잔뜩 취해있을때였습니다.
마니 힘드냐구 위로를 해주더군여...오랜만의 그 사람의 따뜻한 말투를 들어봅니다.
아이의 소식부터 묻자...
그 어린것이 글쎄...첨엔 좀 절 찾더니...사람들이 엄마 어딧냐 물어보면...
우리 엄마 공부해...공부다하고 훌륭한 사람되서 온다고 했다고...
누가 그렇게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그러고 다닌답니다.
아마도 예전에 공부할때 놀아달라하면 엄마 공부열씨미해야 나중에 훌륭한 사람되어야
우리 아기랑 행복하게 잘살수 있는거라며 타이른것이
아직도 아이에게 기억되고 있나봅니다.
그래...아라쪄...엄마 공부해...라며 풀죽어 뒤돌아가던 아이의 작디작은 뒷모습이 떠오르며...
그때 놀아주지않은게 참 마니 후회가 됍니다.
아가....그당시엔 어떤게 중요한지를 엄만 몰랐던거야...
엄마의 방법이 최상의 방법인줄만 알았어...
우리아기랑 좀더 가치하고 함께했어야하는걸 엄만 이제야 알았단다...
벌써 널 떠나보낸지 3년이란 시간이 되었어...
참 마니 컸겠구나...
엄만 아직도 니 또래의 아이만 보면 다 너같아서 이뿌고 안아주고 싶고...
또 널 아주 많이 그리워한단다.
엄마가 기억하는 넌 안으면 달콤한 향기가 참 좋았던 품안으로 쏙들어와버리는 아주 작은 인형같았는데...
보고싶단다.....나에게 날개가 있다면 훨훨날아 니 곁으로 가고 싶단다.
엄만 이글을 쓰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넌 어디에 있든 환한 웃음만이 있기를 엄만 바란단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엄만 이글을 쓰며 눈물을 흘리고 있지만.....
넌 어디에 있든 환한 웃음만이 있기를 엄만 바란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