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가 저에게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부모와 인연을 끝느냐고.. 자식과 부모가 맘대로 끝길수 있냐고.. 하지만 이제더는 참을수 없습니다. 너무너무 지쳤거든요..
저에게는 현재 아버지 한분이 계십니다. 어머니는 벌써 3명의 여자가 지나쳐갔구요...
어려서는 아버지와 저 이렇게 둘이서 큰집에서 방하나 받고 살았습니다. 큰어머니와 큰집자식들 형님.동생한테 엄청 눈치를 봤죠. 낮이면 아버지는 일나가시니 남은건 저혼자였고. 막내였던 아버지의 자식인 저와 장손이시던 큰아버지의 손자들은 할머니와 큰어머니게에 특별한 존재였죠. 그 덕분에 저는 혼자서 울던적이 많았습니다. 새벽까지 자지않고 아버지 기달린적도 많았구요. 어렸을때 정말 제가 의지할것은 아버지한분 뿐이었으니깐요. 그렇게 살던중 어느날부터 아버지가 비슷한 연령의 여자분을 데리고 오시더니. 제어머니라고 하시더군요. 잠시 딴곳에 살다가 돌아왔다고. 하지만 전 그분이 제친엄마가 아닌걸 알고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친어머니가 절찾으러 한번 온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너무어려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달라고 울고불던 그분이 제친어머니셨습니다.
새어머니가 생겨서인지 우리는 분가를 하게되었어요. 화장실도 푸세식이고 주위에는 산과 절이있는 보증금100에 10마넌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는 정말 나름 행복했습니다. 새어머니는 절 자주 때리고 아침도 한번 해주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교육열하나는 있으셨거든요. 밥은 아니지만 두유라는것도 시켜주셨고. 학교끝나면 아이템플 풀때까지 놀지도 못하게 하셨구요. 그때는 맞으면서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아양도 많이 부리고 말도 편하게하고.. 하지만 몇년지나고 어머니는 빛만남긴채 도망가셨습니다. 뭐,.. 이분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당시 아버지 성격을 보면 저도 이해가 가니깐요. 아버지또한 방황하시며 매일 화투하고 일도 않하시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결국 1달정도후에 큰집으로 다시 가게 되었죠. 큰집에서는 큰어머니가 이혼후 안계셨구 할머니와 손자들 뿐이었습니다. 이때 정말 눈치 엄청봤죠. 전 고기반찬이 한달에 1~2번먹는줄 알았습니다. 매일 할머니 다리어깨 주무르기. 밖에서도 못놀게 하시고.. 그렇게 5년을 지내다가
아버지가 절찾으러 오시더군요. 이번에는 또 다른 여자를 대리고.. 정말 싫었습니다. 다신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그분은 절사랑하지 않을거라는걸 한눈에 알수 있었거든요..
다시 푸세식화장실에 보증금100에 월 12만원짜리 집에 들어가게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어머니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거리감이 있었죠. 이분은 저에게 관심하나 없었습니다. 아침한번 주지 않고. 학용품사게 돈달라고 할때에는 한상 인상쓰시고. 아버지는 놀음 어머니는 술.. 매일 그걸로 싸웠구요. 단칸방인곳에서 두분은 항상 담배를 피셨습니다. 그래서 전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아침에 누런가래를 뱉었죠. 중학교때에는 급식을 안해서 도시락을 싸가야하는데 도시락은 일주일에 1~2번정도만싸주셨고. 보통은 1000원짜리 하나주시며 사먹으라고 했습니다.
두분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전 집에오면 항상 라면을 먹었습니다. 라면에 공기밥. 이게 중학교때 제 식단입니다. 전 속으로 이런걸 아버지께서 말려주실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고도 아무런조치도 없었고. 보고만 계셨죠..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주인집아줌마가 방이하나 남는다고 저쓰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방에는 패허같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란분 이불하나 티비하나 주시고 촛불하나 주시면서 거기에 자리깔아주시더군요. 그추운겨울에 .. 너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하지만 티는 안냈습니다. 좀만 참으며 어른이 되면 달라질거라고...
