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만, 불교 철학자인 제 남편 친구의 도움으로 이 영화가 단순한 SF물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의 실현"이라는 커다란 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저 또한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라는 철학적 화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편 친구의 말을 빌리면, 매트릭스 1편이 개봉된 후, 워쇼스키 형제들 - 그중에 특히 형인 래리 - 은 전 세계 사찰의 스님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영화 감독이 되었고, 키애느 리브스는 전 세계 스님들에게 스타 중의 스타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매트릭스 1편 개봉후 전국 주요 사찰의 선방에선 스님들 사이에 이에 대한 담론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네오가 날아 오는 총알을 들여다 보는 초연/달관한 표정은 스님들 또한 무척 닮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바드 출신으로 숭산스님의 제자인 현각 스님도 열렬한 매트릭스 팬이라고 하지요.
아래의 글은 MATRIX 1, 2, 3, 의 철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제 남편 친구가 이멜로 보내 온 설명입니다.
*******************************
S/F물인데다가, 그리이스 신화의 인물 이름, 기독교적 용어 및 메시아적 구도 등, 이 영화는, 이 영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가리우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메시아적인 구도로서 이 영화를 바라 보게 되면 매트릭스는 결코 평범한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 나기가 어려워진다. 간단히 말해서 기계들에게 핍박받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네오가 등장해서 분쟁과 갈등을 잠재우고 평화를 가져 오는 것으로 영화의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남는 것은 그저 화려한 볼거리 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기계와 인간이 대립하는 철저한 S/F물에, 인간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의 실현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학적 메세지를 담아 낸 워쇼스키 형제들의 천재성에 가히 찬탄을 멈출 수가 없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매트릭스 1, 2, 3 편을 보면
매트릭스 1 : 인식의 성장과 자각
매트릭스 2 : 목적론적 결정론
매트릭스 3 : 자유 의지의 실현
완결편인 3편을 이해하기 위해 1편부터 살펴 보면
매트릭스 1
인식에 관한 문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소설이 인식의 성장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 1편 내에서 The One은 메시아적인 구도로서 이해되지만, 네오가 The One이 되어가는 과정은 철저히 불교적이다. 체험과 인식 및 자각에 의해 성장하면서 The One으로서 자신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모피어스가 하는 말,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인식해라. - 불교에서는 사변/상념에 의한 현상 인식이 거부되고 체험에 의한 자각으로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는 모피어스의 다음 대사에서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You will know the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위의 know 가 realize의 의미로 쓰였다면 아래의 know는 understand의 의미다. 이해하여 아는 것과, 체험하여 자각하며 인식하는 것의 차이를 말한다.
이에 앞서 전함에서 네오를 교육시키면서 모피어스는 인식과 자각에 가장 중요한 화두를 꺼낸다. What makes it real? Your mind makes it real. 이 문구에서, 불교에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분들이라면 담마파다(법구경)의 첫 시 중 "... 이 모든 현상은 마음에서 비롯되나니 ..."와 화엄경의 一切唯心造 를 쉽게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음으로서 자각하고 인식하며 그 자신을 실현함으로서 The One은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총에 맞아서 죽었다가 트리니티의 사랑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렇게 되면 2, 3편은 완전 허접이 되고 만다.
매트릭스 2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2편에서는 시종일관 목적론적 결정론이 지배한다. 가치와 존재가 분리되는 관념론자들의 공염불은 철저히 거부되어, 가치 즉 목적은 존재와 일치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존재를 결정한다. 목적에 의해 존재가 결정되는 이상, 모든 행위와 존재들은 필연적이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구세주 The One의 실현마저 목적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 존재라는 것. 그 자신을 인식하고 자각하여, 그 자신을 자유롭게 실현한 The One이 결정론의 필연성에 갇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3편에서 어떻게 풀려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래리의 묘사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놀라울 정도로 아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매트릭스 3
2편 후반부 말미에 묘사가 되는 것이지만, 네오는 The One이기를 거부한다. 즉 결정론의 필연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결과, 프로그램이 부여한 The One으로서의 - 프로그램 내에서의 - 자유를 거부한 네오에게는 서서히 진정한 자유 의지가 발아하기 시작한다. 이는 2편 말미에 센티넬들을 파괴하는 네오의 염력으로 묘사된다. 달리 말해서 현실 속에서 자유 의지가 발아하면서, 그의 능력도 현실적인 로고스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이는 네오가 기계와 담판 짓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 心眼이 열리는 것으로 다시 한번 묘사된다.
그리고, 니오베의 말, "The One은 믿지 않지만, Neo는 믿는다." 니오베 역시 결정론을 거부하고 - 메시아적인 구세주 또한 거부되는 것이다. - 개인으로서의 인간 Neo를 믿는 것이다. 인간 개인에 대한 믿음, 다시 또 등장한 불교적인 메세지.
