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사랑 (시가 아니지만 그냥 올리겠습니다)

김철진2003.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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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첫사랑
                              
오늘도 악세서리 가게에 들렀다.

처음 애인 머리핀을 사는 친구를 따라서 신촌의 한 악세서리 가게에 들어갔었다.

그녀를 처음 본 건 그곳이었다.

머리핀을 만지작거리는 내게 다가와 "애인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네"

그러자 그녀는 보조개가 살포시 들어가며 웃어 보이며 분홍색 리본 핀을 집어 보이며 "이건 어때요?" 내가 시큰둥해 보였는지 그녀는 머리핀을 옆머리에 데 보이곤 다시금 보조개가 피어났다.

"예쁘네요..." "예쁘죠?" "...네...얼마죠?"

그렇게 나의 첫사랑은 시작된 것이다.

그 후로 쭉 일 주일에 두 세 번은 그곳을 지나갔고 일주일에 한번정도는 그곳에 들렀다.

"손님 애인은 행복하시겠어요, 얼굴도 예쁘실 거 같아요."

"...네 웃으면 보조개가 들어가요, 머리도 길고요, 그리고..." 덧니 얘길 할 뻔했다. 덧니 얘길 하면 어쩐지 내 마음을 들킬 것 같고 다시는 그녀의 웃는 모습을 볼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렇다, 활짝 웃을 때 그녀는 덧니가 보인다. 보조개가 들어가게 웃는 것도 예쁘지만 덧니가 살짝 드러나며 환하게 웃는 그녀의 모습은 날 석고상처럼 꼼짝도 못하게 만들어버리곤 한다.

그렇게 몇 개월 난 항상 그녀가 한가할 것 같은 시간에 그 곳에 갔고 그녀는 항상 내가 고르는 악세서리들을 착용해 보이며 또 그렇게 날 무너뜨리곤 했다. 그리고 내방에는 악세서리가 쌓이기 시작했고 악세서리들을 만지작거리며 잠이 들곤 했다. 동생 놈은 그런 내게 "형 이제 미친 짓 좀 그만해라!, 형! 성전환 수술이라도 할 거야?!"라며 혀를 끌끌 차곤 했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 나는 중대한 결정을 했다. 크리스마스이브 날에 그녀에게 꼭 말하고 말겠노라, 꼭 좋아한다고 말하고 말리라.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실연을 당하더라도 고백 해 버리는 게 백 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곤 그곳에 서 십이 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그녀에게 가장 어울릴 것 같은 목걸이를 샀다. 이 목걸이를 그녀에게 걸어주며 고백하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크리스마스 이부가 오길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과연 그녀는 그 목걸이가 자신의 목에 걸릴 거라곤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크리스마스이브라 그런지 사람들은 밤이 되도 북적북적 됐다. 조금 있으면 그녀가 퇴근 할 시간이다. 난 용기를 내어 악세서리 가게로 들어갔다. 그녀는 한 여자 손님에게 거울을 비추어 주며 악세서리 고르는 것을 도와주고 있었다.

"손님 이건 이만 원입니다, 저쪽에서 계산해주세요." 하며 계산대를 가리키다 나를 발견하고는 "어머 애인이 목걸이가 맘에 들지 않으신가 봐요?" "아니요 오늘은 물건 사러 온 것이 아니에요." "그러면... 아! 손님 잠시만 기다리시겠어요?" 그러고는 악세서리 가게 구석 쪽문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때였다. 친구 놈들하고 술을 했는지 얼굴이 뻘게진 동생 놈이 "형! 뭐해? 형 단단히 미쳤구나!" "이 자식! 조용히 안 해!" 동생 놈은 내 말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 큰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형! 한이라도 맺혔어? 줄 여자도 없는 악세서리를 왜 사는데!" 순간 저만치 뒤에 서있는 그녀를 보고 말았다. 순간 내 주먹이 동생의 얼굴을 강타했고 나는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

그런 나를 그녀는 어떻게 생각할까? 내가 고백을 했다면 그녀는 분명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저 내 생각만 하고 그녀의 생각은 못했던 것이다. 그녀와 나는 이렇다할 대화를 해 본적도 없고 그저 손님과 아르바이트생이었을 뿐 사적인 대화도 서로의 이름도 알지 못하는 전혀 상관없는 사이었는데 그저 나만이 그녀를 좋아했고 나만이 그녀를 사랑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의 웃음은 손님에 대한 친절이었고 예의였던 것이다. 어쩌면은 동생 놈이 잘 한 행동이었을 것이다. 난 목걸이를 한강에 던져버리고 강가에서 소주를 미친 듯이 마시다 깨어난 곳은 병원이었다. 그리고 다시는 그곳 아니 신촌엔 가고 싶지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얼마나 바보로 생각했을까? 그렇게 내 첫사랑은 미처 피우지도 못한 채 져버렸다.

2부 그들은 사랑했다 그러나...