고등학교진학때에는 전 실업계를 가고싶었습니다. 집에서 등록금자체를 지원받고 있던 상황이라서 전 실업계가서 1등해서 장학금받고 취업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가 인문계로 가라고 하시더라요. 그래.. 한번가자 공부해보자 해서 갔습니다. 내신은반에서 중간 이상이었지만 수학영어는 확실히 공부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고3때에는 정말아니다 싶어서 학원보내달라고했지만 집에서는 보내주시지 않으셨구요. 내나이 26살동안 집에서 나에게 사준 옷은 10벌이 안되고 신발은 딱 2켤랩니다. 용돈도 주지않아서 매일 친구들에게 얻어먹고.. 아침굼고 점심 급식에 의지하고. 저녁은 또 라면.. 그래서 전 아직도 라면을 먹지 않습니다.
전 고2때까지 키가 155였습니다.지금은 70이구요. 아침에 너무 배가 고파서 우유하나시켜달라니깐 그것도 안시켜주더군요. 단칸방에 살때에는 이불도 정말 얇은걸로 주셔서 (제가자는곳은 창가옆)겨울에는 한상 감기.. 담배연기로 인한 가래..
고3수능끝나고 알바라는것을 첨하게 되었습니다. 만화방이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시급2500원짜리에서 80만원받았습니다. 땜빵매일했죠. 핸드폰이 너무 필요한데 사주지 않아서 핸드폰을 샀습니다. 대학교는 지방대학교 붙었지만 집에서 돈이 없다고 통학아니면 안된다고 안보내주시더라구요. 결국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전문대 지학했습니다. 산디과로..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디자인 돈 꽤들죠.. 컴터로 필요하고요. 컴터도 사주질않으니 돈벌어서 컴터를 샀습니다. 90마넌짜리 60마넌 보태고 30만원할부로 사주시더군요. 학교 생활을 위해 주말알바를 했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
남들은 그럴겁니다. 어떻게 맞벌이하는데 그렇게 못사냐고.. 힘든건 우리가족이 아니라 저혼자였죠. 아버지는 하루담배2갑이상이시고 어머니도 1갑 술. 그리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3만원짜리 낚시가고 일주일에 3일이상은 두분이서 친구분들이랑 놀러가고요..
집에 차가 있었는데 기름값이니 아버지용돈 어머니 술값.. 제가 보는눈에는 그것만 저에게 투자했었어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평한번 하지 않았죠..
집에 큰원망은 있었지만 꾹참았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그걸알고도 참는 아버지.. 저혼자만 참으면 되는거니까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생일상한번 받은적없고. 선물한번 받은적없고. 사랑한번 받았다고 생각한적 없으니..
그렇게 대학교 1학년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너가 갔다오면 자기가 기반 닦아 놓겠다고.. 전 그걸 믿었습니다. 그래서 큰원망 제대했을때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군대는 강원도산골에서 하다가 집에 왔습니다. 집은 변한것하나 없더군요. 그래서 제대 3일만에 동대문에 자리 얻어서 신발팔러 나갔습니다. 직원으로요. 사장님이 저보고 만식이라고 하시거군요. 당연하죠.머리는 빠박이 옷은 노스페이스흰티에 엔진.. 군대가기전에 입던거니까요. 그래서 자존심 버리고 부모님께 8마넌만 달라고했습니다. 그걸로 옷사고 신발은 매장에서 가불해서 사고.그렇게 10월에 제대후 3월까지 200을 모았습니다. 시장일을 하다보니 손님들에게 뒤쳐지지 않기위해서 신발이며 옷이며 자주 샀거든요. 부모님생신도 있었고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때에 패딩 2벌을 사서 부모님 드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때 제가 받은 선물은 양발한컬켤레.. 생신때에는 20마넌 넘는 신발 사드리고. 좋은 신발나오면 가불해서 사드리고. 옷사드리고.
그래도 5개월동안 200을 모았습니다. 나름 복학하면 1년은 쓰겠지 생각했죠. 주말알바 없이.. 하지만 집에서 등록금이 없다고 미루라고 하시거군요. 결국 미뤘습니다.
이때부터 화나 너무 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도 집에서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거라고. 이때역시 아침도 준적없고.. 이악물로 일했습니다. 5월쯤 어머니가 저에게 핸드폰비랑 집생활비를 달라고 하시더군요. 전 돈벌어서 등록금하고 1년치 생활할생각이었는데.. 생활비랑 핸드폰 다쓰면 도저히 돈이 안될것같아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화가 나서 그동안 나한테 뭘해줬다고.. 내가 돈벌어서 학교간다는데도 왜 그돈마져 뺕냐고....