자 이제, 네오는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떻게 그의 자유 의지는 구현되는가? 그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규정짓는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 나간다. 버려 나가는 만큼 그는 결정론의 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이다. The One 을 버렸고, 트리니티의 죽음으로서 사랑도 버린다. 그의 존재 목적은 이제 오직 하나, 자신의 대척으로 존재하는 스미드라는 惡과 싸워 이김으로서 평화를 가져와야 할 善, 천지가 진동하는 善과 惡의 대결... 치열한 싸움은 끝이 날 줄을 모른다. 스미드의 말대로 惡의 승리로 결정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네오는 그 자신이 善이기를 고집하지 않고 버린다. 惡을 무너뜨리기 위해 善을 고집하는 이상 善惡의 대결 구도는 결코 종식될 수 없기에, 惡이 스스로 소멸하게 하기 위해 그 대척에 있는 善, 그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일체의 저항 없이 스미드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만, 이와 동시에 스미드 또한 소멸되고 만다.
평화가 찾아 온 후, 이 결과를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오라클은 "아니, 다만 믿었을 뿐."이라고 답한다. 결정되어 있지 않았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오라클은 예언할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 오로지 인간 개인의 자유 의지를 믿었던 것이다.
그러면, 네오는, 네오는 어떻게 되었나? 그는 사랑과 善, 삶과 죽음, 자신의 존재 목적 일체를 내버렸다. 존재 목적 자체를 버려 버린 그는 목적론적 결정론이 절대 로고스인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네오에 대해 영화에서 아무런 묘사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우리의 말과 개념이 더 이상 상응할 수 없다. 네오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존재 목적을 버린 그는 더 이상 로고스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 니르바나에 이른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그를 두고 이렇다저렇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수타니파타
MATRIX 1, 2, 3 - 인식과 자유 의지
이 영화를 이해하는 일은 쉽지 않았습니다만, 불교 철학자인 제 남편 친구의 도움으로 이 영화가 단순한 SF물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의 실현"이라는 커다란 철학적 메세지를 담고 있는 영화라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저 또한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라는 철학적 화두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남편 친구의 말을 빌리면,
매트릭스 1편이 개봉된 후, 워쇼스키 형제들 - 그중에 특히 형인 래리 - 은 전 세계 사찰의 스님들에게 가장 주목받는 영화 감독이 되었고, 키애느 리브스는 전 세계 스님들에게 스타 중의 스타가 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매트릭스 1편 개봉후 전국 주요 사찰의 선방에선 스님들 사이에 이에 대한 담론이 한동안 끊이지 않았고, 심지어는 네오가 날아 오는 총알을 들여다 보는 초연/달관한 표정은 스님들 또한 무척 닮고 싶어하는 모습이었다고 합니다. 하바드 출신으로 숭산스님의 제자인 현각 스님도 열렬한 매트릭스 팬이라고 하지요.
아래의 글은 MATRIX 1, 2, 3, 의 철학적 이해를 돕기 위해 제 남편 친구가 이멜로 보내 온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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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물인데다가, 그리이스 신화의 인물 이름, 기독교적 용어 및 메시아적 구도 등, 이 영화는, 이 영화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을 가리우는 요소들이 상당히 많다.
특히, 메시아적인 구도로서 이 영화를 바라 보게 되면 매트릭스는 결코 평범한 오락물의 범주를 벗어 나기가 어려워진다. 간단히 말해서 기계들에게 핍박받는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네오가 등장해서 분쟁과 갈등을 잠재우고 평화를 가져 오는 것으로 영화의 모든 것이 끝나 버린다. 남는 것은 그저 화려한 볼거리 밖에 없어진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기계와 인간이 대립하는 철저한 S/F물에, 인간 인식의 성장과 자유 의지의 실현이라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철학적 메세지를 담아 낸 워쇼스키 형제들의 천재성에 가히 찬탄을 멈출 수가 없다.
전체적인 구도에서 매트릭스 1, 2, 3 편을 보면
매트릭스 1 : 인식의 성장과 자각
매트릭스 2 : 목적론적 결정론
매트릭스 3 : 자유 의지의 실현
완결편인 3편을 이해하기 위해 1편부터 살펴 보면
매트릭스 1
인식에 관한 문제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부터 출발한다. 이 소설이 인식의 성장에 관한 문제를 다룬 것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다 아는 일.
1편 내에서 The One은 메시아적인 구도로서 이해되지만, 네오가 The One이 되어가는 과정은 철저히 불교적이다. 체험과 인식 및 자각에 의해 성장하면서 The One으로서 자신을 구현해 나가는 것이다.
모피어스가 하는 말,
Don't think you are. Know you are.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인식해라.
- 불교에서는 사변/상념에 의한 현상 인식이 거부되고 체험에 의한 자각으로 인식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는 모피어스의 다음 대사에서 구체적으로 등장한다.
You will know the difference between knowing the path and walking the path.
위의 know 가 realize의 의미로 쓰였다면 아래의 know는 understand의 의미다.
이해하여 아는 것과, 체험하여 자각하며 인식하는 것의 차이를 말한다.