이제 조금 있으면 대학생활의 마지막 방학이다. 방학을 하면 나는 유학 준비를 할 것이다. 유학자금을 모두 부모님에게 요구하기에는 너무도 미안했기 때문에 나는 일찌감치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고 처음에 반대하시던 아버지도 그런 나를 보고 승낙을 해주셨다. 이제 며칠이면 이곳에서의 지긋지긋한 아르바이트도 끝이다 생각 하니 너무도 기분이 상쾌했다.

한 손님이 머리핀을 고르고 있었다. 분명 애인에게 선물할 머리핀을 고르고 있을 것이다. 내가 정말 예쁜 머리핀을 골라주어야겠다.

"애인에게 선물하실 건가요?" 그는 머뭇거리다 "...네" 하며 멋쩍은 듯 웃어 보였다. "이건 어때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머리핀을 들어 보이자 미심쩍은 듯 머리핀과 나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가 다시 머리에 해 보이자 나를 한참을 바라보는 것이었다. 순간 나는 이 남자의 애인은 정말 예쁘고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일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예쁘네요..." "예쁘죠?" "...네...얼마죠?" 그는 그렇게 내가 골라 준 머리핀을 샀고 나는 그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아르바이트가 끝날 무렵 우리 가게 앞을 지나가는 그를 보게 되었다. 그 사람 회사가 이 근처인 것 같다. 잠시 스쳐간 그의 모습이었지만 내 가슴은 두근거리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무모한 첫사랑은 시작되었고 난 그를 보기 위하여 계속해서 아르바이트를 했고 한 달에 몇 번씩 애인의 선물을 사러 오는 그를 보는 것만으로 내 사랑은 점점 자라나 해바라기가 되었다.

가끔 그에게 애인에 대해 물어보았다. 그 사람과 대화 할 수 있는 꺼리라곤 그것 외에는 생각이 나지 않았다. 그의 애인은 긴 생머리일 것이고 나와 같이 웃을 때 보조개가 들어간다고 한다. 어쩌면 좀더 일찍 만났더라면 이 남자를 사랑 할 수 있었을 거라는 생각에 잠을 못 이루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그의 눈동자 속으로 내 마음은 휩쓸리고 그를 보는 것은 최고의 행복이자 또한 가장 큰 시련이었다.
이제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난 그의 사랑을 차지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에게 날 기억할 만한 그 무언가을 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와 적어도 친구 내지는 알 고 지낼 수 있는 사이라도 되었음 그저 그 사람을 바라볼 수만 있다면 난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고민 끝에 그가 그녀에게 선물 안한 것이 목걸이와 귀걸이라는 것을 알았다. 난 곧장 다른 악세서리 가게로 달려가 커플 목걸이 중 너무 비싸지도 않고 싸지도 않으면 정말 그와 그의 애인에게 잘 어울릴 것 같은 목걸이를 샀다.

다음날 그가 왔고 난 양쪽 주머니에 목걸이를 만지작거리며 그에게로 다가갔을 때 그는 뜻밖에도 목걸이 코너 쪽으로 갔고 항상 내게 먼저 해보라면 건네었는데, 그 날은 그냥 덥석 집고는 "이거 주세요." 하는 것이었다. 나의 목걸이는 사물함 구석에 남게 되었고 난 밤새도록 신촌을 방황했다. 이젠 잊어야 할 것 같다. 그래도 마지막으로 무언가를 주고 싶어서 지포라이터를 하나 샀다. 아르바이트 그만 두게 되었다고 그래서 주는 선물이라고 애인하고 행복 하라고... 꼭 그렇게 꼭 그렇게만 말하겠노라고 다짐을 하고 도 다짐을 하며 그를 기다렸다.
뜻밖에 크리스마스 날 이브에 그게 왔다. 애인하고 같이 왔나 둘러보았지만 애인일 것 같은 여자는 없는 듯 했다. 애인이 목걸이가 맘에 들지 않아서 왔느냐는 질문에 그는 "아니요 오늘은 물건 사러 온 거 아니에요."  그럼 왜 왔지? 아차 라이터! 나는 "잠시 만요." 하고 라이터를 가지러 창고에 들어가 잽싸게 라이터를 챙겨 들고 나오는 순간 그가 "이 자식! 조용히 안 해!" 하며 낮지만 날카롭게 말하는 것이었다. 저 남자는 누구일까. 생긴 걸 봐서 동생임에 분명한 거 같았다. 순간 동생이 "형! 한이라도 맺혔어? 줄 여자도 없는 악세서리를 왜 사는데!" 하며 소리쳤고 그의 주먹이 동생의 얼굴에 그대로 꽂혔다. 동생은 멀찌감치 나뒹굴었고 그는 어디론가 사라졌다.
애인하고 끝났구나... 한편으론 용기가 생기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그가 걱정이 되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더 이상 그는 오지 않았다. 나는 유학을 포기하고 다니던 대학의 대학원에 진학을 했고 아르바이트 한참 후에 그만 두게 되었지만 그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아마도 애인과 다시 사이가 좋아졌을 것이다. 그런 남자와 헤어질 여자는 절대로 없을 것이다. 그렇게 나의 무모한 첫사랑은 해바라기로 지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