하지만 핸드폰 결국 나한테 돌리고.. 3달 밀려서 끝길뻔한거 살리고. 8월까지 일해서 고작 300모았습니다. 본분이 학생인지라 돈버는것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9월에 일그만두고 200어머니 주면서 학비에 보태라고. 100은 나하고싶은거좀쓰겠다고.. 그래서 100으로 산거 pmp.dvd,학원비 였습니다. 일본어학원등록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공부했죠. )지금 일본어 공부한지 1년 반인데 1년만에 1급따고 현지통역사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자2급도따고. 회화는 유학생못지 않고요. 현지통역사 자체가 선생님이 일본사람이라서 수업도 일어로합니다.)
11월에 모아둔 돈다써서 학원댕기면서 알바를 했습니다. 집에 학원비좀 대달라고 하니깐 너무 싫어하더라구요. 하지만 꼭 받았죠..하지만그게 200중에 일부일줄은..
복학결국 학자금대출로 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집을 나갔죠. 그동안 통장을 보니. 맨날 -였습니다.돈을 빼돌렸는지 자기 말로는 60마넌짜리 적금들고 40마넌씩 현금 모을거라고 하더만.. 제가 준 200도 -메꾼거더라구요. 아버지 한달 월급이 250인데 저한테 돈하나 안들어가고 -가된다는건 빛이 상당하다는 거였죠. 그렇게 도망가서 3번째 어머니는 지금도 연락두절입니다.
복학해서 힘들었지만 2학기등록금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차석을 했습니다. 100마넌만 등록금 내면 되는데 아버지는 그게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너무 화가 나서 이거 안내주면 학교 포기할거라고말했습니다. 결국 내주시더라구요..
2학기때에는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위장취업해서 전 고시원으로 나왔구요.그게 벌서 9개월이 되었습니다.그동안 빛은 더늘었고.. 아버지란 사람은 또다른 여자를 보여주대요. 이번엔 친구라고..
결국 자신의 인생인거 그냥 맘대로 하라고했습니다. 정말 사람맞습니까? 어떻게 자식에게 또여자를 보여줄수 있습니까...
고시원 나올대 29마넌 받고 나와서 가불해가면서 졸작하고. 한달동안 계란후라이 1개에 고시원 밥먹고.. 창가도 없는 방안에서 공부하고. 12월 일본어 1급보고..
유학생각해서 알바 2탕을 뛰었습니다. 6개월동안 제 생활이 7시 기상 8시까지 알바가서 2시에 학원 7시까지 고시원와서 일하고 공부 1시에 취침...
몸이 너무 망가지더군요.. 여친구가 있는데 여친이 절 많이 챙겨줘서 그런대로 행복했습니다. 근데 유학비 모으는데 아버지가 오시더니. 파산신청한다고 돈좀달라고하시더라구요. 제 보험 다 없애고 보험비(제통장에서 나갑니다) 전화비도 6개월 내주더니 지금은 저에게 또 돌리고..
한달에 알바 2탕하면서 버는돈 80마넌중에 차비 식비 학원비 핸드폰 보험비. 아무리 안쓰고 해도 40이상 모이지 않네요...
지금 몸이 너무 아픕니다. 며칠전 이비인후과 가니 큰병원가라고해서 가보니 ct촬영하고 조직검사까지.. 코가 너무 막히고 콧물이 너무 나와서 그게 너무 목뒤로 넘어가서 소화도 안되고.. 아버지에게 병원에서 영양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피지혈이 안되고 수술까지 생각해야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전화 한통없네요.. 공기도 안좋은 고시원에서 혼자 아파하고 약먹기 위해서 밥시켜먹으면서 고통참고있는데 정말 너무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서 힘들어 하는 자식얼굴한번 보기 힘들며, 전화도 자신의 목적의외에는 하지도 않고. ...
이제 부모와의 인연을 끝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가 저에게 손가락질할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부모와 인연을 끝느냐고.. 자식과 부모가 맘대로 끝길수 있냐고.. 하지만 이제더는 참을수 없습니다. 너무너무 지쳤거든요..
저에게는 현재 아버지 한분이 계십니다. 어머니는 벌써 3명의 여자가 지나쳐갔구요...