이에 앞서 전함에서 네오를 교육시키면서 모피어스는 인식과 자각에 가장 중요한 화두를 꺼낸다.
What makes it real? Your mind makes it real.
이 문구에서, 불교에 어느 정도 이해가 있는 분들이라면
담마파다(법구경)의 첫 시 중 "... 이 모든 현상은 마음에서 비롯되나니 ..."와
화엄경의 一切唯心造 를 쉽게 떠올릴수 있을 것이다.
결국,
마음으로서 자각하고 인식하며 그 자신을 실현함으로서 The One은 완성되는 것이다.
물론, 총에 맞아서 죽었다가 트리니티의 사랑으로 살아나는 것을 보고 지저스 크라이스트의 부활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많으나, 그렇게 되면 2, 3편은 완전 허접이 되고 만다.
매트릭스 2
목적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2편에서는 시종일관 목적론적 결정론이 지배한다.
가치와 존재가 분리되는 관념론자들의 공염불은 철저히 거부되어, 가치 즉 목적은 존재와 일치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은 존재를 결정한다. 목적에 의해 존재가 결정되는 이상, 모든 행위와 존재들은 필연적이다. 결정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 구세주 The One의 실현마저 목적에 의해 필연적으로 결정된 존재라는 것.
그 자신을 인식하고 자각하여, 그 자신을 자유롭게 실현한 The One이 결정론의 필연성에 갇혀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이 문제가 3편에서 어떻게 풀려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였는데,
래리의 묘사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놀라울 정도로 아주 깊이 인식하고 있었다.
매트릭스 3
2편 후반부 말미에 묘사가 되는 것이지만, 네오는 The One이기를 거부한다. 즉 결정론의 필연성을 거부하는 것이다.
이 결과, 프로그램이 부여한 The One으로서의 - 프로그램 내에서의 - 자유를 거부한 네오에게는 서서히 진정한 자유 의지가 발아하기 시작한다. 이는 2편 말미에 센티넬들을 파괴하는 네오의 염력으로 묘사된다. 달리 말해서 현실 속에서 자유 의지가 발아하면서, 그의 능력도 현실적인 로고스의 제한으로부터 자유로와지는 것이다. 이는 네오가 기계와 담판 짓기로 결심하고, 그렇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면서 心眼이 열리는 것으로 다시 한번 묘사된다.
그리고, 니오베의 말,
"The One은 믿지 않지만, Neo는 믿는다."
니오베 역시 결정론을 거부하고 - 메시아적인 구세주 또한 거부되는 것이다. -
개인으로서의 인간 Neo를 믿는 것이다.
인간 개인에 대한 믿음, 다시 또 등장한 불교적인 메세지.
자 이제, 네오는 어떤 선택을 하며, 어떻게 그의 자유 의지는 구현되는가?
그는 자신의 존재 목적을 규정짓는 것들을 하나하나 버려 나간다.
버려 나가는 만큼 그는 결정론의 필연성으로부터 자유로와진다는 것은 이미 말한 바이다.
The One 을 버렸고,
트리니티의 죽음으로서 사랑도 버린다.
그의 존재 목적은 이제 오직 하나, 자신의 대척으로 존재하는 스미드라는 惡과 싸워 이김으로서 평화를 가져와야 할 善,
천지가 진동하는 善과 惡의 대결... 치열한 싸움은 끝이 날 줄을 모른다. 스미드의 말대로 惡의 승리로 결정되어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최후의 순간,
네오는 그 자신이 善이기를 고집하지 않고 버린다. 惡을 무너뜨리기 위해 善을 고집하는 이상 善惡의 대결 구도는 결코 종식될 수 없기에, 惡이 스스로 소멸하게 하기 위해 그 대척에 있는 善, 그 자신을 버리는 것이다. 일체의 저항 없이 스미드에게 자신을 내어 주지만, 이와 동시에 스미드 또한 소멸되고 만다.
평화가 찾아 온 후, 이 결과를 알고 있었느냐는 물음에 오라클은
"아니, 다만 믿었을 뿐."이라고 답한다.
결정되어 있지 않았고, 필연적인 것이 아니었기에 오라클은 예언할 수 없었다. 알 수 없었다. 오로지 인간 개인의 자유 의지를 믿었던 것이다.
그러면, 네오는, 네오는 어떻게 되었나?
그는 사랑과 善, 삶과 죽음, 자신의 존재 목적 일체를 내버렸다. 존재 목적 자체를 버려 버린 그는 목적론적 결정론이 절대 로고스인 세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네오에 대해 영화에서 아무런 묘사가 없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존재하지 않는 영역에 대해서는 우리의 말과 개념이 더 이상 상응할 수 없다. 네오에 대해서는 아무 말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일체의 존재 목적을 버린 그는 더 이상 로고스의 구속을 받지 않는다.
"... 니르바나에 이른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 그러므로 그를 두고 이렇다저렇다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 수타니파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