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이라도 바꿔 가난뱅이의 딸을 벗어나고 싶어

제발2003.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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억지로 몸을 일으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머니의 부스스한 머리가 보입니다. 만오천원짜리 아줌마 퍼머를 하고 자꾸 거울을 보십니다.

시내 좋은 미용실에서는 커트도 만원이 넘는다지요. 벼르고 별러 퍼머를 하신 어머니께서는 당신 눈에도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는지 자꾸 머리에 신경쓰십니다.

 

우리집에서는 다른 집에서 당연하게 생각되는 것들이 사치입니다.

꼭지만 틀면 콸콸 쏟아져 나오는 따뜻한 물이 그러합니다.

남들 다 가는 대학이 그러합니다.

변변한 집 한 채 없음이 그러합니다.

외진 곳에 살아 택배 아저씨가 잘 찾아 오지 못함이 그러합니다.

 

저는 스물한 살의 사회인입니다.

남들처럼 대학교는 들어갔습니다. 다만 집에서 원하는 국립 대신 등록금이 몇 갑절 더 드는 사립대학교입니다. 수능이란 것이 참으로 미묘하여 반에서 5등 안에 들던 내 등수를 20등 밖으로 밀어냈습니다. 저보다 더 놀란건 담임 선생님과 반친구들이었지요. 위로도 비난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전액 장학금 받고 억지로 들어간 대학교. 일년 만에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의 빚으로 내가 신용불량자가 된 이상 대학은 사치에 불과 했으니까요.

가끔씩 사무실에 앉아 대학 캠퍼스를 떠올려 봅니다. 다른 건 다 참을 수 있는데 집으로 오면서 사 먹었던 떡볶이는 도저히 잊을 수가 없을 것 같습니다.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새하얀 고층 아파트에 사는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친구를 초대할 수 있는 집을 가진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장학금을 받으면 좋고 안 받으면 말고... 이런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베냥여행을 가자며 조르느 친구가 부럽습니다.

학교 다닐 때 저축을 꼬박꼬박 내던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매일 매일 샤워를 할 수 있는 친구들이 부럽습니다.

 

더 가슴 아픈 건 진정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음입니다.

경험의 중요성일 테지요.. 등록금이 없어, 방세가 없어, 저축할 오천원이 없어

까만밤을 지새워 본 친구가 없기에 나의 고민상담은 신세타령이며 그들에겐 소설속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보기에 나는 보통 집안 이상의 친구입니다.

그들은 러브하우스에 나올 만한 쓰러질 듯한 우리집에 단 한번도 온 적이 없습니다.

월세임에도 자가 주택에 체크를 함 때문입니다.

아버지 혼자 하는 공장임에도 공장은 공장이기 때문입니다.

악착같이 벌어 남보다 더 많이 꾸미는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을 포장하기 위해 일부러 당당했던 내가 있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아버지가 교통사고로 어느 할머니의 목숨을 앗아 갔습니다.

합의금이 필요하답니다.

몇 천만원이 당장 필요합니다.

어머니께서 울면서 친척집에 전화를 겁니다.

요즘같은 불경기에, 예전에 빚도 아직 못 갚은 우리집이기에

하나같이 걱정만 해 줄 뿐 일원 하나 도움이 없습니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메말라 갑니다.

울음조차 나오지 않아 멍하니 방한구석 넋을 잃고 앉아 계십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남자친구에게 말을 했습니다.

저녁에 호프집이라도 아르바이트를 해야겠다고

하지 말라고 합니다.

분명 내가 쓰러질 거라 합니다.

 

남자친구는 우리집 형편을 유일하게 알고 있는 세상의 단 하나뿐인

내 친구입니다.

그러나 2년동안 가족처럼 친구처럼 내 곁에서 힘이 되어 주는 그도

나의 빚을 갚아주지는 못합니다.

우리집의 세금을 내 주지는 못합니다.

아버지의 합의금을 덜어주지는 못합니다.

 

자꾸 다른 길이 보입니다.

자꾸 나쁜 길이 보입니다.

세이클럽의 조건만남이나 알바가 눈에 띕니다.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싶었습니다.

요리학원을 다녀 자식들에게 매일 맛난 음식을 만들어 주고 싶었습니다.

남편에게 토끼같은, 여우같은 아내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무조건 돈입니다.

결혼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이렇게 지지리도 가난한 가난뱅이를 아껴줄 이가 있을까요

남자친구에게도 나 결혼은 못할 거라 못 박아 두었습니다.

 

돈이 많고 싶습니다.

돈이 아주 많고 싶습니다.

영혼이라도 바꾸라면 바꿔 돈이 많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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