어려서는 아버지와 저 이렇게 둘이서 큰집에서 방하나 받고 살았습니다. 큰어머니와 큰집자식들 형님.동생한테 엄청 눈치를 봤죠. 낮이면 아버지는 일나가시니 남은건 저혼자였고. 막내였던 아버지의 자식인 저와 장손이시던 큰아버지의 손자들은 할머니와 큰어머니게에 특별한 존재였죠. 그 덕분에 저는 혼자서 울던적이 많았습니다. 새벽까지 자지않고 아버지 기달린적도 많았구요. 어렸을때 정말 제가 의지할것은 아버지한분 뿐이었으니깐요. 그렇게 살던중 어느날부터 아버지가 비슷한 연령의 여자분을 데리고 오시더니. 제어머니라고 하시더군요. 잠시 딴곳에 살다가 돌아왔다고. 하지만 전 그분이 제친엄마가 아닌걸 알고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친어머니가 절찾으러 한번 온적이 있었거든요. 그때는 너무어려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저 달라고 울고불던 그분이 제친어머니셨습니다.
새어머니가 생겨서인지 우리는 분가를 하게되었어요. 화장실도 푸세식이고 주위에는 산과 절이있는 보증금100에 10마넌 아직도 기억이 나네요.. 처음에는 정말 나름 행복했습니다. 새어머니는 절 자주 때리고 아침도 한번 해주지 않으셨지만. 그래도 교육열하나는 있으셨거든요. 밥은 아니지만 두유라는것도 시켜주셨고. 학교끝나면 아이템플 풀때까지 놀지도 못하게 하셨구요. 그때는 맞으면서도 기뻤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 아양도 많이 부리고 말도 편하게하고.. 하지만 몇년지나고 어머니는 빛만남긴채 도망가셨습니다. 뭐,.. 이분을 원망하지는 않습니다. 그당시 아버지 성격을 보면 저도 이해가 가니깐요. 아버지또한 방황하시며 매일 화투하고 일도 않하시고. 집을 나가셨습니다.
혼자 남은 저는 결국 1달정도후에 큰집으로 다시 가게 되었죠. 큰집에서는 큰어머니가 이혼후 안계셨구 할머니와 손자들 뿐이었습니다. 이때 정말 눈치 엄청봤죠. 전 고기반찬이 한달에 1~2번먹는줄 알았습니다. 매일 할머니 다리어깨 주무르기. 밖에서도 못놀게 하시고.. 그렇게 5년을 지내다가
아버지가 절찾으러 오시더군요. 이번에는 또 다른 여자를 대리고.. 정말 싫었습니다. 다신 상처받고 싶지 않았고. 그분은 절사랑하지 않을거라는걸 한눈에 알수 있었거든요..
다시 푸세식화장실에 보증금100에 월 12만원짜리 집에 들어가게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저는 어머니에게 반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항상 거리감이 있었죠. 이분은 저에게 관심하나 없었습니다. 아침한번 주지 않고. 학용품사게 돈달라고 할때에는 한상 인상쓰시고. 아버지는 놀음 어머니는 술.. 매일 그걸로 싸웠구요. 단칸방인곳에서 두분은 항상 담배를 피셨습니다. 그래서 전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아침에 누런가래를 뱉었죠. 중학교때에는 급식을 안해서 도시락을 싸가야하는데 도시락은 일주일에 1~2번정도만싸주셨고. 보통은 1000원짜리 하나주시며 사먹으라고 했습니다.
두분이 맞벌이를 하셨는데 전 집에오면 항상 라면을 먹었습니다. 라면에 공기밥. 이게 중학교때 제 식단입니다. 전 속으로 이런걸 아버지께서 말려주실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알고도 아무런조치도 없었고. 보고만 계셨죠..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고, 주인집아줌마가 방이하나 남는다고 저쓰라고 하시더군요. 정말 좋았습니다. 하지만 방에는 패허같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때 어머니란분 이불하나 티비하나 주시고 촛불하나 주시면서 거기에 자리깔아주시더군요. 그추운겨울에 .. 너무 서러워서 울었습니다. 하지만 티는 안냈습니다. 좀만 참으며 어른이 되면 달라질거라고...
고등학교진학때에는 전 실업계를 가고싶었습니다. 집에서 등록금자체를 지원받고 있던 상황이라서 전 실업계가서 1등해서 장학금받고 취업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아버지가 인문계로 가라고 하시더라요. 그래.. 한번가자 공부해보자 해서 갔습니다. 내신은반에서 중간 이상이었지만 수학영어는 확실히 공부하는 법을 몰랐습니다. 고3때에는 정말아니다 싶어서 학원보내달라고했지만 집에서는 보내주시지 않으셨구요. 내나이 26살동안 집에서 나에게 사준 옷은 10벌이 안되고 신발은 딱 2켤랩니다. 용돈도 주지않아서 매일 친구들에게 얻어먹고.. 아침굼고 점심 급식에 의지하고. 저녁은 또 라면.. 그래서 전 아직도 라면을 먹지 않습니다.
전 고2때까지 키가 155였습니다.지금은 70이구요. 아침에 너무 배가 고파서 우유하나시켜달라니깐 그것도 안시켜주더군요. 단칸방에 살때에는 이불도 정말 얇은걸로 주셔서 (제가자는곳은 창가옆)겨울에는 한상 감기.. 담배연기로 인한 가래..
고3수능끝나고 알바라는것을 첨하게 되었습니다. 만화방이었는데 하루도 쉬지 않고 시급2500원짜리에서 80만원받았습니다. 땜빵매일했죠. 핸드폰이 너무 필요한데 사주지 않아서 핸드폰을 샀습니다. 대학교는 지방대학교 붙었지만 집에서 돈이 없다고 통학아니면 안된다고 안보내주시더라구요. 결국 집에서 그나마 가까운 전문대 지학했습니다. 산디과로.. 아실분들은 아시겠지만 디자인 돈 꽤들죠.. 컴터로 필요하고요. 컴터도 사주질않으니 돈벌어서 컴터를 샀습니다. 90마넌짜리 60마넌 보태고 30만원할부로 사주시더군요. 학교 생활을 위해 주말알바를 했습니다. 등록금은 학자금 대출..
남들은 그럴겁니다. 어떻게 맞벌이하는데 그렇게 못사냐고.. 힘든건 우리가족이 아니라 저혼자였죠. 아버지는 하루담배2갑이상이시고 어머니도 1갑 술. 그리고 아버지는 일주일에 한번씩 3만원짜리 낚시가고 일주일에 3일이상은 두분이서 친구분들이랑 놀러가고요..
집에 차가 있었는데 기름값이니 아버지용돈 어머니 술값.. 제가 보는눈에는 그것만 저에게 투자했었어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불평한번 하지 않았죠..
집에 큰원망은 있었지만 꾹참았습니다. 나를 힘들게 하는 어머니.그걸알고도 참는 아버지.. 저혼자만 참으면 되는거니까요. 울기도 많이 울었죠. 생일상한번 받은적없고. 선물한번 받은적없고. 사랑한번 받았다고 생각한적 없으니..
그렇게 대학교 1학년마치고 군대를 가게 되었습니다. 이때 아버지가 저에게 그러시더군요. 너가 갔다오면 자기가 기반 닦아 놓겠다고.. 전 그걸 믿었습니다. 그래서 큰원망 제대했을때 다 버리고 다시 시작하자고..
군대는 강원도산골에서 하다가 집에 왔습니다. 집은 변한것하나 없더군요. 그래서 제대 3일만에 동대문에 자리 얻어서 신발팔러 나갔습니다. 직원으로요. 사장님이 저보고 만식이라고 하시거군요. 당연하죠.머리는 빠박이 옷은 노스페이스흰티에 엔진.. 군대가기전에 입던거니까요. 그래서 자존심 버리고 부모님께 8마넌만 달라고했습니다. 그걸로 옷사고 신발은 매장에서 가불해서 사고.그렇게 10월에 제대후 3월까지 200을 모았습니다. 시장일을 하다보니 손님들에게 뒤쳐지지 않기위해서 신발이며 옷이며 자주 샀거든요. 부모님생신도 있었고 크리스마스도 있었고.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때에 패딩 2벌을 사서 부모님 드렸습니다. 크리스마스 선물이라고. 그때 제가 받은 선물은 양발한컬켤레.. 생신때에는 20마넌 넘는 신발 사드리고. 좋은 신발나오면 가불해서 사드리고. 옷사드리고.
그래도 5개월동안 200을 모았습니다. 나름 복학하면 1년은 쓰겠지 생각했죠. 주말알바 없이.. 하지만 집에서 등록금이 없다고 미루라고 하시거군요. 결국 미뤘습니다.
이때부터 화나 너무 났습니다. 내가 이렇게 까지 해도 집에서는 나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않을거라고. 이때역시 아침도 준적없고.. 이악물로 일했습니다. 5월쯤 어머니가 저에게 핸드폰비랑 집생활비를 달라고 하시더군요. 전 돈벌어서 등록금하고 1년치 생활할생각이었는데.. 생활비랑 핸드폰 다쓰면 도저히 돈이 안될것같아서 안된다고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화가 나서 그동안 나한테 뭘해줬다고.. 내가 돈벌어서 학교간다는데도 왜 그돈마져 뺕냐고....
하지만 핸드폰 결국 나한테 돌리고.. 3달 밀려서 끝길뻔한거 살리고. 8월까지 일해서 고작 300모았습니다. 본분이 학생인지라 돈버는것보다 공부가 우선이라고 생각하고 9월에 일그만두고 200어머니 주면서 학비에 보태라고. 100은 나하고싶은거좀쓰겠다고.. 그래서 100으로 산거 pmp.dvd,학원비 였습니다. 일본어학원등록하고 하루 10시간 이상씩 공부했죠. )지금 일본어 공부한지 1년 반인데 1년만에 1급따고 현지통역사 공부하고 있습니다. 한자2급도따고. 회화는 유학생못지 않고요. 현지통역사 자체가 선생님이 일본사람이라서 수업도 일어로합니다.)
11월에 모아둔 돈다써서 학원댕기면서 알바를 했습니다. 집에 학원비좀 대달라고 하니깐 너무 싫어하더라구요. 하지만 꼭 받았죠..하지만그게 200중에 일부일줄은..
복학결국 학자금대출로 했습니다. 이때 어머니는 집을 나갔죠. 그동안 통장을 보니. 맨날 -였습니다.돈을 빼돌렸는지 자기 말로는 60마넌짜리 적금들고 40마넌씩 현금 모을거라고 하더만.. 제가 준 200도 -메꾼거더라구요. 아버지 한달 월급이 250인데 저한테 돈하나 안들어가고 -가된다는건 빛이 상당하다는 거였죠. 그렇게 도망가서 3번째 어머니는 지금도 연락두절입니다.
복학해서 힘들었지만 2학기등록금위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차석을 했습니다. 100마넌만 등록금 내면 되는데 아버지는 그게 없다고 하시더라구요. 너무 화가 나서 이거 안내주면 학교 포기할거라고말했습니다. 결국 내주시더라구요..
2학기때에는 학교를 가지 않았습니다. 위장취업해서 전 고시원으로 나왔구요.그게 벌서 9개월이 되었습니다.그동안 빛은 더늘었고.. 아버지란 사람은 또다른 여자를 보여주대요. 이번엔 친구라고..
결국 자신의 인생인거 그냥 맘대로 하라고했습니다. 정말 사람맞습니까? 어떻게 자식에게 또여자를 보여줄수 있습니까...
고시원 나올대 29마넌 받고 나와서 가불해가면서 졸작하고. 한달동안 계란후라이 1개에 고시원 밥먹고.. 창가도 없는 방안에서 공부하고. 12월 일본어 1급보고..
유학생각해서 알바 2탕을 뛰었습니다. 6개월동안 제 생활이 7시 기상 8시까지 알바가서 2시에 학원 7시까지 고시원와서 일하고 공부 1시에 취침...
몸이 너무 망가지더군요.. 여친구가 있는데 여친이 절 많이 챙겨줘서 그런대로 행복했습니다. 근데 유학비 모으는데 아버지가 오시더니. 파산신청한다고 돈좀달라고하시더라구요. 제 보험 다 없애고 보험비(제통장에서 나갑니다) 전화비도 6개월 내주더니 지금은 저에게 또 돌리고..
한달에 알바 2탕하면서 버는돈 80마넌중에 차비 식비 학원비 핸드폰 보험비. 아무리 안쓰고 해도 40이상 모이지 않네요...
지금 몸이 너무 아픕니다. 며칠전 이비인후과 가니 큰병원가라고해서 가보니 ct촬영하고 조직검사까지.. 코가 너무 막히고 콧물이 너무 나와서 그게 너무 목뒤로 넘어가서 소화도 안되고.. 아버지에게 병원에서 영양상태가 너무 안좋아서 피지혈이 안되고 수술까지 생각해야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며칠이 지난 지금 전화 한통없네요.. 공기도 안좋은 고시원에서 혼자 아파하고 약먹기 위해서 밥시켜먹으면서 고통참고있는데 정말 너무 한다고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파서 힘들어 하는 자식얼굴한번 보기 힘들며, 전화도 자신의 목적의외에는 하지도 않고. ...
이제는 연을 끊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게 저를 위하고 그분에게 복수하는 방법이라고...
나중에 그분이 어떻게 되던 이제는 다시는 연락하지 않을생각입니다. 이제 남이라는 생각으로 혼자 살렵니다. 너무 힘듭니다..